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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135화 (135/524)

황금가 (135)

잠시 후 저 앞에 불이 환하게 밝혀진 건물이 보였다. 목적지인 대륙황가였다.

“문을 여시오!”

금장생은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문은 이미 부서지고 없었다.

금장생은 곧바로 대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사 비주 어디 있습니까?”

“여기예요.”

안쪽에서 사미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장생은 그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반 각 후 그는 약 냄새가 진동하는 건물로 들어섰다.

“여기예요.”

사미염이 금장생을 맞았다.

알몸으로 이곳까지 달려온 듯, 사미염은 포대기 같은 걸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여기 눕혀 주십시오.”

사미염 옆에 있던 노인이 침대를 가리켰다. 이 노인은 의원으로, 이름은 유인태였다.

금장생은 얼른 아수수를 침대에 눕혔다.

“언제 정신을 잃었습니까?”

유인태는 진맥을 하며 물었다.

“일각 전입니다.”

“몸 상태로 보면 최소한 반 시진 전에는 기절했어야 하는데요.”

“이곳까지 오면서 계속 말을 시켰습니다.”

“그건 아주 잘하셨습니다. 먼저 침부터 놔야겠습니다. 남편분만 계시고 소저는 나가 주십시오.”

“나는 친구예요. 자리를 지키고 싶어요.”

“괜찮겠습니까?”

유인태는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상관없습니다.”

“그럼 부인의 옷을 벗겨 주십시오.”

“전부요?”

“네.”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아수수의 옷을 벗겼다.

곧 아수수의 알몸이 드러났다. 그녀의 전신은 푸른색 반점으로 뒤덮여 있었다.

“독에도 중독됐군요.”

유인태는 침을 준비하며 말했다.

“백섬여白蟾蜍 독입니다.”

백섬여 독은 인사들이 사용하는 독 중 가장 강한 독이고 아수수와 같은 증상을 보인다는 걸 금장생은 알고 있었다.

“해약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자객들의 몸을 뒤져 보았어요?”

사미염이 물었다.

“인사들은 해약을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침으로 기능을 정지시켜 놓고 치료 방법을 다시 찾아봐야겠습니다. 이제 두 분은 나가 계십시오.”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밖으로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마 대협.”

오십 대 초반의 건장한 사내가 금장생을 향해 인사를 했다.

배가 적당히 나오고 살집이 두툼한, 전형적인 부자 상인 모습의 이 사람은 대륙황가 상단주 만보萬寶 석보산이었다.

마 대협은 대륙황가 상단주가 마왕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누구십니까?”

금장생은 석보산을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

석보산은 두툼한 살집 속에 감추고 있지만 강한 내공을 보유한 무인이었다.

“대륙황가 상단주 석보산입니다.”

“혹시 조상 중에 석군왕이란 사람 있습니까?”

“석군왕요?”

석보산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는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느닷없이 대문을 부수고 뛰어들어 온 알몸 여자에게 상단 호위들이 당했다는 보고를 받고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왔다. 그런데 상단 호위를 기절시킨 여자는 의각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이곳에 와서 알몸 여자의 정체를 알았다. 그녀는 마가의 백팔무영비 비주 사미염이었다.

이곳의 소유주가 마가이긴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이는 마왕뿐이다. 무기를 들고 위협하는 걸 보면 그녀도 알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요구하려는데, 이번에는 마왕이 다 죽어 가는 부인을 데리고 들이닥쳤다.

무슨 일인지 알고 싶은데 한마디도 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엔 석군왕을 아냐고 묻는다.

“모릅니까?”

“압니다.”

“그분에 대해 말해 보십시오.”

“천 년 전 분이고, 마가의 이인자로 있다가 더 큰 야망을 위해 팔전에 도전했던 분입니다.”

“팔전으로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했다는 사실도 압니까?”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야기가 통하겠군요.”

금장생은 궤짝을 내렸다. 그리고 안에서 비급 한 권과 륜 두 개를 꺼내 석보산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석보산은 여전히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비급은 해신마전이고 륜은 폭풍륜입니다.”

“해, 해신마전과 폭풍륜이라고요?”

석보산은 경악한 얼굴로 비급과 륜을 보았다.

석씨 가문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무인인 해신 석군왕의 무공과 독문병기가 바로 해신마전海神魔典과 폭풍륜暴風輪이었다.

“그렇습니다. 그건 철전제일문에서 얻은 겁니다. 맞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이걸 어떻게…….”

석보산은 비급을 넘겨 보았다.

“세상에…….”

그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가문에는 해신마전과 폭풍륜에 대한 내용이 전해 내려온다.

해신 석군왕은 팔전에 도전하기 위해 떠나면서 폭풍륜을 펼치는 무공 일 초를 남겼다. 그 무공은 지난 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왔고, 계속 다듬어져 지금은 삼 초로 늘어났다.

그런데 전해져 내려오는 그 일 초가 해신마전 맨 앞에 적혀 있었다.

의심할 나위 없이 석군왕 선조가 남긴 해신마전이었다.

이번엔 폭풍륜을 들어 보았다. 손바닥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팔이 휘청할 정도로 무거웠다.

그는 폭륜과 풍륜을 양손에 쥐고 내기를 주입해 보았다.

웅웅웅!

폭륜과 풍륜에서 나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 진품이 분명하군요.”

석보산은 멍한 얼굴로 폭풍륜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찾아온 가문의 보물이 선뜻 믿기지가 않는 눈치였다.

한참 동안 폭풍륜을 바라보던 그는 금장생을 보았다. 어느새 그의 눈빛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역시.’

금장생은 내심 감탄사를 내뱉었다.

보통 천 년 전 잃었던 가문의 보물이 돌아오면 흥분하기 마련이고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냐고 먼저 묻는다. 그러다가 수틀리면 살인도 불사하는 자가 부지기수다.

그런데 석보산은 한순간에 마음을 정리하고 보물을 내놓는 이유를 눈빛으로 묻고 있다.

아수수가 쉽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던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약이 필요합니다.”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했다.

“약이라고요?”

석보산은 의각으로 시선을 주었다.

“수수의 단전은 거의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내기를 밀어 넣어 줘도 받아들이질 못합니다. 그리고 암기를 스물다섯 개나 맞았고, 검상은 그 이상입니다. 저 상태로 살아난다고 해도 온몸은 흉터로 도배하디시피 될 겁니다. 사내는 검상이나 도상이 멋일 수도 있겠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남편인 제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여자 마음은 다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는 흉터를 없애 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흉터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환골탈태더군요.”

“그러니까 마 대협께서는 부인의 부상을 깨끗하게 낫게 하고 환골탈태시킬 영약을 내놓으란 말씀이십니까?”

“거기다 주안 효과가 있는 영약도 추가시켜 주면 더욱 좋고요.”

“…….”

석보산은 멍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금장생의 요구대로 하려면 최소한 세 가지 영약은 있어야 한다.

“그런 영약이 제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서 그런 얼토당토않은 확신이 나오는 겁니까?”

석보산은 어이없는 얼굴로 물었다.

돈을 주고 사 오라거나 구해 오라는 것도 아니고, 있는 걸 내놓으란다.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고 그것과 바꾸자는 겁니다, 단주.”

금장생은 해신마전과 폭풍륜을 가리켰다.

―마왕!

보다 못한 사미염이 전음을 보냈다.

그녀가 보기에도 금장생이 말이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늦으면 수수를 구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단주.”

“허!”

석보산은 고개를 돌렸다. 문 앞에는 유인태가 서 있었다.

“약왕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분 말이 맞네. 지금 상태로 하루만 지나면 저 부인은 다시는 깨어날 수 없네. 사실 지금 저분의 생기를 붙들고 있는 것도 내가 시술한 침이 아니라 알 수 없는 기운이네.”

“생사금침술로도 안 되는 겁니까?”

“침술로 어떻게 해 볼 시기가 지났네.”

‘생사금침술이라고?’

사미염은 깜짝 놀랐다.

생사금침술이란 말을 듣자 비로소 노인이 누군지 생각났다.

중원에는 죽은 자도 살려 낸다는 신의가 있다고 하였는데, 그 사람의 이름이 바로 약왕 유인태였다.

“하면 조금 전에 마 대협께서 말한 영약이 있으면 고칠 수 있습니까?”

“내 의술과 마 대협이 있으면 가능하네.”

“그렇군요.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석보산은 자리를 떴다.

“약이 정말로 있는가?”

유인태는 멀어지는 석보산을 향해 소리쳐 물었다.

하지만 석보산은 대답이 없었다.

“우선 저기로 들어가시지요.”

유인태는 다른 방을 가리켰다.

금장생과 사미염은 유인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심한 공격을 받은 모양입니다.”

유인태는 차를 타며 말했다.

“네. 저를 노리고 온 자들이었으니까 제가 다쳐야 하는데…….”

“마 대협께서도 정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견딜 만합니다.”

“일단 숨을 좀 돌리십시오. 이 차를 한 잔 마시고 나면 기혈이 진정될 겁니다.”

유인태는 찻잔을 금장생과 사미염 앞에 놓았다.

두 사람은 차를 한 모금씩 마셨다. 유인태의 말대로였다. 차가 한 모금씩 들어가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위명은 많이 들었습니다.”

사미염이 유인태를 보며 말했다.

“나를 아는가?”

유인태가 물었다.

“약왕 유인태를 모르면 중원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허허허! 내가 그렇게 유명인인 줄은 몰랐구먼.”

“그런데 실종됐다고 하던데, 이곳에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실종된 건 맞네. 석 단주가 아니었으면 난 지금쯤 저승에서 옥황상제와 바둑을 두고 있을 거네.”

“석 단주가 목숨을 구해 주었다는 말이네요?”

“그러네. 그리고 지금도 신세를 지고 있고.”

유인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석보산이 돌아왔다. 약을 가지러 간다고 말하고 떠난 지 한 시진 만이었다.

“이거면 되겠습니까?”

그는 세 가지 물건을 탁자 위에 놓았다.

두 가지는 옥으로 만든 상자에 보관돼 있고 한 가지는 자기병에 들어 있었다.

“이건 뭔가?”

유인태는 먼저 자기병 뚜껑을 따며 물었다.

“냄새를 맡아 보십시오.”

석보산이 대답했다.

유인태는 자기병 입구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이건?”

그는 석보산을 보았다.

순수한 건 아니지만 최고의 영약이라 부르는 공청석유가 분명했다.

공청석유는 한 방울만 있어도 죽은 자를 살려 낼 수 있다는 영약 중의 영약이었다.

“저도 처음엔 공청석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라는 건가?”

“그건 붉은색입니다.”

“붉은색?”

“네.”

“어디‥‥.”

유인태는 은수저를 가져와 자기병을 살짝 기울였다. 그러자 액체가 흘러나왔다.

유인태는 눈곱만큼 나오자마자 자기병을 세웠다. 그리고 다시 냄새를 맡아 보았다.

이어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았다.

“혹시 이거 붉은색 버섯 속에 녹아 있던 거 아닌가?”

유인태는 석보산을 보며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아마 그 버섯이 만년혈균이었을 거네.”

“만년혈균요?”

“그러네. 그리고 이 녀석은 만령옥액萬靈玉液이라 부르네.”

“만령옥액은 어떤 약입니까?”

“이거 마 대협께 드리는 거 아닌가?”

“맞습니다.”

“그럼 알려고 하지 말게.”

“왜…….”

“알고 나면 나는 자네 송장을 치워야 할지도 몰라서 그런 거네.”

“약왕께서 제 송장을 왜 치웁니다.”

“속 터져 죽을 수도 있으니까 하는 말 아닌가?”

“그러니까 약왕 어르신 말씀은…….”

석보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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