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34화 (134/524)

황금가 (134)

“자면 안 됩니다.”

“졸려요.”

“부모님에 대해 말해 보세요.”

“부모님?”

순간 아수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좋은 분이셨나 보죠?”

“최고였어요.”

“저완 정반대였군요.”

“부모님을 좋아하지 않았나 봐요.”

“어머닌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진 그다지…….”

“왜 싫어했는데요?”

“우리 아버진 지독한 구두쇠였거든요.”

“어느 정도이기에 구두쇠라고 그러는 거죠?”

“일 년에 벌어들이는 돈이 수백만 냥인데도 입는 옷은 딱 한 벌이었습니다.”

“정말요?”

“네.”

“봄가을은 어찌어찌 버틴다고 해도 겨울이나 여름은…….”

“겨울에는 그 옷 위에 장포를 걸치고, 여름엔 장포를 벗고 옷소매를 팔꿈치 위까지 걷습니다. 아버지 말에 의하면 그렇게 하는 게 반팔 옷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랍니다.”

“일리가 있네요. 그럼 당신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건 뭐죠?”

“돈입니다. 진열장을 만들고 투명한 유리로 사방을 막은 다음 그 안에 은자와 금자를 넣어 두고 바라보는 걸 가장 좋아합니다. 아무튼 이 정신 나간 양반은 부인이나 자식보다 진열장 안에 있는 돈이 훨씬 사랑스럽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답니다.”

“풋!”

아수수는 피식 웃었다.

“왜요?”

“누군가와 아주 많이 닮은 것 같아서요.”

“누구요?”

“당신요.”

“저와 닮았다고요?”

“아주 비슷해요.”

“그런 말 마세요. 전 아버지와 정반대로 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는 사람이라고요. 우리 아버진 자식이 열다섯 살이 되면 돈을 벌 줄 알아야 한다면서 내쫓아 버립니다. 그리고 오 년 동안 들어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게 우리 집안의 전통이라면서요.”

“먹고살 건 마련해 주시겠죠?”

“아뇨.”

“그러면?”

“우리 아버지가 내쫓는 자식에게 주는 돈은 은자 두 냥입니다. 한 달 치 밥값이죠.”

“정말 그것밖에 안 줘요?”

“그렇다니까요.”

“당신은 어떻게 했는데요?”

“안 나갔습니다.”

“집안의 전통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전통은 큰형과 둘째 형만 지키면 되지 막내인 저까지 지킬 필요 없잖아요. 더구나 제겐 우리 집안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분이 있었거든요.”

“그분이 누군데요?”

“어머니요.”

“호호!”

아수수는 자신도 모르게 크게 웃었다.

“악!”

순간 그녀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크게 웃다가 근육이 뒤틀리며 상처를 자극한 것이다.

“괜찮아요?”

“계속하세요.”

“그렇게 크게 웃으면 상처가 벌어져 멈췄던 피가 다시 흐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잠드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알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후원도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밥을 든든히 먹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글쎄 깨어 보니 퀴퀴한 냄새로 가득한 배 안이지 뭡니까. 세상에 우리 아버지가, 내가 집을 나가지 않으니까 짐짝 속에 집어넣고 배에 실어 버린 겁니다. 그것도 동영으로 가는 배에 말입니다.”

“정말요?”

“그렇다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그때 제 수중엔 아버지가 주신 두 냥하고 어머니가 비자금으로 찔러주신 백 냥을 합쳐 백두 냥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품속을 뒤져 보니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선장이란 작자가 훔쳐 간 게 분명한데 증거가 없어서 뭐라 말도 못 했습니다. 아무튼 나는 완전히 빈털터리가 돼 동영으로 가는 배를 타게 된 겁니다.”

“그, 그래서요?”

“험상궂은 자가 다가와서 동영까지 가는 뱃삯 일백 냥을 내놓으라고 하더군요.”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잖아요.”

“그래서 동영에 도착할 때까지 배 안의 온갖 잡일을 다 했습니다. 그렇게 해도 뱃삯을 다 갚지 못해 새우잡이 배로 팔려 갔고요.”

“새우잡이 배요?”

“일명 멍텅구리 배라고 부르는데, 노도 없이 망망대해에 섬처럼 둥둥 떠 있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그물을 올리고 다시 치는 일만 되풀이하죠.”

“그런 곳에서 생활했다고…….”

다시 아수수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금장생은 그녀의 명문혈로 주입하던 내기의 양을 늘렸다.

그는 지금껏 몸을 날리면서도 계속 내기를 주입하고 있었다.

“힘을 내세요!”

금장생은 다급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때 그의 손에서 투명한 광채가 흘러나와 아수수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아수수의 명문혈에 손을 대고 있던 금장생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그다지 특이할 게 없는 집안이었어요. 아버지나 어머니도 평범했고요.”

“두 분은…….”

“돌아가셨어요.”

“부모님 연세가 어떻게 되셨는데요?”

생각보다 일찍 돌아가신 것 같아서 묻는 말이었다.

“엄마가 마흔 살 때 저를 낳으셨어요.”

“늦둥이였네요?”

“그래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어요.”

“어머니와 아버진 무인?”

“네. 그렇지만 두각을 나타낼 정도로 강하진 않았어요. 북천장의 이인자까지 지내셨던 조부님과는 달리 아버진 무공에 자질이 없었어요. 거기에다 무공보다는 책 읽는 걸 더 좋아하셨거든요.”

“그랬군요. 그런데 사 비주와는 어떻게 친구가 된 거죠?”

“그 당시 미염의 조부님이 북천장이었어요. 할아버지를 보러 갔다가 처음 만났어요. 나완 달리 미염은 활달하고 무공도 뛰어났어요.”

“성격이 전혀 다른 것 같은데 친구가 됐군요.”

“처음엔 서로 서먹서먹했어요. 우리가 친구가 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함께 비밀을 공유하면서였어요.”

“어떤 비밀인데요?”

“그건 말하기 곤란해요. 무덤으로 들어갈 때까지 비밀로 하기로 했거든요.”

“그러니까 더 궁금해지는데요?”

“말 못 해요.”

“그러지 말고 말해 보세요. 나도 아버지가 날 동영으로 가는 배에 강제로 태웠다는 걸 말했잖아요. 그건 우리 아버지 명예와 관련된 거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이었단 말입니다.”

“말로만 싫어한다고 하지 실제론 사랑하나 보네요.”

“누구, 아버지요?”

“네.”

“아닙니다. 전 아버지를 싫어합니다. 절대적으로.”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하던데…….”

“그나저나 그거 말 안 해 줄 겁니까?”

“알았어요, 말해 줄게요. 어쩌면 가는 도중에 죽을지도 모르니까.”

“끔찍한 소리 하지 말고요.”

“미염이 알몸 봤죠?”

“본의 아니게 보고 말았습니다.”

“어때요?”

“뭐가요?”

“미염이 알몸을 본 소감을 말하는 거예요.”

“저는 여자 알몸보다 돈을 더…….”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래도 여자 알몸을 봤으니까 뭔가 느낀 게 있을 거 아니에요.”

“첫 번째 느낌은 ‘크다’였습니다.”

“가슴이?”

“가슴과 엉덩이 모두요.”

“지금 미염이 몸이 열여섯 살 때 완성된 거라면 믿겠어요?”

“그래요?”

“네.”

“상당히 조숙했네요?”

“미염이뿐만 아니라 저도 그랬어요.”

“당신도?”

“네. 하지만 우린 몰랐어요. 큰 가슴과 엉덩이를 가리기 위해 큰 옷을 입고 다녔거든요. 그러다가 조부님들을 따라 놀러 간 적이 있어요. 열흘 일정이었는데, 첫날 가는 도중 비를 흠뻑 맞고 말았어요. 객잔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둘은 목욕을 해야 했어요. 처음엔 서로 머뭇댔죠.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함께 목욕을 하게 됐고, 서로의 몸을 보게 된 거예요. 그리 다를 게 없는 서로의 몸을 보고 우리 둘은 빙그레 웃었어요. 그리고 욕실 안에서 물장구를 치고 놀았고요. 그런데 미염은 몸만 조숙한 게 아니었어요. 그녀는 성이 주는 즐거움을 알고 있었던 거예요. 물론 사내를 알았다는 건 아니고요. 사내들도 그렇지 않나요?”

아수수는 느닷없이 질문을 던졌다.

“뭘 말하는 거죠?”

“자위 말이에요.”

“끙!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닙니까?”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아줌마들은 본래 그래요.”

“그래도 그런 이야기는 별롭니다.”

“그래도 계속할래요. 지금 안 하면 다시는 못 할지도 모르잖아요.”

“안 죽는다니까 그러네요.”

“아무튼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총각에게 너무 자극적인 이야기는 건강에도 좋은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 유언이라니까요?”

“그런 걸 유언으로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튼 계속할 테니까 당신은 침이나 흘려요.”

아수수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무튼 아줌마는…….”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게 아수수에게서 생기가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이유가 명문혈에 대고 있는 자신의 손 때문이라는 걸 알지 못한 그는 쉬지 않고 조잘거리는 것 덕분에 정신을 잃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수수의 이야기를 제지하지 않았다.

“젊은 여자아이들이 만나면 늘 그렇듯 우리도 사내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미염인 그쪽 방면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어요. 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면서도 미염의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들었어요. 그러다가 사내와의 잠자리 이야기까지 나온 거예요. 미염인 마치 자기가 해 본 것처럼 자세하게 설명했고, 어느 순간 날 만지기 시작했어요. 지금 침 삼켰죠?”

“무슨 침을 삼켰다고 그래요.”

“방금 목젖이 울렁거리는 걸 보았는데요?”

“그건 당신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삼킨 겁니다.”

“헹! 핑계는. 이제부턴 더 많이 삼킬 준비를 해야 할 거예요. 왜냐면 더 야해질 테니까요.”

“아픈 사람 맞아요?”

“아프니까, 곧 죽을 것 같으니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라고요.”

“그러다가 살아나면 어떻게 할 건데요?”

“비밀을 지키기 위해 당신을 죽일 거예요. 제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만졌다는 부분까지요.”

“풋! 아닌 척하면서 다 기억하고 있네요.”

“책도 한 번 보면 다 기억하는 납니다. 그런 건…….”

“아무튼 그날 난 엄청난 경험을 했어요. 만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여자의 쾌감을 알아 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하면, 둘이 금지된 사랑을 나누었다는 거죠?”

“쾌락과 열정으로 가득한 풋내기들의 사랑을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해도 되는 거예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열흘 동안인데도.”

“열흘 동안 매일?”

“그런 느낌은 난생처음이었거든요.”

“흠! 두 분 다 독특한 성적 취향을 지녔군요.”

“놀라지 않으세요?”

“그다지 놀랄 만한 건 아닙니다. 황실에 대해 안다면 그다지 특이한 일도 아니니까요.”

“황실에서도 살았어요?”

“그곳에서 산 게 아니라 일을 조금 했습니다.”

“일이라고요?”

“네.”

“어떤 일인데요?”

“그건 비밀입니다.”

“나도 비밀을 말했잖아요.”

“불필요한 자들을 손봐 주는 그런 일입니다.”

“쉽게 말해서 자객 일을 했다는 거네요?”

아수수는 바로 알아차렸다.

“그건 아닙니다.”

금장생은 일단 부정했다.

“알았어요, 믿어 줄게요. 그런데 황실에서는 특이한 일도 아니라는 건 무슨 뜻이죠?”

“황실에는 내시와 후궁이 바글바글하다는 거 아세요?”

“그럼 그들이?”

“후궁들은 황제의 부름을 받지 못하면 평생 독수공방하면서 늙어야 하고 내시들은 사내구실 자체를 못 합니다. 문제는 독수공방을 오래 하거나 성기가 없다고 해서 성욕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들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욕구를 해소하곤 해요. 후궁은 후궁들끼리 욕구를 해소하고, 내시는 멋진 사내를 남편으로 들이곤 합니다. 그런 곳에서 반년만 살아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변태적인 행위들은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동영에서는 아예 일상적인 거고요.”

“동영도 그래요?”

“중원, 동영, 조선 중에서 동영이 가장 심하고 그다음이 중원, 그리고 조선은 가장 엄격합니다.”

“그렇군요. 이젠 자야겠어요.”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던 아수수의 기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금장생의 손에서 흘러나온 광채도 더 이상 도움을 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젠장. 다 왔으니까 조금만 참아요!”

금장생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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