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33)
대륙황가
파앗!
멈춰 섰던 것도 잠시, 그의 신형이 전방으로 쏘아져 갔다.
그가 움직이자 자객들이 다시 공격을 해 왔다.
자객들은 먼저 암기를 던지고 그다음에 무기와 한 몸이 돼 몸을 날려 왔다. 자객들의 공격은 한결같이 동귀어진 방식이었다.
금장생은 어느새 장도와 단도를 모두 쥐고 있었다.
두 자루의 도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피가 퍼져 나갔다. 더불어 금장생의 온몸도 피에 젖기 시작했다.
그가 다수를 상대할 때 가장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건틀릿을 사용하지 않는 건 무기가 너무 특이하기 때문이었다.
혈반을 사용하게 되면 사미염이 기억하게 될 테고, 다시 금장생으로 돌아갔을 때 정체가 탄로 나기 쉽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조심해야만 한다.
“차하!”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고 삼백육십혈부를 펼쳤다. 그리고 왼손의 단도로는 소도笑刀를 펼쳤다.
허공이 쪼개지고 공간이 허물어졌다.
더불어 그 안에 있던 자객들은 수십 조각으로 잘려 바닥으로 흩어졌다.
“후욱! 후욱!”
금장생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백육십.”
그는 차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파앗!
그의 신형이 왼편으로 폭사되었다.
순식간에 삼 장을 건너뛴 그는 바닥을 향해 왜도를 찔러 넣었다.
왜도가 파고든 자리에서 피가 용출되었다.
“차앗!”
그는 몸을 쫙 펴고 회전했다.
돌아가는 그의 몸 옆으로 수십 개의 암기가 지나갔다.
스악!
허공에 잠시 멈췄다 싶은 순간 강력한 도강이 전방을 휩쓸었다.
척!
타앗!
내려섬과 동시에 다시 몸을 날렸다.
좌우측에서 도가 춤을 추었다.
가공한 힘을 머금은 권이 전방을 유린했다. 마왕의 독문무공인 양극마신만마권이었다.
푸스스! 푸스스!
양극마신만마권에 당한 자들은 한순간에 가루로 흩어졌다. 가히 가공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무공이었다.
금장생이 펼치는 양극마신만마권에 가장 놀란 사람은 허공에 숨어 있던 사미염이었다.
그녀는 금장생이 마왕 적천영의 무공을 펼치지 않은 이유가 완벽하게 익히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금장생은 양극마신만마권을 완벽하게 펼치고 있었다.
그가 지금껏 양극마신만마권을 펼치지 않았던 건 다수를 상대하는 무공으로는 어울리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지금 펼쳤다는 건…….’
사미염은 내기를 끌어 올려 천리지청술을 펼쳤다. 아무런 기척도 감지되지 않았다.
이번엔 내기를 풀고 눈을 감았다. 육감에 의지하여 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육감 역시 아무런 경고를 보내오지 않았다. 자객들이 다 죽었다는 뜻이다.
파앗!
그런데도 금장생은 쉬지 않았다. 그의 신형은 더욱 빠르게 내달렸다.
사미염 또한 금장생을 쫓아 내달렸다.
잠시 후 두 사람은 공터에 도착했다.
스악!
그때 아수수는 한 명 남은 자객의 허리를 잘라 내는 중이었다.
백상이 자객의 허리를 빠져나온 순간 아수수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없었다.
“드디어 끝났구나, 계집.”
자객들의 수뇌가 아수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열 명을 잃었지만 목적을 이루었으니까 됐다.
그는 아수수를 보았다.
수십 개의 암기가 온몸에 박혀 있고, 박힌 암기보다 더 많은 부상을 입었다. 설사 살아남는다고 해도 무공을 잃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공을 잃는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 놈을 잡고 나면 너도 죽일 테니…….”
자객 수뇌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난생처음 대하는 살기가 오른편에서 감지되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금장생이, 아니 마왕이 십 장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피는 온몸을 적시다 못해 장포 아래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마치 머리 위에서 피를 들이부은 것 같았다.
“다…… 죽은 거냐?”
수뇌는 물었다.
“그런 모양입니다.”
금장생은 들고 있던 왜도를 허공으로 던졌다.
하늘 높이 날아올라 간 왜도는 그와 자객 수뇌 사이 중간 지점에 박혔다. 절반 정도 파고든 왜도는 좌우로 부르르 떨었다.
“응?”
수뇌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낯설지 않은 결투 방식이었다.
아니, 저것은 사무라이들만의 결투를 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는 금장생의 도와 아수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수수가 있는 곳까지의 거리는 오 장.
신법을 펼치면 아수수를 먼저 없앨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목표가 아니다. 목표물, 즉 마왕을 없애기 위한 매개체로 사용하려고 했을 뿐이다.
‘의미 없는 짓.’
수뇌는 금장생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댈 과소평가했군.”
수뇌는 나직하게 말했다.
백만 냥의 청부에 맞춰 일백 명을 차출했고, 거기에 마가의 마왕이란 신분을 감안하여 백 명을 더 늘려 이백 명을 데리고 왔다.
이백 명 중에는 특급 자객 쉰 명이 포함돼 있다.
그들은 동영 삼대무공을 창안한 세 가문 중 두 가문의 인자술을 익힌 강자들이다.
심장박동마저 감출 수 있는 완벽한 은신술을 익혀, 오감으로는 찾아내는 게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당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원래 침몰하는 배에는 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 배에 팔자를 바꿀 만한 보물이 있다고 하더라도요.”
“우린 보물을 얻기 위해 배를 탄 게 아니라 이미 보물을 얻었소. 그리고 배가 침몰할지 안 할지는 아직 모르오.”
수뇌는 자신의 왜도를 던졌다.
하늘을 난 왜도는 금장생이 던진 왜도 옆에 꽂혔다.
금장생이 던진 왜도와 수뇌가 던진 왜도 사이의 거리는 한 자였다.
“그 배는 침몰합니다. 그건 내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요. 그보다, 사무라이 결투 방식은 어떻게 아셨소?”
“그건 당신이 죽기 전에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금장생은 뒤쪽에 있는 오른발 끝을 좌우로 돌려 홈을 팠다. 튀어 나갈 때 지지대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동영에 가 본 적이 있소?”
“그것도 잠시 후에.”
“수수야.”
자객 수뇌가 금장생에게 집중하자 사미염이 아수수 옆으로 내려섰다.
은신술이 풀리며 알몸이 되었지만 그녀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왔구나.”
아수수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자리를 옮기자.”
사미염이 아수수를 부축하기 위해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었다.
“끝나면.”
아수수는 금장생과 자객 수뇌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중간에 꽂힌 도에 멈췄다.
두 사람의 도는 꼭 같이 땅속에 박힌 것 같지만 박힌 깊이가 달랐다.
금장생이 던진 왜도는 절반가량 박힌 반면 자객 수장이 던진 왜도는 삼분의 일 정도만 박혀 있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뭐가?”
“도가 땅속에 박힌 깊이 말이야.”
“깊이라고?”
사미염의 시선이 두 도로 향했다.
그녀는 그제야 두 도의 차이점을 발견했다.
“마왕이 던진 게 더 깊이 들어갔네?”
“뽑아서 휘둘러야 하는 것 같은데 깊이 들어가면 더 불리하지 않을까?”
아수수가 말했다.
“그럴 것 같기는 한데…….”
사미염은 말끝을 흐렸다.
파랑!
어디서가 낙엽 하나가 날아와 왜도 사이로 떨어져 내렸다.
파앗!
파앗!
낙엽이 바닥에 닿는 순간 금장생과 자객 수장은 몸을 날렸다.
보폭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속도는 엄청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왜도 앞에 도착했다.
‘정수正手, 역수逆手!’
두 사람을 지켜보던 사미염이 내심 중얼거렸다.
자객 수장은 왜도를 정수로 쥔 반면 금장생은 역수로 쥐었다.
두 자루 왜도 중 먼저 땅속을 벗어난 건 자객 수장의 도였다. 자객 수장은 오른손에 이어 왼손으로 도 손잡이 뒤편을 잡으며 힘차게 걷어 올렸다.
‘응?’
자객 수장의 눈이 커졌다.
양팔을 들어 올렸으면 도가 하늘로 향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의 도 끝은 여전히 땅 끝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왼편으로 돌렸다.
동시에 출발했던 마왕은 오른편 무릎을 꿇은 채다. 그런데 그의 왜도는 전면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패한 건가?”
그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내가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왜도를 바닥에 꽂고 일어났다.
툭!
쿠웅!
츄악!
자객 수장의 상체가 굴러떨어지고, 피가 뿜어져 나왔다.
털썩!
그리고 서 있던 하체가 쓰러졌다.
자객 수장을 흘끔 바라본 금장생은 아수수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절했어요.”
“상비약 같은 거 있습니까?”
금장생은 아수수를 안으며 물었다.
“내상약이 있기는 한데 그걸로는 고치기 힘들어요.”
“그래도 해 봐야죠. 우리가 머물렀던 동굴로 먼저 가 있겠습니다.”
금장생은 몸을 날렸다.
금장생이 떠나자 사미염도 곧바로 몸을 날렸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동굴에 도착했다. 금장생은 곧바로 안쪽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쪽에는 물이 고여 있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연못 속에 손을 담그고 이화태양강을 끌어 올렸다. 곧 뿌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그사이 사미염은 장작을 모아 와 불을 지폈다.
연못물이 따뜻해지자 금장생은 곧바로 아수수의 옷을 벗겼다. 아수수는 금세 알몸이 되었다.
“끙!”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아수수의 몸에는 이십여 개의 암기가 곳곳에 박혀 있었다.
금장생은 품속에서 단검을 꺼냈다. 그가 꺼낸 건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검은색 단검이었다.
이화태양강을 펼쳐 검을 뜨겁게 달궜다. 그리고 빙극천월강을 펼쳐 검을 식힌 다음 아수수의 맥문을 쥐고 내기를 주입했다.
아수수의 기는 아주 약했다. 이 상태로 두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응급처치를 하는 동안 사 소저는 대륙황가로 먼저 가세요.”
“의원을 대기시켜 놓으란 말인가요?”
“몸 상태를 설명하고 약도 준비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알았어요.”
사미염은 벌떡 일어났다.
“가다가 장포 같은 거 있으면 아무거나 주워 입으세요.”
“장포요?”
사미염은 시선을 내렸다.
“학!”
그녀는 질겁했다.
자신은 알몸에 사류 하나만 허리에 감고 있었다. 너무 경황이 없어 은신술을 펼칠 때 발가벗었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제길!”
파앗!
사미염은 비급을 챙겨 들고 밖으로 몸을 날렸다.
“서둘러 주세요!”
금장생은 멀어지는 사미염에게 소리치고는 아수수에게 집중했다.
그가 내기를 주입해 주자 상태가 약간 호전되었다.
곧바로 암기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끝이 뾰족해 쉽게 뽑히는 건 바로 뽑고, 화살촉처럼 생긴 건 살을 째고 뽑았다.
암기를 맞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해야 할 정도로 온몸에 박혀 있었다. 심지어 은밀한 곳 바로 위에도 하나가 박혀 있었다.
“문제는 단전인데…….”
그녀의 단전에 문제가 생긴 건 내기를 주입하다가 알았다.
보통은 내기를 주입해 주면 단전에서 받아들여 자가 치료를 시작하는데 아수수의 단전은 내기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일단 씻기고.”
금장생은 따듯하게 데워 둔 물속으로 아수수를 집어넣고 씻겼다.
피가 씻겨 나가고, 뽀얀 살이 드러났다.
“독에도 당했네.”
몸 이곳저곳이 푸른색으로 변해 있었다. 인사들이 표창에 묻혀 가지고 다니는 독이었다.
다 씻기고 나서 몸을 닦고 옷을 꺼내 입혔다.
그리고 궤짝을 걸머지고 안았다.
“저 죽게 되나요?”
정신을 차린 아수수가 물었다.
“아닙니다.”
“내공이 모이지 않아요.”
“그건 다쳐서 그런 겁니다.”
“아무리 심하게 다쳤다고 해도 단전으로 내기가 모이지 않은 경우는 드물어요.”
“지금부터 대륙황가까지 쉬지 않고 달릴 겁니다.”
“자지 말라고요?”
“네.”
“노력은 해 볼게요.”
“가겠습니다.”
파앗!
금장생의 신형이 전방으로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