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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132화 (132/524)

황금가 (132)

금장생은 왜도를 역수로 잡았다.

위로 살짝 잡아당겨 뽑았다.

바로 손목을 틀어 왜도를 바닥과 수평으로 누였다. 그리고 한편 무릎을 꿇고 자세를 낮췄다.

가볍게 쥐고 있던 왜도를 강하게 그러쥔 순간 끝에서 반 장 길이의 도강이 쭉 튀어나왔다.

금장생은 상체를 뒤로 젖히면서 왜도를 횡으로 휘둘렀다.

스아아악!

왜도와 앞쪽으로 반 장가량 튀어나온 도강은 금장생 앞 공간을 위쪽과 아래쪽으로 분리시켰다.

그 안에 있던 자들도 공간과 운명을 같이했다.

털썩! 털썩! 털썩!

하체와 분리된 상체가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둥실! 둥실! 둥실!

이 장여 떨어진 곳에서 잘린 머리가 둥실둥실 떠올랐다. 사미염의 솜씨였다.

―수수는 어디 있죠?

사미염은 금장생에게 전음을 보냈다. 싸움이 시작된 이후 아수수가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저쪽에 숨어 있으라고…….

금장생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아수수의 기척이 감지되지 않았다.

“빌어먹을!”

파앗!

그의 신형이 전방으로 폭사되었다.

휙! 휙휙!

그가 몸을 날리자 좌우측에 은신해 있던 자객들이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표창 수십 개가 나선을 그리며 금장생을 항해 쏘아져 갔다. 푸르스름한 광채가 어려 있는 걸 보아 극독이 발린 게 분명했다.

금장생의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진 그는 납작 엎드렸다.

창! 창창창! 창창창!

콰앙! 콰앙! 콰앙!

좌우측에서 날아왔던 표창이 서로 부딪쳐 폭발했다.

“헉!”

금장생은 깜짝 놀라 내기를 끌어 올렸다.

하지만 폭발을 완전히 막아 내지 못했다. 강한 압력이 그의 등으로 몰아쳤다.

퍽! 퍽퍽퍽!

호신강기와 태극선의가 방어를 해 주긴 했지만 내부가 울렁거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많이 발전했네.”

그는 입가로 흐르는 피를 닦아 내며 중얼거렸다.

동영에서 표창은 질리도록 겪었다. 하지만 표창에 폭발 장치를 한 것은 없었다. 아마도 중원에서 개량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파앗!

금장생은 왼팔과 두 다리를 이용해서 바닥을 찼다. 그의 신형이 가공할 속도로 쏘아졌다.

휙! 휙!

전방에서 자객 두 명이 달려왔다. 종종걸음으로 내달리는 동영 인사 특유의 신법이었다.

금장생은 왼손으로 왜도를 쥐고 왼편 허리에 붙였다.

원래는 도집으로 집어넣어야 하는데 지금 그에겐 도집이 없었다.

스악!

두 자객의 도가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왔다.

금장생의 오른손이 왜도 손잡이로 향했다.

“타하!”

기합과 함께 번쩍! 하고 푸른 광채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자객 두 명은 도를 휘두르고 난 자세를 유지한 채 우뚝 서 있었다.

금장생은 이미 두 자객 사이를 지나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다.

“서, 섬뇌?”

자객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쩌억!

그 순간 자객의 몸통이 둘로 분리되었다.

오른편 허리에서 왼편 어깨까지 사선으로 잘려 나간 것이었다.

“마, 맞아.”

휙!

옆 자객의 상체가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 자객 역시 오른편 옆구리부터 왼편 어깨까지 사선으로 잘린 채였다.

쿠웅! 쿠웅!

상체에 이어 하체도 쓰러졌다.

“헉! 헉헉!”

아수수는 거친 숨을 내쉬며 신법을 펼쳤다.

그녀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주위를 살폈다.

슥! 슥! 슥!

미세한 소리가 감지되었다.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수수는 고개를 숙였다. 가슴 부분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표창을 뽑아낸 자리였다.

그녀가 표창을 맞은 건 한 식경 전이었다.

사실 그녀는 절대 고수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강하지 않다. 무림으로 나가면 그저 고수 소리를 들을 정도의 실력이다.

과거에 몇 번 절대 고수가 될 기회도 있었다. 영약 몇 가지가 마가로 들어왔던 것이다.

남편은 그 약을 복용하라고 권했다. 그녀도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끝내 복용하지 않았다. 절대 고수의 삶을 살기보다는 남편을 내조하는 현숙한 부인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영약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복용할 걸 그랬어.”

아수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영약을 복용하고 내공을 높여 놓았더라면 표창에 맞지도 않았을 테고, 이렇게 도망 다니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있는 자객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무공 실력을 지닌 그녀로서는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아니, 적이 강하다기보다는 그녀의 경험 부족이 더 컸다.

그녀는 실전은 고사하고 비무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금장생의 말대로 숨어 있었는데 적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그래도 익힌 무공이 있어 표창에 당하기 전까지 두 명은 없앴다.

표창이 꽂힌 곳은 왼 가슴이었다. 만일 가슴이 아니고 다른 위치였다면 지금까지 도망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수수는 주먹을 그러쥐었다.

이제 싸우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녀는 허리에 차고 있는 요대를 풀었다. 그리고 천천히 뽑았다.

그녀의 허리에는 반 장 길이의 연검이 감겨 있었다.

“이거 받으시오.”

“뭔데요?”

“굳이 필요 없겠지만 만일을 대비해서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오.”

“무긴가요?”

“백상白霜이라고 하오. 어머니께서 가지고 계셨던 건데, 신검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명검 축에는 들 정도로 좋은 거라 버리기도 아깝고 해서 말이오.”

“비급은 없어요?”

“무공도 익히려고?”

“연검에는 연검에 맞는 검법을 익혀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긴 하오. 비급은 여기 있소.”

“이름이 아름답네요?”

남편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다른 무공은 등한시했을지 모르지만 백무월광검법白霧月光劍法만큼은 전력을 다해 익혔다.

백무월광검법은 상당히 강한 검법이었다. 적천영의 말로는 선천왕부 비고인 서천고에서 가장 강한 무공 중 하나라고 하였다.

스아악!

왼편에서 진득한 살기가 밀려왔다.

아수수는 오른손을 강하게 밖으로 뿌렸다.

차르르!

백상이 튀어나오며 달빛 광채가 허공에 뿌려졌다.

백무월광검법의 일 초인 백무월광류白霧月光流였다.

퍽!

빛줄기 하나가 허공으로 파고들어 갔다.

그러자 자객 한 명의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앞에서 자객이 나타나자 아수수는 움찔했다. 그 순간 자객의 손이 활짝 펴졌다.

“헉!”

아수는 질겁하여 나려타곤 수법으로 몸을 굴렸다.

푹! 푹푹! 푹!

그러나 한발 늦은 듯, 뭔가가 몸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상대의 목을 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무림의 격언이 떠올랐다. 이번에 당한 것 역시 경험 미숙 때문이다.

“하지만!”

아수수는 벌떡 일어났다.

상당히 많은 부분을 암기에 맞은 듯 옷 곳곳이 벌겋게 물들고 있었다.

스아악!

또다시 전면에서 가공할 살기가 밀려왔다.

“차앗!”

아수수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백상의 끝이 허공으로 향하더니 수십 개로 늘어났다. 백무월광검법의 이 초인 백상월광환白霜月光幻이었다.

수십 개로 늘어난 백상은 전방을 무자비하게 휩쓸었다.

스악! 스악! 스악! 스악!

후두둑!

수십 조각으로 잘려 나간 자객의 몸통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푸욱!

“컥!”

아수수는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튕겼다.

전방에 있는 자를 없애는 순간 왼편의 허점이 드러났고, 그쪽에 은신해 있던 자의 공격을 허용하고 만 것이다.

이번엔 옆구리가 벌겋게 물들었다.

부상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아수는 옆구리를 부여잡았다.

“한꺼번에 쳐라!”

어둠 속에서 차가운 외침이 흘러나왔다.

명령을 내리는 자는 자객들의 수장이었다.

그가 아수수를 먼저 잡을 생각을 한 건, 마왕의 가장 큰 약점이 아수수란 확신에서였다.

아수수의 목에 검을 들이대고 무기를 버리라고 하면 들을 수밖에 없다.

아니, 설사 위협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도 아수수가 잡혀 있는 이상 집중할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손발이 뒤엉키게 되고 허점이 노출된다.

그 허점을 향해 공격을 집중하면 끝장을 낼 수 있을 터였다.

휙! 휙휙! 휙!

십여 명이 아수수를 향해 동시에 몸을 날렸다.

그들은 좌우로 이동하며 은신술을 펼쳤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때로는 눈보다 느낌이 더 정확할 때가 있소.”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아수수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달려오는 자들의 기척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차앗!”

아수수는 기합과 함께 백상을 휘둘렀다.

그녀의 몸은 한곳에 멈추어 있지 않았다. 앞으로, 뒤로, 왼편으로, 오른편으로 움직여 다녔다. 그리고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달빛 광채가 허공으로 떠다녔다.

그녀는 무공을 펼치는 게 아니라 춤을 추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일반 춤과 달랐다.

보통은 춤이 끝나면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남지만 그녀의 춤은 조각조각 잘린 시체를 남겼다.

자객들은 여전히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사방에서 번쩍이던 광채가 사라지고 주변 전경이 드러났다.

“헉! 헉헉! 헉!”

아수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부상을 입은 부위에서 피가 벌컥벌컥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직 싸움은 끝난 게 아니었다.

다시 세 명이 허공 속에서 나왔다.

마치 허공에 집이 있고, 그 집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것 같았다.

아수수는 긴장한 얼굴로 세 명을 보았다.

저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또 다른 자가 숨어 있다고 육감이 말하고 있다.

“먼저 저들을 없애야 볼 수 있겠지.”

아수수는 백상을 힘껏 그러쥐었다.

* * *

스악! 퍼억!

스악! 쩌억!

목이 잘리고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고 심장에 커다란 구멍이 난 채로, 자객들은 죽어 나갔다.

금장생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며 자객들을 없앴다.

자객들이 죽은 수만큼 그의 몸에도 표창을 비롯한 무기가 격중되었지만 태극선의 덕분에 치명적인 부상은 피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상까지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내상은 점점 심해져, 어느 순간부터 입가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휙!

재주를 넘으며 왜도를 찔러 넣었다.

푸욱!

왜도 앞부분이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허공에 은신해 있던 자의 몸속으로 파고들어 간 탓이다.

은신술이 풀리면서 자객이 모습을 드러냈다.

금장생은 손목을 틀면서 왜도를 뽑았다.

퍽!

등에서 강한 타격이 느껴졌다.

그는 왜도를 역수로 틀어쥐면서 뒤편으로 찔러 넣었다.

푸욱!

살을 파고드는 느낌이 손끝을 타고 전해져 왔다.

금장생은 다시 손목을 틀었다. 그리고 뽑아냄과 동시에 오른편으로 휘둘렀다.

스악!

다리 네 개가 일거에 잘려 나갔다.

물론 다리 네 개가 나타난 건 금장생의 공격으로 인해 은신술이 풀린 탓이다.

다리가 잘려 나간 자객들은 쓰러지면서도 금장생을 향해 양손을 뿌렸다.

동영 인자들의 필수품인 암기였다.

금장생은 머리를 최대한 웅크리고 몸을 굴렸다.

퍽! 퍽퍽퍽! 퍽퍽퍽!

조금 전 금장생이 있던 자리에 수십 개의 암기가 박혀 들었다.

퍽!

재주를 넘은 금장생은 바닥을 치며 솟구쳤다.

“차앗!”

기합과 함께 왜도를 도기처럼 휘둘렀다.

스악! 스악! 스악! 스악! 스악! 스악!

그의 전방 공간이 삼백예순 조각으로 분리됐다. 그리고 조각조각 잘린 자객 수십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더 이상 살아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아악!”

멀지 않은 곳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금장생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그건 아수수의 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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