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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131화 (131/524)

황금가 (131)

―일부러 그런 건가요?

사미염은 금장생 곁으로 다가가며 전음을 보냈다.

사실 사미염은 그녀 앞에 세 명의 자객이 숨어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만일 그들이 기습해 왔다면 꼼짝없이 당할 뻔했다.

그런데 금장생의 말로 자신도 모르게 허점을 보이고 말았고, 숨어 있던 자들은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다는 생각에 모습을 드러내고 공격을 감행했다.

금장생이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육감은 적이 숨어 있다고 경고를 보내는데 감각엔 걸려들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본의 아니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곤란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아, 아뇨. 괜찮아요. 그리고 내 몸이 이런 건, 자객행에 방해가 돼서 제모를 한다거나 일부러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이렇게 태어났어요. 유전이라고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절대 변태가 아니라는 거예요.

―나는 아무 말 안 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했다는 말은 꿀꺽 삼켰다.

다른 건 몰라도 사미염의 뒷모습은 굉장했다.

만일 엉덩이가 미인을 판단하는 제일 기준이라면 중원제일미는 그녀가 될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뭐라고 말하려고 했죠?

―아무것도 아닙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말하지 않으면 나는 모욕감을 느낄지도 몰라요.

―내가 본 여자들 중 최고의 뒷모습이란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여자를 많이 사귀었나 보죠?

―그리 많진 않습니다.

―얼마나 되는데요?

―두 명입니다.

―그중 한 명은 수순가요?

―네.

―풋!

사미염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내가 수수보다 한 가지라도 나은 게 있다는 게 놀라워서요.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도 바람직한 건 아닙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여자들이 좋아할 건 다 갖춘 것 같은데 왜 여자가 그렇게 없었죠? 참! 그보다 올해 몇 살이죠?

―해를 넘기면 스물네 살이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스물세 살?

―네.

―완전 영계네.

사미염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네?

―아, 아니에요. 그나저나 정말 신기하네요.

―뭐가요?

―어떻게 그 나이가 되도록 여자를 한 명밖에 사귀지 않을 수가 있는 거죠?

단 두 명 중 아수수를 빼면 한 명이 전부다.

보통 사내는 스물세 살이면 장가를 간다. 그런데 금장생은 여자를 단 한 명만 만나 보았다고 한다. 믿기지가 않았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네요?

―네.

―그럼 수수 말고 나머지 한 여자도…….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된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당신 말은, 여자를 사귄 적이 없다는 거네요.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아무튼 당신은 연구 대상이네요.

사미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자객들의 기척은 지워진 것처럼 완벽하게 사라졌다.

“이제 더 어려워진 것 같죠?”

사미염은 감각을 끌어 올리며 말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적이 은신술로 나온다면 우리도 같은 방법으로 대응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사미염은 슬쩍 떠보았다.

무공으로 봤을 때 금장생은 절대 무명이 아니다. 몇 가지 무공을 보여 주긴 했지만 독문무공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아울러 사미염은 금장생이 자객이라는 확신을 거둘 수가 없었다.

그녀가 은신술 이야기를 꺼낸 건 금장생이 펼치는 자객술을 보고 싶어서였다.

“사 비주는 은신술을 펼치세요.”

“마왕께서는…….”

사미염은 금장생을 마왕으로 부르기로 했다.

아수수와 어떻게 관계를 정리할지 알 수는 없지만 둘이 끝날 때까지는 마왕으로 대우해야 한다.

“놈들이 노리는 건 납니다. 내가 드러나 있어야 사 비주와 수수가 공격하기 쉽습니다.”

“그래도…….”

“시키는 대로 하세요.”

“알았어요.”

사미염은 은신술을 펼쳤다. 곧 그녀의 신형이 허공으로 녹아들어 갔다.

툭!

금장생 옆으로 옷 무더기가 떨어졌다.

사미염이 걸치고 있던 상의였다. 옷 중에는 가슴가리개도 포함돼 있었다.

―뭡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제가 익힌 은신술을 십이 성 펼치려면 어쩔 수가 없어요.

―혹시 나도 은신술을 펼치면 사 비주를 볼 수 있나요?

―여자가 싫다면서 알몸은 보고 싶은가 보죠?

―여자가 싫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한 말은 다 뭐죠?

―나는 여자보다 돈이 더 좋다고 했을 뿐입니다.

―킥!

―그나저나 볼 수 있어요?

―꿈 깨세요.

―아쉽네요.

금장생은 다시 왜도를 고쳐 잡았다.

스아악! 스아악! 스아악! 스아악!

대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귓전으로 들려왔다.

수십 명이 이편으로 달려오는 건 분명한데 정확하게 몇 명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무공은?”

금장생은 왜도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오른발을 높이 들었다.

온몸이 긴장되면서 내공이 빠르게 왜도로 쏟아져 들어갔다.

왜도의 도면에 광채가 입혀졌다.

그 상태에서 들어 올렸던 오른발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콰앙!

둔탁한 폭음과 함께 뿌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땅에서 솟구친 지력이 다리를 타고 허리를 지나 팔로 들어갔다.

“타하!”

금장생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힘이 정점에 달하는 순간 왜도를 도끼질하듯 힘껏 내리찍었다.

휙휙휙! 스아아아악! 스아아악!

순간 금장생 앞에 수백 개의 왜도가 나타났다.

왜도로 펼친 그것은 목촌에서 얻은 삼백육십혈부였다.

스악! 스악! 스악! 스악! 스악!

이번에도 역시 비명은 없고 피만 사방으로 튀었다.

스악!

슈우욱!

삼백육십혈부의 사정권 밖에 있었던 자들은 가공할 기세를 머금고 짓쳐 들었다.

“차앗!”

우렁찬 기합과 함께 왼손이 내밀렸다.

순간 수백 개의 손바닥 형태의 장인이 허공에 나타났다.

퍽! 퍽퍽! 퍽퍽퍽! 퍽퍽!

장인은 그물막을 형성하며 금장생을 향해 달려들던 자들의 머리를 부쉈다.

자객 머리 수십 개가 가루로 흩어졌다.

휙! 휙! 휙휙!

동료들의 죽음을 뒤로하고 수십 명이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왔다.

왜도와 하나가 된 그들은 이미 죽음 같은 건 접어 둔 지 오래였다. 설사 자신들이 죽더라도 상대를 기필코 없애고 말겠다는 동귀어진 수법이었다.

“좋은 자셉니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은 모름지기 그래야 합니다. 특히 자객처럼 건수당 얼마씩 받는 그런 일을 할 때는 내 목숨 같은 건 안중에 두지 말아야 하는 겁니다.”

금장생의 상체가 뒤로 젖혀졌다.

땅과 수평이 된 가슴 위로 암기로 보이는 물체가 스쳐 지나갔다.

금장생은 상체를 뒤로 젖힌 상태에서 단도를 뽑아 쭉 밀어 올렸다.

스아아!

단도는 금장생 위를 쏘아져 가던 자의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금장생은 왼팔을 아래로 힘껏 그었다.

몸통이 길게 갈라지고, 쏘아져 가던 자가 속도를 잃었다.

그 순간 좌우측에 있던 두 명이 동시에 왜도를 찔러 왔다.

금장생은 오른발로 떨어지는 시체를 차올렸다. 동시에 왼팔로 장력을 발출하여 시체와 함께 떠올랐다.

반 장가량 떠오른 그는 구렁이가 담을 넘듯 시체를 타고 넘었다.

순식간에 시체 등으로 올라간 그는 오른팔과 왼팔에 쥐고 있던 장도와 단도를 아래로 찔러 넣었다.

푹! 푸욱!

섬뜩한 소성과 함께 금장생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던 자들의 등에서 피가 솟구쳤다.

금장생의 왜도는 정확하게 동맥을 잘랐다. 왜도가 파고든 순간 손목을 비틀어 구멍을 크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지혈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들에게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었다.

스악! 스악! 스악!

둥실! 둥실! 둥실!

세 개의 머리가 거의 동시에 떠올랐다. 허공에 숨어 있던 사미염의 작품이었다.

쿠웅!

금장생은 시체에 올라탄 채 바닥으로 내려섰다.

파앗!

발바닥이 땅에 닿자마자 바로 튕겼다.

그의 신형이 지면에서 한 자 높이를 유지한 채 왼편으로 폭사되었다. 그쪽에서는 다수의 자객이 금장생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인 일조였지만 한 명은 등에 잔뜩 웅크리고 있어 앞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웅크리고 있던 자가 자신을 업고 가는 자의 어깨를 강하게 잡았다.

먼저 앞쪽 사내가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이곳에 있는 열 명은 전부가 쾌도수였다.

가공할 속도로 달려가던 쾌도수들이 금장생과 일 장 거리를 남겨 둔 지점에서 일제히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어 바닥을 디뎠다. 그러자 체중이 앞으로 쏠렸다.

턱! 턱턱턱! 턱턱턱!

그 순간 등에 업혀 있던 자들이 잡고 있던 동료의 어깨를 잡아채며 튕겨 나갔다.

그들이 잡아채는 힘은 교묘하여, 앞으로 넘어질 것 같던 동료들이 자세를 잡는 데 도움을 주었다.

슈캉! 슈캉! 슈캉! 슈캉!

등에 업혀 있던 동료들이 튀어 나간 순간 그들은 도를 뽑았다.

도집을 떠난 도는 금장생의 심장을 향해 쏘아져 갔다.

그들의 도 바로 옆에는 먼저 몸을 날렸던 열 명이 무기와 한 몸이 되어 날아가고 있었다.

‘이번엔…….’

자객 한 명의 눈동자에 차가운 광채가 어렸다.

먼저 몸을 날린 동료들이 전부 당한다고 해도 여러 개의 도가 남아 있다. 벼락보다 더 빠른 자도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는 성공을 확신했다.

“차앗!”

창!

스악!

창!

스악! 스악!

창!

서걱! 서걱! 서걱! 서걱!

두 자루의 도가 교묘하게 움직여 공격과 방어를 했다.

장도가 방어를 할 때면 단도는 상대의 목에 틀어박히고, 단도가 방어를 맡을 때는 장도가 상대의 목을 잘랐다.

금장생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잘린 머리가 떠오르고, 자객들의 심장에서 혹은 뒷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허공으로 솟구쳤던 피 분수는 곧 피 비로 변해 아래로 떨어졌다.

그 사이를 금장생은 쉬지 않고 움직여 다니며 자객들을 없앴다.

그의 옷은 어느새 자객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피로 인해 붉게 물들었다. 태극선의 표면으로 떨어진 피는 옷자락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을 적셨다.

척척척!

열다섯 명이 죽고 다섯 명이 살아남았다.

자객들은 부채꼴 모양으로 늘어선 채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어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도 역시 쾌검을 펼칠 자세였다.

금장생은 바로 앞으로 왜도를 던져 바닥에 꽂았다. 쾌도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도였다.

자객들은 금장생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타하!”

“차하!”

“하아!”

자객들이 처음으로 기합을 내질렀다.

그들은 종종걸음 치듯 내달렸다. 보폭은 턱없이 좁았지만 나아가는 속도는 신법을 펼치는 것처럼 빨랐다.

그들이 사정권 안으로 들어오자 금장생은 바닥을 찼다.

순식간에 바닥에 꽂아 넣었던 왜도 앞에 도착한 그는 손잡이를 잡았다.

그 순간 이미 다섯 자객은 왜도를 뽑아 금장생을 향해 찔러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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