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23화 (123/524)

황금가 (123)

생각지도 않았던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입맞춤을 하고 벌어진 금장생의 입 사이로 아수수의 혀가 밀고 들어갔다.

금장생의 손은 아수수의 옷 사이로 들어가 가슴을 그러쥐었다.

가슴에서 쾌감이 밀려오자 아수수는 자기도 모르게 입술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그랬던 것처럼 금장생 아래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가슴을 쥔 금장생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느새 왼손은 등을 타고 내려가 아수수의 엉덩이를 그러쥐었다.

이번에는 아수수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어찌해 볼 사이도 없었다. 강렬한 느낌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고, 두 사람은 빠르게 그 유혹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입맞춤을 한 지 일각도 지나지 않아 완벽하게 한 몸이 되어 버렸다.

금장생이 부상을 입은 상태라는 사실도 잊고 아수수는 격렬하게 움직였다.

흥분한 그녀의 입에서는 쉬지 않고 천강이란 이름이 흘러나왔다.

잠깐 동안 정신을 차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둘은 하나가 돼 버린 상태고, 그만두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아수수는 눈을 질끈 감고 현실에 몰두했다. 강렬한 느낌이 뇌리를 관통할 때마다 그녀는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

격렬한 사랑의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하지만 아수수는 내려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음양화합으로 내상을 치료하는 치료술을 펼쳤다.

어쩌면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변명인지도 모른다.

아니, 치료라는 핑계를 만들지 않으면 남편 외에 다른 사내를 안았다는 죄책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이번 역시 격한 쾌감이 몰아쳤지만 꼭꼭 눌러 참았다.

그리고 치료가 끝나자 곧바로 잠이 들었다. 스스로 수혈을 눌러 버린 탓이었다.

금장생은 밖으로 나와 아수수의 옷을 갈아입히고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자신도 옷을 입고 옆에 누웠다. 곧 잠이 들었다.

금장생이 잠에서 깬 건 한 시진 후였다.

잠시 천장을 바라보다가 일어났다.

몸을 추슬렀으니 이제 목전제칠문으로 가야 할 때였다.

그는 아수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침대에서 내려가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막 밖으로 나가려는데 아수수의 목소리가 등에 꽂혔다. 금장생은 몸을 돌려 아수수를 보았다.

“어떤 꿈입니까?”

“말하기가 좀 그래요.”

“악몽입니까?”

“어떤 의미에서는요?”

“우리 둘밖에 없는데 뭐 어떻습니까?”

“비밀로 하겠다고 약속해 주면, 아니 완전히 잊어버리겠다고 약속하면 말씀드릴게요.”

“이쪽 귀로 듣고 이쪽 귀로 흘리겠습니다.”

금장생은 오른쪽 귀와 왼쪽 귀를 차례로 가리켰다.

“어떤 사내와 사랑을 했어요.”

“꿈속에서요?”

“네.”

“좋았나요?”

“관계 도중에 남편 이름을 자꾸 불러야 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사내에게 빠져 버릴 것만 같았거든요.”

“아주 멋진 남자였나 보군요.”

“맞아요. 만일 내가 혼인한 몸이 아니었다면 죽자 사자 그 남자에게 매달렸을 거예요. 그만큼 멋있었어요.”

“꿈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까 남편에게 미안한 모양입니다.”

“아주 많이 미안해요. 나는 아직도 그이를 사랑하거든요.”

아수수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꿈인데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가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런 꿈을 꾸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럴까요?”

“제가 약속하겠습니다.”

“그렇군요.”

아수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 이만.”

금장생은 묵례를 하고 몸을 돌렸다.

“몸은 괜찮아요?”

“저도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속에서 누군가를 만났는데 그분이 저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몸 상태가 많이 호전됐습니다. 천천히 오세요.”

금장생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목촌으로 향했다.

금장생이 목전제칠문과 북전제팔문의 관문을 나선 건 이틀 후였다.

그가 목전제칠문에서 얻은 건 일 초의 부법이었다.

나무꾼이 나무를 하는 방법이라고 하였지만, 일 초에 삼백예순 번을 쪼개는 삼백육십혈부술三百六十血斧術은 그 어떤 무공보다 잔인했다.

그리고 팔전의 마지막 관문인 북전제팔문은 금장생에게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정확한 건 알 수가 없지만 북촌도 암가의 일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마왕.”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금장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는 북촌의 촌장 성치강이었다.

성치강 뒤에는 역시 검은 옷을 입은 노인 백여 명이 도열해 있었는데, 철암사鐵暗士 대원들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철암사 대원들은 일제히 복창하며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공연히 바쁜 분들을 제가 불러낸 것 같군요. 전쟁이 있는 것도 아니라 무기를 든 여러분을 볼 날이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꼭 전쟁이 아니라도 자주 놀러 올 테니까 박대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저희 북촌의 대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습니다, 마왕. 그리고 마왕이 찾아오지 않으시면 저희가 찾아가겠습니다. 그래서 마왕께서 숨겨 두고 계신 법기들의 비밀을 밝히고 말겠습니다.”

성치강이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시간이 허락하면 하나씩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럼.”

금장생은 묵례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상공!”

관문 밖에서는 아수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수수는 금장생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이틀 만이었다.

어색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런 느낌은 없었다.

“얼굴이 많이 야위었습니다.”

금장생은 아수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피부는 푸석푸석하고 눈 밑은 검게 물들어 있다. 지난 이틀 동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모양이었다.

“당신 때문에 조마조마해서 그랬던 거겠죠. 하지만 이젠 관문을 전부 통과했으니까 괜찮아질 거예요.”

“그래야지요. 이제 어디로 갑니까?”

“제가 모시겠습니다, 마왕.”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거석이 다가왔다.

“어디로 가는데요?”

“촌장들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아수수가 대답했다.

“어디서요?”

“철촌에 계세요.”

“그렇군요. 갑시다.”

금장생은 아수수의 손을 잡고 마차에 올랐다.

“사실 성공할 줄 몰랐어요.”

의자에 앉자 아수수가 말했다.

금장생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었다.

사실 이번 도전을 시작할 때만 해도 금장생이 모든 관문을 통과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몇 곳만 통과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여덟 관문 전부를 통과해 진정한 마왕이 된 것이다.

“제가 관문에 도전한 지가 얼마나 됐습니까?”

“보름 지났어요.”

“보름이 지났으면 승천비무가 열리겠군요.”

“네.”

“따로 준비해야 할 거라도 있습니까?”

“마왕은 얼굴만 준비하면 돼요.”

“얼굴만?”

“가솔들 잔치에 열심히 참석하면 된다는 뜻이에요.”

“승천비무 순서는 어떻게 됩니까?”

“첫날은 개회식이 있어요. 그리고 둘째 날부터 닷새 동안 먹고 마시고 놀아요. 물론 승천비무를 준비하는 자들은 열심히 운기행공을 하겠지만요.”

“한 달 내내 먹고 마시고 논다면서 굳이 닷새라는 기간을 둔 이유라도 있나요?”

“그 닷새는 원래 노는 날이 아니고 마왕과 천장들에게 도전하는 기간이에요.”

“그러니까 마왕이나 천장들에게는 도전하는 자들이 없으니까 노는 날과 다름없게 돼 버리고 말았다는 거네요?”

“맞아요.”

아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착했습니다, 마왕!”

그때 밖에서 거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장생과 아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차에서 내렸다.

마차가 도착한 곳은 철전제일문이 있던 대장간 앞이었다. 대장간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금장생과 아수수가 대문 앞으로 가자 거석이 힘껏 열었다.

그르르릉!

둔탁한 소성과 함께 대문이 활짝 열렸다.

“어서 오십시오, 마왕!”

우렁찬 외침이 안쪽에서 터져 나왔다.

금장생은 앞을 보았다.

팔촌, 아니 팔전의 전주와 함께 팔백 명의 무인이 도열해 있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금장생의 입에서 나직하지만 강한 힘을 내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 *

치익! 치이익! 치이익!

허공에서 나직한 소리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이곳은 해왕 백리장광이 부하들과 함께 떠났던 암역의 끝에 위치한 신전 안이었다.

지이잉!

역삼각형으로 늘어선 세 기둥은 간헐적으로 푸른색 광채를 토해 냈다.

지잉! 지잉! 지잉!

광채를 토해 내는 시간 간격이 점점 짧아졌다.

파앗! 파앗! 파앗!

그리고 어느 순간 세 기둥은 강렬한 광채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푸른 광채는 세 기둥의 중간 지점에서 만났다. 그리고 위아래로 퍼져 나갔다.

잠시 거대한 빛의 막이 생겨났다. 막의 표면은 물결처럼 쉬지 않고 일렁였다.

쑥!

막으로부터 두툼한 발 하나가 튀어나왔다.

이어 무릎이 드러나고 상체가 드러나더니 갑옷을 걸친 자가 나왔다.

밖으로 나온 자는 한 명이 아니었다. 갑옷을 입은 자 옆으로도 아홉 명이 더 서 있었다.

모두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있어 어떤 자들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 중 한 사내가 투구를 벗었다.

그러자 드러난 얼굴은 부하들과 함께 떠났던 해왕 백리장광이었다.

“길을 표시하라!”

백리장광은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존!”

부하들은 그들이 있는 곳부터 시작해서 계단 위까지 뭔가를 뿌렸다.

반짝이는 가루는 바닥에 닿자마자 희미한 광채를 흘렸다.

쑥!

또다시 갑옷 입은 자들 열 명이 나왔다.

그런데 이들은 백리장광 일행과 달랐다.

모두가 갑옷을 입고는 있었지만 생기가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게다가 눈동자는 녹색 광채를 뿌렸다.

그들은 빛을 뿌리는 길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섯 명씩 좌측과 우측에 늘어섰다.

그들 다음에 나온 자들은 먼저 나온 자들 앞으로 섰다.

녹광을 뿌리는 자들의 수는 많았다.

쉬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삼천 명 정도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발소리 말고는 어떤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말을 탄 검사들이 나왔다.

말은 물론이고 말에 탄 검사들까지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눈동자는 말과 사람 모두 녹색이었다.

이들은 카밀이 말한 ‘죽지 않는 자’들이었다.

‘죽지 않는 자’들이 천여 명 정도 나오고 나서 이번에는 투구의 안면 가리개를 들어 올린 자들이 나왔다.

지금까지 나왔던 ‘죽지 않는 자’들과 달리 이들의 몸에서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겼다. 말이 전혀 없는 건 먼저 나온 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에 나온 일천 명은 기사들이었다.

기사들은 열 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위로 올라가 자신들의 자리에 도열했다. 그들의 자리는 진형의 맨 앞이었다.

아래쪽에 남은 열 명은 막을 중심으로 좌우로 늘어섰다.

쑥!

쇠로 된 신발을 신은 발 하나가 막을 뚫고 나왔다. 이어 무릎이 나왔다. 그리고 허리가 나오고 가슴이 나오고 머리가 나왔다.

사내는 머리와 눈동자가 검었다.

어떻게 보면 중원 사람 같지만 코가 중원인보다는 서역인에 더 가까울 정도로 높았다.

얼굴은 미녀가 울고 갈 정도로 미남이고 나이는 이십 대 중후반으로 보였다. 덩치는 육 척을 훨씬 상회할 정도로 컸다.

사내의 어깨 위에는 검 손잡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사내의 시선이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훑었다.

그러다가 다시 왼편으로 향하더니 백리장광의 얼굴에서 멈췄다.

“중원에 도착한 거냐?”

유창한 중원 말이 사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렇습니다, 대공 전하.”

백리장광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마맹이 삼백 년 전에 존재했던 단체라고 했더냐?”

“그렇습니다.”

“그 당시 마맹 맹주의 이름은 철무황이라고 했더냐?”

“그렇습니다.”

“마맹의 후예는 남아 있지 않으냐?”

“조사를 해 봐야 하겠지만 드러내 놓고 마맹의 후예라고 자처하는 무림 세력은 없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앞장서라!”

“알겠습니다, 대공 전하.”

백리장광은 계단을 올라갔다.

“말에 오르십시오, 대공.”

말에 타고 있던 기사 한 명이 말 한 마리를 끌고 와 말했다.

말은 잡티 하나 섞이지 않은 검은색이었다.

푸릉!

새로운 환경에 긴장한 듯 말은 투레질을 했다.

“여긴 내가 그렇게 오고 싶어 했던 고향이다. 진정해라, 개살구.”

사내는 말의 목을 가볍게 쓸었다.

휙!

그리고 훌쩍 몸을 날려 안장에 앉았다.

그런데 말에 탈 때 펼친 건 신법이 분명했다.

사내는 말을 몰고 계단을 올라갔다.

군사는 가운데 통로를 비워 놓고 좌우로 늘어서 있었다.

사내는 통로를 따라 말을 몰아갔다. 그리고 맨 선두로 나갔다.

“출발하라!”

사내가 앞서가자 뒤편에 있던 자가 출발 명령을 내렸다.

오천 명으로 이루어진 군단은 신전을 벗어나 암역을 빠르게 내달렸다.

쉬지 않고 내달리던 일행이 멈춘 곳은 역천영면마진으로 들어가는 통로 앞이었다.

사내는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기사와 ‘죽지 않는 자’들이 그를 따라 들어갔다.

역천영면마진 안으로 들어간 그들이 가장 먼저 목격한 건 무릎을 꿇은 채 땅바닥에 입을 맞추고 있는 대공의 모습이었다.

“드디어 돌아왔다. 비록 삼백 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말았지만 결국엔 돌아왔다. 어쩔 수 없이 떠났던 내가 돌아왔단 말이다, 중원이여!”

사내는 상체를 들었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나 갈릭 드 무혼이, 아니 무혼이 돌아왔단 말이다!”

사내의 외침은 역천영면마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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