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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122화 (122/524)

황금가 (122)

삼백 년 만의 귀환

공촌 촌장 장만익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공촌은 집을 짓거나 다리를 건설하는 목수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 팔전의 한 곳이다.

그는 이미 금장생이 도촌에서 보여 주었다는 활약에 대해 들었다. 아울러 도촌의 촌장 천득으로부터 금장생의 몸 상태가 족히 두어 달은 요양해야 할 정도로 최악의 상태라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금장생이 공전제육문에 도전하겠다고 찾아온 것이다.

“정말로 도전하시겠습니까?”

장만익은 물었다.

“‘정말로’라는 건, 공전제육문이 가장 강한 관문이란 뜻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제 말은…….”

“안내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장만익은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까지 나오는데 안내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후 금장생은 지하 광장에 도착했다.

“어떤 관문입니까?”

“우리 목수들은 일을 하다가 위에서 떨어지는 목재에 맞거나 높은 곳에서 일하다가 떨어져 부상을 입는 일이 흔하게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상을 피할 수 있는 몸을 만들길 원했습니다.”

“육체의 단단함을 시험하는 관문이란 뜻이네요.”

“그렇습니다.”

“해 볼 만하겠네요.”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제가 저기 서면 되는 건가요?”

금장생은 높이가 한 자 정도 되는 단을 가리켰다.

나무인지 돌인지 쇠인지, 재질은 알 수 없지만 단은 검붉은 색이었다.

단 가운데에 족쇄로 보이는 물건 두 개가 박혀 있었다.

“네.”

장만익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장생은 단 위로 올라섰다.

“맨발로 올라서야 합니다.”

신발을 신은 채 올라가자 장만익이 말했다.

“이유가 있습니까?”

금장생은 신발을 벗으며 물었다.

“이유는 모릅니다.”

“바닥이 따뜻하군요.”

금장생은 단을 내려다보았다. 따스한 기운이 바닥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혈염강철이라는 철로 만들어져서 그럴 겁니다.”

“혈염강철은 열기를 뿜어내는 성질이 있나 보죠?”

“그렇습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먼저 바닥에 있는 족쇄를 발목에 채워야 합니다.”

“그렇군요.”

금장생은 족쇄를 풀어 발목에 끼웠다.

“지금이라도 그만두셔도…….”

족쇄 채우는 걸 도와주며 장만익이 말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만둘 수는 없잖습니까.”

“그래도 그 몸으로는…….”

“내게 생각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금장생은 역천영면마진 건물 지하에서 보았던 광경이 떠올랐다.

그곳에 있던 쇠사슬과 족쇄는 고문을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천타철심괴天打鐵心塊라는 기공을 익힌 흔적이다.

천타철심괴는 혈도에 강한 충격을 가해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무공이다.

물론 성공했을 때 이야기다. 중간에 멈추게 되면 천타철심괴를 익히던 자는 병신이나 폐인이 되고 만다.

‘더 놀라운 건 천타철심괴를 완성하기만 한다면 금강불괴지신에 버금가는 신체를 얻을 수 있다는 거지.’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나자 위에서 쇠사슬이 내려왔다.

금장생은 양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장만익이 쇠사슬 끝에 달린 수갑을 금장생의 팔목에 채웠다.

“다섯 시진을 견디셔야 합니다. 그럼.”

장만익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스윽! 스윽! 스윽! 스윽!

장만익이 나가자 금장생 주위로 검은 물체가 나타났다. 두께가 허벅지 둘레 정도 되는 통나무였다.

통나무에 막힌 쇠사슬의 한편 끝은 광장 천장에 박혀 있었다.

“철심목이라고, 물에서 자라는데 철에 버금가는 단단함을 지녔습니다.”

통나무를 보고 있는데 장만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극이군요.”

“네?”

“바닥은 불이고, 물에서 자라는 나무라고 하였으니까 수水 성분이 강할 것 같아서요.”

“서로 상극이란 사실이 관문을 통과하는 데 도움이 됩니까?”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둥!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금장생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던 철목이 일제히 물러났다.

휘이익!

이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목 하나가 금장생을 향해 돌진했다. 금장생은 온몸에 힘을 주었다.

퍼억!

“커억!”

단 한 방으로 금장생의 입에서 피가 넘어왔다.

엄청난 고통이 금장생의 전신을 강타했다.

휘익!

고통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두 번째 철목이 날아왔다.

퍼억!

“크악!”

금장생의 입에서 또다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휘이익! 휘이익! 휘이익!

그 후로도 철목은 쉬지 않고 금장생을 때렸다.

고통에 고통이 중첩되면서 거대한 충격파로 변해 온몸을 강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장생은 정신을 잃지 않았다. 이 정도 고통이면 벌써 정신을 잃었어야 정상이지만 금장생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정신을 잃는 순간 천타철심괴는 실패로 끝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또 한 가지 필살의 노력을 하고 있는 건, 바닥에 딱 붙인 발이었다. 발바닥을 떼지 않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퍽! 퍽! 퍼억! 퍼억! 퍼억!

그러한 와중에도 철목은 쉬지 않고 금장생의 전신을 후려쳤다. 금장생의 입에서도 쉬지 않고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어느새 그의 전신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저건 아무나 견뎌 낼 수 있는 게 아닌데.’

금장생을 바라보던 장만익은 고개를 갸웃했다.

관문을 시험한다며 자신도 저 자리에 서 보았다.

모든 내공을 끌어 올린 상태에서 한 시진을 버텼다. 그리고 다시는 올라가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

그만큼 철목이 주는 고통은 엄청났다.

그런데 금장생은 벌써 네 시진을 버텨 내고 있다.

저러다가 이곳에서 죽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까지 밀려왔다.

―어떤가?

그는 철목을 조종하고 종황에게 전음을 보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철목은 일백 명의 철공사가 조종하고 있었다.

―저 상태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고…… 세상에!

―왜 그러는가?

―몸에서 붉은 광채가 나고 있습니다.

―피가 아니고 붉은 광채란 말인가?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금장생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광채는 장만익의 눈에도 보였다.

장만익의 시선이 금장생의 발로 향했다.

휘익!

그때 철목 하나가 금장생을 향해 날아갔다.

퍼억!

금장생은 철목의 힘에 의해 휘청거리긴 했지만 조금 전과 달리 비명을 내뱉거나 하지 않았다.

“세상에! 화기야.”

장만익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철목이 금장생의 몸을 강타하는 순간 바닥에서 붉은 기운이 솟구쳐 오르는 것이 목격되었다.

당사자가 아니라 알 수가 없지만, 그 기운은 철목의 힘을 밀어내 금장생의 육체를 보호하는 게 분명했다.

―튕겨 내고 있습니다.

―전력을 다하게.

문득 이 관문이 금장생을 단련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타격으로 몸을 단련하는 무공은 강하게 후려칠수록 효과가 크다.

―알겠습니다.

철목이 날아가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텅! 텅! 텅! 텅!

금장생의 몸에 부딪치는 소리도 달랐다.

조금 전에는 물렁물렁한 물체를 때릴 때와 비슷한 소리가 나왔는데 지금은 단단한 물체를 때릴 때나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나고 있다.

그건 곧 금장생이 철목을 튕겨 내고 있다는 뜻이다.

“적신마赤身魔를 완성할 줄이야.”

장만익은 넋을 잃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적신마는 외공으로 만들 수 있는 최강의 신체를 말한다.

수많은 무인들이 이런저런 방법으로 적신마에 도전하지만 성공한 자는 손가락으로 꼽는다. 그런데 금장생은 다섯 시진 만에 적신마를 완성해 버린 것이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응?”

장만익은 시선을 들었다. 텅텅! 거리던 소리가 다시 달라졌기 때문이다.

“헐!”

그는 멍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지금은 철목을 튕겨 내는 정도가 아니라 부수고 있었다. 산산이 부서진 철목 조각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철목이 부서지기 시작하고 한 식경 정도가 지나자 더 이상 남은 철목은 없었다.

“끝난 겁니까?”

기다려도 더 이상 철목이 날아오지 않자 금장생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마왕.”

장만익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금장생 앞으로 섰다.

그 뒤에 노인 일백 명이 늘어섰다.

“신 철공사鐵工士 수장 장만익, 다시 인사드립니다.”

“반갑소, 공노. 인사 끝났으니까 이제 내 볼일을 좀 봐도 되겠소?”

“볼일이라면…….”

하지만 금장생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마…….”

“기절하셨습니다.”

장만익 뒤편에 있던 종황이 말했다.

“그런 것 같구먼.”

장만익은 금장생 앞으로 갔다.

금장생에게서는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오줌 지린내와 대변 냄새였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통증에,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배설을 해 버린 것 같았다.

수갑과 족쇄를 풀어내고는 금장생을 안았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상공!”

기다리고 있던 아수수가 질겁한 얼굴로 달려왔다.

“곧 깨어나실 겁니다.”

“제가 안을게요.”

아수수는 빼앗듯 금장생을 안았다.

“냄새 좀 날 겁니다.”

“제 남편인걸요.”

아수수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금장생을 안고 숙소로 향했다. 장만익도 아수수의 뒤를 따랐다.

“무슨 짓을 한 건가?”

“좀 살살 하지.”

“잡으려고 작정을 했구먼, 작정을 했어.”

금장생의 상태를 본 노인들이 한마디씩 했다.

“나는 강요한 적 없네. 모든 건 마왕께서 결정한 거란 말이네.”

장만익은 볼멘소리를 했다.

“그래, 어떻게 됐는가?”

육전수가 물었다.

“드디어 우리도 거도鋸刀를 잡을 수 있게 됐네.”

거도는 날이 톱 모양으로 생긴, 철공사들의 무기였다.

“축하하네.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샌가?”

육전수가 코를 킁킁거리며 물었다.

“자네 설마 똥오줌도 못 가리는 거 아닌가?”

옹촌의 촌장 창해가 놀리듯 말했다.

“내가 아니고 마왕께서 싼 거네.”

“이런 썩을 인간 봤나. 얼마나 두들겨 팼기에…….”

“내 탓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잔말 말고 목욕물이나 데우게!”

육전수는 버럭 소리쳤다.

노인들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잠시 후 김이 펄펄 나는 물이 욕조 안으로 부어지고, 냄새를 제거하는 찻잎이 잔뜩 들어갔다.

찻물이 어느 정도 우려질 무렵 아수수는 금장생의 옷을 벗겨 욕조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미 밖에서 한 번 씻고 들어온 터라 냄새는 훨씬 덜했다.

그녀는 금장생을 따라 욕조로 들어갔다. 정신을 잃은 금장생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라 어쩔 수가 없었다.

금장생은 원래부터 피부가 붉은색이라고 착각을 할 정도로 온몸이 붉은 멍 천지였다.

“아무래도 제가 공연한 짓을 한 것 같아요.”

아수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괜한 욕심에 그를 데려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복수를 한다고 남편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복수 때문에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고통받게 될 것이다.

“공연한 짓이 아닙니다.”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돌렸다.

금장생이 이편을 쳐다보고 있었다.

“공연한 짓이 아니라는 건 무슨 뜻이죠?”

“나쁜 짓을 한 자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남의 재산을 빼앗고, 살인을 저지르고, 온갖 사악한 짓을 다 한 자들이 떵떵거리고 잘 사는 그런 사회는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자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자들에 대한 징벌을 왜 네가 하느냐고요. 그들의 말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복수를 하다 보면 톱니바퀴처럼 복수가 복수를 낳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질 테니까요. 하지만, 직접 하지 않으면 벌할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는 천벌을 받는다고 하지만 그때가지 기다리기엔 우리 인간의 인내심은 너무 약합니다. 좋은 세상까지는 필요 없습니다. 나쁜 놈들이 오히려 큰소리치며 잘 사는 그런 세상만 아니면 됩니다. 당신이 하는 건 딱 그 정돕니다.”

“고마워요.”

아수수는 금장생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느닷없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남편을 찾아 나서고, 죽음을 확인해서까지도 울지 않았던 아수수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샘이 터져 버린 듯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금장생은 아수수의 턱을 들어 올렸다.

“이제 그만…….”

금장생의 말이 중간에 끊겼다. 아수수의 입이 그의 입술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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