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21)
마왕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여러 마을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가 도전제오문에 도착했을 때는 여러 마을에서 모여든 사람 수천 명이 운집해 있었다.
마차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 멈췄다.
도전제오문이 있는 곳은 커다란 도축장 안이었다.
금장생은 마차에서 내렸다.
“맙소사.”
“세상에.”
“저런 몸으로 어떻게…….”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피가 말라붙어 있는 금장생의 등이었다.
“왜 그런 거지?”
“어쩌다가…….”
아직 마을 사람들은 금장생이 암습을 당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어서 오십시오, 마왕.”
날카로운 안광의 노인이 금장생을 맞았다. 그는 도촌의 촌장인 천득이었다.
“반갑습니다, 촌장.”
금장생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암습을 당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몸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여기도 도전을 하다가 실패하면 죽게 되나요?”
“그렇진 않습니다.”
“그럼 제 운을 믿어 보겠습니다.”
“흠!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천득은 금장생을 안내해 갔다.
“도전제오문은 살인지문이라고 부릅니다.”
천득은 가면서 말했다.
“도축의 관문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오늘 도축할 소 열 마리를 아무 고통 없이 죽여 주는 게 도전제오문에서 치러야 할 시험입니다.”
“소가 고통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어떻게 판단합니까?”
“가 보면 압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도축장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서 멈췄다.
“저걸 보십시오.”
천득은 문 위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소머리 조각 하나가 걸려 있었다.
뿔부터 시작하여 가느다란 털까지, 조각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생생했다. 마치 진짜 소머리를 박제하여 걸어 놓은 것 같았다.
“우린 저걸 도우刀牛라고 부릅니다.”
“도우라…….”
쿠웅!
문득 금장생의 머릿속에서 둔탁한 울림이 일었다.
그는 소머리 조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수많은 도광刀光이 그를 향해 쏟아지는 환상에 사로잡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꼼짝없이 서 있었다.
“저건…….”
천득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보자마자…….”
그는 믿기지가 않았다.
도전의 전설에 의하면 도우에는 천하제일도법이 들어 있다고 하였다.
그 전설은 도축을 하는 도부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시간만 나면 이곳으로 와 도우를 보며 명상을 한다.
자신 또한 젊을 때 그랬다. 수천수만 번도 더 도우를 보았고, 어느 날 갑자기 손님처럼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래서 하나의 도법을 얻었다.
그런데 금장생은 도우를 보자마자 뭔가를 발견한 듯하다. 자신들이 수년 만에 찾아냈던 그 도법을.
―아버지.
뒤편 중년 사내가 천득에게 전음을 보냈다. 천득의 아들이자 도촌의 이인자인 천공이었다.
―벌써 천하제일도법을 본 것 같지?
천득은 전음으로 물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도법으로 나타날지 궁금하구나.
―천하제일도법을 찾아낼 거라고 보십니까?
천하제일도법은 하나의 도법이 아니었다. 발견한 사람에 따라 다른 도법으로 나타났다.
철도사鐵屠士 대원들은 모두 도우에서 도법을 찾아내 익혔다. 그들 또한 도법을 찾아내는 데 최소 삼 년이 걸렸다.
게다가 같은 도법은 한 가지도 없다. 백 개의 도법이 전부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하제일도법의 최강 도법인 소도笑刀는 나오지 않았다.
뚝! 뚝! 뚝!
그때 금장생의 옷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천득과 천공은 그곳을 보았다.
“핍니다.”
천공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땀에 흠뻑 젖자 말라붙어 있던 피가 땀과 섞여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척!
그때 금장생이 가부좌를 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도우에 고정된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도 땀은 계속 흘렀다.
“왜 저렇게 땀을 많이 흘리는 거죠?”
천공이 물었다.
도우에서 도법을 얻었다고 했던 이들 중 땀을 흘렸다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금장생은 다른 모습을 보인 것이다.
“마왕이 강하기 때문이다.”
“강하기 때문이라는 건 무슨 뜻입니까.”
“도우와 싸우고 있다는 뜻이다.”
“도법을 발견한 걸 넘어, 싸우고 있다는 겁니까?”
“맞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뭘 말입니까?”
“도전제오문은 도살이 아니라 도우였다.”
“저게 도전제오문이라는 겁니까?”
“그렇다.”
“그럼 그는 통과하겠군요.”
“그건 모른다. 왜냐면 발견하는 것과 싸우는 건 다르기 때문이다. 마왕은 자신을 공격하는 상대의 도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도 완벽하게. 그게 쉽겠느냐?”
“그렇군요.”
천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르르!
금장생의 입가로 피가 흘러내렸다.
“또 내상을 입었습니다.”
“그렇겠지.”
“우!”
“아!”
주변에서 안타까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제 금장생이 앉은 주변은 핏물로 흥건했다.
흐르는 땀에 마른 피가 씻겨 내린 이유지만,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금장생이 흘린 것처럼 보였다.
한 시진, 두 시진, 세 시진.
금장생은 도우 앞을 떠나지 못했다.
그가 몸을 일으킨 건 정확하게 네 시진 후였다.
몸을 일으킨 그의 다리는 후들후들 떨렸다.
“안내해 주세요.”
금장생은 천득을 보며 말했다.
“조금 쉬었다가 하는 게…….”
“관문을 통과하는 도중에 쉬어도 된다는 규칙이 있습니까?”
“그런 규칙은 없습니다.”
“도축할 짐승을 준비해 주세요.”
“이곳으로 올 때도 말씀드렸지만 오늘 도축할 짐승은 소 열 마립니다.”
천득은 천공을 보았다. 그리고 금장생을 데리고 도축장 안으로 들어갔다.
금장생이 멈춰 선 곳은 소가 들어오는 곳에서 이십 장 건너였다.
“소가 죽을 때 비명을 지르거나 죽은 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으면 실패로 간주합니다. 웃는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죽는 순간에 웃어야 한다라…… 역설적이군요.”
“도부들이 짐승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편안한 죽음밖에 없거든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이고 두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섰다.
“여기 있습니다.”
천득은 쇠꼬챙이를 내밀었다.
그 쇠꼬챙이는 도축할 때 사용하는 도구로, 이름은 도주屠柱였다.
도주는 길이가 삼 척 다섯 치고 두께는 중지 정도였으며 끝이 날카로웠다.
“어떤 겁니까?”
“과거엔 도전의 전주 신물이었고 지금은 도촌 촌장의 지팡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팡이로 쓰기엔 끝이 너무 날카로운 거 아닙니까?”
“이걸 끼웁니다.”
천득은 도주 집을 들어 보여 주었다. 그의 말대로 도주의 집은 지팡이 모양이었다.
“준비됐습니다!”
소가 나오는 곳에서 천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행운을 빕니다.”
천득은 금장생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걸음을 옮겨 도축장에서 나갔다.
“개방합니다!”
끼이익!
문이 열렸다.
다각! 다각! 다각!
이어 소들이 안을 들어왔다.
자신들이 죽을 거라는 걸 소들도 알고 있는 듯,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푸륵! 푸륵! 푸륵!
소들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아갔다.
오 장여를 걸어 들어온 소들은 금장생을 발견했다.
소들은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금장생 역시 소를 바라보았다.
소와 금장생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문득 금장생은 소의 눈이 참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참하게 죽임을 당하기엔 너무 여렸다.
주르르!
한참 동안 소의 눈을 바라보던 금장생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푸륵! 푸륵! 푸륵!
금장생에게 약점을 발견했다고 느낀 건지 아니면 마지막 발악인지 알 수는 없지만, 소들이 강한 투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턱! 턱! 턱!
앞발로 바닥을 후벼 파자 뿌연 먼지가 피어올랐다.
쿠우! 쿠우! 쿠우! 쿠우!
두두두두! 두두두두! 두두두두!
소들은 금장생을 향해 돌진했다.
금장생만 없애면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듯했다.
쿠어억! 쿠어억! 쿠어억!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두두두두! 두두두두두!
소들의 발걸음에 더 강한 힘이 실렸다.
바닥에 깊은 발자국이 남고, 파헤쳐진 흙더미가 뒤편으로 날렸다.
“실패네.”
천득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소도의 완성이 어떤 상태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현재 소들은 저 상태에서 죽임을 당하면 고통과 분노의 표정이 고스란히 얼굴에 남을 수밖에 없다.
“억!”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천득의 눈이 커졌다. 갑자기 소들의 몸에서 투기가 사라진 것이다.
그건 금장생이 쇠꼬챙이를 들어 올리자 일어났다.
―어떻게 된 건지 아느냐?
그는 아들 천공에게 전음을 보냈다.
천공이 있는 곳에서는 금장생이 더 잘 보였던 것이다.
―진심이 통한 것 같습니다.
―진심?
―마왕은 지금도 울고 있습니다. 그리고 존재가 지워졌습니다.
―존재가 지워졌다는 건 무슨 뜻이냐?
―마왕의 몸에서는 어떤 기운도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자연 그대롭니다.
―자연지도.
천득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번쩍!
그때 새하얀 광채가 도축장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소들의 동작이 일제히 멈췄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소들이 일제히 쓰러졌다.
“가공하네.”
천득은 신음을 내뱉었다.
그가 본 건 새하얀 광채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그 광채는 열 번의 변화를 일으켰고, 거의 동시에 소의 미간에 구멍을 낸 것이다.
엄청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와아!”
“우와아!”
“와아아아!”
도축장 주변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그런데 그런 힘을 쏟아 냈으면 완전히 탈진했을 텐데…….”
천득은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그가 본 금장생이 펼친 도법은 일도에 모든 걸 쏟아 내야만 한다.
물론 내공에 따라 차이는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금장생의 몸 상태는 쓰러지기 직전이었고, 비록 도주에 기댄 상태이긴 하지만 서 있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휙!
지켜보던 천공이 먼저 몸을 날렸다.
쓰러진 소 앞에 선 그는 소들의 얼굴을 살폈다.
“소笑!”
그는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와아!”
“와아아아!”
소笑란 말의 의미를 알고 있는 도촌 사람들은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다른 이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도촌 사람들을 보았다.
도촌 사람들은 소笑란 말의 의미를 알려 주었다.
“소가 웃는 걸 어떻게 알아보는가?”
죽임을 당한 소가 웃는다는 말을 들은 누군가가 물었다.
“도축장 입구에 있는 도우를 본 적 있는가?”
“있네.”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면 웃는 거네.”
“아!”
그제야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천득과 천공은 금장생에게로 다가갔다.
“관문 통과를 축하드립니…….”
천득은 금장생을 가만히 보았다.
“기절했습니다, 아버지.”
“으음!”
천득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금장생이 기절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제가 안겠습니다.”
천공이 금장생 앞으로 갔다.
“아니다. 내가 모시마.”
천득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금장생을 안았다.
툭!
축 늘어진 금장생의 손에서 도주가 떨어졌다.
“아!”
그제야 지켜보던 자들은 금장생의 상태를 깨달았다.
천득은 금장생을 안고 도축장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구경하던 이들이 좌우로 갈라지면서 길을 만들었다.
천득은 금장생을 안고 그 길을 따라 걸었다.
“마왕!”
“마왕!”
좌우측에 서 있던 이들은 허리를 숙이는 것으로 모든 걸 쏟아 내고 기절한 마왕에 대한 최고의 경의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