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20)
그대에게 경의를
“바보 같은 사람.”
아수수는 금장생의 내상을 다스리는 환을 꺼냈다. 표면이 금색으로 뒤덮인 조양단이란 내상약이었다.
그녀는 조양단과 금장생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지금 있는 이곳은 금촌 촌장 사공령의 방이다. 이곳까지 오는 내내 내기를 주입했지만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어쩔 수 없네.”
그녀는 조양단을 자신의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타액과 만나면 액체로 변해 넘어가는 영약이 아니라서 씹어서 먹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조양단을 입안에 넣고 잘게 부쉈다. 하지만 그 상태로도 먹이는 건 불가능했다.
이번에는 물을 조금 마셔 걸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금장생에게 입을 맞췄다.
혀를 이용해서 악다문 입을 벌리고 죽처럼 만들었던 내상약을 조금씩 흘려 넣어 주었다.
내공으로 식도를 열어 주자 내상약은 금장생 내부로 흘러내려갔다.
“휴우!”
내상약 먹이는 작업이 끝나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당신이 정말 미워요.”
그가 살아 있었다면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될 거란 생각이 들자 죽은 남편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이제…….”
아수수는 금장생의 옷을 벗겼다.
이제 해야 할 건 추궁과혈로 내기를 다스리고, 복용시킨 내상약이 빨리 퍼지게 해 주어야 한다.
“헉!”
금장생의 옷을 벗기던 아수수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녀가 보고 있는 건 금장생의 등이었다. 옷을 벗기자 비로소 태극선의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상처가 드러났다.
아수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금장생의 등은 피범벅이었다.
칼로 둥글게 도려낸 듯한 상처가 무려 열 곳이나 나 있었다. 상처의 크기는 지름이 두 치고, 깊이는 반 치나 되었다.
“그, 금노!”
그녀는 사공령을 불렀다.
“네.”
문이 열리고 사공령이 안으로 들어왔다.
“세상에.”
사공령 또한 상처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설마 금장생이 그런 부상을 입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금창약이 필요해요.”
“아, 알겠습니다.”
사공령은 서둘러 나갔다.
아수수는 나머지 옷을 벗겼다. 그리고 허공섭물로 금장생을 엎드리게 했다.
피가 멈춘 상처에서는 진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수건을 물에 적셔 진물과 말라붙은 피를 닦아 냈다.
등에 묻은 피를 다 닦아 냈을 때 사공령이 금창약을 가지고 들어왔다.
“약촌에서 가장 좋은 걸로 가져왔습니다.”
팔전에 속하진 않지만 약촌 또한 중요한 수입원 중 한 곳이었다.
“고마워요.”
아수수는 금창약을 받았다.
금장생을 다시 뒤집어 앞쪽의 피도 전부 닦아 냈다. 금창약을 바르고 천으로 몸을 싸기 위해서는 앞쪽의 피도 미리 닦아 놓아야 했다.
앞쪽이 깨끗해지자 다시 돌려서 금창약을 발랐다.
그런 다음 천을 두 치 폭으로 잘라 친친 감았다.
“이제 추궁과혈을 해야겠어요.”
응급처치가 끝나자 바로 치료에 들어갔다.
금장생이 눈을 뜬 건 세 시진 후였다.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윽!”
몸을 일으키려다가 그대로 드러눕고 말았다.
“정신 들었어요?”
옆에서 자고 있었던 듯, 아수수가 벌떡 일어났다.
“제가 기절했나요?”
“네.”
아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상은…….”
―마마께서 밤새도록 추궁과혈을 해서 그 정도까지 회복된 겁니다.
육전수의 전음이 들려왔다.
“심하진 않아요. 하지만 등은 심각해요.”
“등이라고요?”
역거성의 공격을 맨몸으로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태극선의를 믿고 한 모험이었다.
“다친 곳이 열 곳이나 돼요.”
“엉덩이도 아픈 것 같은데…….”
금장생은 시선을 내렸다.
하체도 벌거벗은 상태였는데, 오른편 사타구니에는 천이 친친 감겨 있었다.
“역거성의 검탄강기가 반 치만 아래로 내려갔더라면 당신은 황실로 가야 했을 거예요.”
“황실은 왜요?”
“고환이 날아갈 뻔했거든요.”
“설마 항문 근처에 한 방 맞은 건가요?”
“항문에서 반 치 오른쪽에 구멍이 났어요.”
“구, 구멍이라고요?”
“당신이 입고 있던 옷 덕분에 지금 살아 있는 거라고 보시면 돼요.”
“그렇군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한 거죠?”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암흑일마 역거성이 펼치는 검탄강기를 맨몸으로 받았다고 하던데, 아닌가요?”
“그자의 공격을 피하면 두 명을 없앨 기회를 놓치게 되거든요. 그래서…….”
“그러다가 죽으면 어쩌려고.”
“살았잖아요.”
“다시는 그런 짓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세요.”
금장생을 바라보는 아수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남편을 원망할 때와는 또 다른 눈물이었다.
“다시는 모험을 하지 않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척! 척척척! 척척척!
바로 그때 밖에서 요란한 발소리가 들렸다.
“죽여 주십시오, 마왕!”
마가대 대주 철웅 거석의 외침이 들려왔다.
“죽여 주십시오!”
이어 복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금장생은 문을 가리켰다.
아수수는 얼른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밖 전경이 드러났다.
마가대 대주 거석과 대원 일백 명이 무릎을 꿇은 채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마가대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민망하니까 어서 일어나십시오.”
“아닙니다, 마왕. 저희가 모셨어야 했습니다. 저희를 벌하여 주십시오.”
“그만 일어나래도 고집을 부리네요.”
“마왕 말씀이 맞아요. 지금 마왕은 말하는 것도 힘드니까 그만 일어나세요.”
옆에 있던 아수수가 거들었다.
“알겠습니다.”
거석을 비롯한 마가대 대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왕!”
거석에 이어 율장의 장주 잔학 채윤이 금장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세요.”
“일단 마왕을 공격한 자들은 사십 년 금원으로 은거했던 암흑오마임이 밝혀졌습니다.”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는 밝히지 못했겠죠?”
“그자들은 증거를 전혀 남기지 않았습니다. 근처에서 감시한 자들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고요.”
“당연히 그렇겠죠.”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대적인 조사를 할 생각입니다.”
“놔두십시오.”
“네?”
잔학의 눈이 커졌다.
지금 마왕은 궁지에 몰린 상태다. 그런 그에게 이번 암살 사건은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다.
잘만 이용하면 적지영 일파에게 넘어가 있는 주도권을 가져올 수도 있다.
아니, 조사만 제대로 하고 마왕 암살에 적지영 일행이 연루됐다는 것만 밝히면 마가를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다.
그런 기회가 왔는데 놔두라니.
잘못 들었나 싶었다.
“범인을 찾는다며 마가를 들쑤시게 되면 분위기가 침체될 거 아닙니까. 그럼 마가 최고 축제인 승천비무도 엉망이 돼 버리고 말 겁니다. 마왕이란 사람이 그럼 안 되지 않습니까. 암흑오만가 하는 자들 숙소만 조사는 걸로 끝내세요.”
“그래도…….”
“명령입니다.”
“알겠습니다, 마왕.”
잔학은 고개를 숙였다.
“쉬고 싶습니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채윤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떴다.
“왜……?”
아수수는 금장생을 보았다.
사실 그녀는 채윤과 같은 생각이었다. 대대적인 조사를 해서 적지영 일파를 색출하여 처단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금장생은 모든 걸 없던 일로 하라고 하면서 덮어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이 증거를 남겼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유일한 증거는 암흑오마의 진술인데, 다 죽어 버렸잖아요.”
“그래도 조사를 해 보면…….”
“맞은 놈은 발 뻗고 자고 때린 놈은 웅크리고 잔다는 말 아세요?”
“다급해진 쪽은 적지영 일파란 말인가요?”
“맞아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전…….”
“거기 옷 좀 주세요.”
“좀 더 누워 계세요.”
“하도 많이 자서 잠도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직 할 일이 남았잖아요.”
“할 일이 뭔데요?”
“관문 도전이지 뭐겠습니까?”
“당신 미쳤어요?”
아수수는 펄쩍 뛰었다.
지금 금장생은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다.
걷는 것조차 힘든 사람이 관문 도전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기로 한 거니까 해야지요.”
금장생은 한편에 놓아둔 옷을 잡아당겼다. 그의 등에서 흐른 피로 범벅인 그 옷이었다.
“제발!”
아수수는 옷을 잡고 애원했다.
“철노가 말하지 않았지만 보통 관문을 통과하는 데는 한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어떤 규칙인데요?”
“어떤 시험을 위해 만들어진 관문은 쉬지 않고 통과해야 한다는 겁니다. 중간에 쉬어 버리면 이미 통과한 것도 모두 무효가 돼 버립니다.”
“그, 그건…….”
“그렇지 않습니까, 철노.”
금장생은 밖을 향해 물었다.
“그게…….”
철노는 말끝을 흐렸다.
금장생의 말이 맞다. 팔전의 관문은 쉬지 않고 통과해야만 비로소 완수한 걸로 인정을 받는다.
그걸 알면서도 말하지 않은 건 통과할 거란 생각을 못 했던 탓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을 때 말했어야 했는데, 그때도 말하지 않았다.
설사 모두 통과하지 못한다고 해도 자신은 금장생을 마왕으로 인정하고 따를 참이었다.
“제대로 말씀해 주세요.”
“저는 마왕께서 다른 관문을 통과하는 것에 상관없이 따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마왕.”
“저도 그래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나머지 세 명의 촌장도 육전수와 같은 말을 했다.
“보세요. 저분들도 마왕으로 인정하잖아요.”
“네 분이 나를 인정해 주는 건 고맙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그럼 뭐가 중요하다는 건가요.”
“누구나 인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자신이 가진 특권, 즉 마왕이란 직위를 이용해서 네 촌장의 지지를 받았다는 인식을 심어 주게 되면 가솔들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연 자신들과 같은 직위였다고 해도 촌장들이 인정해 주었겠느냐며 비난을 할 겁니다. 그들로부터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계속해야 합니다. 설사 가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니까 옷을 주십시오.”
“알았어요. 지금은 갈아입을 새 옷이 없으니까 좀 기다리면…….”
“부인은 더 많이 배워야 합니다. 지금은 깔끔한 옷을 입어야 하는 게 아니라 이 옷을 입어야 합니다.”
금장생은 피투성이 옷을 가리켰다.
“당신?”
아수수의 눈이 커졌다.
그제야 금장생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관문을 통과하는 건 차후 문제다. 금장생은 망가진 몸으로도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걸 보여 주려는 심산이다.
“세상은 늘 진실이나 진심만 가지고 살 수 없습니다. 때로는 거짓도 가져야 합니다. 다만 그 거짓 안쪽에 아주 작더라도 진실이 들어 있으면 되는 겁니다.”
“알았어요.”
아수수는 옷을 내주었다.
금장생은 피범벅인 바지와 상의를 입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마왕!”
“마왕!”
네 노인은 일제히 금장생을 불렀다.
“다음에 가야 할 곳이 도촌입니까?”
금장생은 육전수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마왕. 도촌은 금전에서 기른 가축을 도축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차를 몰아 주셔야겠습니다.”
“물론입니다, 마왕.”
육전수는 얼른 마차 문을 열어 주었다.
금장생은 아수수의 부축을 받아 마차에 올랐다.
“마가대는 돌아가도록 하세요.”
마차가 출발하자 금장생이 말했다.
“저희도 따르겠습니다, 마왕!”
“바보가 아닌 이상 또다시 기습을 하진 않을 겁니다.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세요. 그리고 마왕이 마지막 관문에 도전하게 되면 그때 다시 오세요.”
“알겠습니다, 마왕.”
거석은 고개를 숙였다.
마차는 점점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