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19화 (119/524)

황금가 (119)

적지영의 처소로 들어가는 적운영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그가 이곳으로 온 건 한 식경 전이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먼저 시비를 깨워야 했고, 일어난 시비는 적지영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내실과 이어진 방으로 들어와 적지영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 앞에는 시비가 두고 간 차가 놓여 있었다.

드르륵!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적지영이 나왔다.

그녀는 자리옷만 걸친 상태였다.

누님에게 정부가 생겼고 지금 안에 있다는 걸 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꼭두새벽부터 웬일이냐?”

적지영은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실패했습니다.”

“실패?”

“암흑오마에게 맡긴 일 말입니다.”

“다 당한 게냐?”

적지영은 안쪽을 흘끔 쳐다보며 말했다.

―말해도 됩니까?

적운영은 전음으로 물었다.

“괜찮아.”

적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명이 모두 당했습니다.”

“누구에게? 그놈에게?”

그녀가 ‘그놈에게?’라고 하면서 금장생을 지목한 건 무공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는 철촌의 촌장 육전수, 옹촌의 촌장 창해, 의촌의 촌장 어설아, 금전의 촌장 사공령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자들이 그놈을 도와 암흑오마를 없앴다는 거냐?”

“그게 아니면 놈이 암흑오마를 무슨 수로 없앴겠습니까?”

“감시조를 배치하지 않았던 게냐?”

감지조가 있었다면 추정하는 것처럼 말하지 않을 것이기에 묻는 말이었다.

“만일 일이 실패하고 감시하던 자들이 발각돼 잡히기라도 하면 큰일 아닙니까. 그래서 철수시켰습니다.”

“그렇구나.”

적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가짜 마왕의 무공 정도를 확인하지 못해 아쉽기는 하지만 비밀 엄수가 우선이었다.

“그런데 팔전 노인들이 그자와 함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팔전 노인들…… 맙소사!”

적지영은 벌떡 일어났다.

“왜 그러십니까?”

적운영은 의아한 얼굴로 적지영을 보았다.

귀신을 본 것처럼, 적지영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놈이 정말로 팔전의 전설을 열고 있는 거였어.”

“팔전의 전설이라면…… 정말 그럴 거라 생각하십니까?”

적운영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그 역시 팔전의 전설에 대해 알고 있었다.

팔전에 관문이 만들어진 이후 단 한 명의 마왕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마왕에게 치욕을 안겨 주기 위해 만들어진 관문이라고 하여 ‘치욕관’이라 불리기도 했다.

관문이 너무 어렵다 보니 마왕들은 점점 찾지 않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했다. 그리고 잊혔다.

이제는 전설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가짜 마왕이 그 팔전을 열고 있단다.

게다가 네 명의 촌장이 따르고 있다는 건, 이미 네 개의 관문을 통과했다는 말이 된다.

“놈은 어떤 상태라고 하더냐?”

“크게 다친 곳은 없는데 정신을 잃을 정도로 내상을 심하게 입었다고 합니다.”

“정신을 잃을 정도라면?”

“정확한 건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한 달 이상 요양이 필요할 걸로 보입니다.”

“그럼 승천비무에서 도전을 해 없앨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적운영은 얼굴을 슬쩍 찌푸렸다.

“전례가 없다는 거냐?”

“전례가 없을 뿐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선례를 남기게 될 수도 있습니다.”

원래 승천비무를 기획한 취지는 하위 직급 무인들이 열심히 무공을 익히도록 독려하기 위해서였다.

전쟁도 없고 강호 활동도 거의 하지 않다 보니 마가 무인 모두가 무공을 등한시하게 되었다.

천왕지회를 통해 각 가문 간 무공을 겨루기도 했지만 그건 상급자들에게만 국한된 상황이었고, 하급자들은 관중석에서 함성을 지르는 걸로 끝났다.

그러다 보니 전력이 점점 약해졌고, 마가 수뇌는 하급 무인들이 무공을 열심히 익히는 데 동기를 부여할 뭔가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비무에서 상급자를 이기면 자리바꿈을 하는 승천비무다.

원래는 하급자들만 비무에 참가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다. 하급자들을 위한 축제라 그렇게 한 거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자신들의 자리 보존을 위해 하급자들의 도전을 사전에 차단하는 독소 조항처럼 돼 버렸다.

결국 그 조항은 삭제되고, 승천비무에서만큼은 전 가솔이 동등한 위치에서 누구에게라도 도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마왕이나 혹은 천장에게 도전한 자는 없었다.

만일 도전해서 성공하고 마왕의 자리가 바뀌면, 다음 승천비무 때도 마왕에게 도전하는 자들이 생겨날 것이다.

마왕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우리가 지금 선례 같은 걸 따질 상황이냐?”

“정말 도전을 할 참입니까?”

“일단은 사인루 자객에게 맡길 참이다. 하지만 그들마저도 실패한다면 도전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례로 남진 않을 거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 자리에서 나는 놈이 가짜라는 걸 밝힐 참이다. 그럼 가솔들은 마왕에게 도전할 수밖에 없는 내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거다.”

“모든 가솔들 앞에서 밝히려면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증거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나서야 할 때라고 판단되면 확실하게 지원을 해 줘야 한다.”

“……알겠습니다.”

적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놈은 계속 주시해.”

“다시 감시를 붙였습니다.”

“암흑오마에 대한 조사를 하겠지?”

“다른 것도 아니고 마왕 암살 건입니다. 아수수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대대적인 숙청을 시작할지도 모릅니다.”

“흔적 같은 건?”

“감시조까지 철수시키면서 진행했던 일입니다. 우리가 관여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보다 입출금관리 대장을 올려 보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하던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왕의 지시를 거부하면 하극상이 되는데 보내지 않을 수 없지 않으냐?”

“잘못하면 비자금을 만든 게 발각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입출금관리 대장은 전문가가 작성했다. 그놈이나 총관 나박 따위가 알아차릴 정도로 허술하지 않다.”

“알아차리지 못할 거란 말입니까?”

“조금도.”

“그래도 전 불안합니다.”

“나만 믿어라.”

“알겠습니다, 누님.”

“그만 가 봐라.”

“네.”

적운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처소를 나갔다.

적지영은 창가로 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심각한 상황?”

뒤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적지영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그녀는 몸을 돌렸다.

반 장 떨어진 곳에 상체를 드러낸 사내가 서 있었다. 사내는 삼십 대 중반으로, 상당한 미남이었다.

“아냐.”

적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말고 내게 말해 보십시오.”

사내는 적지영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자리옷 앞섶을 좌우로 젖혔다.

그러자 적지영의 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적지영은 자리옷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사십 대 후반이란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그녀의 몸매는 뛰어났다. 군살도 없고 가슴도 거의 처지지 않았다.

자식을 낳지 않아 그런 것도 있지만 이런 몸매를 유지하는 데는 그녀만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사내의 손은 거리낌 없이 적지영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꽉 쥔 손에 가슴이 이지러지는 순간 적지영의 눈동자에 열기가 맺혔다.

“말 안 하실 겁니까?”

가슴에 머물렀던 사내의 손이 아래로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리고 적지영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아, 아까 자기 전에 암흑오마에 대해 말했잖아.”

적지영의 몸이 급격하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몸을 꿈틀거렸다.

빙글!

사내는 적지영의 몸을 돌려 등 뒤에서 안은 후 양손으로 본격적으로 달궜다.

가슴이 이지러지고 풀숲이 파헤쳐졌다. 곧 적지영의 입에서 쾌락에 겨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래서요?”

“실패했대.”

적지영은 손을 뒤로 돌렸다.

등 뒤에서 자신을 안은 사내의 허리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이 더욱 커졌다. 사내는 벌써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그자가 그렇게 강합니까?”

“호, 혼자 상대한 게 아니고 팔전의 촌장 네 명도 함께 있었대.”

“팔전의 촌장요?”

사내의 눈에 기광이 어렸다.

사내는 적지영의 자리옷 아랫단을 허리 위로 올렸다.

희멀건 엉덩이가 드러났다. 사내는 적지영의 상체를 내리눌렀다.

턱!

적지영은 양손으로 창틀을 짚고 엎드렸다.

“다, 당신?”

거친 호흡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흥분한 상태인지 알 수 있다.

그녀는 지금 이 체위를 가장 좋아했다. 하지만 남편 주윤보가 죽고 난 후 한 번도 이 체위로 관계를 갖지 않았다.

그런데 사내가 그 체위를 요구한 것이다.

“팔전이 궁금합니다.”

사내는 적지영의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파, 팔전은…….”

적지영은 팔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그자가 내가의 불리함을 극복하려고 외가의 비밀에 도전했다는 거군요. 네 개 전은 이미 장악했고요.”

“마, 맞아. 이제…….”

뒤편 사내가 마가 수뇌들 중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는 내가와 외가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잔뜩 흥분한 적지영은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자는 다치지 않았답니까?”

사내는 몸을 가까이 붙이며 물었다. 하지만 여전히 진입은 하지 않았다.

“지금 기절한 상태래.”

“잘됐군요.”

“맞아. 놈이 크게 다치는 바람에 일이 훨씬 수월하게 진행될 것 같아.”

결국 적지영은 참지 못하고 손을 뒤로 돌려 사내의 성기를 잡았다.

그 순간 사내는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밀고 들어갔다.

적지영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고 입이 쩍 벌어졌다. 격렬한 쾌감에 신음조차 내지르지 못한 거였다.

정지한 것처럼 그 상태를 유지하던 적지영은 사내가 몸을 뒤로 물리자 그제야 신음과 함께 숨을 내쉬었다.

“그, 그자가 입출금관리 대장을 요, 요구했대.”

“입출금관리 대장이라고 하셨습니까?”

사내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응.”

그러자 적지영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엎드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놀림은 능숙했다.

“문제없을 겁니다.”

사내는 적지영 등에 바짝 엎드려 손을 뻗어 가슴을 그러쥐었다.

“왜냐면 내가 작성한 장부니까요.”

사내는 거칠게 밀어붙였다.

서천마부 주윤보가 죽은 후 지영의 정부가 된 이 사내는 서천장 총관 삼뇌三腦 제갈휴였다.

아니, 주윤보가 죽은 후가 아니라 그 전부터 제갈휴는 적지영의 정부였다. 다만 지금처럼 대담하게 적지영의 처소에서 관계를 갖지 못했을 뿐이다.

머리가 비상한 그는 적지영에게 많은 조언을 했고, 적지영은 제갈휴의 도움으로 상당한 비자금을 축적할 수 있었다.

“마, 맞아. 네가 작성한 거지.”

적지영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그녀가 제갈휴와 관계를 갖게 된 건 삼 년 전이었다.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자객들의 공격을 받고 부상을 입은 채 일행과 헤어졌다. 날은 어두워지고, 설상가상으로 폭우까지 내렸다.

몸을 피할 곳을 찾다가 오래된 암자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먼저 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제갈휴였다.

적지영은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불을 피워 몸을 따뜻하게 해야 했지만 혹시 자객들이 들이닥칠까 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때 제갈휴가 다가왔다.

움찔 놀라 경계를 하는데, 당장 지혈하지 않으면 과다 출혈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의술을 조금 안다고 하였다.

그 말 한마디에 처음 보는 청년에게 가슴을 고스란히 내주었다. 부상당한 부위가 가슴 아래쪽이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분위기 때문에 그런 건지 제갈휴에게 남자다운 매력을 느껴서 그랬는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치료를 하는 도중에 제갈휴의 손길이 가슴을 스치자 엄청난 쾌감이 밀려왔다. 결국 이성을 잃고 그와 관계를 갖고 말았다.

그리고 제갈휴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처음엔 잡일이나 시킬 생각이었다. 그런데 제갈휴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하는 천재였다.

이곳으로 온 지 육 개월 만에 총관이 됐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남편인 주윤보조차도 잘했다고 칭찬을 할 정도였다.

“그래서 완벽하다는 겁니다. 내가 작성했기 때문에요.”

강하게 밀어붙이는 제갈휴의 눈동자에서 차가운 광채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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