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17화 (117/524)

황금가 (117)

암흑오마

“수고하셨습니다.”

사공령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해산하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마왕.”

사공령은 몸을 돌려 철음사 대원들에게 해산 명령을 내렸다. 그녀들도 몸을 추슬러야 하기 때문에 오래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철음사 대원들은 바로 몸을 날려, 계단 옆에 나 있는 통로를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저 안에서 살아요?”

금장생은 통로를 가리키며 물었다.

“처소가 아니라 연공관입니다.”

“아! 그렇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몸 괜찮아요?”

아수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내상을 입기는 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제게 내상약이 있습니다.”

사공령이 말했다.

“지금 있어요?”

“아닙니다. 금전에 있습니다.”

“그럼 서둘러 내려가야겠네요.”

“그렇게 하시죠.”

세 사람은 분지를 나와 아래로 향했다.

“그런데 금전에 색공이 왜 있는 겁니까?”

금장생이 사공령을 돌아보며 물었다.

희로애락을 표현한 음악이라고 하였지만 마지막에 펼친 락樂은 색공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원래는 인간을 대상으로 했던 게 아니었습니다.”

“그럼?”

“가금류를 키우다 보면 번식을 시켜야 할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버, 번식이라고요?”

“늘 있는 건 아니고, 전염병이 유행해서 떼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그럴 때 교배를 유도해서 개체 수를 늘려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맛이 간 그 음악이 동물을 교배시키기 위해 창안된 거란 말입니까?”

“시작이 그렇다는 거지 락樂이 동물 교배용이라는 건 아닙니다.”

“졸지에 동물로 전락했군요.”

금장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현재 동물 교배용으로 쓰이건 쓰이지 않건 그건 문제가 아니다. 동물 교배용에서 시작했다면 설사 바뀌었다고 해도 동물을 위한 거라고 봐야 한다.

“호호호!”

아수수는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동물이 됐다는데 그렇게 웃어도 되는 겁니까?”

금장생은 아수수를 흘겨보았다.

“이렇게 멋진 동물이라면 전 기꺼이 함께 살 거예요.”

아수는 금장생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나마 조금 위로가 되는군요.”

금장생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요?”

산 중턱 정도 내려왔을 때 아수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뭐가 말입니까?”

사공령이 물었다.

“풀벌레 소리는 물론이고 밤새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걸 말하는 겁니다.”

대답한 사람은 금장생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공령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보통 이맘때면 사방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려야 한다. 그런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들 때문인 모양입니다.”

금장생은 오른편을 가리켰다.

“응?”

“어?”

사공령과 아수수의 눈이 커졌다.

금장생이 가리킨 곳에 다섯 명이 이편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귀신처럼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들은 자유를 대가로 금장생을 없애 주기로 한 암흑오마였다.

“우린 귀하와는 볼일이 없으니 자리를 좀 피해 주었으면 좋겠소.”

사공령과 시선이 마주치자 천광오마 남천이 말했다.

“이왕이면 마왕의 부인도 데리고 가면 더 좋고.”

남천에 이어 철검사마 고적일이 말했다.

“무명 잡배가 아니라면 이름 정도는 밝힐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사공령은 차분하게 응대했다.

하지만 말투와 달리 그녀의 얼굴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살아오면서 무인을 많이 봤다. 하지만 앞에 있는 자들만 한 강자는 처음이다.

게다가 저들은 이곳에서 기다렸다.

그건 곧 금전제사문이 산 정상에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저들은 마가 무인이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인 게, 마가 무인이라면 자신이 모를 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다섯 명은 자신과 동년배로 보이고 전부 검수다. 그 정도 특징이면 알 법도 한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문득 육전수와 창해, 어설아가 함께 가는 게 어떠냐고 했을 때 그러자고 할 걸 공연히 거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시험이 끝나고 철음사 대원들을 데리고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비록 내상을 입은 상태라고 해도 그녀들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됐을 터였다.

“우린 암흑오마라고 불렸네.”

“암흑오마라고?”

사공령은 경악했다.

그녀 역시 암흑오마에 대해서는 들어 보았다.

마가에서 배출한 무인들 중 손가락으로 꼽는 강자라고 하였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마왕보다 더 강할 거라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한창때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고, 그 일로 인해 무공의 파훼돼 모처에 수감됐다고 하였다.

마가에서는 이미 잊힌 이름이 돼 버린 암흑오마가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좋은 의도를 가지고 온 게 절대 아니었다.

“암흑오마는 어떤 자들입니까?”

금장생은 아수수에게 물었다.

“사십 년 전 마가에서 가장 잘나가는 무인들이었다고 해요. 그 당시 마왕은 당신 조부님이셨는데 그분께서는 강호 출두를 엄격하게 금하셨어요. 하지만 그들 다섯 명은 가주의 명을 거역하고 강호로 나갔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왕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건 다섯 명이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었다고 해요. 아무튼 강호로 나간 그들은 승승장구하여 암흑오마란 별호를 얻게 돼요. 그런데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말아요.”

“어떤 실순데요?”

“가주의 동생이 출가해 있던 사찰에 들렀다가 거기서 비구니들을 겁탈하고 말아요. 그들이 겁탈한 사람 중에는 가주 동생도 있었고요. 그게 사십 년 전이에요.”

“그건 우리 의지가 아니었다. 당시 우린 춘약에 중독된 상태였다.”

암흑일마 역거성이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

“춘약에 중독됐든 중독되지 않았든, 비구니를 겁탈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거 아닌가요?”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했다.

“우린 우리에게 춘약을 하독한 자를 잡아 없앴다. 그자는 바로 화가火家에서 보낸……. 내가 왜 너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역거성은 금장생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굳이 죽일 녀석과 과거 이야기를 나눌 이유가 없었다.

“내게 볼일이 있으신가 보군요.”

“누군가가 널 죽여 달라고 하더구나.”

“내가 누군지 아십니까?”

“가짜 마왕이라고 하더구나.”

“가짜 마왕이라……. 혹시 내가 가짜라고 한 자들이 증거를 보여 주었습니까?”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면 자신들이 직접 처리했을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다섯 분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정황만 가지고 나를 없애러 온 거군요.”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우리가 내린 결론은 네가 가짜가 확실하다는 거다. 너는 준비해라.”

역거성이 검 손잡이로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당신네들은 내가 상대하지.”

사공령은 금장생 앞으로 나섰다.

지금 금장생의 몸 상태는 최악이다. 지금 상황에서 암흑오마와 같은 거물과 싸우는 건 불가능하다.

―마마!

사공령은 아수수에게 전음을 보냈다.

―네.

―바로 산을 내려가서 그들을 데리고 오십시오.

―그때까지 버틸 수 있겠어요?

―버텨 봐야지요.

―제가 도우면…….

―저들은 우리 셋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자들입니다. 우리를 살리고 싶으면 한시라도 빨리 그들을 데리고 오는 게 낫습니다.

―알았어요.

파앗!

아수수가 곧바로 몸을 날렸다.

“비켜 주십시오, 금노.”

금장생은 사공령에게 말했다.

“마왕!”

“절 찾아온 손님입니다. 우리 아버지 말씀이, 손님을 접대할 때 돈이 들어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최선을 다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말을 듣지 않을 참입니까?”

“알겠습니다.”

사공령은 비켜섰다.

“제 할아버지가 크게 잘못을 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금장생은 암흑오마 일행을 보며 말했다.

“뭘 잘못했단 말이냐?”

암흑일마 역거성이 물었다.

“인생이 불쌍하다고 살려 주는 게 아니었다는 겁니다. 한번 개자식은 영원한 개자식이고, 나이를 처먹는다고 해서 개과천선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야 했다는 겁니다.”

“개새끼!”

암흑오마 중 가장 성격이 급한 거왕삼마 우문순이 욕설과 함께 금장생을 향해 폭사되었다.

누가 말릴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우문순은 금장생 바로 앞에 도착하여 검을 내리긋고 있었다.

“너 같은 놈이 마왕이란 사실이…… 응?”

우문순의 눈이 커졌다.

검이 머리를 쪼개 오고 있는데도 금장생의 얼굴에는 겁먹은 기색이 전혀 없다. 아니, 겁을 먹은 게 아니라 조소가 어려 있다.

더불어 오른손은 품속으로 들어간 상태.

“설마…….”

“맞습니다.”

번쩍!

금장생의 가슴에서 붉은 번개가 쳤다.

“누가…….”

역거성 일행은 긴장한 얼굴로 상황을 주시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사공령 또한 잔뜩 굳은 얼굴로 금장생과 우문순을 바라보았다.

뚝! 뚝! 뚝!

두 사람 사이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아직 누구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금장생이었다.

“무인에게 방심보다 더 무서운 건 흥분이라고요. 그런데 당신은 방심에 흥분을 더했습니다. 당신의 죽음은 당연한 겁니다.”

“휴우!”

사공령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럼 넌 이, 일부러 우리를 도발…….”

툭!

우문순의 손에서 검이 떨어져 나갔다.

파앗!

이어 심장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거대한 동체가 무너지듯 쓰러졌다.

쿠웅!

우문순이 쓰러지는 소리는 바닥이 흔들릴 정도로 컸다.

“우엑!”

금장생은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피를 토했다. 내상이 더 심해진 거였다.

하지만 금장생은 별일 아니라는 듯 입술을 닦았다.

“그러게 없애야 할 상대가 어떤 자인지도 모르면서 함부로 약속하는 게 아닙니다.”

그는 쓰러진 우문순의 가슴에 손가락 두 개를 댔다. 그러자 심장으로 파고들어 가 있던 붉은 비수가 튀어나왔다.

혈잔은 우문순의 피로 범벅이었다.

“피가 끈적끈적한 걸 보면 생전에 단걸 좋아했나 봅니다.”

금장생은 혈잔에 묻은 피를 우문순의 옷에 꼼꼼하게 닦았다.

“저런 후레자식이!”

천광오마 남천이 검을 뽑아 들고 곧바로 내공을 끌어 올렸다.

턱!

막 뛰쳐나가려는 그를 붙잡은 사람은 암흑일마 역거성이었다.

“왜?”

“도발이네.”

“도발?”

“놈은 개자식 어쩌고 해서 우릴 도발했네. 결국 거왕이 참지 못하고 뛰쳐나갔네. 더 영악한 건, 놈은 거왕이 바로 앞으로 올 때까지 기다렸다는 거네. 그리고 거왕이 피할 수 없는 위치까지 오자 암기를 던졌네. 그리고 지금은 거왕의 옷에 피를 닦는 행위로 우리를 도발하고 있네. 누군가 한 명이 나오기를 바라면서 말이네.”

척!

금장생은 역거성을 향해 오른손을 내뻗으며 엄지손가락을 추어 올렸다.

“역시…….”

그리고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죽일 놈!”

역거성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 살기가 어찌나 강한지, 대기가 픽픽 터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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