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14화 (114/524)

황금가 (114)

전설의 땅 2

옹촌의 촌장 창해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왕이 철전제일문으로 들어갔다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실패하고 나올 거라고 확신했다.

거기다가 아침까지 나오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마왕이 과욕을 부렸다면 혀를 찼다.

안에서 죽은 걸로 간주했던 것이다.

마왕이 죽었다고 해서 특별히 슬프지도 않았다. 전혀 알지 못하는 어떤 집안의 가장이 죽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만 아직은 젊은 친구가 공연한 욕심으로 죽었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죽지 않고 살아 나와 철촌의 촌장 육전수를 마부로 삼아 이곳으로 온 것이다.

―정말 통과한 거 맞는가?

창해는 육전수에게 전음을 보냈다.

―내 눈으로 확인했네만 정 못 믿겠으면 사람을 보내 지하실을 확인해 보게.

―자네가 확인했다면 맞겠지.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금장생은 창해를 보며 말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옹전제이문은 옹기를 만드는 가마 아래쪽에 있었다. 출입구가 위치한 곳은 가마 안쪽이었다.

“엄청난 크기네요.”

금장생은 가마를 둘러보았다.

가마가 어지간한 집보다 더 컸다. 높이 또한 일 장이 넘었다.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자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나왔다. 그런데 계단은 새카맣게 그을린 상태였다.

“불길이 올라오는 화로火路의 한 곳입니다.”

“그랬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깁니다.”

창해는 폭이 반 장 정도 되는 공간에 멈췄다.

“여긴?”

“화롭니다.”

“불길이 이동하는 길이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옹기가 완성되면 불을 때기 시작합니다. 그럼 이곳은 불바다가 됩니다. 마왕께서는 우리가 불을 때기 전에 이곳을 탈출해야 합니다.”

“어떻게 탈출하다는 겁니까?”

“저 벽을 보십시오.”

창해는 벽을 가리켰다.

벽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손바닥 자국이 나 있었다. 손바닥 자국 또한 계단처럼 검게 그을려 있었다.

“이 가마의 화로의 벽과 천장은 모두 지극염철로 돼 있습니다. 참고로 지극염철은 만년한철과 비슷한 강도를 자랑합니다.”

“저 손바닥 자국은 무인이 낸 겁니까?”

금장생은 손바닥을 가리켰다.

“아닙니다. 철촌에서 새긴 겁니다.”

“저런 흔적을 내는 게 시험이라면 포기하려고 했거든요. 계속하십시오.”

“저 손바닥 개수는 총 삼백예순다섯 갭니다. 벽 뒤편에는 기관이 설치돼 있는데, 삼백예순다섯 개의 손바닥을 쉬지 않고 때려야만 기관이 파괴되면서 통로가 열립니다. 촌각이라도 쉬면 안 됩니다. 일정한 힘을 일정한 간격으로 가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나올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 힘으로 때려야 합니까?”

“최소 이 갑자 힘이 가해져야 파괴됩니다.”

“시간은 얼마나 있습니까?”

“이 가마에는 총 삼천육백쉰 개의 옹기가 들어갑니다. 저희가 지금까지 만든 건 삼천 갭니다. 즉, 앞으로 육백쉰 개를 더 만들면 옹기가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그럼 옹기를 굽기 위해 불을 때겠군요.”

“맞습니다. 불을 때기 시작하면 이 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뜨거워집니다.”

“타 죽지 않으려면 보의 같은 걸 준비해야겠군요.”

수화불침인 태극선의의 성능을 시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됩니다.”

“안 된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옹전제이문은 알몸으로 도전하는 관문입니다.”

“그러니까 벗어야 한다는 건가요?”

“네.”

“끙!”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제가 마마께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알았습니다. 별 거지 같은…….”

금장생은 투덜거리면서도 옷을 벗어 창해에게 건넸다.

“그건?”

창해는 금장생이 가슴에 걸고 있는 세 자루의 비수를 가리켰다.

“이것도 드려요?”

“네.”

“고추까지 잘라 달라고 하지 그러십니까?”

비수 세 자루를 풀어 건네며 투덜거렸다.

“떼어 낼 수만 있다면 달라고 했을 겁니다.”

“네?”

“같은 사내인 내가 봐도 탐나는 녀석이라서요.”

“이런 영감탱이가?”

금장생은 두 손으로 얼른 하체를 가렸다.

“그런데 그 팔목에 붙은 건 떼어 낼 수 없는 겁니까?”

창해는 금장생 왼팔에 붙은 건틀릿을 가리키며 물었다.

“보시다시피.”

“그렇군요.”

창해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이 아닌 건 분명한데 피부에 붙어 있어 떼어 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칼로 잘라서 드릴까요?”

“아닙니다. 그럼 행운을 빌겠습니다.”

“충고해 줄 건 없습니까?”

금장생은 돌아서는 창해에게 물었다.

“충고요?”

“삼백육십오 장을 쉬지 않고 펼칠 수 있는 무공 같은 거 말입니다.”

사실 같은 무공을 쉬지 않고 삼백예순 번을 펼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무공도 결국엔 숨을 들이마시고 내뿜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내뿜었으면 일정 시간 안에 들이마셔야 한다. 즉, 들이마시는 건 내뿜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무공도 마찬가지다.

진기를 내뿜었으면 다시 고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벽에 새겨진 삼백예순 개의 흔적은 고르는 과정을 용납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 갑자의 힘을 가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무공을 가르쳐 드린다고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래도 모르지 않습니까?”

“손바닥 자국 오른편의 그을음을 털어 내면 글이 있습니다. 하지만…….”

“몇 시진 안에 익히는 건 불가능하다는 건가요?”

“원래는 여섯 시진(12시간)이면 작업이 끝나는데 특별히 하루를 드리겠습니다. 정확하게 내일 이 시간에 불을 지피겠습니다. 그럼.”

창해는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금장생은 창해가 가르쳐 준 곳의 그을음을 긁어냈다. 그러자 정말로 글이 나타났다.

철장鐵掌

무공 명칭이었다.

금장생은 천천히 구결을 읽었다.

“세상은 넓고 기인 이사는 많다더니.”

철장을 다 읽고 난 금장생은 혀를 내둘렀다.

옹촌의 지하에 광세절공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철장이란 단순한 이름의 장법은 태양마존의 이화태양강이나 빙마존의 빙극천월강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장법을 다 읽고 나자 백여덟 개의 손바닥 자국을 동시에 두들긴다고 해서 기관을 파괴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관을 완벽하게 깨트리기 위해서는 장법을 반드시 익혀야 했다.

“그렇다고 여섯 시진 만에 완벽하게 익혀서 펼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방법이 있어야 한다는 건데…….”

금장생은 생각에 잠겼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난 건 두 시진 후였다.

“아무리 마왕이 싫다고 해도 풀 수 없는 문제를 내진 않았을 터. 내 선택은 군림천하봅니다.”

금장생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새로운 무공을 적어 놓고 하루 안에 완벽하게 익혀서 펼치라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방법이 있다는 뜻이고, 그 방법은 바로 삼백육십오 보로 이루어진 군림천하보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군림천하보는 삼백육십오 보를 쉬지 않고 펼친다. 더불어 발을 내디딜 때마다 땅에서 오는 반탄력을 이용해 무공을 펼치게 된다.

문제는 그 힘이 이 갑자가 안 된다는 데에 있다.

“그 문제에 대한 해결점은 여기 있겠네.”

금장생은 다시 철장으로 시선을 주었다.

이미 암기한 상태지만 머릿속을 더듬는 것보다 새겨진 글을 보는 게 더 나았다.

금장생은 또다시 장고에 들어갔다.

가혹 일어나 손을 내저으며 군림천하보를 펼치며 손을 휘젓곤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앉아서 보냈다.

* * *

“뭡니까?”

철촌의 촌장 육전수는 아수수가 내민 물건을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선조 중에 육잔능이란 분이 계시지 않았나요?”

“육잔능요?”

육전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들어 본 것 같은데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오백 년 전 분일 거예요. 철촌이 배출한 가장 강한 무인일지도 모르고요.”

“아! 광검 선조!”

육전수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이제야 광검 육잔능의 이름이 떠올랐던 것이다.

“최고의 직위까지 올랐던 분인데 기억을 못 한다는 건 너무하는 거 아닌가요?”

아수수는 웃으며 물었다.

“우리 가문에서 제명된 분이라 그렇습니다.”

“제명돼요?”

“우리 가문에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가문을 배신하고 마가 가주의 부하가 된 자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마가의 이인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네요?”

“그렇습니다.”

“그럼 그가 팔전에 도전했다는 것도?”

“그건 기록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분은 아무도 모르게 관문으로 들어갔거나, 알리고 들어갔다면 그 당시 촌장이 일부러 기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럼 그 검은?”

육전수의 시선이 검으로 향했다.

“혈월마검이에요.”

“이게…….”

육전수는 검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양손으로 잡고 천천히 뽑았다.

한가운데 달이 새겨진 붉은색 검 면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육전수는 감탄했다.

혈월마검은 철전에서 만들어 낸 가장 훌륭한 검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만들어졌다는 기록만 있고 누구에게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었다.

그런데 오백 년 만에 나타난 것이다.

“우리 철촌에서 만들어 낸 최강 병기라고 하더니 그 말이 맞군요.”

육전수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이가 철노에게 드리는 선물이에요.”

“정말로 절 주시는 겁니까?”

육전수는 아수수를 보았다.

한두 해 전에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벌써 오백 년이 흘렀다. 아무리 선조가 사용하던 무기라고 해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가 없다.

그런데 선물로 주겠다는 것이다.

“광천살인무는 그이 머릿속에 있어요. 나중에 적어 준다고 하더군요.”

“광천살인무라면?”

“광검 그분의 무공이에요.”

“무공까지 수습했단 말입니까?”

육전수는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그랬나 봐요.”

“세상에…….”

육잔능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쨌거나 그 모든 게 그분이 나와야 가능한 거니까…….”

“그렇죠.”

“옹노에게 물어보면 안 되나요?”

“저는 지금 마왕의 부하 신분입니다. 창해 그 친구는 아니고요.”

“관문에 대해 묻는 것도 압력이 될 수 있다는 건가요?”

“저 때문에 가마에 불 지피는 시간을 여섯 시진이나 늦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더 이상 부담을 주는 건…….”

“알았어요.”

아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철전제일문을 통과했으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래도…….”

아수수는 말끝을 흐렸다.

금장생을 믿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탁! 탁탁탁! 탁탁탁! 휙휙휙!

금장생의 신형이 무서운 속도로 움직였다.

그가 펼치고 있는 무공은 군림천하보였다.

사실 군림천하보가 보법이긴 하지만 이런 좁은 공간에서 삼백육십오 보 전부를 펼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군림천하보를 얼마나 능숙하게 펼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성패를 결정짓는 건 군림천하보란 결론을 얻은 후 쉬지 않고 펼쳤다.

후끈한 열기 속에 쉬지 않고 군림천하보를 펼치자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처음엔 공간이 너무 협소해 완벽하게 펼칠 수 없었다. 그래서 보폭을 줄이는 연습을 했다.

수백 번의 시도 끝에, 보폭을 줄이면서도 진각의 힘을 완벽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금장생은 내기를 끌어 올렸다.

“타하!”

그리고 기합을 내지르며 군림천하보와 함께 철장을 펼쳤다.

그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오른손과 왼손이 번갈아 뻗혔고, 손바닥 자국이 있던 벽에서는 픽픽 소리가 났다.

무수한 환영과 손 그림자가 좁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금장생의 환영과 손 그림자가 우뚝 멈췄다.

금장생은 전면을 주시했다.

그르릉!

그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