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12)
그가 마신을 향해 달려가며 펼치는 신법은 마신행이었다. 아울러 달려가는 위치는, 두 개의 원 안에 별 모양이 새겨져 있는 문양 가운데였다.
‘부딪치면 겁나 아플 텐데…….’
금장생은 별 문양의 중심을 바라보며 내심 중얼거렸다.
‘에라, 모르겠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거, 거긴……!
석군왕의 귀신은 손을 들었다.
슥!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금장생의 신형이 귀신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디 간 거지?
천붕도마 광유의 귀신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들어갔어, 이 멍청아.
사예린의 귀신이 툭 쏘아붙였다.
―저 안으로?
광유의 귀신은 마신을 가리켰다.
―그렇다니까!
―에이! 저 안으로 어떻게…….
파앗!
순간 마신의 눈에서 시뻘건 광채가 폭사되었다.
―헉!
―에구머니.
―억!
다섯 귀신은 너무 놀라 펄쩍 뛰었다.
하지만 금세라도 달려 나갈 것 같던 마신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간 떨어질 뻔했네.
광유의 귀신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네가 떨어질 간이 어디 있냐?
사예린의 귀신이 비아냥댔다.
―너도 놀랐잖아. 그나저나…….
귀신들은 궁금한 얼굴로 마신을 보았다.
한편. 마신 안으로 들어온 금장생은 어리둥절했다.
어딘가로 들어온 건 분명한데 여기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자신을 감싼 기운은 낯설지 않았다.
“역천영면마진과 비슷하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서 있는 바닥에도 역시 조금 전 통과했던 곳에 새겨진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지금 서 있는 곳은 별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흐르는 대기며 기운이, 역천영면마진 안으로 들어갔을 때와 너무 흡사했다.
“응?”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그 앞에 투명한 뭔가가 허공에 떠 있었다.
귀신처럼 생긴 건 분명하지만 귀기는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누구시죠?”
금장생은 투명한 물체를 보며 물었다.
―나는 마신의 자아다.
“자아?”
―그렇다.
“그러니까 댁이 이 쇳덩어리의 영혼이라는 겁니까?”
―영혼과는 좀 다르다.
“어떻게 다릅니까?”
―나는 어떤 역할을 위해 창조된, 제한된 자아에 불과하다.
“어떤 역할입니까?”
―계약이다.
“계약…….”
금장생은 말끝을 흐렸다.
장사를 하다 보면 수많은 계약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이 쇳덩어리와의 계약은 다르다.
문득 백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백사는 심장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하였다.
“계약을 하면 당신 심장에도 내 이름이 새겨지는 건가요?”
―그렇다.
“계약을 하면 내게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모른다.
“그런데 무작정 계약을 하자는 겁니까?”
―……!
마신은 대답이 없었다.
“당신에게는 어떤 능력이 있습니까?”
―모른다.
“끙!”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건대 계약을 해야만 뭔가가 이루어질 것 같다. 그러지 않으면 이 관문을 통과할 수 없다.
금장생은 전면으로 시선을 주었다.
바로 앞에 석군왕을 비롯한 다섯 귀신이 떠 있다. 안으로 들어오고 싶은데 안 되는 모양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어?
―억!
갑자기 금장생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귀신들은 깜짝 놀랐다.
―우리가 보이는가?
석군왕의 귀신이 물었다.
“네.”
―우린 자네가 안 보이는데. 들어갈 수도 없고.
“귀신이 들어가지 못한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귀신이 들어가지 못하는 신성한 장소거나 아니면 다른 공간이란 뜻이 되네.
“이곳에서 귀신을 쫓는 기운을 가진 건 제가 가진 법기들뿐입니다.”
―그럼 다른 공간이란 뜻이구먼.
“저승 같은 건 아니겠죠?”
―저승이라면 나와 대화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그러네요.”
―그나저나 어떻게 돼 가고 있는 건가?
“이 녀석이 저와 계약을 하잡니다.”
―어떤 계약 말인가?
“모른답니다.”
―몰라?
“네.”
―거 참 특이하구먼. 가만, 마신이 말을 하는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이 녀석에게도 영혼 같은 게 있습니다. 제 입으로는 마신의 자아라고 하더군요.”
―그 자아가 계약을 하자고 하던가?
“자기 말로는 제한된 자아라고 하더군요.”
―아는 게 거의 없다는 말이구먼.
“그렇습니다.”
―계약은 안 할 건가?
“굳이 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요.”
―자네가 계약을 하고 마신행을 펼쳐 관문을 통과해야 우리가 저승으로 갈 수 있네.
“정말로 그럴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자네가 무공으로 문을 가루로 만드는 바람에 우리를 묶고 있던 힘이 약해졌네. 그건 곧 자네 말이 맞다는 걸 뜻하네.
“그렇군요.”
―굳이 손해나는 게 아니라면 계약을 했으면 좋겠네.
“떠나고 싶습니까?”
―가야 할 곳이 지옥으로 정해졌겠지만 귀신으로 천 년을 살았으면 되지 않았나 싶네.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들이 아니더라도, 계약을 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했다.
“좋습니다. 계약하겠습니다.”
―맹세를 해야 한다.
“어떻게 맹세를 하는지 모릅니다.”
―나를 따라 해라.
“알았습니다.”
―나 마신은.
“나 금장생은.”
―금장생과.
“마신과.”
―생사를 함께할 것이다.
“생사를 함께할 것이다.”
―이 맹세는 신성한 약속이며.
“이 맹세는 신성한 약속이며.”
―어기는 자, 죽음이 함께할 것이다.
“어기는 자, 죽음이 함께할 것이다.”
웅! 웅웅웅! 웅웅웅!
금장생의 말이 끝나자 별 문양에서 푸른 광채가 솟아 나왔다.
그 광채에 내포된 힘은 엄청났다. 가만히 있다가는 온몸이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금장생은 급하게 가부좌를 했다. 그리고 양극신공을 끌어 올렸다.
온몸을 조여 오는 압력이 너무 강해 양극신공이 아니면 막아 낼 수 없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점점 강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사방에서 조여 오는 압력을 밀어냈다.
―날 밀어내지 마라, 계약자여.
하지만 금장생은 힘을 풀지 않았다. 왠지 밀리면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날 거부하지 마십시오.”
금장생은 내기를 더욱 강하게 끌어 올렸다.
―이러면…….
마신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금장생의 기운이 급격하게 마신의 전신을 장악했다.
‘헉!’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마음을 놓으려는 순간, 가공할 기운이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건 결코 금장생이 쏟아 냈던 그 기운이 아니었다. 마신이 지니고 있던 기운이었다.
―받아들여도 된다.
금장생이 다시 밀어내려고 하자 마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게 좋은 겁니까?”
―그렇다.
“그렇다면 거절한 이유가 없지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기를 풀었다.
마신의 기운은 그의 몸속으로 들어와 단전의 내기와 합쳐졌다.
‘운기행공이 필요하겠네.’
마신은 아무 말도 없었지만 금장생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는 곧바로 운기행공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그의 내기와 마신의 기운은 몸 내부와 외부에서 무섭게 얽혔다. 만일 주위에 어떤 물체가 있었다면 가루로 변하고 말았을 정도로 그 기운은 강했다.
기운은 폭풍처럼 금장생 주위를 강타했다.
운기행공은 거의 반 시진 이상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금장생의 신형이 천천히 내려왔다.
번쩍!
눈이 뜨이고 푸른 광채가 폭사되었다.
전방을 꿰뚫는 푸른 광채에는 검은빛이 내포돼 있었다. 마신의 기운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금장생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가장 먼저 그가 한 일은 단전 확인이었다.
“허!”
놀람에 찬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단전이 전보다 훨씬 넓어져 있었다. 단지 운기행공을 했을 뿐인데 이 갑자는 더 늘어난 것 같았다.
‘기연이네.’
금장생은 빙긋 웃었다.
그리고 전면을 바라보았다.
석군왕의 귀신을 비롯한 다섯 귀신은 여전히 앞에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눈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금장생은 석군왕의 귀신을 보며 물었다.
―조금 전에 마신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쏟아져 나왔네. 그런 엄청난 기운은 처음이었네.
“그 정도였습니까?”
―그러네.
“강한 건 좋은 일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내가 아는 한 천력天力은 절대 혼자 나오지 않네.
“그에 상응하는 힘이 나타난다는 겁니까?”
―그러네.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저는 관문만 통과하면 됩니다. 마가에 오래 머물 생각도 없고요. 마가가 안정을 되찾으면 본래 제가 있던 장소로 돌아갈 겁니다.”
―세상일이 어디 마음대로 된다던가?
“아무튼 그렇게 할 겁니다.”
이어 금장생은 마신에게 물었다.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발현하면 된다.
“들어올 때는?”
―앞으로는 들어오겠다는 의지와 함께 내 가슴을 향해 뛰어들면 된다.
“마신행은 처음 한 번이면 되나 보죠?”
―그렇다.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나가겠다는 의지를 발현함과 동시에 몸을 날렸다.
쑥!
금장생은 바로 밖으로 빠져나왔다.
마치 떨어지는 폭포를 뚫고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나온 건가? 내부는 어떻던가? 움직일 수는 있는 건가?
석군왕의 귀신은 자신이 귀신이라는 사실도 잊고 질문을 쏟아 냈다.
“나오고 들어가는 건 제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내부는 저도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움직이는 건 아직 확인을 못 했고요.”
금장생은 마신을 보며 들어간다는 의지를 전하며 몸을 날렸다. 들어가고 나가는 법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몇 번을 들락거리다가, 들어가고 나가는 데는 연습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신을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안으로 들어간 금장생은 물었다.
―그대와 나는 이미 하나가 되었다. 내기의 공명을 이루는 순간 나는 그대의 꼭두각시가 된다.
“내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인다는 말이군요.”
―그렇다.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시선을 돌려 밖을 보았다.
“이제 작별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다섯 귀신을 보며 말했다.
―마신행을 펼칠 건가?
“네.”
―짧은 만남이었지만 아쉽구먼.
“저도 그랬습니다. 부디 극락왕생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시체에 보면 무기가 있을 거네. 그것도 함께 챙겨 주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금장생은 내기를 끌어 올렸다.
―오!
석군왕의 귀신의 눈에 놀람의 빛이 어렸다.
마신에게서 가공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도 보았지만 여전히 놀라웠다.
“나무 관세음보살!”
금장생은 합장을 하며 바닥을 찼다.
그가 탑승한 마신이 전방으로 폭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