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11화 (111/524)

황금가 (111)

마신

귀신이 뭘 못 하겠는가? 라고 하였던 석군왕의 말은 맞았다. 금장생은 한 식경도 되지 않아 다섯 사람의 무공을 전부 암기할 수 있었다.

해신 석군왕이 남긴 무공은 해신마전海神魔典이고 살인마후 사예린의 무공은 백팔살인류, 검군자 마백이 남긴 무공은 고독검경, 천붕도마 광유가 남긴 무공은 천붕혈해도법, 광검 육잔능이 남긴 무공은 광천살인무狂天殺人舞였다.

“쯧쯧!”

금장생은 혀를 찼다.

마왕을 넘어섰다는 다섯 명의 말과 달리 마경에 나와 있는 양극마신만마권이나 마전의 적수마신만마공보다 강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두 무공에 근접할 정도로 강했다.

고하를 결정하는 건 무공이 아니라 익히는 사람의 자질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즉, 저들 다섯 명이 있을 때 마왕은 자질이 부족해 양극마신만마권을 완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왜 그러는가?

“그 정도 무공이면 만족하고 살 것도 같은데 왜 이런 도전을 감행했는지 안타까워서요.”

―무인이기 때문에 도전을 한 거네.

“장사꾼인 저는 무인들의 그런 호승심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일인자가 되지 못하면 절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검군자 마백이 말했다.

“지금 일인자라고 하셨습니까?”

금장생은 마백의 귀신을 보았다.

―그랬다.

“당신네들이 넘은 건 그 시대의 마왕이지 마가의 무공이 아니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석군왕의 귀신이 물었다.

“마왕의 무공인 양극마신만마권과 적수마신만마공은 여러분의 무공보다 더 강합니다.”

―나는 믿을 수 없다!

사예린의 귀신이 버럭 소리쳤다.

“제가 보여 드리겠습니다.”

금장생은 철문 앞으로 가 섰다.

―무공으로 그 문을 부수는 건 불가능하다.

“그건 여러분 기준으로 봤을 때 그런 거지 제 기준에서는 아닙니다.”

금장생은 양극신공을 펼쳤다.

웅웅웅웅웅!

그의 전신에서 가공할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헉!

―어?

―저건?

―저럴 수가!

귀신들은 질겁했다.

금장생에게서 흘러나온 기운은 가공했다. 생전의 자신들이라고 해도 저런 기운을 흘리지 못했다. 게다가 금장생은 젊기까지 했다.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군.

“타하!”

금장생의 입에서 엄청난 기합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양손을 천천히 앞으로 내밀었다.

쿠웅!

저 멀리서 울리는 천둥소리 같은 소리가 철문에서 흘러나왔다.

“커억!”

휙!

금장생이 비명과 함께 뒤편으로 처박혔다. 철문에서 흘러나온 반탄력이 그를 후려갈긴 것이었다.

―거봐라. 저건 자식아, 무공으로 절대 없앨 수 없어.

천붕도마 광유가 이죽거렸다.

“저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옵니까?”

금장생은 입가로 흐르는 피를 닦으며 일어났다.

광유는 철문으로 보았다.

푸스스!

바람에 모래가 쓸리는 소리가 철문에서 흘러나왔다.

풀썩!

그리고 거대한 철문이 단번에 무너졌다.

―저럴 수가?

―오!

―아!

―말도 안 돼.

―이건 아냐.

귀신들은 믿기지 않는 얼굴로 철문을 바라보았다.

설마 금장생이 무공으로 철문을 가루로 만들어 버릴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무공이 아니라 그 당시 마왕이 약했다는 제 말이 맞죠?”

금장생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급격하게 사라졌다.

눈앞에 서 있는 거대한 동체 때문이었다.

아무리 작게 잡아도 키가 오 장(15미터)은 될 것 같은 거대한 덩치가 철문 안쪽에 서 있었다.

금장생은 전사의 머리를 보았다.

물소 뿔처럼 생긴 커다란 뿔이 머리 좌우측에 나 있었다.

“마, 마신魔神!”

금장생은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눈앞에 있는 거대한 동체는 신화 속에 등장하는 그 마신의 형상이었다.

마신의 양쪽 어깨에는 이마에 뿔이 난 해골 문양이 붙어 있었다. 해골의 두 눈에는 푸른색의 광채가 흘러나왔다.

가슴에는 특이한 형태의 문양이 있었다.

“저건?”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전에 누란의 옛터에서 보았던 그 원에 둘러싸인 별 문양이었다.

―뭔지 아는가?

석군왕의 귀신이 물었다.

“영감님도 모르신다는 거네요?”

금장생은 되물었다.

―그러네.

석군왕의 귀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다만 생김새를 보면…….

“전설에 등장하는 마신이란 말입니까?”

―그러네.

“마신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 녀석을 보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네.

“지금은 믿는단 말이군요.”

―완전히 믿기보다는, 어쩌면 우리가 신화와 전설로 알고 있는 그 이야기들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네.

“그런데 재질이 뭡니까?”

금장생은 마신상 앞으로 다가가 두드려 보며 물었다.

속이 비었으면 울림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철 같은데,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철은 아니네.

“이 녀석에 대한 단서도 없습니까?”

―저쪽에 뭔가가 적혀 있긴 하네.

석군왕의 귀신은 오른편 벽을 가리켰다.

금장생은 석군왕의 귀신이 가리킨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고대에 사용됐던 갑골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석군왕의 귀신이 ‘뭔가’라고 한 건 갑골문자를 읽지 못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이름은 마신이다.

마신이 왜 전쟁터에 방치됐는지 우린 모른다. 그가 왜 잠들었는지도 모른다.

저자를 보는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우리를 버린 내가 무인들에게 복수하는 도구로 마신을 이용하는 거였다.

“이건?”

금장생은 석군왕의 귀신을 보았다.

―왜 그러는가?

“관문에 대한 게 아닙니다.”

―하면?

“마신을 여기로 가져온 이유를 적어 놓은 겁니다.”

―뭐라고 돼 있는가?

“전쟁터에서 잠들어 버린 녀석을 이곳으로 데려와 자신들을 방치한 내가 무인들에게 복수하려고 했답니다.”

―복수라니, 그건 무슨 소린가?

“마가의 내가와 외가에 대해 모르십니까?”

―처음 듣네.

“그럼 ‘전란의 시대’는 아십니까?”

―알고 있네.

“그 ‘전란의 시대’때 선봉에 선 이들이 외가 무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금장생은 내가 무인과 외가 무인에 얽힌 비사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된 거였구먼.

석군왕을 비롯한 다섯 귀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몰랐던 사실입니까?”

―그랬네.

석군왕의 귀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연은 마왕과 팔전의 전주만 알고 있었나 보네요.”

―그렇다면 이 관문은 마왕을 잡기 위해 만든 것 같은데, 그래도 도전할 텐가?

“그래야 하는데 어떻게 도전하는 건 알 수가 없네요.”

안쪽 어디에도 도전 방법이 적혀 있지 않았다.

―도전 방법은 조금 전 자네가 무공 자랑하면서 없애버린 철문에 적혀 있었네.

“그래요?”

―그러네.

“뭐라고 적혀 있었는데요?”

―‘탑승해서 마신행魔神行을 펼쳐라. 그럼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돼 있었네.

석군왕이 그 글을 읽을 수 있었던 갑골문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신행이라고요?”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그러고 보니 신법인 마신행의 마신은 저 녀석과 이름이 같았다.

이상한 점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군림천하보는 보법이면서 신법이다. 더불어 신법으로 펼쳤을 때도 마신행보다 느리지도 않다. 군림천하보를 먼저 창안했다면 굳이 마신행을 창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마왕의 무공 중 마신행이 들어 있는 이유가 이곳에 있는 마신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러는가?

“마왕의 무공 중에 마신행이란 신법이 있어서요.”

―마신을 타고 펼치는 무공이란 말인가?

“그것까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군림천하보가 있는데 굳이 마신행이란 신법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탑승하는 방법은 아는가?

“여러분을 저승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제가 탑승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저승으로 떠나지 못한 이유가 저 마신 때문이란 말인가?

“제가 배운 바로는, 죽었는데도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귀신으로 남는 건 생전에 풀지 못한 뭔가를 해결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복수 같은 걸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우린 억울하게 죽은 게 아니네.

사실 석군왕 일행은 자신들의 영혼이 왜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귀신이 됐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에 귀신으로 남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러네.

“여러분이 귀신으로 남은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마왕보다 훨씬 더 강한 무공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마왕을 시험하기 위해 만들어진 관문조차 통과하지 못했다는 좌절감이고, 둘째는 그 좌절감으로 인해 생겨난 관문에 대한 불신입니다.”

―관문에 대한 불신이라는 건 무슨 말인가?

“이곳은 마왕을 위한 관문이 아니라 마왕보다 더 강한 여러분을 없애기 위한 함정이라고 생각하시지 않았습니까?”

―귀신이군.

석군왕의 귀신은 놀란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금장생의 말이 맞았다. 그를 비롯한 다섯 귀신은 이곳에 있는 관문을 함정이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귀신이 된 후 철문 안쪽에서 거대한 크기의 철갑을 발견하긴 했지만 탑승할 방법이 없는 이상 움직이는 건 불가능하다.

아니, 설사 어찌어찌해서 탑승했다고 해도 저런 거대한 덩치를 움직일 방법은 없다.

이 모든 것들이 자신들을 제거하기 위한 함정이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귀신은 제가 아니고 여러분이죠.”

―하면 우리가 여길 벗어날 방법은 있는가?

“어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병이 생기게 하였던 원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말해 보게.

“첫째, 여러분의 무공이 최강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래서 무공으로 철문을 박살 낸 거였냐?

사예린의 귀신이 물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우리가 떠나지 못한 건 아직 풀지 못한 게 남았다는 거구나?

“그렇습니다. 이곳이 정말로 마왕을 시험하기 위해 만들어진 관문인지를 확인해야 떠날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확인한다는 거냐?

“글쎄요, 그게…….”

금장생은 말끝을 흐렸다.

사실 그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마왕에게만 전해지는 비밀 같은 건 없는가?

석군왕의 귀신이 물었다.

“마왕을 시험하기 위해 외가 무인이 만든 관문이라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진짜 마왕은 알는지 모르지만 자넨 아니라는 거군.

“그렇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단서가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단서?”

석군왕을 비롯한 다섯 귀신의 얼굴에 일말의 기대감이 어렸다.

“그런데 이곳이 싫으십니까?”

―너도 저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는 놈들하고 싸워 봐라, 이곳에 있고 싶은지. 지옥도 여기보다는 훨씬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예린의 귀신이 이죽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내 말이 그 말이다!

―내 말을 대신 해 주고 자빠졌네!

늘 아옹다옹 싸우던 세 귀신이 동시에 소리쳤다.

―어떤 방법인가?

석군왕의 귀신이 물었다.

“일단 지켜보십시오!”

파앗!

금장생은 마신을 향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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