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10화 (110/524)

황금가 (110)

순전히 호기심이었다.

군림천하보로 시험을 하는 걸 보면 이곳은 마왕에게만 허락된 장소다. 그런 장소에 시체 다섯 구가 있다는 건 저들도 마왕이란 말이 된다.

“그 영감님은 아무 말 안 했는데.”

금장생은 시체 앞으로 다가갔다.

나는 이인자였다.

맨 오른편 무인 옆에 쓰인 글이었다.

일인자가 되고 싶었다. 마왕의 연대표에 해신海神 석군왕의 이름을 올리고 싶었다.

그래서 팔전의 전설에 도전했다.

그러나 팔전은 적가의 피를 이은 자가 아니면 도전 차제가 불가능한 곳이었다. 철전제일문도 아니고, 철전제일문으로 가는 길목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관문 입구에 설치된 보법. 그것은 오직 마왕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날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죽음과 싸우면서 이곳까지 왔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내 한계였다.

저 문이 날 거부했다.

금장생은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문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무공으로도 깰 수 없는 건가?”

금장생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군림천하보를 모르는데도 진식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면 해신을 비롯한 다섯 명은 상당한 강자라는 의미다. 그런 이들이 깨트리지 못했다면 저 문은 힘으로 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저 문 역시 마가의 보법을 펼쳐야만 통과가 가능하다.

금장생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귀신 다섯 명이 서 있었다.

남자 귀신 넷에 여자 귀신 한 명이었다.

다섯 귀신 중 말을 한 자는 오른편에 서 있는 키가 큰 자였다. 그 귀신이 글을 남긴 해신 석군왕이었다.

석군왕의 귀신과 금장생의 시선이 마주쳤다.

―내가 보이느냐?

석군왕의 귀신이 물었다.

금장생은 못 들은 척 다시 바닥에 적힌 글로 시선을 주었다.

―못 듣는 것 같은데요?

두 번째 귀신이 말했다. 여자 귀신이었다.

여자 귀신은 키가 크고 탄탄한 몸매를 지닌, 전형적인 무인 체형이었다.

―아냐.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 것 같아.

세 번째 귀신이 말했다. 키가 작고 통통한 체격의 사내 귀신이었다.

―너 말 안 올릴 거야?

여자 귀신이 빽 소리쳤다.

―쓰바! 네가 나보다 백오십 년 빨리 죽었다고 누님이 되는 건 아니잖아. 죽을 때 나이는 내가 더 많다고.

―뒈질 때 아무리 나이가 많았다고 해도 나보다 백쉰 살이나 적어, 인마. 그러니까 누님이라고 불러.

―어지간히 싸워라. 지치지도 않냐!

네 번째 귀신이 버럭 소리쳤다.

그는 거구 사내였다.

―넌 빠져, 자식아.

―빠져, 새꺄!

여자 귀신과 통통한 귀신이 동시에 소리쳤다.

―넌 자식아, 나보다 이백쉰 살이나 적고 검군자 이놈보다는 백 살이나 적어. 백 살이면 밥이 몇 그릇인지 알아? 십일만 그릇이야, 십일만.

―밥 많이 처먹는다고 형님 누나가 되는 거라면 여기서 제일 연장자는 나야. 나는 하루에 열다섯 끼니를 먹었다고.

―나도 생각 좀 하게 주둥아리 좀 닫아라, 제발. 어떻게 시간만 나면 그렇게 처싸우냐.

일행 중 덩치가 가장 작은 귀신이 말했다.

―죽어, 새꺄!

―죽어!

―죽어라!

말다툼을 하던 세 귀신이 달려들어 마지막 귀신을 두들겨 팼다.

―아이고, 귀신 죽네. 아이고, 나 죽네. 아이고, 귀신 살려!

가장 작은 귀신은 데굴데굴 구르며 비명을 내질렀다. 세 귀신은 그런 작은 귀신을 사정없이 밟았다.

―미친것들. 저렇게 살고 싶을까?

해신 석군왕은 혀를 끌끌 찼다.

―이 새끼들아, 내가 누군지 알아? 광검狂劍 육잔능이야. 이인자였지만 마왕도 한 수 아래로 내려다보았던 육잔능이라고!

짓밟히던 작은 귀신이 고함을 내질렀다.

―난 자식아, 밤마다 마왕이 찾아와서 무공 좀 가르쳐 달라고 졸랐던 사람이야. 살인마후殺人魔后란 별호도 마왕 그놈이 지어 줬단 말이야.

―나는 새꺄, 검군자劍君子 마백이야. 그 당시 마가에 어떤 소문이 돌았는지 알아? 검군자 마백이 강호로 나가면 천하제일인이 될 거라고 했어. 마왕이 아니라 내가 천하제일이라고 했다고.

―지랄들 하고 자빠졌네. 나 천붕도마天崩刀魔 광유는 새꺄, 다른 가문의 왕들을 처발랐어. 마왕 따위를 이겼다고 목에 힘주는 너희와는 차원이 달라, 자식들아.

―다른 가문의 왕들이 약해 빠졌으니까 그랬겠지.

―우리가 안 봤는데 어떻게 믿어, 새꺄.

―증거를 대 봐, 증거를.

―우리가 네 녀석의 천붕혈해도법天崩血海刀法을 봤는데, 그건 무공이 아니라 어린애 장난치는 거였어, 자식아.

―네 백팔살인류百八殺人流는 어떻고. 그게 장난이지 무공이야? 무공은 말이야, 나처럼 커다란 도로…….

―웃기지 마, 자식아. 무공이라면 내 무공인 고독검경孤獨劍經이 최고야. 고독검경보다 강한 무공은 아직 못 봤다고.

처음엔 나이를 가지고 싸우던 귀신들은 이제 무공을 가지고 토닥거렸다. 그러다가 누군가 한 귀신이 못마땅하면 집단으로 밟았다.

“그만!”

보다 못한 금장생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싸우던 귀신들이 우뚝 멈췄다.

해신 석군왕을 제외한 세 명의 귀신은 천붕도마 광유를 밟던 중이었다.

귀신들은 고개를 돌려 금장생을 보았다.

“시끄러워서 글을 볼 수가 없잖습니까. 제발 조용히 좀 해 주십시오.”

―우리가 하는 말이 들려?

―우리가 보여?

―우리를 봐.

―뭐냐, 넌?

―저 자식 뭐야?

귀신들은 각자 한 소리씩 했다.

“네, 여러분이 하는 말이 잘 들리고 잘 보이고, 직책은 현 마왕입니다.”

금장생은 다섯 귀신의 질문에 모두 대답을 했다.

귀신은 멍한 얼굴로 금장생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해신 석군왕의 눈이 커졌다.

금장생에게서 귀신을 퇴치하는 법기의 기운을 감지해 낸 것이다.

―암왕!

―암왕!

―암왕!

다섯 귀신은 거의 동시에 소리쳤다.

그들이 아는 한 저런 법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암왕뿐이었다.

―암왕이 어떻게 여길…….

석군왕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곳은 다른 곳도 아니고 마가의 팔전이다. 마왕이 아니면 발을 들여놓기 힘든 이곳에 암왕이 들어왔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저는 암왕이 아닙니다.”

―자네가 입고 있는 옷은 태극선의로 보이고 가지고 있는 법기는 암왕칠구 같은데, 아닌가?

석군왕이 물었다.

“이것들이 태극선의와 암왕칠구인 건 맞습니다.”

―게다가 우리를 본다는 건 암왕기를 지녔다는 건데, 그런데도 암왕이 아니라는 건가?

“세 가지 모두 우연히 얻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제 직업은 암왕이 아니라 강신술사고요.”

―강신술사?

“시체를 강시로 제강하여 운구하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하면 마왕이 아니라는 건가?

“……!”

금장생은 생각에 잠겼다.

“맞습니다. 난 진짜 마왕이 아닙니다.”

―진짜 마왕이 아니라는 건 가짜 마왕이라는 거냐?

살인마후 사예린이 물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하다는 건 군림천하보를 완벽하게 익히고 있다는 건데 맞는가?

석군왕이 물었다.

“네.”

―어떻게 된 일인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금장생은 그간에 있었던 이야기를 전부 해 주었다. 사람도 아니고 귀신인데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마왕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해 암매장됐는데, 자네가 제강 연습을 하기 위해 파냈다는 거구먼.

“그렇습니다.”

―그랬는데 마왕 부인 일행이 남편의 흔적을 찾아 북망산에 왔고, 우연히 자네와 만나 가짜 마왕 행세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건가?

“네.”

―마왕 부인은 절실한 뭔가가 있었다 치고, 자네는 뭘 원하고 마왕이 된 건가?

―마왕 행세를 하려면 밤에 잠도 함께 자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정말로 자게 될 수도 있겠지. 저놈은 그걸 노리고 왔을 거야.

사예린의 유령이 이죽거렸다.

“그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제가 수락한 건 돈 때문이었습니다.”

―돈?

“저는 여자와 자는 것보다 만 배는 더 돈을 좋아하거든요.”

―……!

귀신들은 멍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그보다 아까 시끄럽게 떠들 때 하는 말들을 보니 모두가 마가의 이인자였던 것 같은데 맞습니까?”

―맞네.

석군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적 분이십니까?”

―내가 살았던 시대는…….

석군왕은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대충 일천 년 전입니다.”

―그럼 내가 죽은 지는 오백 년이 지났구먼.

가장 늦게 들어온 광검 육잔능이 중얼거렸다.

“오래됐네요.”

―너도 우리처럼 오랜 세월 동안 귀신으로 살아 봐라. 우리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다.

육잔능이 조금 전 소란스럽게 한 것에 대해 변명을 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여긴 적씨가 아닌 자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땅인데 왜 들어온 겁니까?”

―그래서 들어온 거네.

석군왕이 대답했다.

“적씨를 넘어서기 위해 이곳으로 들어왔단 말입니까?”

―적씨의 무공은 이미 넘어섰다네. 하지만 마왕이 될 수는 없었네. 그래서 팔전을 택한 거라네.

“팔전에 설치된 관문을 모두 통과하면 마왕과 동등한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것 때문이군요.”

―그러네. 그런데 철전제일문도 넘지 못했네.

“군림천하보를 완벽하게 익히지 못한 사람은 절대 통과할 수 없는 관문인데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맞네. 우린 관문을 너무 쉽게 생각했네. 그리고 이곳에 설치된 관문은 단순한 시험용이 아니라 능력이 부족한 마왕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무서운 곳이었다네. 아니, 어쩌면 우리를 없애기 위해 만든…….

석군왕의 귀신은 말끝을 흐렸다.

“하긴.”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사 군림천하보를 안다고 해도 몇 번째 발자국인지를 모르면 통과가 불가능하다. 그걸 모르고 무리하게 통과하려고 하면 저들처럼 귀신이 돼 관문 안을 떠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완전히 그런 의도로 관문을 만든 것은 아니겠지만, 석군왕의 말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었다.

“저긴 들어가 보셨습니까?”

금장생은 문을 가리켰다.

―살아선 못 들어갔지만 죽어서는 들어가 보았다네.

“뭐가 있습니까?”

―철갑이 있네.

“철갑요?”

―들어가 보면 알 거네. 그보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 부탁이나 들어주게.

석군왕이 부탁이란 말을 꺼내자 나머지 네 명도 일제히 금장생을 보았다.

“무리한 부탁이 아니라면 들어 드리겠습니다.”

―어려운 건 아니네. 우리 후예를 찾아 무공을 전수해 주라는 거네.

“석 대협은 일천 년 사람이고 가장 늦게 들어온 육 대협도 오백 년 전 사람인데, 후예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린 모두 마가 사람이네. 우리가 팔전 관문에 도전했다는 이유만으로 추방당하진 않았을 거네. 하지만 우리가 무공을 지니고 이 안으로 들어온 바람에 집안이 몰락했을 거네.

“왜 물려주지 않고…….”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네. 통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만일 실패하면 우리가 남긴 비급 때문에 집안이 멸문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네.

“화가 될 수도 있는 보물을 치워 버린 거군요.”

―그렇다네.

“그러고 보니 석씨는 한 명 있는 것 같군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마가의 주 수입원이라고 할 수 있는 상단의 상단줍니다. 참고로 그 상단은 대륙삼대상단 중 한 곳입니다.”

―이름이 뭔가?

“상단의 이름은 대륙황가고 상단주는 석보산입니다. 만나 본 적은 없습니다.”

―한번 알아봐 주게.

“만일 후예를 만났는데 어르신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럼 굳이 전해 줄 필요 없네.

“다른 분들도 그렇습니까?”

―맞다.

―같다.

―그렇게 해 주면 된다.

네 귀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비급은 어디 있습니까?”

―지금부터 알려 주겠네.

석군왕이 말했다.

“알려 준다는 건…….”

―자네 머릿속에 심어 준다는 뜻이네.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귀신이 뭘 못 하겠는가?

석군왕은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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