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06)
그 시각 금장생을 태운 마차는 서천전에 도착했다.
마차는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마차가 멈추자 거석은 금장생을 안고 삼 층으로 올라갔다.
“침대에 눕혀 주세요.”
“알겠습니다, 마마.”
거석은 금장생을 침대에 눕혔다.
“이제부터는 내가 할게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거석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마마!”
거석이 나가자 상화가 들어왔다.
“대야에 물을 떠 오고 수건도 좀 가져다줘.”
“알았어요.”
상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욕실로 들어가 물을 떠 왔다.
그사이 아수수는 금장생의 옷을 벗겼다.
옷은 비를 맞은 것처럼 축축했다. 피부로 배출된 주정 때문이었다. 더불어 금장생의 몸도 땀을 많이 흘린 것처럼 젖어 있었다.
“지독하네.”
아수수는 혀를 내둘렀다.
금장생은 주정을 땀처럼 흘린 상태였다. 술 냄새가 진동할 수밖에 없었다.
“물 떠 왔어요.”
상화는 대야와 수건을 아수수 옆에 놓았다.
“넌 그만 나가 봐.”
“제가 도와 드리면…….”
“이것까지 다 벗겨야 해.”
아수수는 금장생 하의를 가리켰다.
“아, 알았어요.”
상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아수수는 금장생의 나머지 옷마저 벗겼다.
‘벌써 익숙해져 버렸네.’
아수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금장생을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의 알몸이 거북하지가 않다. 공연히 남편에게 미안했다.
‘당신 복수를 할 수 있다면 이까짓 몸이 무슨 대수겠어요. 난 상관없어요.’
아수수는 금장생의 몸을 닦았다.
먼저 얼굴을 닦고 몸을 닦았다. 수건으로 닦아 낼 때마다 주향이 진동했다.
“이러다 내가 취하겠네.”
주향이 얼마나 지독한지,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할 지경이었다.
상체를 다 닦고 나자 수건을 물에 적셔 주향을 씻어 내고 짠 다음 다시 닦았다.
그녀의 손길이 성기 앞에서 멈춘 건 잠깐에 불과했다. 이내 안쪽 고환까지 꼼꼼하게 닦았다.
‘풋!’
그녀의 입에서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성기를 쥔 손이 느닷없이 충만해졌다. 거의 인사불성이 되도록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장생은 발기를 한 것이다.
‘대단하다, 대단해.’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몸을 닦았다.
앞과 뒤를 다 닦은 후 물을 더 떠 와 한 번 더 닦았다.
주정 냄새가 가시자 똑바로 눕힌 후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욕실로 들어가 씻은 후 금장생 옆으로 누웠다.
‘복수를 마칠 때까지만이에요, 상공. 복수를 마칠 때까지 만요.’
그녀는 금장생의 팔을 펴 머리를 얹은 후 눈을 감았다.
그렇게 아침을 맞았다.
금장생이 눈을 뜬 건 극심한 갈증 때문이었다. 술 때문에 더웠는지 이불은 저만치 차 버리고 아무것도 덮지 않은 상태였다.
서늘한 새벽 공기로부터 그의 몸을 지켜 준 건 아수수의 몸이었다.
아수수는 끈으로 허리를 묶는 얇은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뒤척이다 풀린 듯 좌우로 벌어져 있었다.
그런데 잠옷 안쪽은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였다. 당연히 가슴과 하체가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옆으로 눕거나 엎드려 잤다면 가릴 수 있었겠지만 그녀의 오른팔과 오른 다리는 금장생에게 걸쳐진 상태였다.
금장생은 빠져나오기 위해 등으로 바닥을 밀어 몸을 일으켰다.
어깨를 침대 머리에 기대는 순간 아수수가 움직였다. 그녀는 잠옷이 귀찮은 듯 오른팔을 빼 버리더니 금장생의 몸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끙!’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더 움직이면 아수수가 깰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곧 사리가 생겨나고 말겠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시선을 돌렸다.
지금 그는 갈증 해소가 더 급했다.
“저기 있네.”
바로 옆 탁자에 물잔과 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금장생은 주전자를 바라보며 허공섭물을 펼쳤다.
주전자가 둥실 떠올랐다. 주둥이가 앞으로 숙여지더니 잔으로 물이 떨어졌다.
물이 어느 정도 차자 주전자를 내려놓고 물잔을 끌어당겼다.
둥실!
물잔은 곧장 그의 앞으로 날아왔다.
눈에 힘을 주자 입 바로 앞에서 멈췄다.
금장생은 입을 쩍 벌렸다.
물잔이 숙여지고 물이 입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좋네.”
그제야 미소가 지어졌다.
갈증이 해소되면서 머릿속이 맑아졌다.
“천 잔이라니. 내가 죽으려고 환장했지.”
금장생은 어이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일부러 그런 거예요?”
금장생은 시선을 내렸다.
아수수가 옷을 여미고 있었다. 자기도 거의 알몸 상태가 될 줄 몰랐던 듯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감시받는 상황에서 습관을 바꿀 수가 없어서요.”
아수수는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얇은 잠옷만 입는 건 그녀의 오랜 습관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꿀 수는 없었다.
그런데 뒤척이다 보니 허리를 묶었던 끈이 풀리면서 알몸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돼 버린 모양이었다.
그녀가 옷을 여미는 사이 금장생도 침대에서 빠져나와 옷을 입었다.
“그자들을 급하게 만들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는 의자에 앉아 찻잔에 물을 따르며 말했다. 조금 전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누굴 급하게 만든다는 건데요?”
아수수는 침대를 정리하며 물었다.
“그를 살해한 자들이지 누구겠습니까.”
“…….”
아수수는 말없이 금장생을 바라보았다.
“아! 제가 실언을 했군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나도 그이가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아수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남편이 죽었다는 말을 듣는 게 좋지는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흘렀다.
“어떻게 급하게 만든다는 거죠?”
먼저 침묵을 깬 사람은 아수수였다.
“어젯밤에 적지영과 그녀의 심복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저와 술을 마셨습니다. 이제 날이 밝았으니까 그들은 간밤에 있었던 일을 떠벌릴 겁니다. 점심때가 되면 서천왕부의 모든 이들이 알게 될 거고요.”
“그러니까 의도적이었다는 거네요.”
“그게 아니라면 좋아하지도 않는 술에 목숨을 걸 이유가 없잖습니까.”
“목숨을 걸었어요?”
“술이 아니고 물이라고 해도 천 잔을 마시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모험을 한 거죠?”
“중도파가 적지영 일행 쪽으로 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그들 때문에…….”
“왜 마왕을 떠나 그들 쪽으로 갔는지 모르지만, 마왕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보여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마광추란 자가 앞으로 나섰고 그자의 뒤를 이어 가솔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문득 이건 기회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랬군요.”
아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는 금장생이 즉흥적으로 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인사말을 할 때 집밥 이야기를 꺼내면서 울먹이기까지 했다. 마광추가 술 한 잔 올리겠다고 튀어나온 건 바로 그 모습 때문이었다.
만일 그가 누군가의 공격으로 빨리 돌아올 형편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더하여 공격한 누군가를 찾아 복수하겠다고 했다면, 그렇게까지 감동을 이끌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사람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죠?”
“점심을 먹고 나서 서천왕부를 돌아야죠.”
“마왕의 존재를 더 확실하게 인식시키겠다는 거군요.”
“기회가 왔을 때 잡지 못하면 평생 거지꼴을 못 면한다고 아버지가 그러셨거든요.”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궁금하네요.”
“잘못 키운 것 같아서요?”
“아뇨. 너무 잘 키운 것 같아서 그래요.”
“비꼬는 거 아니죠?”
“비꼬기는요. 그보다 목욕부터 하세요.”
“목욕요?”
“옷이 젖을 정도로 많은 주정을 배출했다는 거 아세요?”
“지금은 깨끗한 것 같은데…….”
“제가 닦아서 그런 거예요.”
“어쩐지…….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욕실로 향했다.
“참! 고맙습니다.”
욕실로 들어가다 말고 감사 인사를 했다.
“그거야 아내의 일인데요, 뭐.”
아수수의 얼굴에 쓸쓸한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금장생은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금장생과 아수수가 밖으로 나온 건 점심 무렵이 조금 지난 후였다.
전날 과음한 죄로 금장생은 물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방을 나섰다. 밖에는 마차와 마가대 대원들이 대기 중이었다.
“여러분은 쉬십시오.”
금장생은 마가대 대원들을 보며 말했다.
“마왕!”
거석이 깜짝 놀라 금장생을 불렀다.
“내 집을 다니면서 호위를 데리고 다니면 다들 비웃습니다. 마차도 내가 직접 몰고 싶지만 마왕 체면도 있고 하니까, 철웅, 뇌웅, 사검 세 분이 마부석에 앉도록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세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는 마부석으로 올라탔다.
“저는…….”
혼자 남은 나박은 금장생을 보았다.
“수입과 지출에 대해 기록하는 장부가 있을까요?”
금장생은 나박에게 물었다.
“입출금관리 대장이 있습니다.”
“지난 이 년 치를 준비해 주세요. 각 천장에도 연락해서 가져오라고 하고요.”
“알겠습니다.
“수고해 주세요.”
금장생은 마차에 올랐다.
“다녀오십시오.”
나박은 고개를 숙였다.
“출발하세요.”
“알겠습니다. 이랴!”
거석이 마차 고삐를 가볍게 휘둘렀다. 곧 마차는 서천전을 나섰다.
―입출금관리 대장을 볼 줄 알아요?
아수수가 전음으로 물었다.
―그런 건 기본이죠.
―그이는 그런 것에는 문외한이었어요.
―그건 기억을 잃은 동안 배운 거라고 하면 되잖습니까.
―그런데 왜…….
―사내와 한 단체의 수장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아세요?
―설마 돈은 아니겠죠?
돈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물었다.
―맞습니다. 돈입니다. 지갑이 빈 사내는 절대 어깨에 힘을 줄 수 없습니다. 단체의 수장도 마찬가집니다. 물론 어떤 이는 돈보다는 존경심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존경심은 조직을 만드는 데까지만 있으면 됩니다. 만든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합니다. 돈이 없는 지휘관은 절대 조직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존경심도 배가 불러야 가질 수 있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그들이 말을 들을 거라 생각하세요?
―절이 싫은 중은 떠나면 됩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아무튼 당신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됩니다.
―굿은 뭐고 떡은 뭐죠?
―굿은 무당이 제물을 신께 바치고 노래와 춤으로 인간의 운명을 조절해 달라고 비는 의식을 말합니다. 떡은 곡물 가루를 삶거나 찐 뒤 모양을 빚어 먹는 음식을 말하고요. 조선에서는 그 떡을 조상께 지내는 제사상에도 올리고 굿을 할 때 굿상에도 올립니다.
―그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말은 쓸데없이 끼어들지 말라는 뜻이네요.
―형편을 보고 있다가 이익이나 취하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에도 다녀왔어요?
―늙으면 거기로 가서 살고 싶을 정도로 아주 멋진 곳입니다.
금장생은 빙그레 웃었다.
사업을 여러 번 말아먹었고 머문 기간도 짧았지만, 동영보다 좋은 추억이 훨씬 많은 곳이 조선이다.
조선에서 살고 싶다는 건 빈말이 아니었다.
아니, 조선에서 죽고 싶다는 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만일 죽을 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면 금장생은 절대적으로 조선을 택할 거라고 확신한다. 조선은 그만큼 그가 좋아하는 나라였다.
‘죽기 전에 한 번 더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금장생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그런 금장생을 아수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