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03화 (103/524)

황금가 (103)

“마가대魔家隊 대주 철웅鐵熊 거석입니다.”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사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마가대는 마왕 호위대로, 총 백 명으로 구성돼 있어요.

아수수의 전음이 들려왔다.

“반갑습니다.”

금장생은 손을 내밀었다.

“말 놓으십시오, 마왕.”

금장생이 공대를 하자 거석은 깜짝 놀라 허리를 숙였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제…….”

“저는 뇌웅腦熊 유공입니다.”

들어가자고 할 참이었는데 비쩍 마르고 키가 작은 사내가 거석 왼편으로 서며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기억을 잃었소.”

금장생은 사내를 보며 말했다.

유공은 다 작은데 머리만 다른 사람보다 컸다.

“군삽니다.”

“아! 그렇군요.”

군사라는 말에 금장생은 유공을 빤히 바라보았다.

체격은 볼품없지만 눈빛만큼은 살아 있었다. 하지만 머리가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버지를 잘 둔 덕분에 머리도 나쁘고 체력도 별로인데 군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누구신데요?”

“전 군사 천심뇌 유국사였어요.”

아수수가 대답했다.

“그럼 그분은?”

“돌아가셨습니다.”

유공이 대답했다.

“안됐군요. 이제 그만…….”

“저는 총관 어웅語熊 나박입니다.”

거석과 유공의 중간 정도 키를 가진 자가 거석의 오른편으로 나오며 자신을 소개했다.

“훗”

나박을 보는 순간 금장생은 가볍게 웃었다.

절로 웃음이 나올 정도로 나박의 얼굴은 순박해 보였다. 얼굴로만 보면 관리 감독하는 직책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제가 좀 웃기게 생겼지요?”

나박은 금장생을 빤히 바라보았다.

‘재미있는 얼굴이네.’

금장생은 내심 피식 웃었다.

나박의 눈빛은 욱하고 치밀어 오를 정도로 도발적이다. 그런데 눈에서 시야를 확대해 나가면 그런 감정은 눈 녹듯 사라진다.

변화무쌍한 얼굴을 가진 자가 나박이었다.

“머리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셨으니까 아무것도 모르실 테고,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나박은 앞장서 걸었다.

금장생은 아수수를 보았다.

“하루만 지내보면 성격을 파악할 수 있을 거예요.”

아수수는 웃으며 말했다.

거석, 유공, 나박은 왕부삼웅王府三熊이라 불린다. 세 사람 모두 삼십 대 중반의 나이다.

세 사람을 고용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적천영이다. 조금씩 모자란 듯 보이는 세 사람을 호위대 대주와 군사 그리고 총관에 등용한 것은 능력보다 신뢰를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세 사람을 보자 비로소 집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격들이 특이한 모양이군요.”

금장생이 말했다.

“저는 생김새를 제외하면 아주 평범한 사람입니다, 마왕.”

앞서가던 나박이 금장생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중입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나박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는 아수수의 말처럼 하루가 아니라 한 시진이면 가능했다.

나박은 어웅語熊이란 별호처럼 말 많은 곰이었다. 서천왕부 내부를 설명해 주는 동안 단 한 번도 입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금장생은 나박이 숨은 쉬면서 말을 하는지 확인까지 할 지경이었다.

“제 설명이…….”

말을 끝마친 나박은 금장생을 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욱!’

문득 나박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치밀었다.

금장생은 얼른 나박의 시선을 피하고는 얼굴을 두루 보았다. 그러자 그러쥐었던 주먹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너무 정확해서, 가 보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으로 완벽하게 그려집니다.”

사실이었다.

나박은 말이 많아서 나박이 아니었다. 그의 설명은 그림을 보고 있는 것처럼 정확하고 상세하기까지 했다.

처음 가는 길이라고 해도 나박의 설명을 듣고 난 후라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말은 안 놓으실 겁니까?”

나박이 물었다.

“나 군사에게 말을 절반으로 줄이라면 줄이겠습니까?”

“……알아서 하십시오. 하지만 부하에게 공대를 하면 체통이 서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반말을 해서 얻어지는 위신이라면 없는 게 낫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이제…….”

나박은 사 층 건물 입구에서 멈췄다.

금장생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문 위에 서천전西天殿이란 글이 새겨져 있었다. 이곳이 바로 마왕 적천영의 집이었다.

금장생은 안으로 들어섰다.

일 층은 대전과 몇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손님을 만나거나 간단한 회의를 열 때 사용하는 장소인 모양이었다. 책이 잔뜩 꽂힌 서가와 차를 마실 수 있는 탁자도 구비돼 있었다.

금장생은 이 층으로 올라갔다.

사방이 책이 가득 찬 서가로 채워져 있고, 한편에 기다란 탁자와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리고 창가에도 역시 탁자와 의자가 있었는데, 차를 마시는 곳이었다.

“여긴 집무실인가 보죠?”

금장생은 물었다.

“네.”

아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장생은 삼 층으로 올라갔다. 삼 층은 그와 아수수의 거처였다.

“우리 거처는 두 곳이에요. 일이 많을 때는 여기서 자고 그렇지 않을 때는 저기서 지내요.”

아수수는 창문 밖을 가리켰다.

서천전 뒤편에는 야트막한 언덕이 있었다. 언덕은 울창한 수림으로 채워져 있는데 그 수림 안쪽에 아담한 소축 하나가 그림처럼 서 있었다.

“너무 트인 곳에 있는 거 아닌가요?”

그림은 멋지긴 한데 누군가의 공격을 방어하기에는 취약해 보였다.

“진식을 구축하자는 제 말을 듣지 않은 건 당신이잖아요.”

“내가 그랬다고요?”

“네.”

“그래선 안 되죠.”

“진식을 구축할 건가요?”

“그래야지요.”

“진식에 대해서는 유공 군사가 많이 알고 있어요.”

“그 친구에게 시켜야겠군요.”

똑똑똑!

바로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금장생은 문으로 시선을 주며 말했다.

문이 열리고 나박이 시녀들과 함께 들어왔다. 시녀들 손에는 옷이 잔뜩 들려 있었다.

“뭡니까?”

“마왕의 귀환을 축하하는 연회가 한 시진 후에 열릴 예정입니다. 그때 두 분이 입고 가실 옷을 가져왔습니다. 이쪽으로 놓아 주십시오.”

나박은 시녀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네.”

시녀들은 옷을 내려놓았다.

차곡차곡 개켜져 어떤 옷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벌 다 금색이었다.

“저건 뭡니까?”

옷 옆에 놓인 관冠 두 개를 가리키며 물었다.

별다른 특색은 없었지만 황금으로 만든 걸 보면 왕관처럼 보였다.

“오래전에 황제께서 서천왕과 마마께 하사하신 왕관과 왕비관입니다.”

“그렇군요.”

“지금부터 마왕께서는 씻으실 거예요.”

아수수가 나박과 시녀들을 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나박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시녀들은 옷을 풀어 입기 편하게 속옷부터 늘어놓았다. 그리고 나박과 함께 방에서 나갔다.

“욕실은 저기예요.”

아수수는 왼편 문을 가리켰다.

―같이 해야 하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면 나박 일행을 내보낼 이유가 없기에 묻는 말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상공의 목욕 시중은 제가 들었어요. 감시자들도 그렇게 알고 있고요.

―벌써 감시자가 와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그럴 거예요.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욕실 앞으로 갔다. 거기서 옷을 벗고 갑옷을 풀었다.

“이것들은 따로 놔두고 싶습니다.”

금장생은 태극선의와 갑옷을 가리켰다.

“여기보다는 몽축에 두는 게 나아요.”

“몽축?”

“조금 전에 보았던 소축의 이름이에요.”

“몽축이란 이름은 당신이 지은 건가요?”

“네.”

아수수는 태극선의를 개어 갑옷과 함께 한편으로 두었다.

“아닙니다. 몽축보다는 여기가 나을 것 같습니다.”

“왜요?”

“집무 볼 때 그걸 입을 거거든요.”

“이건 불편할 것 같은데…….”

“그래도 그게 편합니다.”

“알았어요.”

아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금장생은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은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화려했다.

“이 정도는 해 놓고 살아야 제대로 살았다고 할 수 있는데…….”

금장생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건 돈을 쓰는 게 아니라 버리는 거야, 녀석아! 돈은 가만히 두고 바라볼 때 최고의 가치를 가지는 거야.”

문득 아버지 외침이 귓전을 때렸다.

“맞습니다, 아버지. 돈은 소비하는 게 아니라 관상용이지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십일월이라 그런 듯 물은 차가웠다.

금장생은 얼른 이화태양강을 펼쳤다. 곧 수증기가 피어오르면서 물이 데워졌다.

수증기가 내부를 채울 무렵, 문이 열리고 아수수가 들어왔다.

“머리 먼저 감고 면도해 드릴게요.”

아수수는 곧바로 금장생 앞으로 갔다. 그리고 바가지로 물을 퍼 머리에 끼얹었다.

조두로 거품을 내 머리에 끼얹은 후 천천히 비볐다. 거품이 풍성해지자 다시 물을 퍼 끼얹었다.

“저기로 가 앉으세요.”

머리를 다 감기고는 선반 아래쪽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의자는 다른 의자에 비해 등이 약간 더 넘어가 있었다.

금장생은 시키는 대로 했다.

그가 앉자 아수수는 조두로 거품을 내 턱과 뺨에 골고루 발랐다. 그런 다음 선반 위에 있는 작은 도를 집어 들고 금장생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았다.

―너무 선정적인 자세 아닙니까?

금장생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전음을 보냈다.

―감시자들이 뒤에 있어요. 제 몸을 가리면서 당신의 수염을 밀어 줄 수 있는 건 이 자세뿐이에요.

―이렇게까지 할 거면 차라리 없애 버리는 게 낫지 않나요?

―그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에요. 수백 번도 더 생각했고, 실행 직전까지 간 적도 있어요. 하지만…….

아수수는 전음을 보내면서 노련한 손길로 면도를 했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는 건가요?

―잃는 게 많은 정도가 아니라 마가는 둘로 나뉘어 전쟁을 하게 될 거예요. 그럼 가솔들은 줄을 잘못 섰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하게 되겠죠. 당신은 그런 상황이 오는 걸 원하지 않았어요.

―적지영, 적풍영, 적운영만 처리하고 싶어 했군요.

―맞아요. 그리고 가솔들의 반발도 없어야 하고, 형제를 죽였다는 비난도 들어서는 안 돼요. 그건 적지영 일행도 마찬가지고요.

―결정적인 한 방을 찾아야겠군요.

―아니면 외유했을 때를 노려 암살을 하고 다른 가문에 뒤집어씌우는 방법이 있고요. 그러니까 힘들더라도 협조 좀 해 주세요.

아수수는 몸을 더욱 밀착시켰다. 그 상태에서 금장생의 수염을 깎았다.

목욕은 반 시진을 넘어가고 있었다.

아수수가 씻을 때는 금장생이 감시자들의 시선을 차단했다. 물론 완전히 차단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고스란히 드러나는 건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제가 늘 당신과 함께 목욕을 한 이유를 알겠죠?

―네.

금장생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아래쪽 서랍에 수건이 있어요.”

목욕이 끝날 즈음 아수수는 목욕용품을 넣어 두는 장을 가리켰다.

금장생은 그곳으로 가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장포 형태의 커다란 수건이 들어 있었다.

금장생은 그 수건을 들고 아수수 앞으로 가 활짝 폈다. 그러자 아수수가 욕조 안에서 나왔다. 그녀의 몸이 완전히 드러난 순간 수건으로 감쌌다.

―잘하네요.

아수수는 싱긋 웃었다.

두 사람은 욕실에서 나왔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머리를 말렸다.

머리를 말릴 때는 가벼운 장풍을 이용했다. 머릿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약하게 장풍을 펼치면서 머리를 흔들자 금세 말랐다.

마지막으로 속옷과 겉옷을 입고 금색 장포를 걸쳤다.

장포는 비늘 문양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 문양 위로 용 두 마리가 승천하는 모습이 수놓여 있었다.

옷을 다 입고 머리를 묶은 후 왕관을 썼다.

“멋져요.”

아수수는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옷을 갖춰 입고 왕관까지 쓰자 의심 한 점 없는 남편 적천영이었다.

“오랜만에 입어서 그런지 어색합니다.”

아수수가 아니라 천장에 숨어 있는 감시자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이제 곧 익숙해질 거예요.”

아수수도 겉옷을 걸쳤다. 그녀의 옷에는 봉황이 수놓여 있었다.

똑똑똑!

옷을 다 입고 났을 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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