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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100화 (100/524)

황금가 (100)

그녀는 욕실 앞에서 서둘러 옷을 벗었다. 그리고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그는 욕조 밖으로 나와 온몸에 조두를 칠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수수가 문을 열고 들어왔으니 놀란 건 당연하다.

게다가 그녀는 알몸이었다.

아수수는 미인일 뿐 아니라 몸매도 엄청났다.

농염하다는 말의 정의를 확실하게 내려 주는 그런 몸이었다.

금장생은 아수수의 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정이 있어요.

아수수는 전음을 보내며 금장생 앞으로 갔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몸의 구석구석까지 모두 보였다.

―사정요?

금장생은 너무 놀라 몸을 가려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남편이 목욕할 때는 늘 등을 밀어 주었거든요. 상화도 그걸 알고요.

―그러니까 지금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상화인가요?

―네. 그리고 민망하니까 돌아앉으세요.

‘민망?’

금장생은 시선을 내렸다.

“끙!”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성기가 볼썽사납게 발기해 있었다.

‘전엔 안 이랬는데.’

그는 울상을 지었다.

삼호와 관계를 갖기 전에는 여자 알몸을 보아도 웬만해서는 발기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관계 이후 몸에 변화가 생긴 것 같았다.

―이건 제 의사와는 무관합니다.

변명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아수수의 몸매가 엄청나다고 생각했지만, 자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도 아니까 너무 무안해하지 마세요.

아수수는 금장생의 등을 문질렀다.

“아! 목욕하고 계셨군요. 식사는 두고 갈게요.”

금방 분위기 파악을 한 상화는 음식이 놓여 있는 쟁반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서둘러 방을 나갔다.

“휴우!”

아수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째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 시작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하느냐에 달렸을 뿐 다른 건 문제가 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이왕 벗었으니까 제 몸도 봐 놓도록 하세요.”

“네?”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돌아앉으세요.”

“굳이 그럴 필요가…….”

“허점은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보인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이왕 남들을 속이기로 했으니까 완벽하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이런 건 내 취향이 아닌데.”

금장생은 어쩔 수 없이 돌아앉았다.

그와 아수수 사이의 거리는 두 자가 채 되지 않았다. 당연 아수수의 모든 것이 다 보일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로 알려 줄 건 그 사람의 성격이에요.”

“성격이라고요?”

“여기를 보세요.”

아수수는 손으로 자신의 하체를 가리켰다.

금장생의 시선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수수의 손을 따라갔다. 그녀의 아래는 매끈했다.

“선천적인 게 아니라 그 사람 때문에 이렇게 한 거예요.”

“제가 알기론 그런 사람은…….”

“변태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닌가요?”

“변태가 아니라 결벽증이에요.”

“음모를 제거하라고 할 정도면 중증 아닌가요?”

“몸에 나 있는 털을 싫어한 게 아니라 침대에 떨어져 있는 걸 견디지 못해요.”

“그럼 그분은?”

“물론 그이도 전부 밀었어요.”

“난 이 일을 그만두었으면 두었지 제모는 못 합니다.”

금장생은 두 손으로 자신의 하체를 감쌌다.

“기억을 잃은 사람이니까 괜찮을 거예요. 하지만 손은 자주 씻어야 할 거예요. 손을 자주 씻는 건 습관적인 거였으니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나는 사흘에 한 번씩 관계를 가졌어요.”

“무슨 뜻으로 그 말을 하는 겁니까?”

“그만큼 사이가 좋았다는 뜻이에요.”

“어색하게 행동하지 말라는 거군요.”

“네. 그리고…….”

아수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한 이야기들은 글로 적어 줄 수 없는 것들, 즉 성적 취향이나 남에게 말하기 거북한 특이한 습관 같은 것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적천영은 알몸으로 잠을 잔다는 거였다.

“부부 사이 일은 남들이 전혀 모르는데 굳이 그렇게 세세하게 알 필요 있을까요?”

다른 것도 아니고 부부 침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른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럼 알고 있단 말입니까?”

“우리 팔왕가의 시작은 중원과 조선, 동영의 왕국이에요. 여덟 왕국은 세상의 주인이 되기 위해 동맹을 맺었고, 각 왕들 중 한 명을 뽑아 팔왕이라 부르고 그에게 복종했어요.”

“팔왕이 되면 여덟 가문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거군요.”

“맞아요. 우리 마가가 대륙황가라는 거대 상단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팔왕의 직위 덕분이에요.”

“막강한 권력과 힘을 지닌 자리가 팔왕이란 말이군요.”

“과거보다는 못하지만 팔왕은 여전히 강자고, 각 가문의 왕은 팔왕이 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해요.”

“현 팔왕을 암살하기도 하나요?”

“네.”

“암살을 위한 첫 번째 단계가 바로 감신데.”

“그래서 아까 부부의 침실 생활을 안다고 했던 거예요. 왕위나 혹은 팔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천장에 감시자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야 할 때가 있어요.”

“왜죠?”

“그래야 암살이 시작됐을 때 대처할 수가 있거든요.”

“감시자가 보고 있는 데서…… 관계를 갖기도 하나요?”

“평소와 달라지면 감시자의 존재를 알아차렸다는 걸 뜻해요. 기존의 감시자는 철수할 테고, 새로운 감시자가 오게 돼요. 그럼 우린 그 새로운 감시자를 찾기 위해 고생을 해야 하고요.”

“그렇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목숨과 은밀한 생활의 노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목숨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아수수와 적천영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 같다.

“그이가 마가를 떠난 이유가 바로 감시자들 때문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떠난 게 오히려 허점을 보인 꼴이 되고 말았군요.”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나가도 될 것 같아요.”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몸을 일으켰다.

“시녀 상화나 호위대장 사마영은 믿을 수 있습니까?”

욕실에서 나가려던 금장생이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그래요.”

“마가에 대한 건 가면서 들어야겠군요.”

“네.”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밖으로 나갔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옷을 입었다. 상의와 하의를 걸치고 마지막으로 새로 고친 태극선의를 입었다.

그리고 아수수의 옷을 욕실 안으로 넣어 주고는 탁자 앞으로 갔다.

탁자에는 제법 먹을 만한 음식이 놓여 있었다.

차를 마시면서 아수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아수수가 나왔다.

“식사부터 하시죠.”

“네.”

아수수는 머리를 말리며 탁자 앞으로 왔다. 향긋한 냄새가 슬며시 풍겨 왔다.

두 사람은 바로 식사를 했다.

아수수는 남편에게 하듯 금장생에게 이것저것을 챙겨 주었다. 그리고 적천영의 식사 습관을 알려 주었다.

식사가 끝나고 차를 마시고 있는데 상화가 올라왔다.

“식사는 어땠어요?”

상화는 아수수를 보며 물었다.

“지난 일 년 동안 먹은 음식 중 최고였어.”

“저도 그랬어요.”

상화는 싱긋 웃더니 탁자를 치웠다.

그 후에도 금장생과 아수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 주제는 대부분이 적천영의 습관에 관한 것들이었다.

“마가魔家는 어디에 있습니까?”

“맞다, 그것도 말해 주지 않았네요. 마가는 섬서성 서안에 있어요.”

“서안이면 대륙황가가 있는 곳 아닌가요?”

“대륙황가와 같은 곳에 있기는 하지만 한 건물을 사용하는 건 아니에요. 혹시 서천왕부라고 들어 봤어요?”

“서천왕부요?”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서천왕부는 그도 들어 본 가문이다.

서천이란 도시 한복판에 들어선 서천왕부는 역사만 해도 수천 년에 이르고 수많은 학자를 배출한 유림 가문으로 더 유명하다. 설마 마가가 서천왕부로 위장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네.”

아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천에 사는 자들이 전부 서천왕부의 가솔은 아니겠죠?”

“아니에요. 그들 모두가 서천왕부 가솔이에요.”

“허!”

금장생은 어이없는 얼굴로 아수수를 보았다.

관심을 두지 않아 서천의 인구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이만 명은 될 것이다. 그런 엄청난 인원이 모두 가솔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인은 몇 명이나 됩니까?”

“이천오백 명 정도요.”

“그럼 나는 양민 이만 명을 다스리고 충성스러운 부하 이천오백 명을 거느린 왕이 되는 건가요?”

금장생은 헤벌쭉 웃었다.

“그들 중 상당수가 배신을 했으니까 그렇게 좋아할 것만은 아니죠.”

“굳이 그렇게 김빠지는 말을 해서 즐거운 환상을 깨트릴 필요는 없잖습니까.”

“현실을 직시해야지요.”

“그래도 그러는 거 아닙니다.”

“아무튼 각오 단단히 해야 할 거예요.”

“그들이 귀신만 아니라면 상관없습니다. 아니, 이젠 설사 귀신이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당신을 믿을게요.”

아수수는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실 마가를 구해 줄 구원자로 금장생을 선택하긴 했지만, 제대로 한 건지 확신이 없었다.

‘이미 시위를 놓아 버렸으니까…….’

화살은 쏘았고,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수밖에 없다.

“잘해 보자고요.”

금장생은 손을 내밀었다.

“행운을 비는 악순가요?”

아수수는 금장생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망루로 갔던 사마영이 돌아온 건 자정 무렵이었다. 보고를 받고 난 후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장생과 아수수 일행은 섬서성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일행이 섬서성 서안에 도착한 건 십일월 중순이었다.

선실에서 나온 일행을 가장 먼저 반겨 준 건 새하얀 눈이었다.

금장생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손톱 크기의 눈이 펑펑 쏟아졌다.

함박눈이었다.

“첫눈이 함박눈으로 내리면 행운의 징조랍니다.”

아수수가 말했다.

“내가 집으로 다시 돌아온 게 행운이잖습니까.”

금장생은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눈송이 몇 개가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원래는 바로 녹아야 하는데 눈은 원래 모습 그대로 있었다. 금장생이 빙극천월강을 살짝 끌어 올린 탓이었다.

그의 손바닥 위로 더 많은 눈송이가 쌓였다.

그는 손바닥을 가볍게 그러쥐었다.

스르륵!

그러자 손바닥 위에 있던 눈송이가 가루로 변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배가 정박한 선착장에 수백 명이 좌우로 도열해 있었다.

금장생은 아수수를 보았다.

“사마 대장이 연락을 한 모양이에요.”

“저 앞에 있는 자들은 오천장?”

금장생의 시선이 도열해 있는 자들 선두로 향했다.

무복을 입은 이들 다섯 명이 서 있었다.

“네.”

아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 셋이 내 누나와 형들인가 보군요.”

금장생의 시선이 가운데 서 있는 이남일녀에게로 향했다.

“맞아요. 그리고…….”

“나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는 거겠죠.”

“…….”

아수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갑시다.”

금장생은 앞장서 걸었다. 그 뒤를 아수수와 상화 그리고 사마영 일행이 따랐다.

“어서 오십시오, 마왕!”

“어서 오십시오, 마왕!”

금장생이 배에서 내리자 오천장을 비롯한 무인들은 일제히 허리를 꺾으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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