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99화 (99/524)

황금가 (99)

잠수

“마마!”

사마영이 아수수를 부축해 일으켰다.

“어디냐? 그분이 어디에 있느냐?”

아수수는 다그쳤다.

“대장간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앞장서지 않고 뭐 하고 있느냐?”

듣고 있던 사마영이 엄하게 소리쳤다.

“알겠습니다.”

대원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그 뒤를 아수수와 사마영, 시녀 상화 그리고 대원들이 따랐다.

“마왕이라고?”

발굴 작업을 지켜보던 음사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수수 일행은 몇 달 동안 적천영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적천영이 나타났다니.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일단 따라가 봐야겠네. 나도 다녀올게요.”

음사영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한 시진 반 동안 쉬지 않고 달려 일행이 도착한 곳은 낙하 근처에 있는 허름한 대장간 앞이었다.

그곳은 낙하에 형성된 빈민촌 바로 옆이었다.

천락賤落이라 부르는 이 마을에는 온갖 범죄자들이 득실거려 일반인은 물론이고 포졸들도 들어가기를 꺼린다.

대명률이 철저하게 무시되는 마을. 그곳이 바로 천락이다.

캉! 캉! 캉! 캉캉!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웃통을 벗어부친 채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망치를 내리칠 때마다 근육이 물결치고, 땀방울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힘들면 좀 쉬었다가 해라.”

주인인 듯한 노인이 사내를 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사내는 고개를 젓고는 다시 망치질에 열중했다.

‘맙소사.’

사마영의 입이 떡 벌어졌다.

산발한 머리와 텁수룩하게 긴 수염. 살이 빠져 날씬한 모습이지만 그가 아는 마왕이 분명했다.

아수수는 멍한 얼굴로 사내를 향해 걸어갔다.

사내는 아수수가 다가오는 걸 모르는 듯 망치질에 여념이 없었다. 그가 망치를 내리칠 때마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사, 상공!”

사내 앞으로 간 아수수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사내의 망치질이 멈췄다.

그는 아수수를 보았다.

“누구신지…….”

사내는 아수수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대장장이로 변장한 금장생이었다.

“네?”

아수수의 얼굴에 놀람의 빛이 가득했다.

사내로부터 그런 말을 듣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는 얼굴이었다.

“접니다, 상공.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아수수는 조금 힘주어 말했다.

“저는…….”

“철아는 자기 이름도 모릅니다. 그런데 뉘신지요?”

대장간 주인이 물었다.

“자기 이름도 모른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아수수는 되물었다.

“철아가 여기 온 건 한 달 전이었습니다. 저기 물가에 쓰러져 있었는데, 처음 구했을 땐 강물에 밀려온 시체인 줄 알고 묻어 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움직이지 뭡니까. 그래서 갈 곳도 없고 해서 데리고 있게 됐습니다.”

“한 달 만에 저렇게 망치질을 잘할 수 있습니까?”

사마영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적천영이 대장간에서 물건 만들기를 좋아했다는 건 그도 알고 있다. 이처럼 능숙하게 망치질을 하는 건 이상할 것도 없다.

하지만 확인은 해야 했다.

“글쎄, 그게 저도 신기합니다. 잡일이나 시키려고 했는데 느닷없이 망치를 잡지 뭡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나 보자 싶어 지켜보았는데 보시다시피 저렇게 잘하더군요. 기억을 잃기 전에 대장간 일을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기억을 잃어서 자기 이름을 모른다는 말입니까?”

사마영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동안 잡다한 이야기를 했는데, 한 달 전 강가에서 깨어나기 이전 기억은 없답니다. 자기 이름도 모르고요.”

“그럼 철아는…….”

“제가 지어 준 이름입니다.”

“그랬군요.”

그제야 사마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아수수는 노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왜……?”

“이분은 제 부군이십니다.”

“아! 그러셨군요. 어쩐지 행동거지가 양민 같지 않다고 여겼는데 고귀한 집안의 가장이셨군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수수의 행동만 보아도 어떤 집안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사례는 나중에 따로 하겠습니다.”

아수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사례는 무슨. 오히려 제가 일당을 줘야 하는데요. 부군을 찾으셨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노인은 안으로 들어가서 상의 한 벌과 보자기로 싼 물건을 가지고 나왔다.

“이거 입으십시오.”

대장간 주인은 금장생에게 공대를 했다.

부인이 찾아온 이상 이제는 기억을 잃고 천락으로 들어온 천한 일꾼이 아니었다.

“저분은…….”

금장생은 눈빛으로 아수수를 가리켰다.

“부인이랍니다.”

“제가 혼인을 했단 말입니까?”

“그렇답니다.”

“그럼 이제 제집으로 돌아가는 거군요.”

“당연히 그래야지요.”

“이제 막 정이 들었는데 섭섭합니다, 영감님.”

“우리가 헤어지는 것보다 가족을 만나서 저는 더 행복합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행운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금장생은 옷을 걸쳤다.

―멋져요.

아수수가 전음을 보냈다.

―들키지 않을 것 같은가요?

금장생은 전음으로 물었다.

―완벽해요. 나중에 경극단으로 들어가는 것도 생각해 보세요.

―다행이네요.

―그런데 요동으로 간다고 했던 건…….

―그 청부를 한 사람이 접니다.

―그럴 것 같았어요. 그리고 공자가 떠나고 또 다른 청부가 들어왔어요. 그런데 가짜 청부였어요.

―가짜 청부요?

―북망산에서 우리와 함께 당신을 지켜보던 자들 중 한 명이었어요.

―누군데요?

―몰라요.

―흠!

금장생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쪽으로 오세요.”

아수수는 금장생을 자기 옆으로 잡아당겼다. 그리고 사마영을 보며 말했다.

“망루에 가서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하고 와. 발굴 작업은 그만해도 된다고도 하고.”

“알겠습니다, 마마.”

“우린 천화 객잔에 있을게.”

“객잔으로 가시려면 돈이…….”

전에 금장생에게 모두 줘 버린 바람에 아수수는 지금 빈털터리였다. 그래서 하는 말이었다.

“이거면 충분할 거야.”

아수수는 끼고 있던 반지를 가리켰다. 그 반지는 적천영이 혼인 때 해 준 혼인 반지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사마영은 부하에게 아수수를 잘 모시라는 지시를 내리고 자리를 떴다.

“우리도 가자.”

아수수는 걸음을 옮겼다.

―경공을 펼쳐도 됩니다.

금장생이 아수수에게 전음을 보냈다.

―무공을 펼치려고요?

―다른 건 기억 못 하지만 몸으로 익힌 건 기억하는 걸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상화에게 전음을 보내서 저를 시험한다고 미리 말을 하세요.

―상화에게 말을 해 놓으면 마가의 다른 이들의 귀에도 자연스럽게 들어갈 거라고 보시나요?

―그럴 겁니다.

―알았어요.

아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곧 시녀 상화에게 전음을 보냈다.

―상화, 지금부터 경공을 펼칠 거야.

―네?

상화는 깜짝 놀라 아수수를 보았다.

―그이가 정확하게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

―무공을 펼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싶다는 거예요?

―응.

―알았어요.

상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공, 저를 따라오세요.”

아수수는 그렇게 말하고 신법을 펼쳤다. 상화와 호위들도 바로 신법을 펼쳤다.

그들은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금장생이 거의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몸을 날린 아수수는 비로소 멈췄다. 그리고 몸을 돌려 금장생을 기다렸다.

“아무래도 팔왕께서는 무공에 대한 기억도 잃은 모양이네요.”

상화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그런 모양이구나.”

아수수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제가 가서 모시고 오겠습니다.”

대원 중 한 명이 아수수 앞으로 오며 말했다.

“그렇게 해라.”

아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그때 상화가 전방을 가리켰다.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이편을 향해 몸을 날려 오고 있었다.

“마, 마신행이에요!”

상화가 감격한 얼굴로 소리쳤다.

약간은 어설퍼 보였지만 적천영의 무공 중 신법인 마신행이 분명했다.

“마왕께서 무공은 잊지 않으신 것 같아요!”

상화는 흥분한 얼굴로 소리쳤다.

잠시 후 금장생은 일행 곁으로 날아내렸다.

“내게 이런 능력이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그는 아수수를 보며 말했다.

“처음 펼치시는 겁니까?”

아수수가 물었다.

“전에는 지금처럼 달릴 일이 없어서 몰랐던 모양입니다.”

“마신행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상공께는 더 많은 능력이 숨어 있습니다. 그 능력은 거대해서, 산을 무너뜨릴 수도 있고 바다를 가를 수도 있습니다.”

“방금 내가 펼친 그것이 마신행입니까?”

“네.”

아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요. 그런데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이름요?”

아수수의 눈이 커졌다.

“남편이라는 자가 아내 이름도 모르고 있구려.”

“아! 죄송해요. 제가 미처 말씀을 못 드렸네요. 저는 아수수예요.”

“아수수…… 언젠가 들어 본 이름 같기도 하고……. 아무튼 좋은 이름이구려. 갑시다.”

“네.”

일행은 다시 몸을 날렸다.

몸을 날려 간 일행은 한 식경 후 객잔에 도착했다.

“이거 얼마나 받을 수 있죠?”

아수수는 반지를 뽑아 내밀며 물었다.

“그건 감정을 해 봐야 합니다.”

“먼저 방을 주고 그걸 팔아 주세요.”

―임자를 제대로 만나면 최소 이천 냥은 받는다는 걸 아니까 사기 칠 생각은 절대 하지 마세요.

“억!”

느닷없이 들려온 전음에 주인은 깜짝 놀랐다.

그는 전음을 보낸 자를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누가 보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급하게 파는 물건일 뿐 장물이 아니니까 잘만 받으면 천오백 냥까지 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만일 속임수를 쓰면 당신 목을 꺾어 버릴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죠?

“아, 알았습니다.”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소리죠?”

아수수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아, 아닙니다.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욕실과 화장실이 딸린 좋은 방으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일행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방은 총 네 개였다. 금장생과 아수수의 방은 삼 층이고 나머지 세 개는 이 층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아수수는 강기막을 쳤다.

“가장 가까운 상화도 의심하지 않는 걸 보면 일단은 성공한 것 같아요.”

아수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객잔 하인들이 물을 퍼 와 욕조와 여유분의 물통을 채웠다.

“물이 부족하면 말씀해 주십시오.”

물을 다 채우고 나자 하인은 그렇게 말하고 방을 나갔다.

“나는 먼저 씻겠습니다. 지금 온몸이 땀에 젖은 상태거든요.”

“그렇게 하세요.”

“참, 이것 좀 봐 주세요.”

금장생은 보자기를 아수수 앞 탁자 위에 놓았다.

“뭐죠?”

“전에 입던 건데 요즘 옷으로 고쳤습니다.”

“보물 같던데 고치는 게 가능해요?”

“옷을 잘 짓는 사람에게 가지고 가서 본을 뜨고, 자르는 것과 바느질은 제가 했습니다.”

“얼마나 잘했나 볼까요?”

아수수는 빙긋 웃으며 보자기를 풀었다.

그사이 금장생은 욕실로 들어갔다.

“어디 보자.”

아수수는 보자기 안을 살폈다.

금장생이 지니고 있던 법기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옷 또한 도복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약간은 유행이 지난 느낌이 났지만, 그렇다고 오래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암왕칠구가…… 귀신처럼 숨겼네.”

아수수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전에는 몇 가지가 외부로 드러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나와 있지 않았다.

아수수는 옷을 뒤져 법기를 찾아보았다.

“하아!”

아수수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옷을 고칠 때 잘라 낸 천을 주머니처럼 덧붙여 그 안에 법기를 집어넣었다.

그런데 덧붙인 것들이 주머니가 아니라 문양 형태를 이루고 있어 안에 뭔가가 들었다는 표시가 전혀 나지 않았다.

똑똑똑!

바로 그때 문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아수수는 얼른 보자기를 쌌다.

“저예요, 마마.”

“이런.”

상화 목소리가 들려오자 아수수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과거엔 남편이 목욕할 때 함께 들어가 등을 밀어 주곤 했다. 그런 상황을 몇 번 들켜 상화도 잘 안다.

그런데 일 년 만에 만난 남편이 욕실로 들어가 있는데 밖에 혼자 앉아 있다면 이상하게 볼 게 분명했다.

“식사 가져왔어요.”

“끙!”

아수수는 곧바로 욕실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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