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98)
“……!”
삼호는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래서 다시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돈’이라는 말을 확실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금장생의 고개를 자신 쪽으로 돌려 눈을 맞췄다.
금장생은 눈에서는 물론이고 얼굴에서도 농담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농담한 거 아니죠?”
“제가 농담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러고 보니…….”
문득 그동안 금장생이 보여 주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천객으로 활동한 건 이 년이다. 삼신회에서 삼 년을 머물렀지만 일 년은 자객술을 배웠기 때문에 이 년이라 봐야 한다.
그가 일호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자객술을 배웠던 일 년 때문이었다.
그곳에는 천객십관이라 불리는 관문이 있고, 일호가 들어가기 전까지 천객십관을 통과하는 가장 빠른 기록이 삼 년이었다.
설사 무공을 익힌 자가 들어간다고 해도 그 기간은 단축되지 않았다. 천객십관은 무공이 강하다고 해서 통과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장생은 그 천객십관을 단 육 개월 만에 통과했다. 천객십관이 만들어진 이후 가장 빠른 속도일 뿐 아니라 앞으로도 나올 수 없는 기록이기도 했다.
그가 일호가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고, 그런 그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다가 묘한 특성을 몇 가지 알아냈다.
그건 바로, 그는 절대 외식을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천객은 한 달에 두세 번씩 하루나 이틀 정도 휴가를 얻는다. 그럼 천객들은 밖으로 나가 술을 마시고 밥을 먹고 기녀들과 잔다.
하지만 그건 일호를 제외한 다른 천객들 이야기였다.
일호는 돈 주고 밥을 사 먹은 적도 없고, 사 준 적도 없으며, 얻어먹은 적도 없다. 문득 그 모든 게 돈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천객으로 있을 때 외식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게 돈이 아까워서 그랬던 거예요?”
“절대 아닙니다. 내가 나가서 밥을 사 먹지 않았던 건 맛이 없어서였습니다.”
“맙소사, 정말이군요.”
삼호의 눈이 커졌다.
“졸린다고 하지 않았나요? 안 졸리면 그만…….”
“아, 아니에요. 잘 거예요. 팔 하나만 빌려주면 금세 잠들 거예요.”
“팔?”
“거기 일없이 노는 팔 있잖아요.”
삼호는 금장생의 왼팔을 끌어다가 베개 삼아 베었다. 그리고 모로 누워 금장생의 가슴에 오른팔을 올리고 오른 다리는 금장생의 허벅지에 올렸다.
치마를 입은 상태에서 다리를 구부려 올리자 엉덩이가 드러날 정도로 치마가 말려 올라갔다.
그러자 금장생은 움찔 몸을 떨었다.
“여자와 잔 적 있어요?”
삼호는 문득 이 남자가 여자 경험이 있는지 궁금했다.
“다, 당연히 있죠.”
‘없네.’
삼호는 어이없는 얼굴로 피식 웃었다.
그녀 역시 사내 경험이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구 할 이상이 사내인 천객에서 생활하다 보니 사내들의 본성에 있어서는 거의 전문가 수준이 되었다.
방금 같은 질문을 하면 경험이 많은 자들은 ‘있기는 하지만 아직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지 못했다.’라고 대답하고, 경험이 적은 사내들은, 자신이 전문가라도 되는 것처럼 과장을 한다. 그리고 숫총각들은 대부분 금장생 같은 반응을 보인다.
경험이 있다고 말하는 목소리에는 약간의 창피함과 당혹스러운 기색이 뒤섞여 있다.
“어땠어요?”
삼호는 짓궂은 얼굴로 물었다.
“안 자요?”
“잘게요.”
삼호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을 청했다.
술 때문인 듯 그녀는 금세 잠이 들었다.
그녀가 잠들고 얼마 안 있어 금장생도 잠이 들었다.
그가 잠에서 깬 건 이상한 기분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꿈 때문이었다.
여자와 관계를 갖는 꿈을 꾸었는데, 그 상대는 다름 아닌 삼호였다.
‘자극적인 걸 너무 많이…… 응?’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눈을 뜨고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풍만한 가슴이었다. 삼호가 알몸으로 그의 허벅지를 깔고 앉은 채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또한 알몸이었다.
“이건…….”
“지금 말할게요.”
삼호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뭘 말입니까?”
“일호가 떠나기 며칠 전이었을 거예요. 우린 사소한 내기를 했고 내가 이겼어요. 그때 일호는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라고 했어요. 목숨을 달라는 거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요구는 다 들어주겠다고요.”
“그, 그건…….”
금장생은 할 말이 없었다.
분명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떠날 결심을 굳힌 상태였기에 한 약속이었다.
즉,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한 약속에 불과했다. 지킬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런데 삼호가 그 약속을 이행하라고 하는 것이다.
“괜찮죠?”
“굳이 그거 아니라도 내게는 좋은 게 아주 많은데. 무공 어때요. 삼백 년 전 무인인 야수마존과 태양마존, 빙마존, 풍마존의 무공이 있는데. 삼호에게는 빙마존의 빙극천월강이 맞을 것 같아요. 그걸 줄게요. 그러니까…….”
“지금 제가 원하는 건 이거예요.”
삼호는 손을 뻗어 금장생의 성기를 움켜쥐었다.
“헉!”
금장생은 신음을 내뱉었다.
삼호가 성기를 쥐자마자 빠른 속도로 경도를 높여 갔다. 그리고 곧 완벽하게 기립했다.
“나, 난…….”
“일호는 아무 걱정 말고 내게 맡겨요. 내가 다 알아서 할게요.”
삼호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그녀는 벅벅댔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그녀는 사내들과 많이 생활하다 보니 들은 게 많아 이론적으로만 거의 전문가 수준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금장생이 준비가 끝난 듯하자 그녀는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건 굳이 많은 경험이 없더라도, 그녀가 위에 있는 바람에 어렵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곧 완벽하게 하나가 되었다.
“힘들 줄 알았는데.”
삼호는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금장생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금장생의 상체가 세워지고 삼호의 가슴에 얼굴이 묻혔다. 거기에다 삼호는 금장생의 팔까지 잡아당겨 제 가슴을 쥐여 주었다. 그리고 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 알았죠?”
금장생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첫 경험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는 거칠게 삼호를 탐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곯아떨어졌다.
깊은 잠에 빠졌던 그가 깬 건 저녁 무렵이었다.
금장생은 옆을 보았다.
삼호가 보이지 않았다.
“갔나?”
그는 귀에 내공을 집중했다.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참!”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식으로 여자와 자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 열정이 숨어 있을 줄이야.”
삼호의 열정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대단했다.
관계를 몇 번 가졌는지조차도 기억나지 않았다. 삼호가 시키는 건 다 한 것 같았다.
옆에서도 안고 뒤에서도 안았다. 삼호는 그야말로 활활 타오르는 불덩어리였다.
“빙극천월강이 아니라 이화태양강이 더 어울리는 여자였네.”
그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거칠었던 관계의 흔적은 몸 군데군데 이빨 자국으로 남아 있었다.
“나도 이제…….”
금장생은 안쪽에 갑옷을 차고 옷을 입고 곤도를 챙겼다. 그리고 걸음을 옮겼다.
방에서 나가려는데 종이 하나가 눈에 띄었다. 금장생은 종이를 집어 들었다.
내 이름은 삼호가 아니고 나하려예요.
그리고 일호보다 장생이란 이름이 훨씬 어울려요.
“헉!”
금장생은 질겁했다.
머릿속에는 이름을 말한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만 말했으면 좋으련만.”
다시 삼호가 남긴 서찰로 시선을 주었다.
내가 두 살 더 많아요. 다음에 만나면 누나라고 해요.
“내가 완전 미쳤네.”
금장생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더 이상 볼 일은 없을 겁니다, 삼호. 그리고 연상은 절대 제 취향이 아닙니다, 절대!”
금장생은 진저리 치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도망치듯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선착장 근처는 건물 몇 개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선착장을 빠져나와 망루로 향했다.
망루는 그가 떠날 때와 같았다.
그의 침대에서는 아수수가 자고 있었다. 금장생이 들어서자 곧바로 일어났다.
“갔던 일은 잘됐나요?”
아수수는 금장생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제 일을 도와줄 준비가 됐겠군요.”
“먼저 두어 가지 처리할 일이 있습니다.”
“제가 알면 안 되는 일인가요?”
“장상문과 천당사를 통합하는 일입니다.”
“사업을 확장하는 건가요?”
“네.”
“제가 도와줄 일은…….”
“없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준 무공은 얼마나 익혔나요?”
“이제 시작이잖습니까.”
“다른 건 몰라도 유마환용대법은 완벽하게 익혀야 해요.”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분의 취미가 쇠로 뭔가를 만드는 거라고 하였습니까?”
“네.”
“저도 만드는 걸 좋아합니다.”
“이건 그분의 성격과 습관을 적은 거예요. 익혀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알았습니다.”
“나는 연공관으로 갈게요.”
“그렇게 하세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수수는 곧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연공관은 전에 금장생이 강시를 제강하던 지하실이었다.
금장생은 곧바로 침대로 들어갔다.
실컷 자고 와서 그런 건지 아니면 첫 경험 때문인지,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자꾸만 나하려의 알몸이 아른거렸다.
“이래서 여자와 안 자려고 했던 건데.”
금장생은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렇게 밤을 지새운 그는 날이 밝자마자 곧바로 장상문을 방문했다. 그리고 장운보를 만났다.
장운보는 장상문의 삼인자였다.
“전 총관의 장례는 잘 지냈습니까?”
찻잔을 받아 든 금장생은 물었다. 오기 전 천야로부터 전욱이 살해됐다는 말을 들었다.
“네.”
장운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전 총관으로부터 들은 거 없습니까?”
“문주께 일이 생겼다는 말은 들었는데…….”
“전부 들었으면 좀 편했을 텐데, 못 들었다니까 말해 드리겠습니다.”
금장생은 이추혼의 죽음과 그가 남긴 것들을 보여 주고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저보고 문주가 되라는 겁니까?”
제안을 듣고 난 장운보가 물었다.
“문주이긴 하지만 권리는 삼 할뿐입니다. 그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삼 할이라는 건 무슨 뜻입니까?”
“이익금의 삼 할이 장 문주 몫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제게 삼 할이나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돈을 많이 벌면 많이 받고 적게 벌면 적게 받는 아주 공평한 거래라고 생각됩니다만.”
“혹시 전 총관에게도 같은 제안을 하셨습니까?”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 총관은……?”
“전 총관의 죽음과 나는 무관합니다. 아무튼 죽은 사람 이야기는 그만하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싫다면…….”
“하, 하겠습니다.”
장운보는 얼른 대답했다.
“내일 망루와 와서 업무 보고를 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
“전욱 총관에게도 말했는데…… 무림 문파가 아니니까 회장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내일까지 업무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장운보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내일 봅시다, 장 문주.”
“벌써 가시겠습니까?”
“천당사도 들러야 해서요.”
“아!”
장운보는 탄성을 내뱉었다.
금장생은 곧바로 장상문을 나섰다. 대문 밖에서는 천야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은…….”
“잘됐습니다.”
“인정한 모양이군요.”
“이건 내 생각인데, 전욱의 죽음이 내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회장님의 제안을 따르지 않으면 자기도 전욱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군요.”
“그런 모양입니다.”
“그럼 천당사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오겠군요.”
“그렇겠지요.”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천야의 말대로였다. 천당사 총관 양익은 다음날 장운보와 함께 망루와 와서 업무보고를 했다.
“드디어 회장이 됐네.”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장상문이나 천당사는 작은 사업체에 불과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거느린 업체는 점점 늘어날 테고, 진정한 회장님이 될 것이다.
“일이 들어왔습니다, 회장님.”
천야가 일거리를 가지고 온 건 장상문과 천당사를 인수하고 보름 후였다.
“얼마짜립니까?”
“총 사천 냥이고, 선불로 이천 냥을 받았습니다.”
“어딥니까?”
“요동입니다.”
“먼 곳이네요.”
“내키지 않으면 가지 않아도 됩니다.”
“장사꾼이 그래서는 안 되지요. 준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천야는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다음 날 금장생은 천야가 챙겨 준 준비물을 가지고 길을 떠났다.
금장생이 떠났지만 아수수와 음사영은 여전히 망루에 남았다. 시체 확인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는 상황이라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도대체…….”
아수수는 애가 탔다.
금장생이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런데 소식이 오지 않았다.
이러다가 정말로 남편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면 모든 계획이 물거품으로 변하고 만다.
“제발!”
아수수는 두 손 모아 빌었다.
하지만 금장생에게서는 소식이 없었다.
다시 열흘이 더 지났다. 그때까지 아수수가 확인한 무덤은 총 쉰 기였다.
“마마! 마마!”
대원 중 한 명이 아수수를 부르며 전력으로 달려왔다.
아수수 앞으로 내려선 대원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무슨 일이냐?”
아수수는 물었다.
그 대원은 생필품을 사기 위해 낙양 시장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차, 찾았습니다.”
“뭘 찾았단 말이냐?”
“그, 그분, 마왕을 보았습니다.”
“지, 지금 뭐라고 했느냐?”
아수수는 대원 앞으로 바싹 다가섰다.
“마, 마왕을 보았단 말입니다.”
“저,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분명 마왕이셨습니다.”
“오! 하늘이시여!”
아수수는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주르르!
주저앉은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