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96화 (96/524)

황금가 (96)

그때 금장생은 한창 삼호의 혈도를 확인 중이었다.

“헉!”

느닷없이 진득한 살기가 뒤편에서 다가오자 금장생은 질겁했다.

살기를 흘리며 다가오는 자가 이호라는 건 바로 알아차렸다.

그가 이호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몸을 옆으로 굴리는 나려타곤 수법뿐이었다. 그것도 완전하게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삼호가 이호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고 만다. 더구나 삼호는 혈도까지 제압당한 상태.

‘외통수에 당했군.’

금장생은 전 내공을 등으로 보냈다.

턱!

그 순간 삼호의 왼손이 금장생의 오른손 손목을 잡았다. 금장생의 손은 여전히 삼호의 은밀한 곳에 머물러 있는 상태였다.

삼호는 금장생의 팔을 잡아당기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퍼억!

바로 그때 이호의 공격이 금장생의 등판에 작렬했다.

“커억!”

금장생의 입이 쩍 벌어지고 피가 넘어왔다.

그 피는 그대로 삼호의 가슴으로 쏟아졌다.

“헉!”

이번엔 이호가 질겁했다.

그는 자신의 일 장이면 금장생의 등판을 가루로 만들어 버릴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금장생의 등판은 멀쩡했다.

“설마…… 허억!”

이호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느닷없이 진득한 살기가 쏘아져 왔다. 그건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푹!

몸을 날리려는 순간 섬뜩한 느낌이 심장에서 감지되었다.

“커억!”

그는 고개를 숙였다.

심장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그는 멍한 얼굴로 삼호를 보았다.

“회음혈 혈도를 풀었거든.”

“죽일!”

쿠웅!

이호가 앞으로 처박혔다.

“괜찮아요?”

삼호는 금장생을 보았다.

“이 정도야 뭐…… 우엑!”

금장생은 또다시 피를 토했다.

서둘러 방어를 했지만 완벽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니, 완벽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호는 금장생의 등판이 가루로 변할 거라 확신까지 했다.

그런 자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 낸 상황에서 이 정도로 끝난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일단 몸부터 추슬러야 할 것 같아요. 그 갑옷, 벗을 수 있어요?”

삼호는 갑옷을 가리키며 물었다.

“갑옷은 왜……?”

“싸움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내가 일흔 명을 넘게 없앴는데?”

“일호를 잡으러 온 대원은 우리를 제외하고도 백 명이에요. 내가 아는 수만 그래요.”

“혹시 그들 중에 화객도 포함돼 있나요?”

“불속에서도 생활이 가능하다는 그 전설의 화객을 말하는 건가요?”

“네.”

“아뇨.”

“그럼 그들은 별개군요. 여기서 없앤 묵객도 그렇고요.”

“묵객도 왔나요?”

“이 건물에서 내게 죽은 묵객의 수는 열다섯 명입니다.”

“그럼 얼마나 많은 자들이 왔는지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거네요?”

“화루에서 이곳으로 옮긴 것 같던데, 천객 모두가 알고 있나요?”

“모르는 자들이 더 많을 거예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들킬 거란 거군요.”

“그럴 거예요.”

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회복할 때까지 숨을 곳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겠네요.”

“정확하게 몸 상태가 어때요?”

“공력은 이 할 정도 사용 가능합니다.”

“이 할이면 무공을 잃은 거나 다름없는 상태잖아요.”

이 할의 공력으로는 무기를 휘둘러 초식을 펼치는 건 불가능하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보법으로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게 전부다.

그런 몸으로 싸우는 건 불가능하다.

“도망칠 수는 있겠죠.”

“만일 묵객이나 화객이 아직 남아 있다면 도망치는 것도 힘들 거예요.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는 여기예요.”

“좋습니다. 그럼 바로 운기행공을 시작하겠습니다.”

금장생은 가부좌를 했다.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어요.”

“뭔데요?”

“추궁과혈요.”

“추궁과혈로 나를 치료하겠다는 말입니까?”

추궁과혈은 혈도에 충격을 가해 잠력과 잠재력을 끌어 올려 몸을 치료하는 고도의 수법 중 하나다.

치료 효과가 좋기는 하지만 치료하는 사람의 진력 소모가 아주 심해서 함부로 시전하지 않는 치료술이기도 하다. 그 수법을 삼호가 펼치겠다는 것이다.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치료법이 추궁과혈이에요.”

“하지만 추궁과혈이 끝나고 나면 소저는 거의 인사불성이 되겠죠.”

“하지만 목숨은 건질 수 있죠.”

“그렇지만…….”

“찾아라!”

“이곳 어딘가에 있다, 찾아라!”

살기 어린 외침이 근처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나 혼자 저들을 전부 상대할 수는 없어요. 우리 둘 다 사는 방법은 일호가 몸을 회복하는 것뿐이에요.”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갑옷에 손바닥을 대고 갑옷을 벗겠다는 의미를 지닌 주문을 읊었다.

스르르!

마치 거짓말처럼 갑옷이 줄어들더니 방패 모양이 되었다.

“신기한 물건이네요.”

삼호는 놀란 얼굴로 방패 형태로 변한 갑옷을 바라보았다. 특이한 물건을 많이 보았지만 그런 갑옷은 난생처음이었다.

금장생은 갑옷 끈을 풀었다.

“진짜 얼굴?”

삼호는 금장생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천객은 하루 종일 복면을 쓰고 생활한다. 간혹 복면을 벗기도 하지만 복면 속 얼굴 또한 진짜인지 인피면구를 쓰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금장생도 일호로 생활할 때의 얼굴과 지금 얼굴이 달랐다.

“나는 그 사람 친굽니다.”

금장생은 말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애써 변명을 했다.

“그렇게 믿어 줄게요. 그리고 그것도 벗으세요.”

삼호는 빙그레 웃으며 하의 속옷을 가리켰다.

‘헉!’

금장생은 내심 신음을 흘렸다.

삼호가 미소를 짓자 평범했던 얼굴이 사라지고 요염함의 극치를 달리는 화려한 얼굴이 나타난 것이다. 마치 극한의 색공을 익힌 것 같은 얼굴이었다.

잠잠해졌던 심장박동 수가 빨라지며 피가 아래로 쏠렸다.

“이건…….”

“속옷 안쪽에도 혈도가 있는 걸로 알아요. 그리고 추궁과혈은 혈도를 빠짐없이 전부 짚어야 최고의 효과가 나오고요.”

“끙!”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하의 속옷을 벗었다.

결국 그는 삼호 앞에 알몸으로 누울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공평해졌네요.”

삼호는 금장생의 하체로 시선을 주며 말했다. 금장생의 하체는 한껏 발기한 상태였다.

“뭐가 공평해졌다는 거죠?”

“그래서는 안 되는데, 일호가 해혈을 할 때 야릇한 기분을 느꼈거든요. 그리고 알몸이고요.”

“지금 그런 말 할 때가…….”

“알았어요. 바로 시작할게요.”

삼호는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곧바로 추궁과혈을 시작했다.

그녀가 금장생에게 시전하는 치료법은 말로는 추궁과혈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만심혈타萬心血打라는 빼어난 비술이었다.

만심혈타는 추궁과혈보다 몇 배 뛰어난 효과를 지녔지만 시전하는 자가 완전히 탈진하고 마는 위험한 치료법이기도 했다.

그녀의 손은 금장생의 혈도를 누볐다.

가볍게 치는 것 같지만 한 번 칠 때마다 그녀의 진력이 금장생의 혈도로 스며들어 갔다.

그녀의 손길은 거침없었다. 발기한 성기를 잡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혈도를 때렸다.

만심혈타를 절반도 시전하지 않아 삼호의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리고 곧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을 금장생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땀으로 흠뻑 젖어 몸이 번들번들해지면서 훨씬 선정적인 모습이 되었지만 이상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껏 발기했던 성기도 금세 풀숲으로 드러누웠다.

“단순한 추궁과혈이 아니군요.”

금장생은 말했다.

보통의 추궁과혈이라면 저렇게 힘들어할 리가 없을 터였다. 그리고 내상이 치료되고 있다는 게 바로 느껴졌다.

“아는 게 이것뿐이거든요.”

삼호는 말도 간신히 했다.

“힘들면 그만해도 돼요.”

“건물을 수색해라!”

“이호가 보이지 않는다!”

건물 바로 앞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삼호의 동작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같은 속도, 같은 힘으로 만심혈타를 펼쳤다.

쿵쿵쿵! 쿵쿵쿵!

위에서 바쁘게 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삼호는 금장생의 등을 치료하고 있었다. 그녀는 위를 흘끔거리며 계속 치료술을 펼쳤다.

어느새 만심혈타는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삼호의 몸은 물먹은 솜처럼 늘어졌다.

사실 그녀의 몸도 좋지 않았다. 이틀 동안 마혈을 제압당한 채로 방치됐던 터라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력을 다해 만심혈타를 펼쳤다. 내상을 입은 건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입가로 피를 흘리면서도 치료를 계속했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급기야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세 명이 아래로 내려왔다. 그들은 천객들이었다.

“앗!”

“엇!”

세 사람의 눈이 커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편에는 시체가 나뒹굴고 알몸의 남녀가 엉켜 있는 듯한 광경을 보게 됐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이내 시체가 자신들의 수장인 이호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알몸의 남녀가 뒤엉켜 있는 게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도.

“죽일!”

“죽여!”

“저런 죽일 년!”

이호의 심복들인 듯, 세 사람은 거친 욕설과 함께 몸을 날렸다.

탁! 탁탁! 탁탁탁!

그 상황에서도 삼호의 손은 쉬지 않았다. 그녀는 금장생의 혈도를 두드렸다.

“아!”

그녀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일각, 아니 반 각만 지나면 만심혈타가 끝난다. 그런데 시간이 없었다.

“계속하세요.”

금장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호는 금장생을 보았다.

적이 이편을 향해 몸을 날려 오는 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아주 편안해 보였다. 마치 죽음을 초월한 사람 같았다.

그녀는 다시 손을 움직였다.

“미친것들!”

“죽일 연놈들!”

죽음을 초월한 듯한 두 사람의 모습에 달려들던 자들은 더욱 흥분했다.

보통은 이런 경우를 당하면 나중에야 어찌 되건 일단은 몸을 피하고 본다.

그런데 두 사람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아니,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그런 모습에 더욱 화가 났다.

세 사람은 각자의 무기를 번쩍 들었다. 단 한 번에 끝내 버릴 참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금장생이 오른팔을 번쩍 들었다.

“늦었다, 놈!”

세 명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슉! 슉슉!

순간 붉은 광채 세 개가 악마수에서 튀어 나갔다.

“컥!”

“윽!”

“억!”

억눌린 비명이 세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몸을 날려 오던 세 사람은 금장생과 삼호 바로 옆으로 떨어졌다.

츄악! 츄악! 츄악!

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금장생과 삼호를 덮쳤다.

“그건 뭐죠?”

“되네.”

두 사람은 동시에 말했다.

“내공 없이는 사용이 불가능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되네요.”

금장생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금까지는 악마수를 펼칠 때 내공이 사용되었다. 그래서 불가능할 거라고 여겼다.

이번에 악마수를 펼친 건 어쩔 수 없는,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한 측면이 더 컸다. 그런데 심장에 형성된 원이 회전하면서 악마소를 펼칠 내공을 공급해 준 것이다.

여분의 단전이 생겨난 셈이었다.

“내공이 없는 상태에서도 펼치는 게 가능하다고요?”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처음 알았다는 건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럼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털썩!

삼호는 힘없이 금장생의 가슴으로 무너지듯 쓰러졌다. 긴장이 풀어지면서 온몸의 힘이 빠져 버린 거였다.

“아마도.”

금장생은 혼잣말처럼 말하며 삼호의 등을 쓰다듬었다.

삼호의 몸을 쓰다듬는 금장생의 손에서 달빛 광채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금장생은 알지 못했다. 그는 천천히 삼호의 등을 쓸기만 할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