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94)
“어떻게 됐지?”
이호는 보고하러 들어 온 십호에게 물었다.
그가 있는 이곳은 선착장 주변에서 유일하게 불이 붙지 않은 건물이었다.
“화루에 매복한 대원들은 전부 당했습니다.”
“오호는?”
“오호도 당했습니다. 그런데…….”
십호는 말끝을 흐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다.
“말해라.”
“일호로 보이는 자는 여섯 자에 달하는 장도를 무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도객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도수니까 일호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냐?”
“일호가 떠난 건 일 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 그런 도법을 익힌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네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일호가 아니라면 그자가 여긴 왜 온 거지?”
“그건…….”
십호는 말문이 막혔다.
이호의 말이 맞다. 일호가 아니라면 삼호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올 이유가 없다.
“그자가 도를 사용하건 검을 사용하건, 삼호를 구하기 위해서 왔다면 일호가 분명하다.”
“그렇군요.”
“그는 지금 어디 있느냐?”
“화루를 나와서 이동 중입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
“네.”
“그리고 지금 이곳에 동영 무인들이 들어왔다고 하던데, 그자들이 온 이유는 알아냈느냐?”
“뭔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찾는 물건은 뭔지 모른다는 거냐?”
“네.”
“일호를 그놈들에게로 유인할 수 있겠느냐?”
“쉽지는 않겠지만 해 보겠습니다.”
십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십호를 지켜보던 이호는 그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자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실에는 삼호가 팔다리가 묶인 채 쓰러져 있었다.
끌려 다니면서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듯 가슴은 절반가량 드러난 상태였다.
이호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는 삼호 앞으로 갔다. 그리고 가슴께를 말아 쥐고는 사정없이 젖혔다.
쫘악!
옷이 찢겨 나가며 가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이호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바지와 속옷을 찢어 버렸다.
순식간에 삼호는 알몸이 되었다.
“으음!”
이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삼호는 얼굴은 평범한 것보다 약간 나은 정도다. 그런데 몸매는 상상을 초월했다. 지금까지 만난 어떤 여자보다 더 뛰어난 몸매의 소유자였다.
피가 급격하게 아래로 쏠리는 게 느껴졌다.
이호는 삼호 앞으로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가슴을 그러쥐었다. 촉감도 최고였다.
“어흥!”
삼호는 괴성을 내질렀다.
아혈을 제압당해 가까스로 흘러나온 소리였지만, 그녀의 괴성에는 진득한 살기가 어려 있었다.
그런 삼호를 보며 이호는 빙긋 웃었다.
“일호를 제압하기 위한 미끼가 아니라면…….”
가슴을 떠난 그의 손이 배를 타고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은밀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삼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수치심으로 인해 삼호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가 왔다, 삼호.”
이호는 천천히 손을 움직이며 말했다.
순산 삼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이호를 노려보았다.
만일 눈빛으로 살인이 가능하다면 이호는 벌써 갈가리 찢겨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그녀의 눈빛은 차가웠다.
“가증스럽게도 그는 다른 자로 변장하고 있더구나. 커다란 도를 들고 갑옷을 입은 채 말이다.”
이호의 손은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너는 부정하겠지만 네가 일호를 좋아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네가 원하는 걸 들어주기로 했다. 너는 일호를 잡는 도중에 그에게 죽임을 당한 걸로 보고될 거다. 물론 일호도 죽을 테고. 그러니까 삼호 너는 네가 좋아했던 사람과 함께 저승으로 가게 된다는 거지. 어때, 마음에 들지?”
“어헝!”
삼호는 또다시 살기 가득한 괴성을 내질렀다.
“참! 이거 한 가지는 더 말해 주고 싶어. 네가 죽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네 조부 때문이라는 거 말이야.”
삼호의 눈이 커졌다.
“네 조부가 철마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이 바로 나야. 그리고 세 분은 철마가 딴마음을 품고 있다는 걸 걱정하고 계셔.”
‘그, 그러니까……?’
삼호는 내심 말했다.
“세 분께서는 철마가 마음을 다잡을 뭔가가 필요하시다고 여겼고, 손녀의 죽음이면 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
마혈이 제압당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삼호는 부르르 떨었다.
“나는 네가 사내 경험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호는 손을 빼냈다.
“일호하고 좋은 시간을 많이 보낸 모양이구나.”
이호는 싱긋 웃고는 바지를 벗기 위해 요대를 풀었다. 그는 삼호를 겁탈할 생각이었다.
“크악!”
“아악!”
“으아악!”
바로 그때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비명이 들려온 곳은 상당히 가까웠다. 이호는 계단과 삼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악!”
“끙!”
또다시 비명이 들려오자 풀었던 요대를 잠갔다.
그리고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르르!
이호가 나가자 삼호는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만일 여기서 살아 나간다면 반드시 네놈을 죽여 줄 것이다. 반드시.’
삼호는 원독에 찬 눈으로 전면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하던 일을 했다.
지금까지 그녀는 제압당한 혈도를 풀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고, 오 할 정도는 푼 상태였다.
다시 혈도를 풀기 위해 내부를 살폈다.
‘아!’
그녀의 얼굴이 절망감으로 물들었다.
조금 전 이호는 그녀의 은밀한 곳을 더듬는 걸로 끝나지 않았다. 그 순간에 회음혈을 제압해 놓은 것이었다.
오 할가량 풀었던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삼호는 눈을 감아 버렸다. 꼭 감은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한편.
위로 올라온 이호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가 싸우는 자들은 동영 무인 세 명이었다.
동영 무인들이 이 건물로 들어온 건 우연이었다.
불이 나지 않은 건물을 발견하고 숨어들어 왔다가 무인을 발견했다. 곧바로 기습을 하였고, 다섯 명을 없앨 수 있었다.
그런데 그자들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반격을 받아 두 명이 숨지고 세 명만 남은 상태였다.
콰앙!
“커억!”
또다시 동영 무인 한 명이 비명을 내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일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그는 곧 풀썩 쓰러졌다.
“동영 무인이 여긴 왜 온 거지?”
이호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유창한 동영어였다.
“우린 물건을 찾으러 왔다.”
동영 무인은 도를 오른편 어깨 앞으로 세우며 대답했다.
“너희가 찾는 물건은 우리에게 없다.”
“우리가 뭘 찾는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느냐?”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는 남의 물건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거다.”
“찾는 건 우리가 한다. 넌 죽어 주기만 하면 된다!”
파앗! 파앗!
동영 무인 두 명은 곧바로 바닥을 찼다. 두 사람은 전광석화처럼 달려들었다.
“흥!”
이호는 콧방귀와 함께 양손을 강하게 뿌렸다.
번쩍!
허공에 붉은 선 두 개가 나타났다. 그 선은 엄청난 속도로 동영 무인을 향해 쏘아졌다.
“어?”
푹! 풋!
동영 무인의 눈이 커지는 순간 붉은 선은 어느새 두 사람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두 동영 무인은 멍한 얼굴로 이호를 보았다.
“혈선血線이라고 해.”
이호는 나직하게 말했다.
“어울리는군.”
두 동영 무인의 몸이 통나무처럼 쓰러졌다.
“내 생각도 그래.”
이호는 뒤편 의자로 가 앉았다.
의자 앞 탁자에는 삼호를 보기 위해 지하실로 내려가기 전에 타 두었던 차가 놓여 있었다. 그는 찻잔을 들었다.
차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주위가 뜨거우니까 차는 식었어도 상관없겠지.”
그는 차를 홀짝 마셨다.
스악!
거대한 도가 허공을 갈랐다.
대기를 자르며 다가든 도는 가로막는 장애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곧 모습을 드러냈다.
장애물을 통과한 곤도의 도 면에는 붉은 액체가 잔뜩 묻어 있었다.
“크윽!”
비명과 함께 천객 대원 한 명이 풀썩 쓰러졌다.
쓰러진 천객 대원의 몸통에는 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휙!
금장생은 전면을 향해 있던 곤도에서 힘을 풀었다. 그러자 곤도의 앞부분이 지면을 향해 떨어졌다.
곤도 끝이 지면에 닿기 직전 손을 역수로 바꿨다. 그리고 왼편 옆구리 뒤편으로 찔러 넣었다.
푸욱!
곤도의 끝은 뒤에서 달려들던 자의 명치를 뚫고 들어갔다.
“크아악!”
처절한 비명을 들으며 손목을 틀어 뽑았다.
뽑는 힘을 이용해 곤도를 똑바로 잡고 오른편으로 쓸어 갔다.
슈캉! 슈캉!
무기 두 자루가 잘려 나가고, 곧 무기 주인들의 몸통도 잘렸다.
“아악!”
“으악!”
비명을 들으며 몸을 날렸다. 그리고 전방을 향해 혈랑도법 일 초 혈랑파를 펼쳤다.
“아악!”
“으아악!”
“크아악!”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들려왔다.
금장생은 걸음을 옮겼다. 극한까지 끌어 올린 천리비적공으로 삼호의 냄새를 쫓았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가 없앤 자들도 스무 명이 넘었다. 그렇게 죽임을 당하면서도 천객들은 계속 달려들었다.
‘천객의 임무는 오직 죽음으로만 멈춘다.’라는 율법 때문이었다.
“내가 거기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뭐냐면 바로 그 폐쇄적인 조직 문화 때문이었어. 그리고 조직을 위해서라면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죽이는 잔인함 때문이었고.”
파앗!
금장생의 신형이 왼편으로 폭사되었다.
그의 전신에서 가공할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곤도가 허공을 갈랐다.
차앙!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불길 속에 숨어 있던 천객 한 명이 물러났다.
방금 금장생의 공격을 받은 자는 십호였다.
두 사람은 이 장 거리를 두고 마주 보며 섰다.
“일호 맞소?”
십호는 물었다.
“그게 중요한가?”
금장생은 되물었다.
“중요한 건 아니오. 다만 정체가 궁금할 뿐이오.”
“만일 내가 일호가 맞다면 상황이 달라질까?”
“……그렇진 않을 거요.”
십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겠지.”
금장생은 자세를 잡았다.
“일호는 우리의 정신적 지주였소.”
십호는 무기를 그러쥐었다.
‘어린아이를 없애라는 명령만 내리지 않았다면 나도 그곳에 남아 있었을 거다. 아니, 한 번으로 끝났다면. 하지만…….’
파앗!
바로 그 순간 십호가 먼저 몸을 날렸다.
무기와 완벽하게 하나가 된 그는 금장생과 이 장을 남겨 둔 지점에서 왼손을 휘둘렀다.
슉! 슉슉! 슉!
네 개의 암기가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다.
“하아!”
그리고 전 내공을 무기로 밀어 넣었다.
금장생이 암기를 막는 순간 나타나는 허점을 향해 무기를 쑤셔 박을 참이었다.
그의 무기는 가늘고 긴 송곳 형태로, 길이는 이 척이었다.
암기가 격중하려는 순간 금장생은 곤도를 쭉 내뻗었다.
“헉!”
십호의 눈이 커졌다. 금장생이 암기를 도외시하고 반격을 해 온 거였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놓았다.
그가 던진 암기는 무림삼대암기에는 들지 못하지만 금강불괴지신을 파괴할 정도로 강하기 때문이었다.
퍽! 퍽퍽!
십호의 예상대로 암기는 금장생이 입고 있는 갑옷을 뚫었다.
하지만 그걸로 금장생을 멈추게 하진 못했다.
금장생은 계속 몸을 날렸고, 곤도를 십호의 심장으로 박아 넣었다.
“커억!”
십호는 심장으로 파고든 곤도를 잡았다.
“우린 싸울 필요가 없는 사람들인데.”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하고는 곤도를 뽑았다.
“그러게 말이오.”
털썩!
십호의 신형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댁들도 마찬가지고.”
금장생의 시선이 전면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동영 무인 스무 명이 늘어서 있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금장생은 곤도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