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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93화 (93/524)

황금가 (93)

“이런! 한번 찔러본 건데 바로 걸려들었네.”

“풋!”

오호는 피식 웃었다.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흥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흥분할 필욘 없어. 어차피 삼백 년 전에 일어난 일이고 나와는 상관없으니까.”

“그러게 말이오. 내가 너무 과민 반응한 것 같소.”

오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역천영면마진을 못 찾은 모양이지?”

만일 찾았다면 진 안쪽의 기록들을 그대로 남겨 두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하는 말이었다.

“혹시 영면의 숲을 발견한 거요?”

“영면의 숲?”

“역천영면마진이 설치된 공간을 ‘영면의 숲’이라고 부른다고 하였소.”

“어울리는 이름이네. 맞아. 우연히 그곳으로 들어가게 됐어.”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귀마존, 태양마존, 빙마존, 풍마존이 어떻게 됐는지 아시오?”

“조부가 그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나 보지?”

“역천영면마진에 대해 알고 있던 유일한 사람이 귀마존이었다고 하오.”

“아!”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거요?”

“응. 귀마존, 태양마존, 빙마존, 풍마존 모두 죽었더라고.”

“누가 그들을 죽였는지 아시오?”

“무혼.”

“무혼이라면?”

“마맹 맹주 철무황의 사생아 이름. 무혼 그는 자신이 맹주의 사생아라는 것도 모른 채 끌려왔어. 그러다가 무공을 익히는 도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됐고.”

“그자가 구마 중 네 명을 죽일 정도로 강자였다는 거요?”

“자세한 내막은 나도 몰라.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들이 전부 죽었다는 거야, 무혼에 의해서. 그리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냐.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삼호를 구하는 일이라는 거요?”

“맞아.”

“삼호를 구하고 난 다음에 어찌 될는지는 생각해 보았소?”

―내가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면 바로 공격을 시작해라.

오호는 말이 끝냄과 동시에 동료에게 전음을 보냈다.

―알았소.

“나는 삼호만 구하면 돼. 그리고 공식적으로 난 여기 오지 않은 걸로 보고될 거야.”

“공식적으로 오지 않은 걸로 보고된다는 건 무슨 뜻이오?”

“나를 감시하는 녀석은 내가 망루에 있었다고 보고한다는 거야.”

“그곳에 가짜를 세워 두었다는 거구려.”

“맞아.”

금장생의 신형이 오호를 향해 폭사되었다.

“나도 그동안 놀지 않았소, 일호.”

오호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차앗!”

순간 오호 옆에 있던 자가 몸을 날렸다.

오호는 동료 뒤를 따라 바로 몸을 날렸다.

번쩍!

몸을 날린 사내가 금장생 앞에 서자마자 곤도에서 푸른 광채가 쏟아졌다.

광채가 허공에 머문 건 촌각에 불과했다. 마치 잔상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쩍!

먼저 출수했던 자의 몸통이 상하로 분리되었다.

분리된 자의 몸통 사이로 무기 두 자루가 엇갈렸다. 오호의 연검과 금장생의 곤도였다.

푸욱!

살갗을 뚫고 들어가는 소리가 두 사람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먼저 몸통이 잘린 천객의 하체는 여전히 두 사람 사이에 서 있었다.

“이건…….”

오호는 고개를 숙였다.

날이 넓은 도 끝이 심장으로 파고들어 가 있었다.

분명 출수는 오호가 빨랐고, 금장생의 심장 앞에 다다르는 것도 더 빨랐다. 그런데 당한 건 오호였다.

“뭐요?”

오호는 고개를 들어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섬뢰閃雷.”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하고 곤도를 뽑았다.

“그분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요, 일호. 절대…….”

털썩!

오호와 하체만 남은 시체가 거의 동시에 쓰러졌다.

금장생은 두 명을 보았다.

“어쩌면…….”

금장생은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불길과 연기로 인해 발을 내딛지도 숨을 쉬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금장생은 빙극천월강을 조금 더 끌어 올렸다. 그러자 불길이 그의 몸 주변으로 접근하지 못했다.

그 상태에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건물을 지탱하고 있던 나무들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쿡!’

금장생은 내심 피식 웃었다.

불길 속에서 살기가 감지되었다.

‘화객火客이라는 자들인가 보네.’

화객은 불속에서도 활동이 가능한 자객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금장생은 천객의 수장인 일호였음에도 불구하고 화객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천객의 일부라는 말도 있었고, 다른 조직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리고 화객 말고도 우객雨客과 풍객風客이 있다고 하였다. 오직 소문으로 접했을 뿐인데 이곳에서 화객을 보게 된 것이다.

스윽! 스윽!

불길 속에서 움직여 다니는 자들의 기척이 감지되었다. 하지만 실체는 보이지 않았다.

문득 풍기는 기운이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 아!’

금장생의 얼굴이 밝아졌다.

언젠가 한번 겪어 본 기운 같았는데 이제야 생각났다.

화객이 뿜어내는 기운은 역천영면마진에서 싸웠던 화강시의 기운과 흡사했다. 극강한 양공을 익혔을 때 나타나는 기운과는 완전히 달랐다.

‘마맹이 완전하게 멸망하지 않은 게 맞나 보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아니라면 화강시와 비슷한 기운을 지닌 자들이 나타날 리가 없을 터였다.

“두고 보면 알겠지.”

금장생은 곤도 손잡이를 불끈 그러쥐었다.

화객의 공격이 시작된 건 반 각 후였다.

삼호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뒤지고 다니는데 위에서 공격을 해 왔다.

처음 접한 화객은 커다란 불덩어리처럼 보였다. 그래서 위에서 떨어지는 나무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랬던 불덩어리가 느닷없이 머리 위로 날아오는 거였다.

그제야 화객임을 알아차리고 곤도를 휘둘렀다.

곤도는 정확하게 화객의 몸통을 때렸다.

카앙!

“어?”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놀랍게도 화객이 곤도를 튕겨 버린 거였다. 어지간한 건 먹히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금장생은 양극신공을 바탕으로 한 이화태양강을 끌어 올렸다.

이화태양강보다 빙극천월강을 펼치는 게 더 나은 방법이긴 하지만 그렇게 되면 불이 꺼질 확률이 높고, 불이 꺼지면 자신이 드러나게 된다.

지금 상황에서 적의 표적이 되는 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차앗!”

기합과 함께 쏘아져 오는 불덩어리를 향해 곤도를 휘둘렀다.

곤도는 정확하게 불덩어리를 가격했다.

차앙!

불덩어리 속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슈캉! 퍼억!

그리고 뭔가가 잘려 나가는 소리와 때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크아악!”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오고 불덩어리가 화탄처럼 터졌다.

불길에 휩싸여 있던 자에게 가해진 이화태양강의 기운이 몸통을 가루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금장생의 신형이 불 속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그가 불길 속으로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 화객들이 달려들었다.

불길을 머금은 검 한 자루가 목을 향해 날아왔다. 금장생은 곤도를 몸 앞에 세웠다.

차앙!

강한 힘이 곤도를 타고 손목으로까지 전해져 왔다.

금장생은 곤도를 강하게 눌렀다. 상대는 온 힘을 다해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곤도는 곧 지면과 수평이 되었다. 상대의 무기는 여전히 곤도 아래에 붙은 채쳤다.

금장생은 그 상태에서 곤도를 횡으로 쓸었다.

슈캉!

곤도에서 불길이 일었다. 그리고 붉은 덩어리 하나가 둥실 떠올랐다.

금장생을 상대했던 화객의 머리였다.

하지만 떠오른 머리는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불꽃이 돼 산화했다.

파앗!

금장생은 바닥을 찼다.

그의 신형이 반 장가량 솟구치고, 발 아래로 불길을 머금은 무기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금장생은 힘을 풀고 뚝 떨어지며 곤도를 아래로 힘껏 찔러 넣었다.

푸욱!

곤도는 화객의 정수리를 파고 들어갔다.

퍼억!

이화태양강의 기운이 몸으로 파고들자 화객은 폭발했다.

휙!

금장생의 신형이 오른편으로 돌았다. 화객 두 명이 휘두른 무기가 그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금장생은 두 다리를 좌우로 벌려 자세를 낮춤과 동시에 상체를 뒤로 젖혔다. 등이 바닥에 거의 닿은 채라 팔과 곤도의 날도 땅에 닿았다.

그는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불길을 머금은 무기 두 자루가 지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기가 지나가면 그다음에 따라오는 건 무기의 주인들뿐이지.”

금장생은 곤도를 꽉 그러쥐었다. 그리고 들어 올림과 동시에 전면을 잘랐다.

퍼억!

둔탁한 소성과 함께 불길이 사방으로 튀었다.

일도에 두 동강이 난 화객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불꽃으로 변해 흩어졌다.

금장생은 상체를 세우고 좌우로 뻗었던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섰다. 그리고 곧바로 왼편으로 곤도를 휘둘렀다.

슈캉!

곤도는 화객의 무기와 몸통을 동시에 잘라 냈다.

“크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불꽃이 사방으로 날렸다.

금장생은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화객이 계속해서 공격해 왔지만 그의 곤도를 막아 내지 못하고 불길 속으로 흩어졌다.

내실로 들어간 금장생은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발견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계단 아래쪽은 아직 불길이 미치지 않았다. 다만 매캐한 연기가 들어차 있을 뿐이었다.

금장생은 내부를 살폈다. 기다란 의자와 탁자 하나가 전부였다.

바닥엔 누군가를 동여맨 듯한 동아줄이 나뒹굴고 있었다.

금장생은 동아줄 가까이 코를 가져다 댔다.

“네가 이걸 일부러 남긴 걸 알고 있다, 이호.”

금장생은 동아줄을 놓았다. 그리고 다시 위로 올라왔다.

조금 전보다 불길은 더욱 거칠어져 있었다.

금장생은 추격을 할 때 사용하는 천리비적공千里鼻跡功을 펼쳤다.

천리비적공은 천리지청술과 비슷한 개념으로 만들어졌는데, 소리가 아닌 냄새로 적을 찾아내는 무공이다.

천리비적공을 펼치자 후각이 극대화되었다.

그의 코로는 나무가 타면서 내뿜는 냄새, 시체가 타는 냄새, 누군가의 땀 냄새, 지분 냄새 등 근처에서 맡을 수 있는 모든 냄새가 다 감지되었다.

금장생은 필요 없는 냄새를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그리고 동아줄에 남아 있는 삼호의 냄새 하나만 남겼다.

“이젠 바람을 봐야 하겠지.”

금장생의 위를 올려보았다.

바람의 방향을 알지 못하면 냄새를 추적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저쪽이네.”

금장생의 시선이 왼편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타닥! 타다닥! 탁탁!

불길은 점점 더 거세졌다.

꿈틀!

오호의 손가락이 움직인 건 한참 후였다.

언뜻 보면 사후경직으로 인한 근육의 움직임처럼 보였다.

그 후로 한동안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꿈틀!

다시 움직인 건 반 각 후였다. 이번엔 손이었다.

손가락은 사후경직으로 인해 움직일 수 있다지만 손이 전부 움직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호에게서 일어나는 변화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번쩍!

감겨 있던 눈이 뜨였다.

그런데 그의 눈동자가 달랐다. 흰자위는 없어지고 전부가 검은색이었다.

“내가…….”

자신도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지 못한 듯 오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신의 손을 보았다.

“다시 살아난 건가?”

주먹을 쥐어 보았다. 손은 그의 의지대로 움직였다.

몇 번 폈다 오므렸다 하는 동작을 반복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실수한 것 같소, 일호. 심장을 찌를 게 아니라 목을 쳤어야 했소. 그랬더라면…….”

파앗!

오호는 바닥을 찼다. 그의 신형이 전방으로 쭉 튀어 나갔다.

“날 죽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오.”

오호의 말은 여운처럼 허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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