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91화 (91/524)

황금가 (91)

대장간을 나선 그는 선착장으로 향했다.

쉬지 않고 달리던 그가 멈춰 선 곳은 선착장 마을인 선암 입구의 언덕 위였다. 선암은 낙양에서 손에 꼽히는 유흥가 중 한 곳이었다.

선착장까지 널따란 길이 직선으로 나 있고, 길 좌우측으로는 주루가 다닥다닥 붙어 서 있다.

교차로는 전부 열 곳이고 교차로 좌우측에도 역시 주루가 있는데, 큰길가에 있는 주루보다 작은 규모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몸을 파는 여자들이 있는 청루가 있다.

높은 곳에서 보면 유흥가는 커다란 원을 그리고 있고 그 외곽으로는 부랑아와 떠돌이 그리고 유흥가에서 일하는 하류 인생들의 쉼터가 있다.

“이제……!”

금장생은 상의와 하의를 벗었다. 그리고 사아를 풀었다. 그러자 그의 몸에는 하의 속옷과 방패 모양의 갑옷만 남았다.

금장생은 손바닥을 방패 모양의 갑옷 가운데 붙이고 나직하게 ‘해제!’라고 외쳤다. 물론 그가 소리친 ‘해제’는 중원어가 아니었다.

스스스!

마치 촉수가 나아가는 것 같은 섬뜩한 느낌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방패에서 나오는 촉수는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차가웠다.

마침내 촉수는 머리까지 완벽하게 감쌌다.

그의 전신을 감싼 촉수는 조금씩 굳어지더니 갑옷으로 변했다.

금장생은 팔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갑옷을 입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움직임은 자유로웠다.

“거울이 있었으면 보고 싶네.”

그는 얼굴부터 천천히 더듬었다.

둥근 모양의 투구가 머리를 보호해 주고 있었다.

안면 가리개는 위아래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돼 있었다. 아마도 갑옷을 입은 상태로도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인 모양이었다.

투구 양쪽에는 새끼손가락 크기의 뿔이 돋아나 있었다.

뿔 끝은 둥글었다. 그다지 위협적이지도 않아 보이는 이런 뿔을 왜 달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투구 확인이 끝나자 고개를 숙여 다른 부분을 보았다.

가슴은 떡 벌어지고 배는 골이 져 있다. 몸의 굴곡에 맞춰 만들어진 게 분명했다.

“다행히 주머니는 있네.”

양쪽 옆구리와 허리 그리고 허벅지 바깥쪽에는 물건을 집어넣을 수 있는 주머니와 무기를 걸 수 있는 고리가 줄줄이 달려 있었다.

“나쁘지 않네.”

금장생은 먼저 곤도를 등에 맸다.

처음엔 보통 무인들이 매는 것처럼 왼편 어깨 위로 손잡이가 나오도록 사선으로 맸다.

그런데 도가 뽑히지 않았다.

굳이 뽑으려면 도갑과 함께 풀어 오른손으로는 도 손잡이를 잡고 왼손으로는 도갑 앞부분을 쥐고 양손을 좌우로 당기는 방법뿐이었다. 그렇게 해서는 등에 매는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선이 아닌 수직으로 세워 보았다.

도 끝은 무릎 아래까지 내려왔다.

끝에서 묶으면 무릎을 구부릴 수가 없어 걷기가 힘들다.

그래서 금장생은 도갑을 허벅지에 고정했다. 도갑은 한편이 열려 있기 때문에 손잡이를 잡고 왼편으로 밀기만 하면 바로 뽑힌다.

슥! 척! 슥! 척! 슥! 척! 슥! 척!

금장생은 익숙해질 때까지 곤도를 뺐다가 집어넣었다가를 반복했다.

연속해서 이십여 번을 연습하고 나자 이젠 눈을 감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금장생은 전면을 바라보았다.

“놈들을 찾아야겠지.”

스윽!

오른발을 내딛는 순간 그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어둠 속으로 녹아들어 간 것 같은 엄청난 은신술이었다.

* * *

“올까?”

“글쎄.”

두 사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금장생을 잡기 위해 나온 천객 일행 중 두 명이었다.

“그자가 올지 안 올지가 아니라 그자가 일호가 맞는지 그게 중요한 거 아닌가?”

“나는 일호라고 생각해.”

“왜?”

“이호가 그랬으니까.”

“그 장의사가 정말 일호라고?”

“아니라면 삼호를 미끼로 사용할 이유가 없잖아.”

“그렇지.”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윽!

두 사내 뒤편으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의 움직임이 워낙 은밀하여, 바로 뒤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내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삼호가 싫었어.”

뒤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난 걸 모르는 왼편 사내가 말했다.

“왜?”

“계집이잖아.”

“큭!”

오른편 사내가 피식 웃었다.

“무슨 뜻이지?”

“나는 삼호가 일호에게 상납을 했다고 생각해.”

“뭘 상납했다는 거지?”

“몸이지 뭐겠냐?”

“내가 아는 일호는 여자를 밝히는 사람이 아닌데?”

왼편 사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일호를 알고 지낸 건 이 년 남짓이었다. 그 이 년 동안 일호는 단 한 번도 여자와 얽힌 적이 없었다.

심지어 기루에 가서도 기녀와 자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 그였다.

“그건 네가 삼호를 몰라서 그래.”

“삼호를 몰라?”

“내가 전에 우연히 삼호가 목욕하는 걸 훔쳐보았는데…….”

“정말?”

왼편 사내의 눈이 커졌다.

“응.”

“어, 어땠는데?”

“화원루 유화 생각나?”

“당연히 알지. 중원 기녀들 중 가장 뛰어난 몸매를 지녔다고 했잖아.”

“그 유화도 삼호에 비하면 태양 앞에 반딧불이라고 보면 돼.”

“그 정도야?”

“삼호의 알몸을 보고 나서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니까.”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지.”

사내가 아는 한 그의 동료는 여자에 있어서는 무공보다 더 많이 아는 자였다. 그런 그가 최고라고 한다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몸매로 일호를 유혹했을 게 분명해. 일호도 사내인 이상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고.”

“그래서 일호가 다른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거구나.”

“아냐.”

“아니라고?”

“응! 나는 삼호와 자지 않았어. 내가 여자와 자지 않았던 건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야.”

“돈이라고…… 헉!”

사내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턱!

그 순간 강한 악력을 머금은 양손이 두 사내의 목을 그러쥐었다.

“커억!”

“컥!”

두 사내의 입에서 나직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

사내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목을 그러쥔 손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그가 아무 말도 못 한 건 입안을 가득 채운 강기 때문이었다. 입안에 들어찬 강기는 숨조차 쉬지 못하게 했다.

“나는 말이다, 여자와 자는 것보다, 잘 때 들어가는 돈을 모으는 게 천 배는 더 좋아.”

우두득! 우두득!

뼈 부러지는 소리가 동시에 흘러나왔다. 두 사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이어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갑옷으로 전신을 감싸고 기다란 도를 등에 건 금장생이었다.

금장생은 투구까지 쓰고 있어 얼굴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좌우를 살폈다. 그리고 시체를 잡초가 무성한 풀숲으로 던져 넣었다.

“열!”

나직한 목소리가 금장생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스윽!

그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잠겨 들었다.

척! 척척척! 척!

오십여 명이 선착장 입구에 나타났다. 동영인 복장을 한 그들은 전면을 응시했다.

“어떠냐?”

수뇌로 보이는 자가 나직하게 물었다.

“상당수의 중원 무인이 은신해 있습니다.”

“우리 물건을 훔쳐 간 자들이라고 생각하느냐?”

“오십만 냥이면 작은 돈이 아닙니다. 그 돈을 훔쳐 간 건달 두목은 평범한 돈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을 겁니다. 하지만 돌려주는 건 싫었을 겁니다.”

“그 돈으로 무인을 고용했을 거란 말이냐?”

“제가 건달이라면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렇겠지. 다섯 명씩 조를 짠다. 그리고…….”

수뇌는 말을 끊고 전방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말을 이었다.

“두목 한 놈만 남겨 두고 전부 죽인다!”

“하이!”

동영인들은 나직하게 소리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왔다.”

오호가 굳은 얼굴로 이호를 보며 말했다.

“누가 왔다는 거냐?”

이호가 물었다.

“대원 스무 명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는 건…….”

“죽인 자의 시체를 숨기는 건 일호만의 습관이다.”

“그러니까 이곳에 일호가 와 있다는 거냐?”

이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망루에 감시자를 두었다. 그리고 망루 주인이 자리를 뜨면 곧바로 이곳으로 와 보고하라고 명령을 내려 놓았다.

그런데 보고가 없었다. 그건 곧 망루 주인이 자리를 뜨지 않았다는 걸 뜻한다.

“살인 수법으로 봐서는 그렇다.”

“아무튼 왔다 이거지.”

이호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

망루 주인이 일호가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일호가 이곳에 나타났다는 게 중요하고, 이곳으로 왔다는 건 삼호에 대한 걸 알고 있다는 게 된다. 그럼 유리한 쪽은 자신이다.

“널 잡는다, 일호!”

이호는 벌떡 일어났다.

“크아악!”

“으아악!”

느닷없이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응?”

이호의 눈이 커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호 또한 놀란 눈으로 이호를 보았다.

지금처럼 크게 비명 소리가 나도록 살인을 하는 건 천객들의 수법이 아니었다. 더구나 살인자가 일호라면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

“크아악!”

“아아악!”

“으아아악!”

비명이 연이어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결국 이호는 크게 고함을 내질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

“무인 민간인 가리지 않고 무차별하게 공격하고 있습니다!”

“아악!”

“으악!”

“미치겠네.”

이호의 얼굴이 당혹스럽게 변했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당황한 사람은 이호뿐만이 아니었다.

선착장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익거성의 얼굴도 당혹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앞에는 먹물이라고 부르는 이치곤이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지금 살인을 저지르는 자들이 동영 무인들이라고?”

“네.”

이치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영인들이 왜?”

“관 쉰 개의 행방을 물었답니다.”

“관?”

“아무래도 우리가 장상문에서 본 그 관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치곤 일행이 관을 본 건 장상문 총관 전욱을 감시할 때였다.

한밤중에 들어온 관은 전부 오십여 개였다. 그 관을 사당으로 옮기는 걸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관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관보다는 전욱이 숨겨 두었을지도 모르는 돈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들이닥친 동영 무인들이 관을 내놓으라면서 무차별하게 살겁을 자행하고 있다.

“그 관…… 네가 치웠냐?”

익거성은 물었다.

“아닙니다.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맹세할 수 있습니다, 두목.”

이치곤은 크게 고개를 저었다.

“아아악!”

“으아악!”

“악!”

이제 여자 목소리까지 들려왔다. 기녀들마저 죽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지금 선착장에는 동영 무인들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럼?”

“그들보다 전에 무인들이 들어와 은신해 있었습니다.”

“몇 명이나 되는데?”

“일백 명 정돕니다.”

“무공 정도는?”

“우리 실력으로는 발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진짜 무인이란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우리가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보느냐?”

“포위된 것 같습니다.”

“현재로선 방법이 없다는 거네?”

“네.”

이치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워.”

“네?”

“불을 질러 버리라고.”

“그렇게 되면…….”

“살아 있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죽으면 그날로 끝이다, 먹물. 나는 그렇게 죽고 싶지 않다.”

“알겠습니다.”

이치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을 지르고 선착장의 청운호에서 만나자.”

청운호는 선착장 근처에 절반가량 가라앉아 있는 폐선이었다.

“살아서 가겠습니다.”

이치곤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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