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88화 (88/524)

황금가 (88)

“방금 삼호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무슨 말을 했다는 거냐? 이것 풀지 못해!”

삼호가 버럭 소리쳤다.

“우리 천객의 안위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지금 내 마혈을 누른 것과 천객의 안위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는 조금 전 장의사를 떠나면서 그자에게 전음을 보냈다.”

“전음?”

“이틀 후에 삼호 널 선착장 사창가에 넘긴다고 말이다.”

“저, 정말 그렇게 말했단 말이냐?”

삼호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랬다. 놈은 반드시 선착장으로 올 거다.”

“만일 오지 않으면…….”

“그놈은 반드시 온다. 아니, 일호는 반드시 선착장으로 온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삼호를 미끼로 쓰는 건 반대다.”

사호가 말했다.

“이건 반대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우린 일호를 생포하거나, 생포가 여의치 않을 때는 머리를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번 임무 또한 여타 임무와 다르지 않다.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다칠 수도 있고 혹은 죽을 수도 있다. 적을 잡기 위해 미끼가 되는 것도 임무 중의 하나일 뿐이다.”

“적의 미끼가 되는 건 강요가 아니라 지원이 전재되어야 한다, 이호! 당장…….”

창!

사호가 삼호의 혈도를 풀어 주려고 하자 이호는 검을 뽑았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사호.”

이호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삼호를 미끼로 쓸 거면 나도 죽여야 할 거다, 이호. 나는 이 작전에 절대 찬성할 수 없다.”

사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주르르!

검 끝이 그의 목을 파고들자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파고든 깊이가 얕아 목숨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더 다가오면 죽는다, 사호.”

“아직 네가 대형이 아니다, 이호. 넌 전에도 지금도 이호일 뿐이다. 그리고 이호는 절대로 명령권자가 될 수 없다. 그게 우리 천객의 제일 율법이다.”

사호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결국 이호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좋다, 사호. 그럼 이렇게 하자.”

여전히 사호의 목에 검 끝을 댄 채 말했다.

“어떻게 하자는 거냐?”

“저들의 의견을 듣는 거다.”

이호는 뒤편에 서 있는 대원들을 가리켰다.

“다수결로 하자는 말이냐?”

“그렇다.”

“그건…….”

“그마저도 싫다면 나는 널 죽일 수밖에 없다.”

“……좋다.”

사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호가 작정을 하고 나선 이상 그것 말고는 결정을 바꿀 방법이 없었다. 아울러 대원들도 자신과 같은 생각일 거라고 확신했다.

“이번 임무를 수행하는 데 삼호를 미끼로 쓰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자들은 손을 들어라!”

이호는 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기다렸다.

하지만 손을 든 자는 아무도 없었다.

“너희가 미끼로 이용되어도 괜찮다는 거냐?”

사호가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외침에 대답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저들 또한 기꺼이 미끼가 되는 걸 감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호.”

이호는 사호의 목에 들이대고 있던 검을 내린 후 삼호의 아혈마저 눌러 버렸다. 그리고 십호를 보며 말했다.

“떠나라, 십호.”

“네.”

십호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대원들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

“오늘 일 후회하게 될 거다, 이호.”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호를 잡는 일이라면 나는 어떤 짓이라도 할 각오가 돼 있다. 그리고 넌 이번 작전에서 빠져라.”

“빠지라고?”

“우리가 하는 모든 임무의 기본 바탕은 동료 사이의 신뢰다. 신뢰가 없는 자와는 함께할 수 없다.”

“난…….”

“마지막 경고다, 사호. 지금 당장 떠나라!”

이호의 목소리가 다시 차가워졌다.

“오늘 일, 윗선에 보고하겠다, 이호.”

휙!

사호는 몸을 날렸다.

“얼마든지 해라.”

이호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어렸다.

그는 한편에 서 있는 오호를 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너도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삼호를 안아라.”

“안으라고?”

오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실 삼호를 인질로 삼는 건 상부의 승인이 나지 않은 작전이다. 이번 일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잘못하면 동료를 위험에 빠트렸다며 문책을 당할 수도 있고, 아주 적절한 대처였다며 칭찬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발을 담그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신념으로 오호는 지금껏 살아왔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그는 멀찌감치 서서 지켜보기만 할 참이었다.

그런데 이호가 삼호를 안으라고 지시를 내린 것이다. 그건 곧 삼호를 인질로 삼는 작전에 적극 가담하는 셈이 된다.

즉, 잘못되면 이호와 책임을 나눠 져야 한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안고 가야 하지 않겠나.”

“아, 알았다.”

오호는 삼호를 들쳐 멨다.

“가자.”

삼호는 바닥을 찼다. 곧바로 오호는 그를 따라 몸을 날렸다.

몸을 날려 가는데 차가운 물기가 손등에서 느껴졌다.

그는 시선을 돌렸다. 삼호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일호와 너무 친하지 말았어야 했다, 삼호. 이번 일을 자초한 건 너다.’

오호는 삼호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리고 이호를 쫓아 묵묵히 몸을 날렸다.

* * *

시체는 총 백다섯 구였다.

금장생은 천야를 불러 지시를 내렸다.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천야는 자리를 떴다. 그리고 퇴근한 직원들에게 연락을 했다.

직원들이 망루로 들어온 건 한 시진 후였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장례 지낼 준비를 했다.

도패는 관을 만들고 양대곤과 일꾼들은 수의를 제작했다. 나중에 강시복을 입히더라도 일단은 수의를 입혀야 하기 때문이다.

상여를 만들 필요가 없어 할 일이 없어진 오보추 일행은 북망산으로 올라가 무덤을 팠다.

그사이 금장생은 영사액을 만들었다.

“제강하는 것 본 적 있는가?”

태천야는 음사영을 돌아보며 물었다.

“우리 암가가 그쪽 방면의 일을 하긴 하지만 제강은…….”

“해 본 적이 없다는 건가?”

“암가의 주요 사업은 제수용품이거든요.”

“그랬구먼.”

“보신 적 있으세요?”

“나도 처음이네.”

태천야는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의 시선이 오른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아수수를 비롯한 마가 무인 여섯 명이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염 끝났습니다.”

도패가 왼편 단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깨끗하게 씻기고 상처가 봉합된 시체가 뉘어 있었다.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영사액을 가지고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붓을 들고 영사액을 찍었다.

“뒷모습이 그분과 비슷해요. 아! 이런, 죄송해요.”

금장생을 바라보며 말하던 시녀 상화가 얼른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꺼낸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괜찮다.”

아수수의 얼굴에 어두운 기색이 얹혔다.

금장생의 뒷모습은 남편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많이 닮았다.

그사이 금장생은 제강을 시작했다.

그의 전신에서 영기가 흘러나오고, 시체의 몸에 주문이 쓰였다. 주문은 곧 피부 속으로 스며들었다.

―저게 영기인 모양이구먼?

태천야는 전음으로 물었다.

―맞아요.

음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장생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경이로움이 가득했다.

금장생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영기는 보통 영기가 아니었다. 영기 중에서 최강으로 치는 암왕기였다.

―어지간한 기운보다 더 강한 것 같은데, 아쉽구먼.

태천야는 입맛을 다셨다.

지금까지 저 기운을 내기로 사용한 암왕이 없었다고 해서 하는 말이었다.

금장생의 몸 주위에 형성된 영기 역장은 소위 절대 고수라고 불리는 자들의 것보다 더 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기로 사용할 수 없다니 안타까웠다.

―절대 고수가 되면 강신술사 일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듣고 보니 그렇구먼.

태천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금장생을 보았다.

금장생은 강시의 앞에 서서 달빛 광채를 뿌리는 손가락은 이마에 대고 있었다. 달빛 광채는 강시의 미간으로 스며들었다.

잠시 기다리자 강시가 번쩍 눈을 떴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금장생은 부적 한 장을 강시의 이마에 붙였다. 그런 다음 혈종을 꺼내 치면서 일어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강시는 벌떡 일어났다.

“총관은 수의를 입혀 주세요.”

“알겠습니다.”

천야는 강시에게 완성된 수의를 입혔다.

그사이 금장생은 다른 시체를 제강했다.

금장생은 제강하고 천야는 옷을 입히는 작업은 다음 날 저녁 무렵에야 끝이 났다. 그때까지 금장생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작업에 몰두했다.

“무덤은?”

마지막 부적을 붙이고 난 금장생은 오보추를 돌아보며 물었다.

“구덩이를 다 파고 관까지 집어넣었습니다.”

“수고했어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혈종을 들고 강시들을 보았다.

천야가 마지막 강시에게 수의를 입는 걸로 해서 제강 작업은 마무리되었다.

“이제 가 볼까?”

금장생은 혈종을 가볍게 쳤다.

“나의 종들아, 나를 따라라!”

스산한 목소리가 금장생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어 그는 혈종을 흔들면서 밖으로 나갔다. 강시들은 퉁퉁 뛰면서 금장생을 따라나섰다.

“헐!”

태천야는 혀를 내둘렀다.

시체가 강시가 되면 스스로 움직인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목격하자 신기했다.

그러한 심경은 아수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경이로운 눈으로 금장생을 따라가는 강시들을 바라보았다.

망루를 나선 금장생은 일꾼들이 파 놓은 구덩이까지 강시들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각 구덩이 앞에 한 구씩 세웠다.

구덩이 안에는 관이 들어 있었다.

“모두 관 안으로 들어가 눕도록 해라!”

명령이 떨어지자 강시들은 일제히 구덩이 속 관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금장생은 오보추를 보았다.

“알았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오보추는 일꾼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일꾼들은 일제히 관 뚜껑을 덮고 못을 박았다. 그런 다음 밖으로 나와 흙으로 덮었다.

“대단하네.”

태천야는 다시 한 번 감탄사를 터뜨렸다.

백 구가 넘는 시체를 이렇듯 간단하게 처리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일백여 구의 시체가 무덤 속으로 들어가 드러눕는 광경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표시해 놓으세요.”

금장생은 오보추 일행에게 지시를 내리고 망루로 내려갔다.

망루 그의 처소에 도착하자 곧바로 욕실로 들어가 목욕을 했다. 목욕이 끝나고 바로 식당으로 갔다.

정리를 끝낸 일꾼들은 한데 모여 식사 중이었다.

“밥 먹고 퇴근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총관은 특별수당을 챙겨 주도록 하세요.”

“나중에 한꺼번에 주는 게 아니고 바로 주는 겁니까?”

“한밤중에 나왔으면 돈이라도 들고 들어가야 기다리는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요?”

“알겠습니다. 수당을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천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밥…….”

“여기로 오시게.”

자리를 찾는데 태천야가 불렀다. 태천야 건너편에는 음사영과 아수수 일행이 앉아 있었다.

금장생은 빈자리로 가 앉았다.

그가 앉자 바로 식사가 나왔다.

식사는 소뼈를 고아 낸 국물에 간을 하고 면을 집어넣은 육면과 돼지고기 수육이었다.

금장생은 먼저 육면의 맛을 보았다.

육면은 장례 지내느라 피로해진 상주들을 위해 망루에서 만들어 낸 음식이었다. 금장생은 육면 안에 수육을 집어넣어 함께 먹었다.

“총관은 오늘 관아에 다녀오세요.”

“제가 알아 올 건 뭡니까?”

“이월 중순부터 오월 말까지 무연고 시체가 몇 구나 되는 지 알아 와야 합니다.”

“묻은 위치도 알아 오면 좋겠군요.”

“물론입니다.”

“알겠습니다, 날이 밝는 대로 다녀오겠습니다.”

천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장생은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사장님.”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고 있는데 상조 물품을 담당하는 양대곤이 다가왔다.

“왜 그러십니까?”

금장생은 양대곤을 돌아보았다.

“퇴근하려는데 대문에 이게 꽂혀 있어서요.”

양대곤은 서찰 하나를 내밀었다.

금장생은 서찰을 받아 들었다.

서찰 표면에는 ‘망루 주인께’라고 적혀 있었다. 서찰은 아무도 뜯어 보지 못하도록 접은 부분을 밀봉한 채였다.

금장생은 잠시 서찰을 내려다보았다. 안쪽에 뭐가 다른 게 들어 있는지 도톰했다.

이내 결심을 굳힌 듯 금장생은 서찰의 밀봉을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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