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87)
면사 여인을 비롯한 사내들의 시선이 일제히 음사영에게로 향했다.
마왕을 알고 있다는 건, 마왕의 흔적이 이곳으로 이어졌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었다.
“그분을 어떻게 알죠?”
면사 여인은 음사영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방금 초상화를 보여 주었잖아요.”
“초상화 속 인물이 마왕이라는 건 어떻게…….”
“나는 별호는 유령마고 이름은 음사영이에요. 사장님의 호위를 맡고 있고요.”
“그랬군요. 그런데 이 망루가 암가와 관련이 있나요?”
“없습니다.”
대답한 사람은 금장생이었다.
“그런데 암가 무인이 왜…….”
“뭐, 나름 사정이 있겠지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사람을 채용했다는 건가요?”
“돈 한 푼 안 들이고 강한 무인을 호위로 거느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호위 덕을 톡톡히 보았고요.”
“저 진식을 구축한 분이 음 소저란 말이군요.”
“맞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음사영을 돌아보았다.
“해진할까요?”
음사영이 물었다.
“우린 장사하는 사람입니다. 가끔은 한밤중에 손님이 찾아오기도 하거든요. 쳐들어온 자들도 대충 처리한 것 같으니까 해진했으면 좋겠습니다.”
“알았어요.”
음사영은 곧바로 자리를 떴다.
잠시 후 슉슉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주위를 가득 채웠던 운무가 빠져나갔다. 그리고 망루 주변이 모습을 드러냈다.
“흠!”
금장생은 나직하게 신음을 내뱉었다.
망루 곳곳에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백여 구는 될 것 같았다.
“저걸 언제 다 치우냐?”
금장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면사 여인을 보았다.
“난 아수수예요.”
면사 여인은 자신을 소개했다.
“아는 자들 아닙니까?”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그럼 나가서 확인을 해야겠군요.”
금장생은 문을 열고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아수수의 대답을 기다렸다.
“우리 가문 무인이 맞아요.”
“그렇군요. 그럼 선택을 하셔야 합니다.”
“어떤 선택을 말하는 거죠?”
“장례를 치르고 묻을 건지 아니면 커다란 구덩이를 판 다음 합장을 한 건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간소한 절차로 장례를 지내면 백 냥이고 한꺼번에 합장을 하면 열 냥입니다. 물론 시체 한 구당 가격입니다.”
“장례비를 나보고 달라는 건가요?”
“마가 무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배신자들이지요.”
“살아생전엔 배신자였지만 이제 죽었으니까…….”
“죄가 없어진다는 건가요?”
“그럴 리는 없지요.”
“하면?”
“자비를 베풀어 줄 수는 있잖습니까?”
“좋아요. 그렇게 할게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말하십시오.”
“그분을 찾아 주세요.”
“흠!”
금장생은 생각에 잠겼다.
마가의 가주는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강시로 제강하여 묻어 둔 상태다.
문제는 그를 돌려주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후유증이다.
자칫 잘못하면 모처럼 잡은 직업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찾아서 어떻게 하려고 그러십니까?”
“일단 찾아봐 주세요.”
“이곳에 묻혔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길 바라지만 만일 묻혔다면 여기밖에 없을 거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굳이 북망산이 아니라도 묻을 곳은 많습니다.”
“그분의 흔적은 낙양 북부로 이어졌어요. 그리고 사라졌어요.”
“그럼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건…….”
“누군가 그분을 발견했다면 저기에 묻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으니까요.”
아수수는 북망산을 가리켰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 북망산에 묻힌 연고 없는 시체를 전부 조사해야겠군요.”
“공짜로 해 달라는 건 아니에요.”
“대가를 지불하겠단 말씀입니까?”
“네. 그리고 저기 있는 시체들도 절차에 따라 장례를 지내도록 할게요.”
“백 냥짜리로 하시겠단 말씀입니까?”
“네. 단, 강시로 제강해 주세요.”
“강시로요?”
금장생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네.”
아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운구해 가는 비용은 별돈데 그래도 상관없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여기요.”
아수수는 전표를 내밀었다.
금장생은 전표를 확인했다. 천 냥짜리 전표 열 장이었다.
―마마!
옆에 있던 사내가 전음으로 아수수를 불렀다. 그는 아수수의 호위대 대장인 사마영이었다.
방금 아수수가 내민 일만 냥은 그들의 전 재산이었다.
―당분간 여기 머물 참이다.
아수수는 전음으로 대답했다.
―여긴 장의삽니다.
―유령마 음사영을 아느냐?
―잘 모릅니다.
―그녀는 암가의 실세다. 그런 그녀가 저자의 호위를 자처하고 있다. 그건 곧 저자에게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는 걸 뜻한다.
―하지만 그 정도로 여기에 머문다는 건…….
―그것뿐만이 아니다.
―또 있습니까?
―저자를 봐라.
이번에 아수수가 가리킨 사람은 태천야였다.
태천야는 조금 전 이곳으로 나와 시체를 살피고 있었다.
―고수군요.
―나보다 더 강하다.
―마마보다 강하단 말입니까?
사마영은 깜짝 놀랐다.
그가 아는 한 아수수는 마가의 이인자다. 권력이 아니라 무공이 그렇다는 거다.
그런 그녀가 자신보다 더 강하다고 했다면 절대 고수라는 뜻이 된다.
―맞다. 저자 또한 손님으로 머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마마께서는 이 장의사가 이상하단 말씀이시군요.
―그리고 안전한 곳이다.
―그렇군요.
사마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현재 가장 안전한 장소라는 말에는 동의했다.
“한꺼번에 다 주시는 겁니까?”
금장생이 물었다.
“내가 가진 돈 전부예요.”
“이걸 다 주고 나면 어디서…….”
“당분간 여기서 신세를 지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여긴 장의삽니다. 밤이면 으스스한 기운이 감돌아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무서워서 화장실도 못 갑니다.”
“귀신에게 맞아 죽은 사람 있나요?”
아수수는 물었다.
“놀라 죽은 사람은 있어도 맞아 죽은 사람은 없는 걸로 압니다.”
“놀라서 죽지만 않으면 되겠군요. 그리고 공짜로 재워 달라고 하진 않을게요.”
“밥값을 하겠다는 겁니까?”
“어떤 일이든지 시켜만 주세요.”
“그럼 밥값과 숙박비는 해결됐고, 무덤을 뒤지는 것만 따로 계산하면 되겠군요.”
“그것도 돈을 받는단 말이오?”
사마영이 볼멘 얼굴로 물었다.
방금 받은 돈이 일만 냥이다. 그 정도 돈을 받았으면 무덤을 뒤지는 건 공짜로 해 줄 법도 한데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가 걸릴지 모르는데 공짜로 해 드릴 수는 없지요.”
“도대체 얼마를 받겠다는 겁니까?”
“며칠이나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대략적인 금액이 나오게 됩니다. 실례지만 그분이 실종된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올봄입니다.”
“좀 더 정확해야 합니다.”
“삼월 초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여유 있게 삼 개월은 잡아야겠군요.”
“찾을 수 있겠소?”
“먼저 관아를 찾아가야 합니다.”
“관아는 왜…….”
아수수가 의아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보통 시체가 발견되면 관아에 신고를 하게 되거든요. 그럼 관아에서는 시체에 대해 간단하게 기록한 다음 처리하게 됩니다.”
“관아에 기록이 있을 거란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건데. 당신에게 일을 맡기길 잘한 것 같군요. 그럼 그렇게 해 주세요.”
“날이 밝으면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절 따라오십…….”
걸음을 옮기려던 금장생은 북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백여 명이 내려오고 있었다. 누군가를 찾아 헤매던 자들이었다.
“대형!”
선두에 선 자가 소리쳤다. 그는 이호라고 불리던 자였다.
“누구를 찾아오셨는지…….”
금장생은 사내를 가만히 쳐다보며 물었다.
“접니다, 대형.”
금장생 앞으로 온 사내는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나머지 일행도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대형!”
그들의 외침에 망루가 부르르 떨었다.
“사람을 잘못 보셨습니다.”
금장생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발 돌아와 주십시오, 대형.”
이호는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돌아와 주십시오!”
이어 뒤에 있던 일백 명이 소리치며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이거 당황스럽습니다. 저는 강신술사입니다. 무림인들 같은데 대형이라 하심은…….”
“모두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형의 자리는 아직 비어 있습니다. 제발 돌아와 주십시오, 대형.”
이호는 다시 머리를 찧었다.
“돌아와 주십시오, 대형.”
“이거 참!”
금장생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앉은 사내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녕 돌아오지 않을 참입니까?”
이호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글쎄, 그게…….”
“그렇군요.”
이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나머지 일행도 전부 일어났다.
이호는 금장생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전음을 보냈다.
―당신이 대형이 아니라면 하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겠지요. 이틀 후 하려의 혈도를 누르고 옷을 벗긴 후 선착장 건달들에게 넘길 거요. 하려를 구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시오.
“가자.”
이호는 자리를 떴다. 이어 다른 이들도 몸을 날렸다.
일행 중 맨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이는 여자, 즉 삼호였다.
―행복해 보여요.
삼호는 금장생에게 전음을 보냈다.
금장생은 삼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절대 돌아오지 마세요.
휙!
삼호는 바닥을 차고 몸을 날렸다.
멀어지는 삼호를 바라보는 금장생의 얼굴 표정은 복잡했다.
“아는 자들인가?”
태천야가 물었다.
“모르는 자들입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쉴 곳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아수수 일행을 보며 말했다.
“아, 네.”
아수수 일행은 금장생을 따라나섰다.
그런 금장생을 가만히 쳐다보는 자들이 있었다. 조금 전 망루를 떠났던 이호를 비롯한 천객들이었다.
“십호.”
한 사내가 앞으로 나왔다. 그는 주변에 은신해 있는 일백 명의 지휘관이었다.
“부르셨습니까?”
“너는 모든 대원을 데리고 낙하 선착장으로 가라.”
“선착장요?”
십호는 의아한 얼굴로 이호를 보았다.
“그는 우리를 배신했다.”
“그 강신술사가 대형이라고 확신하는 모양이군.”
사호가 말했다.
“나는 확신한다.”
이호가 단언하듯 말했다.
“증거가 있어야 한다.”
“천율을 기억하느냐?”
이호는 물었다.
“기억하고 있다.”
“그럼 천율 이 조가 뭔지 알겠구나.”
“천율 이 조는…….”
“삼호 네가 말해 보아라.”
이호의 시선이 삼호에게로 향했다.
“‘천병은 천객의 안위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헌신한다.’다.”
“이건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도 너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내 몸을 기꺼이 희생했을 거라는 걸.”
“그게 무슨 뜻이지?”
삼호는 의아한 얼굴로 이호를 보았다.
“바로 이거다.”
이호는 삼호의 마혈을 눌렀다.
“무슨 짓이냐?”
“뭐 하는 거냐?”
삼호와 사호가 버럭 소리쳤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 또한 놀란 얼굴로 이호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