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86화 (86/524)

황금가 (86)

“혹시 귀안을 타고나면 귀신을 보게 되는가?”

태천야가 물었다.

“네.”

음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에 귀신들과 대화를 하는 것 같았네.”

“대, 대화까지 했단 말입니까?”

음사영은 여전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금장생이 암왕기를 지녔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곳으로 온 목적도 그걸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금장생이 암가의 잃어버린 보물인 태극선의와 암왕칠구를 지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가 주인으로 있는 망루는 삼백 년 전 ‘구순지화’ 때 쫓겨난 구순 왕의 후예들이 만든 곳이었다.

그 당시를 살지 않아 잘 알진 못하지만 축출됐던 구순왕은 역대 왕 중 최악이라고 하였다. 수많은 이들이 암가를 떠나자 결국 보다 못한 왕의 동생 구악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때 구순 왕은 태극선의와 암왕칠구를 챙겨 도망을 쳤다. 그랬던 걸 이곳에서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천야, 도패, 오보추 세 명은 그 당시 구순과 함께 떠났던 가솔들의 후예였다. 그들은 삼백 년 동안 이곳을 지켜 왔던 것이다.

“그러네. 그런데 암왕은 뭔가?”

태천야는 물었다.

“암가의 가주를 칭하는 말입니다.”

“그 친구가 암가의 가주란 말인가?”

“아닙니다.”

음사영은 고개를 저었다.

“조금 전에 암왕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암가의 암왕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게 귀안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말이 나온 거예요.”

“현 암왕은 귀안을 지니지 못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맞는가?”

“맞아요.”

음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친구가 가진 건 귀안뿐만이 아닌 것 같던데.”

“눈치가 빠르시네요.”

“그 친구가 또 가진 게 뭔가?”

“암가의 최고 보물인 태극선의와 암왕칠구를 지니고 있어요.”

“팔왕가에 속했던 가문 중 한 곳의 최고 보물이면 대단한 물건이겠군.”

“귀신을 다룰 때 사용하는 것들이라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소용이 없어요.”

“아무튼 자네 이야기를 종합하면 장생 그 친구는 암가의 가주 자격을 갖췄구먼. 그것도 완벽하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빠졌지요.”

“혈통 말인가?”

“네.”

음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자넨 그 친구로부터 태극선의와 암왕칠구를 찾아가기 위해 온 건가?”

“그건 아니에요.”

“하면?”

“암가의 가솔인 나는 태극선의와 암왕칠구에 대해 본가에 보고를 해야 해요. 그럼 현 암왕께서 결정을 할 거예요.”

“그 친구를 차기 암왕으로 받아들일 건지 말지를 결정한다는 건가?”

“네.”

“만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 친구에게 태극선의와 암왕칠구는 삼백 년 전에 우리 거였으니까 내놓으라고 할 참인가?”

“그건…….”

“그러다가 내놓지 않으면 무력을 동원해서 빼앗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할 말은 없어요. 나는 암왕이 아니고 가솔일 뿐이니까요.”

“나 같으면 태극선의나 암왕칠군가 하는 거에 욕심 부리지 않겠네.”

“왜죠?”

“이 나이를 먹게 되면 사람 보는 눈이 생기는데, 그 친구는 말이네,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네.”

“특이한 점이라도 발견했나요?”

“그냥 느낌이네.”

“육감이란 말이군요.”

“그러네.”

“그가 무인이라고 생각하세요?”

“무공을 익혔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네. 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네. 혹시 그 힘이 뭔지 아는가?”

“노야老爺가 본 건 영기靈氣일 거예요.”

“영기면 귀신을 부리는 힘을 말하는 건가?”

“네.”

“그 힘도 내기처럼 유형화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내기內氣도 되는데 영기靈氣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영기도 내기의 한 종류라는 말 같은데 맞는가?”

“네. 쉽게 말하면 영기는 귀신의 기운을 많이 내포한 내기라고 보시면 돼요.”

“독기나 빙기, 화기와 비슷한 개념이라는 거구먼.”

“이해가 빠르시네요. 하지만 아쉽게도 내기처럼 사용한 암왕은 없었어요.”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거구먼.”

“맞아요.

“아무튼 내가 암왕이라면 그 친구는 절대 건들지 않겠네.”

“제가 암왕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지금 나눈 이야기는 비밀로 해 달라는 건가?”

“그럼 저도 노야가 흑지 지존이란 사실에 대해 함구할게요.”

“어?”

태천야의 눈이 커졌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음사영이 알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알고 있었는가?”

“수십 년 동안 누군가에게 명령을 내려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위엄, 절대적인 무공 그리고 사막을 결부시켜 보니까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더군요.”

“이거 내가 한 방 먹었군. 알았네. 지금 자네와 나눈 이야기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않겠네.”

태천야는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전 사장님께 가 봐야겠어요.”

음사영은 밖으로 나갔다.

“쩝! 나만 갇혔네.”

태천야는 창가로 갔다.

운무가 워낙 짙어 일 장 너머도 보이지 않았다. 방 안에 있어서 이 정도지 밖으로 나가면 허허벌판에 서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누가 됐든 안으로 들어오면 고생 좀 하겠네. 잠이나 자자.”

그는 조금 전 앉아 있던 의자로 갔다. 그리고 의자 등받이에 기댄 후 눈을 감았다.

“알아봤습니까?”

금장생은 다가온 귀신에게 물었다.

―적천영이 실종됐다는구먼.

“실종요?”

―그러네.

“그런데 가주가 실종됐으면 힘을 합쳐 찾을 생각은 안 하고 왜 싸우는 건데요?

―배신이 일어난 것 같네.

“배신이면…… 공격하는 자들이 배신자란 말인가요?”

―그러네. 공격받고 있는 자들은 적천영의 심복들이네.

“한쪽은 적천영을 찾으려고 하고 다른 한쪽은 못 찾게 막는 거군요.”

휙! 휙휙! 휙휙!

금장생 옆으로 무인들이 빠르게 몸을 날려 갔다. 그들은 진식 안으로 들어온 마가 무인들이었다.

―막는 정도가 아니라 죽이려고 하는 것 같다.

“어디 있습니까?”

―누구 말이냐?

“공격당하는 자들 말입니다.”

―따라와라.

귀신은 앞장섰다.

금장생은 가는 도중 음사영을 만났다.

음사영 역시 진식 안을 꿰뚫어 보는지 표정 없는 얼굴로 운무 속을 주시하고 있었다.

“안쪽이 보이나 봐요?”

금장생은 물었다.

“여기선 보입니다.”

“여기가…….”

금장생은 음사영 옆으로 갔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그곳에 서자 상당히 먼 곳까지 시계가 나왔다.

그리고 망루 주위를 헤매고 다니는 자들도 눈에 들어왔다.

건물로는 접근할 수 없게 돼 있는지, 건물 근처로 다가가는 자는 없었다.

“아악! 귀신이다!”

“귀신이 나타났다!”

잔뜩 겁에 질린 외침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아악!”

“으아악!”

그리고 비명이 뒤를 이었다.

“죽어라!”

“죽엇!”

느닷없이 무인들이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은 의아한 얼굴로 그들을 보겠지만 귀신을 보는 금장생에게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동료를 향해 검을 휘두른 자들은 전부 귀신에 씐 자들이다.

다른 장소 같았더라면 귀신이 달라붙는다고 해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설사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기분이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다르다.

혼천유령무형마진은 귀신의 힘을 최고치까지 끌어 올리는 특별한 진식이다. 이 안에서 귀신은 무기를 마음대로 휘두를 뿐 아니라 아무리 공격을 당해도, 잘리지도 죽지도 않는 불사의 존재가 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무공이 강하고 심지가 굳은 자들은 아무리 강한 귀신이 달라붙는다고 해도 견뎌 내고 있다.

문제는 강자를 제외한 나머지다.

그들 대부분의 무인이 귀신의 꼭두각시로 변해 가고 있었다.

창! 창창창! 창창!

“아악!”

“으아악!”

“크아악!”

무인들은 미친 사람처럼 동료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무, 물러나야 합니다!”

무인 중 한 명이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진식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진식에 대해 공부도 많이 했고, 대처하는 방법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진식은 난생처음이다.

아군을 공격하는 자는 실체가 없다. 그런데 무기가 허공을 날아 부하의 몸속으로 파고든다.

더 놀라운 사실은 숨이 끊어진 자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동료를 공격한다는 거였다.

‘귀신의 땅’.

이곳은 바로 말로만 듣던 귀신들의 세상이었던 것이다.

“어디로 철수한다는 거냐?”

책임자가 소리쳐 물었다.

“운무가 약한 쪽으로 가야 합니다!”

“대원들은 운무가 약한 쪽으로 이동해라!”

“운무가 약한 쪽으로 가라!”

지휘관은 고함을 내질렀다.

“대원들이 저 명령을 들을 수 있어요?”

금장생은 음사영을 보며 물었다.

“소리친 자로부터 이십 장 안에 있는 자는 들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보다 먼 곳에 있는 자들은 듣지 못해요.”

“그럼 많은 수가 죽겠군요.”

“지금 이곳의 주인은 귀신이니까요.”

“저기로 들어가면 됩니다!”

다급한 외침과 함께 여섯 명이 금장생과 음사영이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여자 둘과 사내 네 명이었다.

“어?”

“응?”

금장생과 음사영을 발견한 일행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놀람도 잠시, 곧바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음사영 역시 내기를 끌어 올렸다.

“우린 귀하들을 공격할 생각 없으니까 긴장 푸십시오.”

금장생은 안으로 들어온 자들을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당신은 누구죠?”

면사를 쓴 여자가 물었다.

“이 집 주인입니다.”

“당신 때문에 몇 명이 죽었는지 아세요?”

면사 여인 옆에 있던 여자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나는 도둑을 막기 위해 내 땅에 진식을 설치했을 뿐입니다, 소저. 진식 안으로 들어온 건 당신들이고요.”

“그게…….”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저들은 상잔해서 죽는 거지 우리 가게 사람들의 공격으로 죽는 게 아닙니다.”

금장생은 건물 밖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서는 무인 두 명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크악!”

“아악!”

살기를 흘리며 검을 휘두르던 두 사람은 상대방의 심장에 각자의 검을 찔러 넣었다.

“어떻게 저런 일이…….”

두 여인과 사내들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믿기지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죠?”

마마라는 호칭으로 불렸던 여자가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진식이 발동 중이거든요. 그런데…….”

금장생은 귀신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망루를 주시하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

“사람을 찾고 있어요.”

면사 여인은 품속에서 둘둘 말린 종이를 꺼내 금장생에게 내밀었다.

금장생은 종이를 펼쳤다.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얼마 전 금장생이 강시로 제강한 그 사내였다.

금장생은 초상화를 건네주었다.

“본 적 없나요?”

“저는 장의삽니다. 장의사에게 본 적 없냐는 질문을 하는 건…….”

“그분이 돌아가신 걸 알고 있습니다. 나는 다만 그분의 시신이라도 찾고 싶을 뿐입니다.”

“마, 마왕이 죽었다고요?”

죽었다는 말에 너무 놀란 듯 음사영이 ‘마왕’이라 소리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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