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80화 (80/524)

황금가 (80)

“받아라.”

“뭡니까?”

“수라라는 무인이 남긴 양극신공이다.”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천마와 동시대를 살았던 무인이고, 평생을 이인자로만 살았기 때문에 세간에 알려진 건 거의 없다.”

“어떤 무인이었습니까?”

“천재였다.”

“그런데……?”

“천마에게 밀려 이인자로 산 이유가 뭐냐고?”

“네.”

“수라는 머리는 뛰어났지만 몸은 허약했다. 반면에 천마는 천재적인 머리를 가졌을 뿐 아니라 육체 또한 무공을 익히기에 가장 적합한 마신체를 타고났다.”

“그런 자와 동시대에 태어난 수라는 불행한 사람이군요.”

“맞다. 그는 평생 동안 천마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천마는 늘 한발 앞서갔다. 결국 그는 중원에서는 천마를 넘어설 방법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세상을 떠돌기 시작한다. 서역을 다 둘러본 그는 조선을 거쳐 동영까지 들어오게 된다.”

“천마를 넘어설 수 있는 무공은 창안했습니까?”

“못 했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천마를 이겼다고 자신했다. 그건 바로 내공심법이다.”

“양극신공이군요.”

“그렇다.”

“위력은…….”

“먼저 읽어라.”

“알겠습니다.”

“양극신공을 읽어 본 소감은 어떠냐?”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익혀 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다행히 내게 백령해왕삼白靈海王蔘과 태양천과太陽天果가 있다.”

“어떤 겁니까?”

“백령해왕삼은 수백 길 심해에서 자라는 해초 뿌리고 음기의 결정체다. 빙공을 익힌 자가 복용하여 자신의 걸로 만들 수 있다면 이 갑자를 얻을 수 있다. 태양천과는 화산 분화구 속에서만 자라는 태양천목의 열매다. 극양 기운을 간직한 녀석인데, 극양공을 익힌 무인들이 복용하면 이 갑자의 공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런 대단한 영약은 사부님께서 복용해야 하지 않습니까?”

“만일 단전이 살아 있다면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두 가지를 다 내가 복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가장 중요한 단전이 없다. 그걸 복용하는 순간 재나 얼음으로 변하고 만다.”

“그래도…….”

“그 두 가지로도 양극신공을 완성할 수 없다. 양극신공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지극음양천에 몸을 담가야 한다.”

“지극음양천이 뭡니까?”

“지극음양천은 열양천과 빙한담의 물이 합쳐졌을 때 생겨난다.”

“그리고 죽기 싫으면 정확하게 경계지점에 몸을 담그라고도 했지.”

금장생은 가부좌를 했다.

치이익!

쩌어엉!

극양기와 극음기는 그의 몸을 급속하게 잠식해 들어갔다.

오른편은 얼음덩어리로 변했고, 왼편에서는 불길이 올랐다.

금장생의 몸을 잠식해 들어가던 두 기운은 정확하게 중간에서 만났다.

“커억!”

금장생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지극음양천을 발견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반대로 들어가야 한다. 양의 기운이 몰려 있는 오른편은 빙한담 쪽으로 담가야 하고, 음의 기운이 몰려 있는 왼편은 열양천 쪽으로 담가야 한다. 그런 다음 가부좌를 하고 있으면 된다.”

“내기는…….”

“내기를 끌어 올려서는 안 된다.”

“저절로 일어나게 내버려 둬야 한다는 거군요.”

“맞다. 외부에서 자극이 가해지면 극양기와 극음기는 저절로 일어난다. 그래야만 지극음양천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게 된다.”

“만일 흡수하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죽는다.”

“끙!”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마지막의 ‘죽는다.’라는 말은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말뿐만이 아니라 그 말을 하신 사부의 얼굴 표정까지 생생하게 떠올리고 말았다.

‘견뎌 낼 겁니…… 으이그, 추워라!’

금장생은 부들부들 떨었다.

한쪽에서는 한기가 파고들고 한쪽에서는 가공할 열기가 스며든다.

백령해왕삼과 태양천과를 복용했을 때보다 몇 배나 더 강했다.

‘이러다가 정말로…….’

금장생은 눈동자를 굴려 자신의 몸을 보았다.

현재 그가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게 눈동자였다.

상상을 초월한 한기와 열기에 의해 몸의 모든 기능은 정지한 상태고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하다. 만일 음양쌍극기라 부르는 기운이 스스로 일어나지 않으면 이 상태로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다.

‘공연한 짓을 해서는.’

그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지금 상황에서 잡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조금 전 벽면에서 보았던 양극신공의 구결을 떠올렸다. 그편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을 했다.

한참 구결을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마치 물속으로 떨어뜨린 먹물이 퍼져 나가는 것처럼 검은색으로 변해 갔다.

‘아, 안 돼!’

금장생은 내심 소리쳤다.

일어나고 싶었다.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차라리 양극신공을 끌어 올려서…….’

죽는 것보다 양극신공을 끌어 올려 모험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순간, 단전에서 특이한 느낌이 감지되었다.

그것은 따뜻함과 차가운 기운이었다.

그 기운은 멀리 떨어진 오두막에서 깜빡거리는 불빛처럼 희미했다.

하지만 금장생은 그 불빛을 가만히 응시했다. 지금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불빛이 점점 커졌다. 금장생의 얼굴이 약간 밝아졌다.

그는 불빛에 더욱 집중했다.

그가 집중할수록 불빛은 더욱 커지고 밝아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따스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불빛 옆에는 커다란 얼음덩어리가 생겨나 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 따뜻해. 아! 시원해.’

금장생은 빙그레 웃었다.

시원하고 따듯한 느낌이 온몸을 채우기 시작하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한 거였다.

휘이익!

정확하게 절반으로 나뉘어 섞이지 않고 있던 열양천과 빙한담의 물이 거칠게 회전하며 섞였다.

금장생을 중심으로 형성된 와류는 물을 먹고 사는 괴물처럼 열양천과 빙한담의 물을 끌어와 열기와 한기만 빼 먹고 다시 뱉어 냈다.

스윽!

금장생의 신형이 둥실 떠올랐다.

반 장 높이로 떠오른 그를 떠받친 건 바로 열양천과 빙한담의 물이 만들어 낸 와류였다. 와류는 금장생의 전신을 끊임없이 타고 내렸다.

푸스스!

어깨까지 내려와 있던 머리카락이 가루로 변해 흘러 나가는 물에 쓸려 갔다. 세맥에서 흘러나온 탁기도 물에 씻겨 나갔다.

우두둑! 우둑! 우두둑!

뼈마디 부딪치는 소리가 전신에서 흘러나왔다.

살아 있는 뭔가가 몸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처럼 살과 근육이 불뚝불뚝 솟았다. 가루로 변했던 머리카락이 길어났다가 다시 가루로 흩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열양천과 빙한담의 열기와 냉기가 사그라질 무렵 무섭게 소용돌이치던 와류도 점차 힘을 잃었다.

그리고 금장생의 동체도 아래로 내려왔다.

번쩍!

엉덩이가 바닥에 닿는 순간 금장생의 눈이 뜨였다.

푸른 광채가 뇌전처럼 튀어 나갔다. 하지만 그건 나타날 때보다 더 빠르게 사라졌다.

“살았네.”

금장생은 활짝 웃었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열양천과 빙한담은 평범한 샘으로 변해 있었다.

밖으로 나온 그는 옷을 입었다.

“관문을 만들고 무공을 적어 두었다고 했으니까…….”

금장생은 안쪽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곳에 적힌 야수감각도와 혈랑파는 시작일 뿐이다. 다른 석옥으로 가 보면 구마의 무공이 있을 것이다.

석옥 바깥 상황은 조금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일 장 너머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방법이 있지.”

금장생은 두 발에 내기를 주입했다. 그러자 걸을 때마다 두 자 깊이의 발자국이 남았다.

돌아올 땐 그 발자국만 따라오면 될 것이다.

“여기가 첫 번째 관문 같은데…….”

금장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관문이라고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오래돼서…… 아니네.”

금장생의 시선이 왼편에 멈췄다. 검은 물체가 불쑥불쑥 솟구치고 있었다.

“‘죽지 않는 자.’”

금장생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땅속에서 솟아 나오는 자들은 결단코 강시가 아니었다.

강시는 몸통이 잘린 상태에서는 절대 제강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방금 일어난 자는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채 솟아 나왔다. 그랬던 것이 밖으로 나와서는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전에 천역에서 보았던 ‘죽지 않는 자’들이 저랬다.

“처음이라면 겁을 먹겠지만…….”

금장생은 묵야를 뽑아 들었다.

“지금은 아니지.”

금장생은 묵야를 집어넣고 사백死白이라 불리는 무검巫劍을 꺼내 들었다.

방금 석실에서 본 혈랑파는 도법이라 묵야보다는 사백으로 펼치는 게 더 강한 위력이 나올 것 같았다.

“한번 해볼까?”

금장생은 사백으로 ‘죽지 않는 자’들을 겨냥했다.

휙! 휙휙!

죽지 않는 자들은 금장생을 향해 몸을 날려 왔다.

“응?”

몸을 날리려던 금장생의 눈이 살짝 커졌다.

천병총 지하에서 얻었던 특이한 기운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없는 게 아니라 다른 장소에 똬리를 틀었다. 그곳은 바로 심장이었다.

똬리를 든 모양도 특이했다. 심장을 중심으로 둥근 원을 그리고 있었다.

원은 총 여섯 개였다.

그런데 평면 위에 붓으로 그려 놓은 그런 원이 아니었다. 입체적인 형태로 심장을 감싸고 있었다.

즉, 하나의 원 바깥에 더 큰 원이 있는 게 아니라 같은 크기의 원이 구球 형태를 이루고 있다.

“어떤 기능을 하는지 볼까?”

금장생의 신형이 ‘죽지 않는 자’들을 향해 폭사되었다.

몸을 날리면서 그는 내기를 끌어 올렸다. 단전이 열리고 내기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금장생의 관심은 단전에 가 있지 않았다. 그의 의식이 머물러 있는 곳은 심장이었다.

‘돈다.’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힘을 끌어 올리자 원들이 맹렬하게 돌았다.

그런데 도는 방향이 모두 달랐다. 하나가 오른편으로 돌면 다른 하나는 왼편으로 돌았다.

놀랍게도 여섯 개의 원은 각각 다른 방향으로 돌면서 힘을 생산해 냈다.

“이건……?”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단지 힘을 생산해 내는 것만이 아니었다.

여섯 개의 원이 만들어 낸 힘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천병총에서 금장생의 몸으로 흡수됐던 글자 중 하나였다.

그 글자의 의미는 ‘소멸’이었다.

“어떤 위력인지 한번 볼까?”

금장생의 신형이 바람처럼 ‘죽지 않는 자’들 앞에 도착했다.

스악!

그리고 검은색 도강이 튀어나온 사백이 하공을 갈랐다.

퍽! 퍽퍽! 퍽퍽!

일 장에 달하는 도강은 죽지 않는 자들의 목을 뎅겅뎅겅 잘라 냈다.

툭!

푸스스! 푸스스! 푸스스!

머리가 떨어져 나간 죽지 않는 자들의 몸통이 순식간에 가루로 변했다.

금장생은 그것들을 지켜보았다.

죽지 않는 자들은 부활하지 않았다.

“이제…….”

금장생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그의 귓전으로 무수한 움직임이 잡혀 들었다. 살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풍기는 생기를 감지하고 깨어난 죽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는 빠르게 움직여 다니며 혈랑파를 펼쳤다.

원래는 붉은색 도강이어야 하는데 금장생이 펼치자 검은색이 되었다.

툭! 툭툭! 툭툭!

수십 개의 머리가 떨어져 나가고 죽지 않는 자들이 가루로 변했다.

“부디 극락왕생하기를! 나무 관세음보살!”

금장생은 불호를 외며 자리를 떴다.

백여 명 정도를 없애고 나자 죽지 않는 자들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 상태로 한참을 가자 석옥이 나타났다. 금장생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서자 불이 환하게 켜졌다.

“반갑기는 하네.”

금장생은 싱긋 웃으며 천장에 매달린 등을 바라보았다.

어떤 용도인지는 모르지만 이곳을 만든 자들은 방문자가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같은 등이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금장생은 벽으로 시선을 주었다.

야수마존의 혈랑도법 이 초 혈랑폭이 적혀 있었다.

금장생은 가부좌를 하고 앉아 혈랑폭을 익혔다.

“강하네.”

그는 어깨를 으슥했다.

야수마존의 혈랑도법은 자신이 섭렵한 많은 무공 중에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대단했다.

“대박 터졌네.”

그는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야수마존의 무공을 지워 버렸다.

기연을 얻을 사람은 한 사람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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