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77)
엘
우두둑!
마물이 인간을 씹어 먹는 소리가 아니었다. 방금 그건 상천인이 잡아챈 박쥐를 물어뜯는 소리였다.
강기가 어린 검이 아니면 잘 잘리지도 않는 박쥐를 상천인은 단숨에 물어뜯었다.
그리고 피를 쭉쭉 빨아 마셨다.
‘그러고 보니……?’
금장생은 상천인 강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상천인 강시도 백사만큼은 아니지만 각 관절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거 소화가 될까?’
금장생은 백사를 보며 물었다.
―배가 고파서 마시는 게 아니다.
‘그럼?’
―부활을 위해서 마시는 것 같다.
‘부활?’
―어떤 박쥐의 피는 죽은 자를 살려 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저 박쥐가 그렇다는 거야?’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그나저나 되게 맛있게 처먹네.’
금장생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철벅!
피를 다 빤 듯 상천인 강시는 박쥐를 사정없이 내던졌다. 그리고 다시 사방을 살폈다.
아마 또 다른 박쥐를 찾는 모양이었다.
턱!
마침 박쥐 한 마리가 상천인 강시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금장생은 박쥐를 살폈다.
박쥐의 입이 쩍 벌어지고 끝이 둥근 물체가 쭉 튀어나왔다. 박쥐의 혀였다.
금장생은 그것이 마치 파리를 잡아채는 개구리 혀 같다는 생각을 했다.
턱!
하지만 박쥐 혀는 상천인 강시의 몸속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피부에 막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그런 박쥐를 상천인의 우악스러운 손이 잡아챘다.
우두둑!
다시 박쥐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쯔으읍! 쯔으읍!
상천인 강시는 박쥐 피를 빨아 먹었다.
‘아무튼!’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인들은 박쥐를 없애면서 계속 전진했다.
그사이 상천인 강시는 십여 마리의 박쥐를 더 잡아 피를 빨았다.
홱!
박쥐 한 마리를 던져 버린 상천인 강시가 고개를 돌려 금장생을 보았다.
‘헉!’
금장생은 내심 헛바람을 들이켰다. 상천인 강시의 눈이 피처럼 붉었다.
―날 깨운 게 너냐?
‘어쭈!’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이젠 말까지 하고 있다.
상천인 강시 또한 백사처럼 인시가 돼 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 나보고 한 말이냐?
상천인 강시의 눈에서 붉은 광채가 쭉 튀어나왔다.
‘너 내가 누군지 아직 모르는 모양인데…….’
금장생은 눈을 부라렸다.
―그 마족 계집을 믿고 까부는 거라면 넌…….
척!
상천인 강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묵야가 그의 목에 닿았다.
―그따위 허접한 무기로 내 목을 자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상천인 강시는 비아냥대듯 말했다.
‘내기할까?’
금장생은 상천인 강시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기?
‘네 목이 잘리는지 안 잘리는지 내기하잔 말이야.’
―그럼 너도 목을 걸어야 한다.
‘당연히 걸어야지.’
금장생은 씨익 웃었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그때 백리장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장생은 시선을 돌렸다. 백리장광이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금장생은 상천인 강시에게서 물러났다. 그리고 주위를 살폈다.
무인들은 박쥐들에게서 벗어난 상태였다.
‘너 운 좋은 줄 알아.’
금장생은 상천인 강시를 빤히 바라보았다.
―엘이다.
‘엘?’
―네가 기억해야 할 내 이름이란 말이다.
‘내가 왜 네 이름을 기억해야 하지?’
―다음에 만나면 이름을 기억할 시간도 주지 않고 널 죽일 거니까.
―그 엘이라는 이름, 비석에 새겨 줄게.
금장생이 상천인 강시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 그를 가만히 노려보던 백리장광이 말했다.
“지금부터 속도를 낼 테니까 처지지 말게.”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타하!”
“하아!”
“이얍!”
백리장광을 비롯한 무인들은 속도를 냈다.
쉬지 않고 한 시진 정도를 달렸을까? 일행 앞에 거대한 구조물이 나타났다.
수십 개의 기둥으로 지붕을 떠받친 신전 형태의 건물이었다.
“드디어!”
백리장광은 감격한 얼굴로 신전을 보았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신전에 도착했다. 이 신전에는 선조의 고향으로 가는 통로가 있다.
그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는 신전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안쪽은 완전한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소리를 빨아들이는 장소인 듯 발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복도처럼 생긴 통로를 지나자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백리장광은 망설이지 않고 계단을 내려갔다.
잠시 후 일행 앞에 광채로 들어찬 공간이 나타났다. 공간에는 역삼각형 형태로 세 개의 기둥이 서 있었다.
기둥에는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손바닥 문양의 장인이 깊게 찍혀 있었다.
“너는 저 기둥 앞으로 가 서라.”
백리장광은 중천인 강시에게 왼편 기둥으로 가라고 명령했다.
“너는 저 기둥 앞으로 가 서라!”
두 번째로 상천인 강시에게 명령했다.
상천인 강시는 기둥을 향해 갔다.
바닥에는 발자국이 나 있고, 기둥에는 손바닥 자국이 나 있었다. 상천인 강시는 발자국 자리에 발을 디뎠다.
“자넨 저 기둥으로 강시를 데리고 가게.”
백리장광은 금장생에게 말했다.
“따라와, 백사.”
금장생은 백사를 데리고 기둥 앞으로 갔다.
기둥 앞에 선 백사는 발자국 자리에 발을 디뎠다.
‘저자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걸까?’
금장생은 물었다.
―뛰어!
‘뭐라고?’
―도망치라고.
‘저자가 날 죽이…… 이런 제길!’
금장생은 뒤편으로 몸을 굴렸다.
“백사, 기둥으로 손을 뻗어!”
그리고 백사에게 기둥을 짚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백사는 기둥의 손바닥 자국에 자신의 손바닥을 댔다.
우웅!
그녀의 손바닥이 닿자 기둥이 부르르 떨었다.
백사는 고개를 돌렸다.
―잘 가!
그리고 작별 인사를 했다.
‘마지막이야?’
금장생은 바닥을 구르며 물었다.
방금 전 그가 있던 곳으로 검 한 자루가 지나갔다.
파앗!
그 순간 백사가 손을 짚은 기둥에서 강렬한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그 광채는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다.
“기둥에 손을 대라!”
백리장광은 황급히 두 강시를 향해 소리쳤다.
잘못하다간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날려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강시는 기둥에 손바닥을 댔다. 잠시 후 두 기둥에서도 강렬한 광채가 폭사되었다.
일정한 방향이 없이 사방으로 폭사되던 빛은 시간이 흐르면서 한곳으로 모였다.
꿀꺽!
백리장광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금장생은 여전히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추밀은 열 명을 데리고 가서 저놈을 없애라!”
그는 소리쳤다.
“존!”
무인 한 명이 부하들을 데리고 금장생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려 갔다.
파앗!
바로 그때였다. 세 기둥에서 쏟아진 빛이 중앙에서 부딪쳤다.
파앗!
좀 전보다 더 강한 광채가 흘러나오는 것 같더니 검은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저 안으로 들어가라!”
백리장광은 검은 부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러자 무인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백리장광은 고개를 돌려 추밀 일행을 보았다. 그들은 여전히 금장생을 없애지 못하고 있었다.
“어차피!”
그는 검은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헌원소야, 내가 이겼다!”
그는 크게 소리치고는 검은 입구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쑥!
그의 신형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슈아악!
입구에서 뭔가를 빨아들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백사를 비롯한 상천인과 중천인 강시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시 후 입구는 사라지고, 지하는 다시 푸른색 광채가 흐르는 공간으로 변했다.
“주공께서 떠났습니다!”
무인 중 한 명이 추밀을 보며 소리쳤다.
“떠났다고?”
추밀은 고개를 돌려 기둥이 서 있는 곳을 보았다. 부하의 말처럼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그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기둥 안쪽으로 내려선 그는 세 기둥을 차례로 만져 보았다.
이곳은 사방이 뚫린 공간이다. 십여 장 건너편에는 벽이 있을 뿐 통로는 없다. 그런데 백리장광을 비롯한 대원들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빌어먹을!”
추밀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백리장광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게 다…….”
그는 고개를 돌려 금장생을 보았다.
쉬지 않고 구르던 그가 몸을 털며 일어나고 있었다.
“죽일 놈!”
추밀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금장생만 아니었다면 백리장광을 따라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금장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금장생의 이 장 건너편에 멈췄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모양이죠?”
금장생은 추밀을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
“네놈만 아니었다면 나도 함께 갔을 것이다.”
추밀은 이를 부드득 갈고는 주위에 있는 부하들을 보았다. 그리고 버럭 소리쳤다.
“저 새끼 죽여!”
파앗! 파앗! 파앗! 파앗!
추밀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무인들이 바닥을 찼다.
그들은 순식간에 금장생 앞에 섰다.
그들의 무기는 이미 무공을 펼치기 위한 완벽한 상태에 도달해 있었다.
무기를 든 자들 모두, 이제 휘두르기만 하면 금장생을 난자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죽어!”
“죽어라!”
“죽여 버린다!”
무인들은 기합과 함께 무기를 휘둘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슉! 슉슉슉! 슉슉슉!
금장생의 왼팔 소매 속에서 붉은 원반이 튀어나왔다.
원반은 무인들이 어찌해 볼 새도 없이 목을 훑고 지나갔다.
“컥!”
“큭!”
“윽!”
무인들은 나직한 비명과 함께 풀썩풀썩 쓰러졌다.
“저, 저럴 수가?”
추밀은 경악했다.
그는 단 한 번도 금장생이 무인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한 금장생은 강신술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강신술사에게 부하 일곱 명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금장생이 지닌 무기였다.
자신들이 걸친 갑옷은 강기가 실린 도검에만 잘린다. 그런데 붉은 원반에 모두 잘려 나간 것이다.
“타하!”
“차하!”
“하아!”
남아 있던 자들이 일제히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다.
“타하!”
추밀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는 지면을 박차고 금장생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일 초가 채 지나지 않아 금장생 앞에 도착했다.
슉! 슉슉슉! 슉!
그 순간 금장생의 왼팔에서 붉은 원반이 쏘아져 나왔다.
“두 번은 안 당한다, 놈!”
추밀은 상체를 뒤로 젖혀 혈반을 피했다.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리저리 움직여 다니며 혈반을 피했다.
‘그게 다가 아닌데.’
금장생은 내심 중얼거렸다.
푹! 푹! 푹푹! 푹!
순간 나직한 소리가 무인들 뒷목에서 흘러나왔다.
“컥!”
“윽!”
“억!”
무인들은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금장생을 보았다.
금장생은 왼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척! 척척척! 척!
그가 쏘았던 혈반들이 건틀릿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날아오는 것도 신경 썼어야지.”
금장생은 소매를 내려 건틀릿을 가렸다.
“빌어먹을!”
욕설과 함께 추밀이 앞으로 처박혔다. 이어 다른 이들도 차례로 쓰러졌다.
그들의 숨이 끊어지자 걸치고 있던 갑옷이 흐물흐물해지는 것 같더니 촉수로 변해 원래 자리로 들어갔다.
“정리는 끝났는데 돌아가는 게 문제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금장생은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배를 좀 채우면 좋은 방법이 생각나겠지.”
금장생은 벽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주머니 안에서 육포와 말린 과일을 꺼내 천천히 씹었다.
“배가 차도 생각이 안 나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계단이 있습니다!”
바로 그때 계단 위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배가 불러야 해.”
금장생은 싱긋 미소를 짓고는 다시 그 자리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