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67화 (67/524)

황금가 (67)

“너냐?”

금장생은 놀란 얼굴로 백사를 보았다.

그러면서 눈에 힘을 모았다. 백사에게 귀신이 붙었다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눈에 힘을 주어도 귀신은 보이지 않았다.

―한 번만 더 내 코를 잡으면…….

“크!”

백사에게서 다시 기분 좋은 콧소리가 흘러나왔다.

백사는 조두를 풀어 거품을 내더니 머리를 문질렀다.

‘이건?’

금장생은 황당한 얼굴로 백사를 보았다.

조금 전 머릿속으로 들려온 백사의 목소리는 강하고 단호했다. 권력의 상층부에서 생활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위엄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고 있다.

어떤 게 백사의 진짜 모습인지 알 수가 없었다.

머리를 다 문지르고 난 백사는 금장생을 보았다.

금장생은 머리 감는 방법을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백사는 금장생을 그대로 따라 했다.

“나는 머리를 감은 다음 세수를 해.”

세수 역시 조두를 풀어서 했다.

세수가 끝나고 목욕하는 법을 모두 가르쳤다.

“이제 혼자 할 수 있겠지?”

금장생은 백사를 보며 물었다.

“크!”

백사는 웃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금장생 앞에 등을 보이고 섰다. 그리고 두 팔로 등을 닦는 시늉을 했다.

“손이 안 닿는다고?”

“크!”

“알았다.”

금장생은 조두를 풀어 백사의 등을 문질렀다.

“응?”

금장생의 손이 우뚝 멈췄다.

백사의 몸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아직은 보통 사람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온기가 분명했다.

그는 손바닥을 심장 뒤편으로 가져다 댔다.

둥! 둥! 둥!

“맙소사!”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소리가 아주 작고 속도도 느렸지만 심장이 뛰는 게 분명했다.

“인시가 돼 가고 있는 거네.”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백사는 인시가 돼 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무튼 너는 불가사의다.”

금장생은 고개를 흔들고는 백사의 등을 씻어 주었다.

등을 씻어 주고 나서 호수에서 나갔다. 습득하는 속도가 워낙 빨라 더 이상 그가 가르쳐 줄 건 없었다.

옷을 갈아입고 백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백사는 한 식경 동안 물에서 더 놀다가 나왔다.

“요물이 따로 없네.”

물을 줄줄 흘리며 걸어 나오는 백사의 모습에 금장생은 탄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머리에 난 뿔 때문에 실제 인간이라고 하기도 힘들지만 물에 젖어 번들거리는 백사의 알몸은 정녕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정말로 요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리로 돌아온 백사는 옷을 입었다.

금장생은 한편에 굴러다니는 모자를 주워 백사의 머리에 씌워 주었다.

“밥이나 먹자.”

그리고 음식을 실은 낙타로 가서 육포와 과일 말린 걸 꺼내 왔다. 그리고 게르 옆에 앉아 먹었다.

백사는 금장생 옆에 앉아 과일 말린 것과 육포를 먹는 금장생을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얼마 후면 천 년 묵은 방귀를 뀌게 될 거야. 그때부터는 너도 음식을 먹게 돼.”

금장생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때 싸움터로 갔던 척사랑과 태월령이 터덜터덜 걸어왔다.

“끝났습니까?”

금장생은 태월령을 보며 물었다.

“응.”

태월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북막 놈들이었어.”

“북막이면…….”

“마적 질로 먹고사는 자들이야.”

“다 없앴나요?”

“이자들도 수상해.”

“누가요?”

“상단을 호위하는 호위들 말이야.”

“왜요?”

“호위치곤 너무 강해.”

“그렇게 강해요?”

“그들 중 삼 할이 강기를 발출하는 고수였어.”

“정말요?”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강기를 발출하는 고수는 무림 문파 무인들 중에 많으면 이할, 아니면 일 할 내외가 보통이다. 그리고 호위들 중에는 책임자나 혹은 수뇌급만 강기를 구사할 수 있다.

그런데 대륙황가 호위대는 강기를 구사하는 무인이 무려 서른 명이나 된단다. 놀라운 말이었다.

“내 눈으로 봤어.”

“북막은 전멸했겠군요.”

비로소 이백 명이 기습 공격을 하려고 하였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 명 정도는 잡아서 고문해 볼 걸 그랬나?’

너무 성급하게 처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없애 버렸는데 어쩔 수 없지 뭐.’

이내 고개를 지었다.

“그랬지, 뭐.”

“이제 안전하겠죠?”

“그럴 거야.”

“피곤할 텐데 쉬세요.”

“싸움은 그들이 전부 했는데 뭐. 그래도 들어가서 쉬어야겠다.”

태월령은 게르 안으로 들어갔다.

“안 들어가세요?”

금장생은 척사랑을 보며 물었다.

“여자 혼자 자는 곳으로 나보고 들어가라는 거예요?”

척사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밖에서 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척 소협처럼 곱게 자란 사람은 잘못하면 입이 돌 수도 있습니다.”

“내가 곱게 자랐다는 건 어떤 근거에서 나온 말이죠?”

“그 손.”

금장생은 척사랑의 손을 가리켰다.

“손? 내 손이 어때서 그런 거죠?”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은 손가락 마디가 굵고 손등에 주름이 많으며 손금은 복잡하면서 선명합니다.”

“내 손은 그 반대라는…….”

척사랑은 손으로 시선을 내렸다가가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손은 금장생이 말한 것과 정반대였다.

“전부 다는 아니지만 많은 경우 맞더군요.”

“할 말 없네.”

척사랑은 어깨를 으쓱했다.

금장생의 말처럼 그는 그다지 고생이란 걸 해 보지 않고 이날까지 살아왔기 때문이다.

“들어가서 주무세요.”

“그래도 한번 견뎌 보렵니다.”

척사랑은 고개를 젓고는 금장생 건너편으로 앉았다.

“그럼 저는 나무를 챙겨 오겠습니다.”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호양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장작을 한 아름 들고 왔다. 그걸 놓고 다시 숲으로 들어가 마른나무를 주워 왔다.

나무가 수북하게 쌓이자 모닥불을 피웠다.

마른나무에 불을 붙여 준 사람은 척사랑이었다.

“백사!”

금장생의 부름에 백사는 고개를 돌렸다.

“불이 꺼지려고 하면 이것들을 집어넣어. 너무 많이 넣지 말고, 늘 이 상태를 유지해.”

금장생은 모닥불을 가리켰다.

“크!”

백사의 입에서 나직한 소성이 흘러나왔다.

“어?”

척사랑은 깜짝 놀랐다. 백사가 소리가 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탓이다.

“강시가 소리를 내는 것도 정상인가요?”

그는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이 녀석은 제가 처음 제강한 강십니다.”

금장생은 백사를 가리켰다.

“모른다는 말이네요.”

“아직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강시가 말을 알아들을 거라 생각해요?”

“내일 아침이 되면 알겠지요.”

금장생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드러누웠다.

사실 그가 입고 있는 태극선의는 한서불침이라 굳이 모닥불이 필요 없었다. 그럼에도 굳이 모닥불을 피운 건 척사랑을 배려한 것이기도 하고, 보물을 가지고 있는 소문을 내지 않으려는 목적도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때 척사랑은 여태 한 걱정이 기우였다는 걸 깨달았다. 백사는 밤새도록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일행은 이른 아침을 먹고 대륙황가 상단을 따라 출발했다.

대륙황가 상단이 머물렀던 천지로 일단의 무리가 들이닥친 건 대륙황가 상단이 떠나고 사흘 후였다.

그들은 헌원중천이 이끄는 칠왕가 무인들이었다. 그들이 사막으로 길을 잡은 건 해왕가의 수장 해왕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덕분이었다.

해왕은 가짜를 세워 놓고 서쪽으로 향하다가 둔황을 지나 사막으로 들어갔다고 하였다.

그 말은 곧 금장생과 강시도 사막으로 향했다는 걸 뜻한다.

헌원중천은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아무리 감숙성을 뒤져도 금장생과 강시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한 가지. 상단처럼 다수가 움직이는 무리 속에 숨어서 움직이고 있는 것밖에 없다.

알아보았더니 최근에 감숙성을 지나간 상단은 대륙황가뿐이었다. 그래서 대륙황가 상단의 발취를 따라왔다.

“사흘 전에 떠났습니다. 그리고 전투가 있었고요.”

주위를 둘러보고 온 제갈영우가 보고했다.

“전투?”

“북막 대원 오백 명 정도가 몰살을 당했습니다.”

“오백 명이나 당했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상단 호위대는 몇 명이나 죽었느냐?”

“저희가 발견한 상단 호위대 시체는 서른 명이었습니다.”

“서른 명밖에 죽지 않았단 말이냐?”

“저도 그게 이상해서 주변을 뒤졌지만 추가로 나온 시체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대륙황가 호위대가 고수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거구나.”

“그렇습니다.”

“여기도 시체가 있습니다!”

그때 천지 남쪽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시체?”

헌원중천은 제갈영우를 보았다.

“일단 가 보시죠.”

“가자.”

헌원중천은 대원들을 이끌고 천지 남쪽으로 갔다. 남쪽에서는 화가 무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냐?”

헌원중천은 물었다.

“저깁니다.”

화가 무인은 사구를 가리켰다.

“차앗!”

화가 무인이 사구를 가리키자 대기하고 있던 대원 한 명이 장풍을 쏘았다. 그가 쏜 장풍은 모래를 약간 걷어 낼 정도였다.

장풍에 의해 모래가 날려 없어지자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들 눈에 보이는 건 서너 구의 시체뿐이었다.

“저 정도는…….”

헌원중천은 고개를 돌려 보고하던 대원을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엔 별것도 아닌 일로 상관을 부른 부하에 대한 책망의 기색이 역력했다.

“잠시만 더 지켜봐 주십시오.”

문도는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그리고 위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다섯 명이 한꺼번에 장풍을 쏘았다. 그리고 잠시 후 사구 중간 부분이 일행의 눈앞에 드러났다.

“세상에!”

“맙소사.”

“저건…….”

일행의 입이 쩍 벌어졌다.

사구 중간 지점에는 이백여 구의 시체가 줄을 맞춰 누워 있었다.

“정체는…….”

“모두 낭인패를 지니고 있습니다.”

“낭인성에서 나온 자들이란 말이냐?”

헌원중천은 직감적으로 낭인성에 심어 둔 화가 무인들이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울러 이들의 출병을 지시한 사람이 화왕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문제는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사구로 올라가 시체를 살폈다.

“천좌!”

관찰을 끝낸 그는 제갈영우를 불렀다.

“말씀하십시오.”

“상황을 재구성해 보아라.”

“이들은 아마 대륙황가 상단의 후미를 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 죽어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게…….”

제갈영우는 설명을 하지 못했다.

“상단 호위가 이들을 없앴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정보에 의하면 상단 호위는 많아야 백 명 내욉니다. 그 정도 인원이면 앞에서 공격해 오는 북막 무인을 막아 내기에도 벅찼을 겁니다.”

“후미로 돌릴 여력이 없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북막 무인보다 적은 수이긴 하지만 무공은 더 강합니다. 즉, 북막 무인 오백 명보다 여기에 죽어 있는 이백 명이 훨씬 강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북막 무인들은 너부러져 있는 반면 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래를 덮어 숨기려고 했다는 겁니다.”

“상단과 별개인 자들이란 말이냐?”

“그렇지 않다면 굳이 시체를 모래로 덮지 않았겠지요.”

“하면 상단과 별개인 자들이 우리가 쫓는 강신술사와 흑지 계집이라고 생각하느냐?”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강신술사와 강시 그리고 흑지의 태월령이라고 하기엔 죽은 자들이 너무 강했다.

“그렇겠지.”

헌원중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신술사와 태월령 그리고 강시가 이백 명을 없앴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혹시 해왕과 함께 가는 건 아닐까요?”

찰미하가 말했다.

그녀를 비롯하여 기련산맥으로 갔던 이들도 허탕을 치고 감숙성으로 나왔다 사막에서 돌아온 헌원중천 일행과 합류한 상태였다.

“저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건 그뿐이지.”

헌원중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자들을 쫓을 건가요?”

“너는 왕들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느냐?”

“글쎄요. 당신은 궁금했나 보죠?”

“나는 어릴 때부터 궁금했다. 왕이라 부르는 그분들은 과연 얼마나 강한지, 얼마나 강했는지 초인이라고까지 불렸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꼭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 기회가 왔군요.”

“그렇다.”

헌원중천은 싱긋 웃었다. 그리고 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가자!”

파앗!

그의 신형이 뜨거운 태양 빛 속으로 쏘아졌다.

헌원중천 일행이 전부 떠났지만 단 한 명 떠나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령마 음사영이었다.

“저건 영기靈氣가 분명해.”

그는 사구 중간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시체들 중 한 구 앞에 멈췄다.

그 시체는 묵야에 의해 목이 잘린 자였다.

“이건?”

음사영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아, 암왕기暗王氣!”

이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그런데 사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뾰족한 그것은 여자 목소리가 분명했다.

“어떻게…….”

음사영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이 여자 목소리를 냈다는 것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을 받은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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