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66)
생시
“죽일!”
사중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부하가 그렇듯 쉽게 당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상대가 어떤 자인지 아는 것과 상관없이, 다른 곳에서 먼저 싸움이 벌어지면 무공을 어느 정도 하는 자라면 그곳으로 달려간다.
그렇다면 후방에는 무공을 익히지 않았거나, 익혔다고 해도 상당히 약해 도움이 되지 않는 자만 있어야 한다.
사중손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가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부하 열 명이 순식간에 죽임을 당하고 만 것이다.
“쳐라!”
사중손은 공격 명령을 내렸다.
부하 중 누군가를 지목하지 않았다는 건, 전부가 나서서 두 명을 없애라는 명령이었다.
“차앗!”
“타하!”
“하아!”
낭인들은 나직한 기합과 함께 금장생과 백사를 향해 쏘아져 갔다.
“우리도 달려 볼까?”
금장생은 달려오는 적을 향해 마주 달려갔다.
‘혈반은 몇 개나 있습니까?’
금장생은 달려가며 물었다.
―쉰 개가 들어 있다. 하지만 그걸 다 사용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전부 사용하기도 전에 되돌아온다는 건가요?’
―그런 것도 있지만 하나의 혈반을 사용하는 데 막대한 정신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혈반은 힘과 정신력이 하나가 됐을 때 최강의 위력을 발휘한다.
‘가장 많이 사용한 게 몇 갭니까?’
―서른 개다.
‘그가 마천인인가요?’
―맞다.
‘저도 도전을 해 봐야겠네요.’
“차앗!”
날카로운 기합과 함께 적 한 명이 금장생을 향해 몸을 날렸다.
“엇!”
하지만 사내는 당황했다. 그의 생각에 이 장 정도 떠오를 생각으로 바닥을 찼는데 생각과 달리 일 장도 채 떠오르지 못한 것이다.
바닥이 모래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평소와 같은 힘으로 찬 결과였다.
당혹스러움은 곧 손발의 얽힘으로 이어졌다. 사내는 자신의 무공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스윽!
그런 사내를 향해 금장생은 왼팔을 들어 올렸다.
“죽음을!”
나직한 외침이 흘러나왔다.
슉!
건틀릿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 같더니 금장생을 공격한 사내의 목이 쩍 갈라졌다.
휙!
금장생은 곧바로 오른편으로 이동했다.
방금 그가 서 있던 자리로 검 한 자루가 파고들었다.
금장생의 왼팔이 방향을 틀고, 붉은 광채가 튀어 나갔다. 금장생의 손과 발은 빠르게 움직였다.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가 혈반 한 개를 날리고, 한 걸음 물러나 두 개를 날리고, 오른편으로 구른 후 세 개를 날리고 왼편으로 한 걸음 움직이면서 네 개를 날렸다.
금장생이 움직일 때마다 혈반의 수는 늘어났다.
건틀릿을 떠난 혈반은 상대를 없애고 바로 돌아왔다. 쏘아지는 곳과 들어오는 곳이 다른 듯, 발출과 회수가 동시에 일어났다.
그래서 서른 개 이상을 발출하는 게 쉽지 않다고 한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는, 모든 혈반을 머릿속으로 조종한다는 게 더 어려웠다.
적과 멀리 떨어진 상황이라면 쉬울지 모르지만 바로 앞에서 적의 숨소리를 들으며 공격도 피해야 한다.
“무기를 피하는 건 어렵지 않지. 한 치가 됐든 반 치가 됐든 베이지 않으면 되니까.”
금장생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간발의 차로 적의 무기를 피하며 혈반을 날렸다.
건틀릿에서 쏘아진 혈반은 정확하게 목의 대동맥을 갈랐다. 대동맥이 잘리면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손으로 막아도 소용없다. 머리로 가는 혈액의 공급이 끊기면 금세 죽음이 찾아온다.
스악! 스악! 스악!
소리 없는 죽음이 적을 찾아갔다.
그리고 적은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면서 죽음을 맞이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금장생의 움직임은 점점 빨라졌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무공을 익힌 자가 펼치는 신법 같았다. 움직임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적의 무기를 피할 때 많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적의 무기에 붙은 것처럼 피했다.
아니, 피했다는 표현보다는 흘렸다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이었다.
두 발은 춤을 추듯 가볍게 움직였다.
왼팔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혈반이 네 개에서 열 개까지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혈반의 위력은 가공했다. 무기마저도 뎅겅뎅겅 잘라 내며 적을 도륙했다.
적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퍼억!
스악!
“크악!”
쿵!
휙!
“아악!”
금장생과 달리 백사의 움직임은 무거웠다.
그녀가 둔탁해 보이는 건 칠 장에 달하는 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움직임 자체가 느렸다.
하지만 그녀의 무기인 암흑창의 움직임은 달랐다.
암흑창을 휘두를 때마다 공간이 잘렸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자들도 함께 잘려 나갔다.
한 공간을 잘라 내고 나서 다른 공간을 잘랐고, 그 공간을 잘라 내면 또 다른 공간을 잘랐다.
턱!
이마에 붙어 있는 부적이 거추장스러운 모양이었다. 백사는 신경질적으로 부적을 뜯어냈다. 그리고 주머니 안으로 쑤셔 넣었다.
“캬아우우우우!”
백사의 입에서 짐승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상황은 백팔십도 달라졌다.
육중하던 움직임이 먹이를 사냥하는 맹수처럼 빨라졌다. 그녀는 번개처럼 움직여 다니며 적을 도륙했다.
“저, 저…….”
사중손은 믿기지가 않았다.
아군 이백 명은 저들을 상대하기 위해 출병한 게 아니다. 대륙황가를 호위하고 있는 일백 명을 없애기 위해 출병했다.
그리고 아군의 희생은 쉰 명 정도로 예상했다. 즉, 백쉰 명은 살아서 귀환할 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대륙황가 호위대는 구경도 못 해 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 그것도 단 두 명에게.
“하지만 너희도 사람인 이상…….”
사중손은 이를 악물었다.
“전력을 다해 밀어붙여라! 죽여라! 공격…… 허억!”
사중손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느닷없이 뒤통수 쪽에서 진득한 살기가 감지되었다. 오랜 경험을 통해 얻은 육감은, 몸을 돌린다고 해도 막지 못할 거란 경고를 보내왔다.
그는 재빨리 상체를 숙이고 앞으로 굴렀다.
털썩!
하지만 너무 급해서 제대로 구르지 못한 듯, 여력을 이용해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을 본 상태로 눕고 말았다.
“휴우!”
일어나지 못하고 볼썽사납게 나뒹굴고 말았지만 사중손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진득한 살기를 머금었던 무기를 피했고, 숨이 붙어 있다. 볼썽사납게 나뒹군 건 목숨을 구한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나저나…….”
사중손은 눈동자를 굴렸다. 이렇게 나뒹굴게 만든 무기를 찾으려고 눈동자는 바삐 움직였다.
“응?”
그때 그의 눈에 작은 물체가 잡혔다. 그 물체는 수십 장 상공에 있었다.
처음엔 손톱만 했던 그것은 점점 커졌다.
“저게…… 헉!”
사중손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작은 물체의 크기가 커진 이유를 비로소 알아차렸다. 그건 바로 이편을 향해 가공할 속도로 쏘아져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 피해야…….”
그가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옆으로 구르는 거였다.
사중손은 재빨리 굴렀다. 그의 몸이 모로 세워진 순간, 혈반이 목 가장자리로 파고들었다.
“컥!”
사중손의 입에서 짤막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이어 목으로 파고들었던 혈반이 빠져나가고 피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걸로 끝이었다. 사중손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빠른 승리를 거두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휘관을 없애는 거지.”
금장생은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왼팔을 내밀었다.
슥!
사중손의 목으로 파고들었던 혈반이 건틀릿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혈반에는 피가 한 방울도 묻어 있지 않았다.
“크아악!”
“아아악!”
“캬우우우!”
스악!
휘이익!
멀지 않은 곳에서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들려왔다. 백사에게 당한 자들이 내지른 비명이었다.
“아무튼!”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백사가 저런 엄청난 실력자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저건 활시 단계가 아니라 이미 생시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걸 뜻한다.
백사가 생시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가장 큰 증거는 이마에 붙은 부적을 스스로 떼어 내 버린 거다.
시야를 가리는 부적에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에 떼어 낸 게 분명하다. 하지만 부적이 없어지면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진다. 간혹 저렇게 괴성을 내지르는 게 그 때문이다.
“인시가 됐을 때 어떤 말을 할지가 가장 궁금하네. 이크!”
피식 웃던 금장생은 상체를 뒤로 젖혔다.
그의 허리가 거의 구십 도 가까이 뒤로 꺾이고, 그 위로 검 한 자루가 횡으로 지나갔다.
그 순간 금장생의 오른손이 허리춤으로 향했다. 곧이어 묵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묵야는 평소 모습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먹물처럼 새카만 색이었는데, 지금은 검날 좌우측에 붉은빛을 띤 날이 튀어나와 있었다. 붉은색 날의 폭은 한 치(3센티미터) 정도였다.
좌우측에 날이 생겨나자 묵야는 광폭검이 되었다.
금장생은 상체를 세우면서 묵야를 횡으로 쓸었다.
그리고 왼팔을 좌에서 우로 이동하며 혈반을 쏘았다.
둥실!
머리 하나가 떠오르고, 떠오른 머리와 몸통 사이로 일곱 개의 혈반이 통과해 갔다.
“컥!”
“윽!”
“억!”
곧이어 나직한 비명과 함께 일곱 개의 피 분수가 생겨났다.
파앗!
금장생의 신형이 오른편으로 튀어 나갔다.
이번엔 왼팔이 먼저 움직이고 오른손에 든 묵야가 나중에 허공을 갈랐다.
순서는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일곱 개의 피 분수가 생겨나고 머리 하나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아아아아악!”
세 번의 비명을 끝으로 주위엔 적막이 찾아들었다.
슥! 슥슥! 슥슥슥
날아갔던 혈반도 모두 제자리로 찾아들어 갔다.
척!
그리고 백사는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던 부적을 꺼내 자신의 이마에 붙였다.
그러고는 금장생에게로 걸어갔다.
“정리하자.”
금장생은 주변에 너부러진 시체들 중 한 구를 질질 끌고 사구로 향했다.
백사는 멍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우리가 싸운 흔적을 남겨서 좋을 게 없어서 그래.”
걸음을 멈춘 금장생은 백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크!”
나직한 소리를 낸 백사는 시체 두 구의 다리를 잡고 질질 끌고 갔다.
둘은 사구 중간 지점에 시체를 놓고 돌아왔다. 그리고 나머지 시체들도 옮겼다.
시체를 옮기는 작업은 거의 한 시진 이상 계속되었다.
시체를 전부 옮기고 나서 사구 정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백사와 함께 모래를 아래로 밀었다.
모래 양이 점점 많아지더니 눈사태가 난 것처럼 쏘아져 내렸다.
잠시 후 이백 구의 시체는 모래로 덮였다. 발 같은 게 조금씩 보이긴 했지만 내버려 두었다.
사구에서 내려온 금장생은 곧바로 호수로 들어가 온몸에 묻은 모래를 씻어 냈다.
“너도 씻어.”
밖으로 나온 금장생은 물기를 털며 말했다.
“킁!”
백사는 콧소리를 내더니 옷을 벗어 던지고 호수로 들어갔다.
호수로 들어간 백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물의 느낌이 생소한 듯 손바닥을 펼쳐 물을 떠 보았다.
잠시 물을 쳐다보던 백사는 다시 물을 퍼 머리 위로 끼얹었다.
“크!”
기분 좋은 듯한 콧소리가 백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텀벙!
이어 두 팔로 물을 후려쳤다.
그녀는 허공으로 솟구치는 물방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물이 전부 떨어지자 다시 후려쳤다.
그녀의 행동은 마치 재미있는 놀이를 발견한 어린아이 같았다. 몇 번이고 쉬지 않고 물을 후려쳤다.
그러다 그것도 지겨운 듯 금장생을 돌아보았다.
“씻어!”
금장생은 몸을 씻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백사는 알아듣지 못했다. 고개를 갸웃하며 금장생을 바라볼 뿐이었다.
“끙!”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옷을 벗고 조두를 챙겨 호수로 들어갔다.
백사는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목욕하는 순서는 사람마다 다른데, 나는 먼저 머리를 감아.”
금장생은 먼저 머리를 숙여 물을 끼얹었다. 그러자 백사도 그대로 따라 했다.
“두 번째 할 건 이걸 풀어서 머리에 바르는 거야.”
금장생은 조두를 손바닥에 풀어 문질렀다. 곧 풍성한 거품이 생겨났다.
백사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금장생의 손바닥에 생겨난 거품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그러다가 커다란 방울이 터지자 활짝 웃었다.
물론 웃음소리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으!”
목소리가 나오지 않자 답답한 듯 백사는 목을 쥐고 마사지하듯 주물렀다.
“넌 강시야, 강시. 강시는 말을 하지 못해.”
금장생은 백사의 코를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인간!
“응?”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