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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62화 (62/524)

황금가 (62)

“하지만…….”

주인은 말끝을 흐렸다.

그는 손수 빚은 술로 장사를 해 보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사장님은 술을 대량으로 빚어낼 방법만 찾아내면 됩니다. 양조장을 짓는 것과 유통은 제가 다 하겠습니다. 분배는 원 재료비를 제외한 상태에서 제가 칠, 사장님이 삼입니다. 어떻습니까?”

“저는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까?”

“돈을 투자하면 사장님 몫이 더 많아질 겁니다.”

“돈은 없습니다.”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제가 다 낼 수밖에 없겠네요.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양조장을 지을 땅을 알아봐 주세요. 그리고 술 이름은 천주泉酒로 하고요.”

“천주요?”

“‘산서성 주천의 물로 술을 빚으면 명주가 나오고, 감숙성 주천은 샘물 자체가 명주라.’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그리고 한나라 때 표기대장군 곽거병의 전설을 잘 활용하면 충분한 홍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이 사람?’

척사랑은 깜짝 놀랐다.

그 역시 금장생과 마찬가지로 술맛이 대단하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이 술을 대량생산해서 팔아먹을 생각은 못 했다. 기껏해야 몇 병을 사 가지고 가서 마실 생각만 했다.

그런데 금장생은 사업을 구상한 것이다.

자기와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사람이라고 척사랑은 생각했다.

“물론 양조장 지을 땅을 알아보기 전에 계약서를 먼저 작성해야 하겠지요. 하시겠습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저야 뭐 한 푼도 안 들어가는 거니까…….”

“좋습니다. 그럼 가서 지필묵을 가져오십시오.”

“아, 알았습니다.”

주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금장생 앞에 종이와 붓, 먹이 놓였다. 금장생은 거침없이 계약서를 써 내려갔다.

‘사업하는 집안 출신이네.’

척사랑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집안 출신은 술맛만 보고 사업을 하겠다고 하지도 못할뿐더러 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한다.

금장생이 작성하는 계약서는 분쟁이 발생했을 때 해결하는 방법까지 꼼꼼히 적혀 있었다. 전문가의 냄새가 물씬 풍겨 왔다.

사업이 흥하든 망하든 계약서에 언급된 내용 이상의 것은 절대 요구하지 않는다.

계약서 맨 마지막 줄은 그렇게 쓰여 있었다.

그는 같은 내용을 두 부를 작성하여 가장자리를 붙인 다음 수결을 하고 주인에게도 수결을 시켰다. 그러자 수결은 두 장이 하나로 합쳤을 때 완벽한 모양이 되었다.

금장생은 한 장을 주인에게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양조장 자리는 바로 옆에 맛 좋은 물이 있어야 합니다.”

“이 술은 제 집에 있는 샘물로 만든 건데…….”

“물은 잘 나옵니까?”

“지금까지 마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럼 양조장 자리는 정해졌군요. 자, 한잔하시죠.”

금장생은 각자의 술잔을 채웠다.

그렇게 밤새도록 술을 마신 그는 새벽이 돼서야 객실로 올라갔다.

원래는 아침에 출발해야 하는데 사업 때문에 시간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객잔에서 석관영의 답신을 기다리기로 했다.

사람이 온 건 이틀 후였다.

객잔으로 들어온 자는 다름 아닌 석관영이었다.

“혹시 날아온 겁니까?”

금장생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전서구가 가는 데 하루는 걸릴 테고, 아무리 빠른 신법을 구사한다고 해도 낙양에서 여기까지 하루 만에 올 수는 없다.

“이쪽으로 오다가 소식을 들은 거요.”

석관영은 금장생 건너편으로 앉으며 말했다.

“그럼 갱신 건에 대해서도 들었겠군요.”

“들었소.”

석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천 냥짜리 계약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걸로 압니다.”

“이곳에서 낙양까지만 가면 끝납니다. 추격자들도 다 따돌린 상태라 힘들 것도 없고요.”

“만일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면 어떻게 하겠소?”

“원계약대로 낙양으로 가야지요.”

“제 주인께서 진노하실 겁니다.”

“댁이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 그 사람은 내게는 계약 상대방일 뿐입니다. 계약서에 적힌 대로 했다고 화를 낸다는 건 상식을 가진 성인이 할 짓은 아니지요.”

“그렇다면 주인께서 말한 곳으로 이동은 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오?”

“태산이나 보타산으로 간 사람들이 도착하려면 사오일은 더 걸릴 테니까 아직 시간이 충분한 거 아닌가요?”

“…….”

석관영은 할 말이 없었다.

설마 금장생이 그것까지 파악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계약은 갱신하시겠습니까?”

금장생은 다시 물었다.

“그렇게 합시다.”

석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주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는 품속에서 오천 냥짜리 전표와 계약서를 꺼냈다.

“나는 현금이 좋은데.”

금장생은 전표를 보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오천 냥을 무슨 수로 들고 다닌단 말이오?”

“없어서 그렇지 주기만 하면 오천 냥 아니라 오만 냥도 얼마든지 들고 다닐 수 있는데.”

“받을 거요, 말 거요!”

“전표밖에 없는데 받지 않을 수 없잖습니까. 하지만 다음부터 저와 계약할 땐 반드시 현금으로 준비해 주십시오.”

금장생은 전표를 받고 계약서에 수결을 했다. 그리고 물었다.

“함께 가실 겁니까?”

“아니오. 여기도 계약 갱신 건이 아니었다면 오지 않았을 거요.”

“그럼 나만 가야겠군요. 죄송한 말이지만 가는 길에 마차 한 대만 구해 주십시오.”

“마차를 타고 갈 생각시오?”

“감시하는 자들이 많아서요. 이왕이면 상단 마차와 비슷한 걸로 구해 주십시오.”

“알았소. 그런데…….”

“강시를 보고 싶은 겁니까?”

“그렇소.”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장생은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혈종을 꺼냈다. 그리고 가볍게 흔들었다.

딸랑!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백사! 이리 와!”

덜컹!

금장생이 부르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백사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기절하겠군.”

석관영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강시가 여자라는 것도 놀랍지만, 그보다 사람과 똑같이 걷는다는 게 더 놀라웠다.

비단 석관영뿐만이 아니었다. 척사랑 또한 백사를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랜 세월 방치된 바람에 저렇게 된 것 같습니다.”

“저게 일반 강시와 다른 이유가 오랜 세월 때문이라는 거요?”

“사실 저도 백사의 상태를 정확하게 설명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처음 제강을 했을 때 백사는 일반 동시나 강시처럼 각 관절이 굳은 상태였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관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거요?”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력은 어느 정도요?”

“강기가 어린 무기가 아니면 몸을 잘라 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어지간한 맹수보다 더 빠르고요.”

“완벽한 살인 무기란 말이구려.”

“완벽이란 말을 쓰는 건 그렇지만 살인 무기라는 건 맞습니다.”

“알았소. 내일 새벽까지 마차를 구해 주도록 하겠소.”

석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작별 인사를 하고 객잔을 나갔다.

금장생 근처에 있는 두 사람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강시만 제대로 운송해 주면 다른 건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다시 올라가.”

금장생은 강시를 보며 말했다.

다음 날 잠에서 깬 금장생은 가장 먼저 마구간으로 갔다.

마구간에는 말 한 마리가 끄는 마차가 세워져 있었다. 석관영이 구해 놓은 마차였다.

마차 안에는 서찰이 한 장 놓여 있었다.

금장생은 서찰을 펼쳤다.

이틀 후 대륙황가 상단이 이곳을 지나갈 거요.

서찰에 적힌 건 그것뿐이었다.

“나머진 알아서 하라는 거네.”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그는 마차를 끄는 말의 목을 가볍게 쓰다듬더니 밖으로 나갔다. 양조장을 지을 목수를 만나러 갈 참이었다.

시장으로 가서 목재상을 먼저 들렀다. 그런 다음 객잔 주인의 소개로 왔다면서 일을 맡길 목수를 찾는다고 했다.

“어떤 일이오?”

목재소 주인은 물었다.

“양조장을 짓는 일입니다. 양조장 규모는 하루에 오백 병 정도는 생산해야 하고요.”

“하루 오백 병이면 작은 규모는 아니군요. 그런데 어떤 술을…….”

“그건 비밀입니다. 그보다 목수를…….”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양조장 경험이 있는 목수를 데려와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목재소 주인은 밖으로 나갔다.

그가 돌아온 건 반 시진 후였다. 함께 온 목수는 세 명이었다.

한 명은 중원인이고 한 명은 서역인과 중원인의 피가 섞인 혼혈이고, 나머지 한 명은 토번 사람이었다.

“양조장을 지어 본 경험 있는 분 있습니까?”

그러자 세 사람이 전부 손을 들었다.

“설계도를 그려 보라고 할 거니까 정말로 양조장을 지어 본 게 아니라면 손 내리세요.”

그러자 중원인과 토번 사람이 손을 내렸다.

“어느 정도 규모의 양조장을 지어 보았습니까?”

금장생은 혼혈 사내에게 물었다.

“하루 이천 병을 생산하는 양조장까지 지어 보았습니다.”

“좋습니다. 그 정도면 아주 좋습니다.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포툽니다.”

“좋습니다, 포투. 그럼 지금부터 양조장의 설계도와 비용을 뽑아서 천밀 객잔으로 오세요. 이틀은 더 머물 거니까 차분하게 해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포투는 고개를 숙였다.

“그럼 수고하세요.”

금장생은 인사를 하고 목재소를 나왔다. 그리고 시장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점심때 맞춰 객잔으로 돌아왔다.

‘저 사람……?’

금장생의 시선이 구석으로 향했다.

사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자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사하셨소?”

척사랑은 빙긋 웃으며 물었다.

“아직 안 먹었습니다.”

“그럼 함께 먹읍시다. 이것저것 시켰더니 처치 곤란하게 됐지 뭡니까.”

“감사합니다.”

금장생은 척사랑 건너편으로 앉았다.

“소저도 오세요.”

척사랑은 아래로 내려온 태월령을 불렀다.

“나도 앉아도 돼요?”

“세 사람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입니다.”

“고마워요.”

태월령도 금장생 옆으로 앉았다.

“이거요.”

태월령이 앉자 금장생은 양피지 책자를 건넸다.

“이건 뭐지?”

태월령은 물었다.

“태 소저가 그렇게 얻고 싶어 했던 거요.”

“혈마…… 비, 비밀을 풀었어?”

태월령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확인해 보세요.”

“아, 알았다.”

태월령은 급하게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이내 얼굴이 일그러졌다.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모르는 글자는 넘어가세요. 그럼 아는 글자가 나올 겁니다.”

“그래?”

태월령은 책장을 넘겼다.

금장생의 말대로였다. 다섯 장을 넘기자 혈마 목지광이란 이름과 함께 적신천사마공이란 무공 구결이 나타났다.

“고맙다. 그런데 너도 봤어?”

“한 번이라도 사용한 물건은 절대 팔지 않는다는 게 제 신념입니다.”

“사용한 물건?”

“시장에서 막 사 온 물건이라고 해도 한 번 사용하면 더 이상 새 물건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물건을 파는 건 사기죠.”

“그러니까 넌 안 봤다는 거네?”

“네.”

“그런데 돈을 받고 나서 준다고 하지 않았어?”

“차용증과 태 소저의 인간성을 믿어 보기로 했습니다.”

“차용증을 써 달라고?”

“당연히 써 주셔야지요.”

금장생은 주인을 불렀다. 그리고 지필묵을 가져오라고 해서 십만 냥에 대한 차용증을 썼다.

“그런데 왜 갑자기 마음이 변한 건데?”

태월령은 책을 품속으로 집어넣고 나서 물었다.

“헤어져야 할 것 같아서요.”

“헤어져?”

“저는 내일 천산으로 가야 하거든요.”

“천산에 뭐가 있는데?”

“제가 맡은 건 강시 운송입니다. 그 이상의 것은 알지도 못할뿐더러 설사 안다고 해도 말해 줄 수 없습니다.”

“영업 비밀이라고?”

“네.”

“알았어, 인마. 안 물으면 되잖아.”

태월령은 활짝 웃으며 금장생의 등을 가볍게 때렸다. 그리고 그녀의 방으로 올라갔다.

“어떤 무공인지 궁금하군요.”

척사랑은 계단을 올라가는 태월령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알면 다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다쳐요?”

척사랑은 금장생을 보았다.

“저 여자 엄청 세거든요.”

“풋!”

척사랑은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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