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59)
전서구 한 마리가 하늘을 날아갔다.
둔황에서 날기 시작한 전서구가 들어간 곳은 감숙성 난주에 있는 개방 분타였다.
전서구를 담당하는 자는 다리에서 죽통을 꺼내 분타주 이목형에게 가져갔다.
내용을 확인한 이목형은 바로 총타에 전서구를 보내라고 지시하고 분타를 나섰다.
반 시진 후 그는 난주에서 가장 큰 천화 객잔에 도착했다. 개방에 일을 맡긴 고객이 투숙한 객잔이었다.
용건을 전하고 기다리기를 한 식경.
젊은 청년이 나왔다.
그는 헌원중천이었다.
“놈을 찾았소?”
헌원중천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찾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감숙성에서 발견한 거요?”
“둔황입니다.”
“둔황?”
찻잔을 들어 올리던 헌원중천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정말 둔황에서 발견했소?”
헌원중천은 다시 물었다.
“그렇습니다.”
이목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빌어먹을!”
헌원중천은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오판.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이었다.
흑사 무인을 치고 난 후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그 회의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엄밀하게 따지면 철수가 아니라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중원으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작전구역을 떠난다는 의미에서 보면 철수라고 해도 무방하다.
회의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철수를 결정한 건 회의 주재자인 그였다.
즉, 그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좁은 둔황에서 해결이 가능했던 일을 중원으로 끌고 나간 셈이 되고 말았다.
문제는, 강신술사가 둔황을 벗어났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강시에 대해 소문이 나면 중원의 무림 세력이 모두 관심을 보일 것이다.
각 왕들이 바라는 상황이 절대 아니었다.
그렇게 되는 건 무조건 막아야겠지만, 현재 상황으로 보면 명백한 작전 실패다.
“놈의 현재 위치는 어디요?”
본래 신색을 되찾은 헌원중천이 물었다.
“어젯밤에 둔황의 객잔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마 지금쯤 그곳을 나와 동쪽으로 향하고 있을 겁니다.”
“감시는 계속하고 있소?”
“네.”
“천좌!”
헌원중천은 뒤쪽에 앉아 있는 제갈영우를 불렀다.
“말씀하십시오, 대천좌.”
“지도를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제갈영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가 지도를 구해 온 건 반 시진 후였다.
“여섯 분은 이쪽으로 오시오.”
헌원중천은 한편에 앉아 있는 여섯 명을 보며 말했다. 그들은 헌원중천을 따라온 각 왕가의 무인들이었다.
―어떤 자요?
그들을 바라보던 제갈영우가 찰미하에게 전음을 보냈다.
―우리 사가에서 나온 사람은 흑사黑砂 파극이에요.
―처음 들어 보는 별호 같은데…….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서 알려지지 않아 그럴 거예요.
―직위는 어떻게 되오?
―사왕邪王 직할대인 흑풍대黑風垈 대주예요.
―엄청난 자군요.
―헌원중천 저자가 목에 힘을 주는 이유가 그 때문 아니겠어요?
―하면 다른 자들도 비슷한 직책이겠구려.
―맞아요. 저기 넉넉한 체구에 사람 좋게 생긴 자는 마가의 다섯 세력 중 한 곳인 서천장의 수장 적지영의 남편 주윤보예요. 이름보다는 서천마부西天魔夫라는 별호로 더 많이 알려져 있어요.
―아, 서천마부.
제갈영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천마부라는 별호는 그도 들어 보았다.
맞는지 그것까진 알 수 없지만 서천마부의 원래 직업은 마부였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서천장의 수장인 적지영과 눈이 맞아 혼인을 했고 졸지에 서천장 이인자가 된 입지적인 인물이라고 하였다.
―전직이 마부였다고 무시하면 안 돼요. 그의 무공은 부인인 적지영보다 더 강하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니까요.
―혼인하고 난 뒤부터 무공을 익혔을 텐데…….
―엄청난 천재니까 마부라는 신분을 극복하고 간택이 되지 않았을까요?
―간택?
―많은 사내들 중 선택을 받은 거니가 간택이죠.
―쿡!
제갈영우는 피식 웃었다.
이어 그의 시선이 날카롭고 차가운 느낌의 중년인에게 머물렀다. 허리에 찬 왜도는 그가 혈가 무인이라는 걸 말해 주었다.
―혈왕 직할대인 신풍사神風死 사주 무영사無影死 구라다예요.
―저기 귀면검을 차고 있는 자는 철가 무인이겠군요.
―맞아요. 철왕 직할대인 철갑사鐵鉀士 사주 귀왕검鬼王劍 이덕무예요.
―저자는…….
제갈영우는 마치 야수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전가의 회의사신 독고랑이에요. 전왕 직할대인 청랑군단 단주고요.
―그렇구려. 그럼 저기 복면인은 누구요?
―암가에서 나온 자로, 유령마幽靈魔 음사영이에요.
―암가가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거요?
팔왕가 중 가장 신비로운 가문이 바로 암가다. 다른 가문은 대부분 실체가 있는데 암가는 가문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조차 분명하지 않다.
시체를 다루는 가문이라 그런지 하는 짓조차 유령 같았다.
―이런저런 사건을 겪으면서 가문의 보물이 유출되는 바람에 유명무실해지긴 했지만 아직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천왕지회에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랬구려.
“놈은 절대 길을 따라오지 않을 겁니다.”
바로 그때 헌원중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갈영우 일행은 시선을 돌려 헌원중천을 보았다.
“그럼 하서회랑 남쪽에 있는 기련산맥이나 북쪽의 사막을 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높겠군요.”
서천마부 주윤보가 말했다.
“그렇소.”
“감시하던 자가 보낸 전갈이 개방 분타로 가고, 개방 분타에서 우리에게로 전해질 그 시간에도 놈은 계속 움직일 건데 그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건이군요.”
“어느 쪽이 됐든 일단 움직이기만 하면 앞서갈 수 있으니까 그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요. 내가 걱정하는 건 놈이 아니라 그 계집이오. 감시당하고 있다는 걸 금세 알아차리게 될 거요.”
“그렇게 되면 또 숨어 버릴 거란 말이군요.”
“그렇소.”
헌원중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목형을 보았다.
“놈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바로 알려 주시오.”
“알겠습니다.”
이목형은 고개를 숙이고 객잔을 나갔다.
“출동 준비하고 대기하도록 해.”
헌원중천은 뒤편의 제갈영우 일행을 향해 말했다.
“알겠습니다.”
제갈영우는 고개를 숙였다.
출동 대기 지시는 바로 하달되었고, 모든 대원들은 긴장한 채 명령을 기다렸다.
개방으로부터 연락이 온 건 이틀 후였다.
이번에도 역시 객잔을 찾아온 자는 감숙 분타주 이목형이었다.
“사막으로 갔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파단길림사막으로 갔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아마 그자는 파단길림사막과 등격리사막을 지나 중원으로 들어갈 생각인가 봅니다.”
“파단길림사막으로 들어간 건 얼마나 됐소?”
“어제 새벽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감시는 하고 있소?”
“감시하던 방도가 사막으로 따라 들어가긴 했습니다만 연락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아시겠지만 사막은 사방이 확 틔어 있어 감시하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설사 위치를 확인했다고 하더라도 소식을 보낼 방법이 없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마을에 소식을 남기는 것뿐입니다.”
“파단길림사막에도 마을이 있소?”
“천지마다 마을이 하나씩 형성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막에서는 놈을 앞지를 방법이 전혀 없다는 거구려.”
“그렇습니다.”
“안내인은 있겠죠?”
“우리 개방 방도 중 파단길림사막에 대해 아는 자는 없습니다.”
“안내인을 따로 구해야 한다는 말이군요.”
“알아봐 드릴 수는 있습니다.”
“서둘러 주시오.”
“알겠습니다.”
“우린 다시 둔황으로 가야 하는 거요?”
“아닙니다. 가욕관까지만 가시면 됩니다.”
“들었소?”
헌원중천은 각 왕가에서 나온 여섯 명을 보며 말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여섯 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련산맥으로는 아무도 보내지 않는 겁니까?”
제갈영우가 물었다.
“기련산맥?”
헌원중천은 제갈영우를 돌아보았다.
“놈은 여우처럼 교활합니다. 감시하는 자가 있다는 걸 눈치채고 사막으로 가는 척하면서 기련산맥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파단길림사막은 하서회랑 북쪽이고 기련산맥은 남쪽이다, 천좌. 속임수를 쓰기엔 거리가 너무 멀다.”
“그렇다고 기련산맥을 완전히 포기하는 건…….”
덜컹!
그때 객잔을 나갔던 이목형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헌원중천 일행은 의아한 얼굴로 이목형을 보았다.
“다른 곳에서도 그자가 발견됐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다른 곳이라면 혹시 기련산맥을 말하는 거요?”
“네.”
“어느 쪽으로 간 자가 진짜인지 확인하지 못한 것 같은데, 맞소?”
“그렇습니다.”
“개방의 정보력이 최고라고 해서 맡겼는데 실망이군요.”
“죄송합니다. 너무 튀는 옷을 입고 있어서 그만.”
이목형은 고개를 숙였다.
개방의 가장 큰 실수는 감시하는 자들의 파악을 얼굴이 아닌 옷으로 했다는 데에 있었다.
세 명이 모두 강신술사 복장을 하고 있어서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가욕관을 지나 파단길림사막으로 들어갈 때 감시하고 있는 자들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오늘 강신술사 복장을 한 자 세 명이 기련산맥으로 들어갔다는 보고가 또 올라온 것이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까, 됐소.”
어이없는 일이긴 하지만, 사막으로 들어가기 전에 알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감숙성에서 활동하는 전 방도를 동원해서 어느 쪽이 진짜인지 알아내겠습니다.”
“만일 이번에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계약을 파기할 테니까 그렇게 아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가 보시오.”
“그럼.”
이목형은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두 조로 나눠야겠소.”
“사주는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천좌, 놈이 능숙하게 사막을 건넜다고 했느냐?”
“네. 마치 사막 부족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 기련산맥보다는 사막으로 갈 가능성이 더 높겠구나.”
“…….”
이번 질문에 대해 제갈영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떤 결정이 수반되는 질문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게 낫다는 걸 그간의 경험을 통해 배운 탓이었다.
“사막은 내가 가겠다. 나와 함께 갈 사람은 서천마부, 회의사신, 흑사 세 사람이오.”
“저희는 어떻게 할까요?”
제갈영우가 물었다.
“너희는 너희 각 가문으로 들어가서 함께 움직이면 된다.”
“알겠습니다.”
제갈영우는 고개를 숙였다.
“세 분은 기련산맥으로 가 주시오.”
헌원중천은 구라다 일행을 보며 말했다.
“알았습니다.”
“알았소.”
“네.”
무영사 구라다와 귀왕검 이덕무, 유령마 음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은 개방을 통해서 하도록 합시다.”
헌원중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객잔을 나선 일행은 헤어졌다.
헌원중천과 함께 북으로 간 자는 삼백여 명이고 구라다를 따라나선 자들은 이백 명가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