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58화 (58/524)

황금가 (58)

“도, 돈을 보면서 포근한 미소를 짓는 게 가능해?”

“태 소저는 돈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사, 사랑스러워?”

태월령의 눈이 커졌다.

“울고 있는 갓난아이 말고 해맑게 웃는 갓난아이를 볼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아세요?”

“그러니까 공연히 기분이 좋아진다는 거야?”

“네.”

“…….”

태월령은 할 말이 없었다.

나름 특이하다고 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금장생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녀가 보기엔 금장생에게 돈은 곧 신앙과 같았다.

“아무튼 먼저 일만 냥을 가져오세요. 그럼 혈마탑의 비밀을 넘겨 드리겠습니다.”

“독한 자식.”

태월령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동안 지켜본 바에 의하면 금장생은 협박한다고 말을 들을 자가 아니었다. 혈마탑의 비밀을 원한다면 그의 말을 들어줘야 할 것 같았다.

“서둘러야 할 겁니다. 늦으면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고?”

“이걸 절실하게 원하는 사람이 최소한 다섯 명은 될 것 같은데, 아닌가요?”

“우리 형제는 나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다. 너와 거래 중인 나는 빼야지.”

“뺐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섯 명이라는 거지?”

“신강태존 태천야가 있잖습니까?”

“아버지와도 거래를 할 생각이냐?”

“자식들보다 그분이 더 간절히 원할 거라는 건 저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물론 아버지가 우리보다 더 간절히 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를 비롯한 다른 형제들과 거래하는 건 심사숙고해야 할 거다.”

“살인멸구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말입니까?”

“그렇다.”

“태 소저는 살인멸구를 하지 않을 거란 말입니까?”

“처음엔 나도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을 바꿨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면 천벌받습니다.”

금장생은 혈마탑을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입구로 가서 밖을 살폈다.

바깥 상황은 여전히 같았다.

“일단 잠을 좀 더 자기로 하죠.”

다시 안쪽으로 들어간 그는 누워 잠을 청했다.

“그렇게 자고도 잠이 또 와?”

태월령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잠자는 게 아니면 딱히 할 것도 없잖습니까.”

“나처럼 예쁜 여자를 유혹해 보는 것도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유혹하면 넘어올 겁니까?”

“그거야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지.”

“풋!”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의 코에서 고른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

태월령은 황당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그녀는 금장생도 사내인 이상 수작을 걸어오지 않을 수 없다고 확신했다. 게다가 유혹하면 넘어갈 수도 있다고 언질까지 준 상태다.

그런데 금장생은 피식 웃고는 잠들어 버린다.

“준다고 해도 마다하는 사내자식은 또 처음이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백사 네 생각은 어때?”

태월령은 금장생 뒤편에 누워 있는 백사를 보며 물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백사의 눈동자가 또르르 굴렀다.

“바보라고? 맞아, 내 생각도 그래. 이 자식은 바보야. 아니, 고자야, 고자.”

태월령은 눈을 감았다.

하지만 실컷 자고 난 후고 운기행공까지 하여 피로를 완전하게 푼 상태라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뒤척였다.

그렇게 뒤척이다 밤을 맞고, 뒤척이다가 다시 저녁을 맞았다.

금장생이 일어난 시간은 자정 무렵이었다.

“이제 갈 거냐?”

태월령은 반가운 얼굴로 물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동굴 입구를 허물었다.

잠시 후 그와 태월령, 백사는 명사산을 내려왔다.

위에서 보았던 대로 월아천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장생은 주위를 꼼꼼하게 살폈다.

“여기 있네.”

바닥에서 뭔가를 주워 태월령에게 내밀었다. 그건 태월령의 무기인 일월쌍비였다.

“고마워.”

태월령은 무기를 받아 허리에 찼다.

그런 다음 두 사람은 둔황으로 향했다.

장삼은 객잔을 유심히 살폈다.

개방 감숙 분타 소속인 장삼이 활동하는 장소는 둔황이다. 무림 세력이 거의 없는 곳임에도 개방 문도가 와 있는 건 변황 세력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임무 지시가 내려온 건 저녁 무렵이었다. 이번 임무는 사람을 찾는 거였다.

감숙 분타에서 온 첩지에는 세 명이라 적혀 있고, 사내는 한 명이고 여자는 둘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세 명 모두 강신술사 복장을 하고 있으며 그들 중 한 명은 키가 칠 척에 달할 정도로 크다고 돼 있었다.

그런 자들을 찾는 건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물론 둔황에 있다는 전제하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술이나 한잔했으면…… 응?”

장삼의 눈이 커졌다.

세 명이 성벽 위에서 아래로 뚝 떨어져 내렸다.

‘저들은?’

그는 눈을 가늘게 모아 방금 성벽을 넘은 자들을 보았다.

세 명이고 강신술사 복장이며 한 명은 키가 칠 척은 족히 돼 보였다.

‘한 바퀴 둘러보러 나왔다가 왕거니를 건졌네.’

장삼은 얼른 숨었다.

잠시 후 성벽을 넘은 세 사람이 둔황으로 들어갔다.

“여자인 것도 맞네.”

세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장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용히 뒤를 따랐다.

따르는 자가 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한 금장생과 태월령은 객잔으로 향했다. 하지만 시간이 늦어 아직 문을 연 객잔은 없었다. 별수 없이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세 번을 두드리자 비로소 주인이 밖으로 나왔다.

“방과 음식이 필요한데 있습니까?”

“방은 있지만 음식은…….”

주인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돈을 드릴 테니까 남은 음식이라도 좀 주십시오.”

“찾아보겠습니다.”

그제야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은 어디로 가면 됩니까?”

“이 층 오른편에 보면 금실이 있습니다.”

“욕실도 있나요?”

태월령이 물었다.

“욕실은 일 층에만 있습니다.”

“어디죠?”

“주방 옆입니다.”

“지금 들어가면 목욕할 수 있나요?”

“찬물뿐입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요. 목욕하고 닦을 수건은 저 사람에게 주세요.”

태월령은 금장생을 가리키고는 욕실로 향했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주인은 계산대 뒤편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수건과 입욕제를 가지고 나왔다.

“얼마죠?”

수건과 입욕제를 받아 들며 물었다.

“내일 아침까지 포함해서 두 냥입니다.”

“밤늦게 들어왔으니까 싸게 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좋습니다. 한 냥만 주십시오.”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던 주인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요.”

주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금장생은 한 냥을 꺼내 내밀었다. 그리고 수건을 들고 욕실로 향했다.

“험!”

그는 헛기침을 하고 나서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왔으니까 혹시 옷을 벗고 있으면 가리라는 의미로 한 헛기침이었다.

“끙!”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태월령은 몸을 가리기는커녕 욕조 앞에서 상체를 숙여 물속에 오른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그 바람에 그녀의 모든 것이 개방되고 말았다.

“어? 왔어? 조두는?”

그녀는 상체를 숙인 상태 그대로 고개만 돌려 물었다.

“여기 있습니다.”

금장생은 태월령 옆에 수건과 입욕제를 놓았다.

“이왕 들어온 거, 등 좀 밀어 주고 갈래?”

“네.”

금장생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가지로 물을 퍼 태월령의 등에 끼얹었다.

“내가 계속 엎드려 있는 건 삼매진화를 펼치기 위해서지 널 유혹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었으면 해.”

“저도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금장생은 조두로 거품을 내 태월령의 등을 팍팍 문질렀다. 태월령의 피부는 곱게 빻은 전분 가루를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하는 김에 엉덩이와 가슴도…….”

“거긴 손이 닿는 걸로 아는데요.”

금장생은 얼른 손을 씻고 물러났다. 그리고 욕실 문고리를 잡으며 말을 이었다.

“반대로 입으세요.”

“반대로 입으라는 게 무슨 소리지?”

“장포 등은 멀쩡하니까 반대로 입으면 가슴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걸 왜 이제 말해 주는 건데?”

“예쁘잖아요.”

“예뻐?”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갖지도 않을 거면서 예쁘면 뭐해, 이 엉큼한 자식아!”

태월령은 버럭 소리쳤다.

“아무튼 사내자식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물속에 몸을 푹 담그자 온몸이 나른해졌다.

잠시 그 상태로 있던 태월령이 갑자기 부산스러워졌다. 밖에서 음식 냄새가 흘러들어 오자 참을 수가 없었다.

서둘러 몸을 씻고 금장생이 말한 대로 등이 앞으로 오도록 장포를 걸친 후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후각을 자극한 건 만둣국이었다.

금장생은 만두가 가득 올려진 커다란 접시와 국물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바람처럼 금장생 건너편으로 앉았다.

“드셔 보세요. 천상의 맛입니다.”

“그래?”

태월령은 손바닥을 슥슥 비비더니 만두 하나를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아!”

만두를 한입 깨물고는 탄성을 내뱉었다.

만두피가 터지면서 입안 가득 육즙이 감도는데 그렇게 향기로울 수가 없었다. 마치 한껏 익은 붉은 과일을 깨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거기에다 이 국물을 한입 머금으면 천당에 온 듯한 기분이 들 겁니다.”

금장생은 대접에 국물을 덜어 내밀었다.

태월령은 국물을 들이켰다. 국물은 딱 먹기 좋을 정도로 따뜻했다.

“흠!”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태월령은 대접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계속해서 들이켰다.

“정말 국물이 끝내주네.”

대접을 내려놓으면서 활짝 웃었다.

그 후로 두 사람은 대화를 잊었다. 두 사람의 대화 상대는 앞에 놓인 만두와 만둣국이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든 건 접시와 대접이 텅 빈 후였다.

“그 만두가 그렇게 맛있습니까?”

주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하며 물었다.

만두를 먹어 보지 않은 것도 아니고, 자신은 하루에도 두 번씩 먹는 게 다반사다. 하지만 맛있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누군가 먹지 않으면 버려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먹은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데 만두와 만둣국을 먹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가게 음식을 너무 천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저렇게 맛있다면 만두값을 좀 올려도 되겠네.’

주인은 그동안 미뤄 두었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그건 바로 가격 인상이었다.

‘가만, 주방에 저녁 때 뽑아 놓은 소면이 있는 것 같았는데…….’

주인은 금장생의 탁자로 다가갔다.

“저…….”

“말씀하세요.”

“소면 좀 말아 드릴까 해서요.”

“소면도 있어요?”

“저녁에 뽑아 놓은 면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육수는 늘 있는 거고요.”

“소면을 내놓으려면 삶아야 하는데 번거롭지 않겠습니까?”

“그것 때문이라면 바로 해 드리겠습니다.”

주인은 얼른 주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소면 두 그릇이 금장생과 태월령 앞에 놓였다.

“감사합니다.”

금장생은 활짝 웃으며 소면을 먹었다. 그리고 소면 맛에 대해, 태어나 처음 먹어 보는 맛이다 등의 극찬을 쏟아 냈다.

극찬에 고무된 주인은 몇 가지 음식을 더 내놓았고 금장생과 태월령은 배가 터지도록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방으로 올라갔다.

“정말 여기 음식이 그렇게 맛있어?”

방으로 들어가자 태월령이 물었다.

기가 막히게 맛있었던 건 처음 먹었던 만두 세 개와 만둣국 한 대접뿐이었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었다는 만족감과 더불어 배까지 차자 더 이상 천상의 맛이 아니었다.

보통 음식점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는 게 그녀 생각이었다.

그런데 금장생은 마지막 음식이 나올 때까지 극찬을 하면서 먹었다. 정말 맛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일부러 그런 건지 궁금했다.

“숨이 넘어갈 정도로 맛있지는 않았어요.”

“그럼 음식을 먹으면서 말했던 건 다 뭔데?”

“그 덕분에 우린 배가 터지도록 음식을 먹었고, 주인은 음식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을 갖게 됐잖아요.”

“그러니까…….”

“돈을 전혀 들이지 않고 상대방으로부터 후한 점수를 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칭찬이라고 했거든요.”

“그것도 ‘진짜 장사꾼’이 가져야 할 마음이냐?”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최고다.”

태월령은 엄지손가락을 추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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