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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56화 (56/524)

황금가 (56)

시체를 명사산 아래에 묻고 표시를 했다. 나중에 가족들이 위치를 물어 올 것에 대한 대비였다.

작업이 끝나고 나자 주위가 서서히 밝아졌다. 기나긴 밤이 비로소 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매장을 끝낸 일행은 둔황으로 향했다.

둔황의 객잔에는 찰미하 일행이 먼저 와 있었다.

그들 역시 간밤에 한바탕 싸운 듯,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인원이 왜 이리 적죠? 혁련 소협은 어디 있죠?”

일행을 본 찰미하가 물었다.

“당했소.”

제갈영우가 대답했다.

“네?”

찰미하의 눈이 커졌다.

눈짐작으로 보아도 사십여 명이 빈다. 단 한 명에게 혁련마우를 비롯한 사십여 명이 당했다는 사실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도 우리가 이렇게 당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소.”

제갈영우는 일그러진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전부 그 여자에게 당한 건가요?”

“부하들은 그자들에게 당했고, 혁련 형은 기절한 상태로 질식해 죽었소.”

“질식해 죽었다는 건?”

“물에 빠진 채 기절한 거요.”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암습을 당한 것 같아요.”

소라가 부연 설명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찰미하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쪽은 어떻게 된 거요?”

제갈영우가 물었다.

“흑지 무인과 싸움이 있었어요. 열 명이 당했고요.”

“그럼 총 몇 명 남은 거요?”

“우리를 포함해서 서른세 명이에요.”

“돌겠군.”

제갈영우는 허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작전을 시작할 때 지휘관 여섯 명을 포함하여 총 백스물여섯 명이었다. 그런데 삼분의 이 가까이를 잃은 것이다.

해가 무인과 전쟁을 치른 것도 아닌데 대원의 삼분의 이를 잃었다고 하면 수뇌들이 과연 이해해 줄까. 절대 아닐 것이다.

이번 일로 인해 어쩌면 무능한 자로 낙인찍힐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는 없어.’

제갈영우는 주먹을 힘껏 그러쥐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죠?”

찰미하가 물었다.

“우리는 임무를 계속해야 하오.”

제갈영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강신술사 위치는 파악하고 있는 건가요?”

“모르오. 하지만 놈이 갈 곳은 해가가 있는 낙양뿐이오.”

제갈영우가 말했다.

“낙양으로 가는 길은 수백 가지도 넘어요, 제갈 소협. 그리고 우리 인원으로는 그 길을 모두 감시할 수 없어요.”

중원과 사막은 완전히 다르다.

타클라마칸을 동서로 횡단하는 길은 하나뿐이다.

물론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련한 사막 부족이라고 해도 모르는 길로는 절대 가지 않는다. 타클라마칸은 그만큼 무서운 곳이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타클라마칸을 횡단하는 자는 늘 같은 길로 다녔다. 비교적 쉽게 추격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중원은 다르다.

설사 개발되지 않은 길로 간다고 해도 물이 없어 죽거나 음식이 없어 굶어 죽을 일은 절대 없다. 마음만 먹으면 물과 음식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도망치는 자를 쫓기에는 수적으로 열세다.

“중원에는 사람을 찾아 주는 단체가 있다고 들었소이다.”

최곤이 말했다.

“개방을 말하는 건가요?”

찰미하가 물었다.

“그렇소.”

최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한두 푼으로 움직이는 단체가 아니에요. 그리고 개방에 의뢰를 하는 순간 우리가 강시를 쫓는다는 사실을 중원 전체가 알게 돼요.”

“사람을 찾는 거라면 개방보다는 하오밀문이 더 낫소.”

듣고 있던 제갈영우가 말했다.

“하오문 역시 막대한 금액이 있어야 하고, 비밀이 지켜진다는 보장이 없어요.”

“찰 소저가 말한 수백 군데 길을 전부 감시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지역을 감시할 수 있는 조직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그런 조직은 하오밀문이나 개방 두 곳뿐이오.”

짝! 짝! 짝!

문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일행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응?”

제갈영우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박수를 친 자는 그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아예 중원 전역에 우리가 천 년도 훨씬 더 된 강시를 찾고 있다고 소문을 내지 그러나?”

“댁은 누구죠?”

찰미하는 사내를 훑듯이 보았다.

사내는 많이 쳐준다고 해도 이십 대 후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키는 적당히 크고 어깨는 떡 벌어졌다.

오만함으로 가득한 커다란 눈은 늘 명령을 내리는 위치에 있었다는 걸 말해 준다. 더불어 오만함의 빙점이라도 찍듯 콧대는 가파른 절벽처럼 높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술. 여자 입술처럼 붉은 입술은 기형적으로 얄팍해 차가운 느낌을 준다.

오만하고 차가운 인상의 미남.

“나는 헌원중천이오.”

사내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헌원중천의 뒤에는 여섯 명이 따르고 있었다.

“대천좌大天座?”

찰미하는 나직하게 소리쳤다.

대천좌 헌원중천.

그는 화왕火王의 적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공식 석상에 등장한 적이 없어 얼굴을 아는 자가 없다. 그랬던 그가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헌원중천 뒤에 서 있는 여섯 명은 각 왕가의 인물들이었다.

“맞소. 나를 그렇게 부르기도 하오.”

헌원중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천좌는 별호이면서 직함이었던 것이다.

“대천좌께서 여긴 웬일이십니까?”

제갈영우가 물었다.

대천좌 헌원중천의 등장은 화가 출신인 그에게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었다.

“먼저 여러분이 기분 나빠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헌원중천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제갈영우 일행을 한 명씩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태산과 보타산으로 보냈던 조가 임무에 실패했다는 보고를 받은 여섯 왕께서는 좀 더 강한 힘을 가진 조직이 있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셨고, 대외사對外社란 조직을 창설했소. 그리고 그 조직을 내게 맡기셨소.”

암가를 제외한 각 왕가에서 일백 명씩 차출하여 총 인원이 육백 명이란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제갈영우는 다시 물었다.

“기존에 임무를 수행하던 대원들은 모두 대외사 소속으로 바뀌었소.”

“그랬군요.”

제갈영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서로 인사나 해 볼까?”

이야기가 끝나자 헌원중천의 말투가 바로 하대로 바뀌었다.

“제갈 천좌는 아니까 생략하도록 하지.”

헌원중천의 시선이 가장 먼저 청랑전객 막시후에게로 향했다.

“나는 전가의 청랑전객 막시후라 하오.”

아무리 상급자라고 해도 다른 왕가 무인에게 공대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잘해 보자.”

막시후의 내심을 알아차린 듯 헌원중천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철가의 최곤입니다.”

이어 최곤이 인사를 했다.

“반갑다. 잘 부탁한다.”

“나는 혈가의 소라예요.”

“잘 부탁한다.”

“나는 사가의 찰미하예요.”

“잘 부탁한다.”

인사가 끝나자 헌원중천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제갈영우를 보며 물었다.

“현재 상황을 알고 싶다.”

“지금…….”

제갈영우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그 계집에게 마가의 혁련마우를 비롯한 사십여 명이 죽었다는 거냐?”

“네.”

“게다가 놓치기까지 했고?”

“그렇습니다.”

“왕들께서 새로운 조직을 창설한 이유를 알겠군.”

헌원중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탁자 위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 계집과 강신술사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라고 생각하느냐?”

고개를 든 그가 물었다.

“낙양입니다.”

“해가로 갈 거란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해졌구나.”

“문제는 낙양으로 가는 방법이 아주 많다는 겁니다.”

“모든 길을 감시하는 게 불가능하단 말이냐?”

“네.”

“아까 내가 들어올 때 개방과 하오밀문을 이용하자는 이야기를 한 까닭이 그것이더냐?”

“네. 하지만 그들에게 청부를 하게 되면 강시에 대한 비밀이 새어 나갈 수 있고, 그럼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굳이 모든 걸 다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찾는 자들의 인상착의만 말해 주면 된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개방이나 하오밀문은 그들을 찾는 이유를 알아내려고 할 겁니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알게 될 테고요.”

“그들이 강시에 대해 알아내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내면 된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 보십니까?”

“그게 너와 나의 차이다, 천좌. 아무튼 지휘관은 나니까 내 명령에 따르도록 해라. 제갈영우 너는 감숙성 개방 분타로 가라. 그리고 막시후 네가 가야 할 곳은 하오밀문 감숙 분타다. 너희가 쓸 수 있는 최대 비용은 일백만 냥이다.”

“지금 바로 출발합니까?”

제갈영우가 물었다.

“그렇다.”

헌원중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갈영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바로 객잔에서 나갔다.

밖으로 나온 막시후는 제갈영우를 보며 물었다.

“어떤 자요?”

“내가 아는 건 현 화왕의 후계자라는 것과 무공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다는 것뿐이오.”

“하지만 대천좌일 뿐인데…….”

막시후는 말끝을 흐렸다.

그가 알기론 화가의 직위는 맨 위에 왕이 있고 그 아래는 상급, 중급, 하급으로 나뉜다.

상급은 치천좌, 지천좌, 좌천좌 직위로 구성돼 있고 중급은 주천좌, 역천좌, 능천좌, 그리고 하급은 대천좌와 천좌로 구성돼 있다.

총 여덟 직급 중 제갈영우는 천좌고 헌원중천은 대천좌다.

불과 한 직급 차이일 뿐인데 제갈영우는 헌원중천의 무공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고 한 것이다.

“그는 나이가 어려서 대천좌에 머물러 있을 뿐이지 무공 실력으로 따진다면 상급으로 가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고 했소.”

“그랬구려.”

“갑시다.”

파앗!

파앗!

두 사람은 바닥을 찼다. 곧 두 사람의 신형이 동쪽으로 멀어졌다.

그들이 떠나고 잠시 후 안에 있던 헌원중천이 나머지 일행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금장생 일행과 싸운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월아천으로 가긴 했지만 그가 발견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흑지 무인들은 어디 있다고 했지?”

헌원중천은 찰미하를 돌아보며 물었다.

“둔황 북쪽에 있어요.”

“객잔에 머물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거냐?”

“네.”

“그럼 공격하기 쉽겠구나.”

“그럴 거예요.”

“인원은 몇 명이나 되느냐?”

“처음엔 오백 명이었는데 우리와 싸우면서 백여 명 정도가 죽고 지금은 사백 명 정도 남았어요.”

“지금 바로 놈들을 친다.”

“지금이라고요?”

찰미하는 깜짝 놀랐다.

지금은 대낮이다. 아무리 이곳이 새외라고 해도, 명나라 땅이고 명 황실의 영향력하에 있다. 한두 명도 아닌 수백 명이 대낮에 어떤 세력을 공격하는 건, 어쩌면 명 황실에 반기를 드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는 지극히 위험한 행동이다.

“내가 무모해 보이느냐?”

“명 황실에서는 자신들을 무시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수백 아니라 수천 명이 죽는다고 해도 둔황을 책임지는 관리는 황실에 보고를 할 수 없다.”

“왜죠?”

“어떤 사건을 보고하기 위해서는 내막을 알아야 한다. 설사 결과만 보고한다고 해도 진상을 파악해서 보고하라는 명령이 내려오게 된다. 그럼 관리는 사건을 속속들이 파헤쳐야 하는데, 설사 알아낸다고 해도 무인들의 싸움이라 자신의 경력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황실에 보고해 봐야 긁어 부스럼밖에 되지 않는다는 거군요.”

“맞다. 정히 껄끄럽다면 마적끼리 세력 다툼을 하다가 수백 명의 사상자가 생겼다고 하는 선에서 끝내게 된다.”

“그럼 굳이 낮에 공격할 필요가…….”

“내가 낮에 공격하려는 건 그들 역시 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흑지 무인 수뇌는, 우리가 명 황실 때문에 낮에는 절대 공격해 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는 건가요?”

“지금 당장 놈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시오. 이동은 빠르게 하되, 알아차리는 자가 없어야 하오.”

헌원중천은 뒤편을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러자 헌원중천을 수행해 왔던 여섯 명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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