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55)
검은 덩어리 하나가 떠올랐다.
“드디어 놈을 잡은 모양이네.”
놀랐던 것도 잠시, 제갈영우는 웃으며 말했다.
“그런 것 같기는 한데…….”
혁련마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부하들 중 누군가가 강신술사를 없앴다면, 그도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런데 시체로 보이는 검은 물체가 떠오르고 한참이 지났지만 공격한 자는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설마…….”
파앗!
혁련마우가 몸을 날렸다.
철벅! 철벅!
놀랍게도 혁련마우는 물 위를 걷는 일위도강 신법까지 펼치는 강자였다.
“차앗!”
하지만 아직은 힘에 부친 듯, 자세는 그리 안정되지 못했다.
검은 덩어리 앞에 선 혁련마우는 시체를 낚아챘다. 그리고 방향을 틀어 달리더니 땅으로 내려섰다.
그는 시체를 뒤집었다.
“이럴 수가!”
그의 입에서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왜 그러시오?”
제갈영우가 물었다.
“내 부합니다.”
“마가魔家 무인이란 말이오?”
“그렇소.”
혁련마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말이오?”
제갈영우는 곧바로 혁련마우가 서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려 갔다.
그의 얼굴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들이 당하는 상황은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 계집에게 당한 것 같소이다.”
혁련마우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내 생각도 같소만…….”
제갈영우는 호수로 시선을 주었다.
혁련마우의 말에 동조하긴 했지만 그의 내심은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강신술사 일행이 물로 뛰어든 지 오각이 지났다. 오각이면 일반인은 이미 숨졌을 시간이고, 무인이라고 해도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안 될 시간이다.
여자는 무인이니까 그동안 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이해가 가지만 강신술사는 반드시 숨을 쉬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전부 들어가라!”
그사이 혁련마우는 다시 명령을 내렸다.
“존!”
그러자 남아 있던 열 명이 우렁차게 대답하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호수는 깊고 너무 어두웠다. 그리 크지 않은 호수라고 하지만 세 명을 찾는 건 쉽지가 않았다.
수색 와중에 또 한 구의 시체가 떠올랐다. 이번 시체는 소라의 부하, 즉 혈가血家 출신이었다.
“그 계집 짓이군.”
제갈영우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닐지도 몰라요.”
“그게 무슨 소리요?”
제갈영우가 물었다.
“우리 혈가 무인은 수공을 기본으로 익혀요.”
“수공을 익힌 자가 아니면 혈가 무인이 당할 리가 없다는 말이오?”
“그래요.”
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계집이 수공을 익히지 않았다는 법은 없지 않소?”
“물론 그래요. 하지만…….”
소라는 말끝을 흐렸다.
제갈영우의 말이 맞다. 여자가 수공을 익혔을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부하를 죽인 수법 또한 눈에 익다. 동맥을 단숨에 끊었고, 그녀가 아는 한 저런 수법은 중원이 아니라 동영에 더 많다. 즉, 살인자가 동영의 수법을 익혔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우리가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야 할 것 같소.”
제갈영우가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나는 수공을 배우지 못했소이다.”
혁련마우는 고개를 저었다.
부하들에게 물로 들어가 놈을 잡으라는 명령을 내리긴 했지만 자신은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들어가지 않겠다는 거요?”
제갈영우는 혁련마우를 보았다.
“나는 여기서 놈이 도망치는 걸 감시하겠소. 수색은 두 분이 하시오.”
‘비겁한 자식!’
제갈영우는 내심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부하가 아닌 이상 본인이 싫다는데 강요할 수도 없다.
“알았소. 혁련 소협은 밖에서 놈들이 도망치는지 감시하도록 하시오.”
제갈영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로 뛰어들었다.
“나도 들어갈게요.”
제갈영우에 이어 소라가 호수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두 사람 부하들도 일제히 호수로 들어갔다.
그들이 전부 들어가고 나자 호숫가에는 혁련마우만 남았다.
혁련마우는 호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잠시 후 시체 두 구가 떠올랐다.
혁련마우는 시체를 노려보기만 할 뿐 건져 올리지 않았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세 가문 중 한 곳에 속한 무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그 계집은…….”
혁련마우는 자기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저 안에는 사십여 명 정도가 들어가 있다. 반면 적은 세 명. 아니, 강신술사와 강시를 빼면 한 명이다. 그런데도 자신들은 계집을 잡지 못하고 있다.
대단한 여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철벅!
나직한 물소리가 호수에서 들려왔다.
‘응?’
혁련마우의 시선이 호수로 향했다.
잘못 듣지 않았다면 소리는 시체가 있는 곳에서 난 게 맞다. 문득 시체가 아니라 부상을 입은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져야 하나…….’
혁련마우는 망설였다.
만일 그의 부하였다면 주저하지 않고 바로 몸을 날렸을 것이다. 그런데 시체 두 구는 마가 무인이 아니었다.
지금은 공동작전을 펼치는 입장이지만 길게 보면 중원을 놓고 싸워야 하는 경쟁자다.
이곳까지 살아서 온다면 건져는 주겠지만, 완벽하지도 않은 일위도강을 펼치면서까지 구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옷이 젖는 게 싫었다.
철벅!
“끙!”
혁련마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손이 움직이는 걸 보았다. 물에 떠 있는 저 둘은 죽은 게 아니라 부상을 당한 무인들이었다.
“어쩔 수 없네.”
혁련마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살아 있다는 걸 확인했으면서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그사이 호숫가로 밀려와, 엉덩이까지만 적시면 될 것 같았다.
그는 바로 물로 들어갔다.
물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떠 있는 자들까지 거리는 이 장가량이었다.
그의 예상대로 물은 엉덩이까지 차올랐다.
“젠장!”
차가운 물에 성기가 잠기자 절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그는 두 손을 뻗어 부상자의 어깨춤을 틀어쥐었다.
“헉!”
혁련마우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싸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그는 황망히 고개를 숙였다.
새하얀 손 하나가 단전을 향해 가공할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서, 설마…….”
퍼억!
“커억!”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단전에서 강렬한 통증이 밀려왔다.
혁련마우의 상체가 푹 숙여졌다.
철벅!
그 순간 물속에서 팔 하나가 번쩍 들어 올려졌다. 그리고 상체를 숙인 혁련마우의 뒷목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퍼억!
“아악!”
혁련마우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첨벙!
그리고 그의 동체가 힘없이 물로 처박혔다.
츄악!
이어 혁련마우를 공격한 이들이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세 명이었는데, 금장생 일행이었다. 태월령은 기절한 상태였다.
금장생은 태월령을 안은 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몸을 흔들어 물기를 털어 냈다.
“너도 털어!”
금장생은 백사를 보며 말했다.
백사는 몸을 빠르게 흔들어 물기를 털었다.
처음엔 둔황 쪽으로 달리던 그는 옷에서 물방울이 떨어지지 않자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쉬지 않고 걸음을 옮겨 명사산에 들어섰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곳은 등잔 밑과 한번 조사가 끝난 곳이지.”
팔왕가 무인들이 수색을 하면서 남겨 둔 발자국으로 인해 금장생과 백사의 발자국이 더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표가 나지 않았다.
이윽고 금장생은 처음 숨을 때 파 놓은 동굴 앞에 이르렀다.
동굴 앞에는 시체가 두 구가 놓여 있었다.
시체는 그대로 두고 안으로 들어가 태월령을 눕힌 후 동굴의 무너진 부분을 보수했다. 잠시 후 동굴은 원래 상태가 되었다.
휘익!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다행이네.”
금장생은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의 코에서 고른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한편.
금장생과 태월령을 찾기 위해 호수 속으로 들어간 제갈영우와 소라는 너무 놀라 벌어진 입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두 사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아니, 태어나 이런 광경은 정녕 처음이었다.
깊이가 사 장(12미터)가량 되는 호수 바닥에는 검은 물체가 물살 따라 부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세 왕가의 무인들이었다.
시체는 거의 서른 구에 달했다.
맨 아래쪽에 있는 시체는 떠오르지 못하게 커다란 돌로 눌려 있고, 그 시체의 소매는 또 다른 시체와 묶인 채 떠오르지 못하게 해 놨다.
그런 식으로 줄줄이 묶인 시체 서른 구가 수초처럼 물속에서 부유한다.
경악과 공포가 뒤섞인 감정에 휩싸여 움직이기조차 힘들었다.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소라였다.
재빨리 입을 다문 그녀는 제갈영우의 어깨를 쳤다.
제갈영우는 고개를 홱 돌렸다.
시선이 마주치자 소라는 위를 가리켰다. 나가자는 신호였다.
제갈영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닥을 찼다.
곧 두 사람은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푸우!”
“하아!”
두 사람은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방금 목격한 광경이 너무 충격적이라 말문이 막혀 버린 것이다.
그들은 호숫가 어딘가에 있을 혁련마우를 찾았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혁련마우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아직 살아남은 이들이 수면 위로 머리를 드러냈다.
“전부 밖으로 나오라고 해라!”
제갈영우는 버럭 소리쳤다.
그의 명령이 하달되자 물속에 있던 이들까지 전부 밖으로 나왔다.
“여기 혁련 대협이 있습니다!”
물 밖으로 나오던 자들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제갈영우와 소라는 그곳으로 몸을 날려 갔다.
“으음!”
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혁련마우가 물에 엎드린 채 쓰러져 있었다.
그는 혁련마우를 뒤집었다. 혁련마우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질식해서 죽었어요.”
시체를 살피던 소라가 말했다.
“그 계집이겠구려.”
“그런 것 같아요.”
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집과 사내놈이 호수에서 나왔다. 주위를 수색하라!”
제갈영우는 버럭 소리쳤다.
무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수색을 시작하고 잠시 후, 무인 중 한 명이 둔황으로 이어진 흔적을 발견했다. 모래밭이었다면 없어졌을 텐데 풀밭이라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물기는 모래밭이 나오자 곧 사라졌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제갈영우는 소라를 보며 물었다.
자신들을 포함해서 예순세 명이 월아천으로 왔는데 남은 인원은 스물두 명뿐이다.
수색을 멈추고 전열을 정비한 다음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먼저 시체를 수습하고 난 후에 생각해 보기로 해요.”
“그렇게 합시다.”
고개를 끄덕이는 제갈영우의 눈에 불길이 올랐다.
극도로 자존심이 상한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