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54화 (54/524)

황금가 (54)

가장 어두운 곳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두 명이 금장생과 태월령이 숨어 있는 동굴을 향해 다가왔다.

금장생은 묵야를 뽑아 들었다.

―그걸로 놈의 목을 자를 수 있겠어?

태월령은 묵야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가 보기엔 금장생이 뽑아 든 검은 두부도 못 자를 것 같았다.

하지만 금장생은 대답이 없었다. 그는 작은 구멍을 통해 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척!

두 명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하지만 조금 전과 달리 말이 없었다.

‘들켰군.’

금장생은 태월령을 보았다. 그리고 검을 쥔 손으로 가볍게 쳤다.

―들켰다는 건 나도 안다.

태월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쑥!

느닷없이 손가락이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흙을 한 움큼 쥐더니 밖으로 파냈다. 그러자 동굴 안쪽이 약간 환해졌다.

금장생은 오른편 다리를 끌어당기고 발끝을 좌우로 움직여 땅을 파 디딤대를 만들었다.

쑥!

밖으로 나갔던 손이 다시 들어와 금장생이 쌓아 두었던 흙을 파내 갔다.

구멍은 조금 전보다 더 커졌다.

불끈!

금장생은 묵야를 힘껏 쥐었다.

스윽!

그 순간 밖에 있던 손이 쑥 들어왔다.

턱!

사내의 손목을 잡아당기면서 오른발을 튕겼다. 그 순간 태월령도 밖으로 뛰쳐나갔다.

“헉!”

“억!”

푹!

먼저 금장생의 묵야가 한 사내의 목으로 파고들어 갔다. 정확하게 성대를 찔린 사내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퍽!

“억!”

이어 옆 사내의 입에서 나직한 비명이 들려왔다.

“백사, 나와!”

금장생은 그 자리에 납작 엎드린 채로 전방을 주시하면서 백사를 불렀다.

그러자 백사는 바로 밖으로 나왔다.

백사 역시 나오자마자 금장생처럼 납작 엎드렸다.

“포복으로 내려가요.”

금장생은 엎드린 채로 산을 내려갔다.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두 사람은 좌우를 살피며 전력을 다해 팔과 다리를 놀렸다.

“제길!”

태월령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헐어 있던 장포가 바닥에 쓸리자 커다란 구멍이 나 버린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구멍 난 위치가 가슴 부분이었다.

“저기 누군가 있다!”

금장생과 태월령을 발견한 자가 고함을 내질렀다.

“백사. 뛰어!”

금장생은 벌떡 일어나 아래로 내달렸다.

파앗!

금장생과 백사가 뛰어가자 태월령은 곧바로 신법을 펼쳤다.

그녀는 금세 금장생을 따라잡았다.

턱!

그녀는 금장생과 백사의 팔을 잡았다.

아무래도 단거리를 갈 땐 신법을 펼치지 못하는 둘보다는 자신이 잡고 가는 게 더 빠르기 때문이었다.

금장생과 백사의 손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속도는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다.

태월령은 곧 월아천 앞에 도착했다.

스아아악!

주위를 살피던 그녀가 막 몸을 날리려고 하는데 스산한 기운이 전방에서 쏘아져 왔다.

태월령은 금장생과 백사의 손을 놓음과 동시에 전방을 향해 내밀었다. 그녀의 양손에서 강한 기운이 쏘아졌다.

콰앙!

“윽!”

쿵! 쿵쿵!

나직한 비명과 함께 태월령이 세 걸음 물러났다.

“으음!”

태월령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 앞에는 발자국 세 개가 깊게 찍혀 있었다.

급하게 쳐 낸 일 장이라 전력을 다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발자국이 깊게 찍혔다는 건 상대가 보통 강자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아니, 발자국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넘어올 것만 같았다.

태월령은 시선을 내렸다.

“염병할!”

옷이 닳은 바람에 가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드러난 가슴 따윈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태월령은 일월쌍비 중 월음비月陰匕를 뽑아 들고 전면을 응시했다.

저벅! 저벅! 저벅!

발소리에 이어 공격한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한 명이 아니라 세 명이었다.

바로 제갈영우, 혁련마우, 소라였다. 그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차가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세 사람은 명사산을 올라가지 않고 아래쪽에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드디어 잡았군.”

제갈영우는 금장생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절 아십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눈앞에 있는 세 명이 수어린이 피하려고 하였던 자들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모르네!”

“그럼 나와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쫓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가 쫓는 건 자네가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강시네.”

“이 시체는 주인이 따로 있습니다. 저는 주인과 계약을 맺고 운구하는 중이고요.”

“그래서 넘겨주지 못하겠다는 건가?”

“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뭐가 비겁하다는 건가?”

“저는 돈을 받고 시체를 운구하는 강신술사에 불과할 뿐입니다. 당신들에게 이 시체를 빼앗기면 저는 신용을 잃게 될 테고 더 이상 장사하기가 힘들게 될 겁니다. 즉, 밥줄이 끊긴다는 겁니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힘없는 사람을 짓밟는 건 아주 비겁한 짓이지요.”

“그래서 자네 말은, 자네 장사를 위해 우리가 돌아가야 한다는 건가?”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을 잘못 맡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겨를이 없었다는 건 무슨 뜻인가?”

“가게를 인수하고 처음 맡은 일거리란 뜻입니다. 보통은 가게를 시작하면 육 개월에서 일 년은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게 이 바닥의 생립니다. 그건 곧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좋은 일 궂은일 따져선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천 냥짜리 일거리가 들어왔습니다. 게다가 이천 냥 전부를 선불로 받았고요. 만일 귀하가 제 입장이었다면 그 일을 거절했겠습니까?”

“거절할 수 없었겠지.”

“제 입장을 이해해 주시는군요.”

“물론 이해하네. 그러니 이제 그 강시를 넘기게.”

“…….”

“아직 내 말을 이해 못 했나 본데, 이해하기 쉽게 말해 주겠다. 지금 당장 강시를 넘기지 않으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고통을 맛보게 한 다음 죽일 것이다.”

제갈영우의 말투가 반말로 바뀌었다.

아울러 전신에서 살기가 넘실댔다.

“강시를 넘겨줘도 날 죽일 생각이군요.”

“나는 온갖 고생을 하며 곤륜산에서 여기까지 왔다. 네놈이 도망치지만 않았다면 그런 고생을 할 이유가 없었다. 따라서 너는 우리를 고생시킨 대가를 치러야 하고, 내가 보기엔 네가 가진 건 몇 푼 안 되는 목숨뿐이구나.”

“나 같으면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겁니다.”

“뭘 말이냐?”

“일단 살려 준다고 할 겁니다. 그리고 강시를 넘겨받은 다음, 명령을 내린 사람이 원하는 강시가 맞는지, 맞다면 강신술사가 없어도 되는지 먼저 확인하고, 필요 없다는 결론이 나면 그때 목을 자를 겁니다.”

“…….”

제갈영우는 멍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그는 금장생이 잔뜩 겁을 먹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겁을 먹기는커녕 비아냥대기까지 한다.

“혹시라도 누군가 동업을 제안해 오면 절대 하지 마세요. 사업을 하면 귀하는 육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망합니다. 이건 내기해도 좋습니다.”

“셋을 세겠다. 그 안에 강시를 넘겨라. 하나…….”

“내게서 강시를 빼앗아 가려면 먼저 이분을 처리해야 할 겁니다.”

금장생은 태월령 뒤로 숨었다.

“차앗!”

그 순간 태월령은 곧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그녀의 양손에서 가공할 열기를 머금은 장강이 쏟아졌다. 장강의 목표 지점은 제갈영우였다.

‘헉!’

제갈영우는 내심 헛바람을 들이켰다.

태월령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공격해 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하아!”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는 다급히 내공을 끌어 올려 양팔을 내밀었다.

퍽!

두 사람의 공력이 부딪치면서 둔탁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내공을 완벽하게 끌어 올리지 못한 대가는 컸다.

“커억!”

제갈영우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이번에는 제갈영우 앞에 깊은 발자국이 남았다.

“차앗!”

“타하!”

보고 있던 소라와 혁련마우가 바로 양팔을 휘둘렀다.

‘젠장!’

태월령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수는 한 명이었다. 조금 전 건방을 떨던 자도 기습 공격을 통해서야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물러난 자와 비슷한 실력을 가진 두 명이 한꺼번에 장력을 발출했다.

“어쩔 수 없지.”

태월령은 전 내공을 끌어 올렸다.

목숨을 걸지 않으면 살아남는다고 장담하기 힘든 공격이었다.

“차앗!”

그녀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먼저 월음비가 허공을 가르고 이어 일양비日陽匕가 뒤를 따랐다.

태월령의 최강 무공인 쌍비파천류雙匕破天流였다.

쓰쓰쓰! 츠츠츠!

두 자루 비수는 적색과 백색의 광채를 뿜어냈다. 그리고 섬뜩한 소성을 토해 내며 소라와 혁련마우를 향해 쏘아져 갔다.

콰앙! 콰아앙!

세 거력이 부딪치자 엄청난 소성이 터져 나왔다.

“아악!”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태월령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턱!

뒤로 날려 가는 그녀를 금장생이 붙잡았다.

하지만 그의 힘으로도 날아가는 걸 멈추지 못했다. 금장생과 태월령은 한 덩어리가 돼 호수를 향해 날아갔다.

“백사, 따라와!”

금장생은 소리쳤다.

파앗!

백사는 금장생을 쫓아 몸을 날렸다.

풍덩! 풍덩!

셋은 곧 호수로 떨어졌다.

“잡아라!”

제갈영우는 주위를 향해 소리쳤다.

“차앗!”

“타하!”

“하아!”

그러자 주위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호수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들은 금장생을 찾기 위해 명사산으로 올라갔던 자들이었다.

풍덩! 풍덩! 풍덩!

수십 명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곧 수면 밖으로 얼굴을 드러냈다.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이 제갈영우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놈은 아직 호수를 빠져나가지 않았다! 샅샅이 훑어라!”

“알겠습니다!”

머리를 내밀었던 자들은 다시 잠수를 했다.

제갈영우와 혁련마우, 소라는 호수 가까이 가서 결과를 기다렸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금장생을 발견했다는 보고는 들려오지 않았다.

가끔 여기저기서 머리가 불쑥불쑥 튀어 올랐는데, 그들은 참았던 숨을 내뱉는 부하들이었다.

“벌써 이각이 지났소.”

제갈영우가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우리도 알고 있어요.”

소라가 표정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보통 사람이 이각 동안 숨을 참을 수 있을 거라고 보시오?”

“전문적으로 물질을 배운 사람은 가능해요. 하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해요.”

“그럼 놈이 물질을 배웠다고 가정하면, 이제는 나올 때가 됐군요.”

“…….”

하지만 소라는 대답이 없었다. 왜냐면 그녀는 먼 과거로 돌아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오래전 과거로 끌고 들어간 건 바로 금장생이었다.

금장생을 보는 순간 비고에서 만났던 사내가 떠올랐다.

얼굴은 불분명하지만 그 사내가 지녔던 분위기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조금 전 본 사내에게서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소 소저.”

“네?”

제갈영우의 부름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삼각이 지났소.”

“삼각이라고요?”

소라는 호수로 시선을 주었다.

“저, 저기!”

바로 그때 혁련마우가 호수를 가리켰다.

“저건?”

혁련마우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던 제갈영우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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