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53화 (53/524)

황금가 (53)

찰미하 일행이 천지에 도착한 건 귀신의 말대로 다음 날 새벽 무렵이었다.

그들은 천지로 들어서자마자 모닥불 피운 흔적을 살폈다.

“어젯밤에 떠났습니다.”

추적에 능통한 자가 불을 살펴본 후 보고했다.

“어젯밤이라고?”

찰미하가 물었다.

“네.”

“그럼 다음 목적지는 둔황이 되겠구나.”

“그렇습니다.”

“어떻게 할래요?”

찰미하는 막시후와 최곤을 보았다.

“바로 출발해야 하지 않겠소?”

막시후가 말했다.

“우리를 쫓는 자들은 어떻게 하죠?”

“지금은 그들을 신경 쓸 때가 아니지 않소.”

“좋아요. 바로 출발하도록 해요.”

찰미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곧바로 부하들을 돌아보며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곧바로 자리를 떴다.

천지를 떠난 찰미하 일행이 둔황에 도착했다.

둔황 역시 사방은 사막으로 가로막힌 천지 도시 중 한 곳이라 숨을 곳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들은 한 객잔에 짐을 풀고 곧바로 수색을 시작했다. 하지만 금장생과 강시는 보이지 않았다.

일차 수색을 마친 찰미하 일행은 객잔으로 모였다.

“어때요?”

찰미하는 최곤을 보며 물었다.

“없소.”

“나도 흔적을 찾지 못했어요.”

“막 소협은 어떻소?”

최곤은 막시후를 보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요. 놈의 흔적도 찾지 못했소.”

막시후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맡은 지역을 거의 훑듯이 뒤졌다. 강시를 데리고 있기 때문에 숨기려고 해도 쉽지 않다. 그런데 보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윽박지르듯 물어본 것도 아니었다. 아는 사람인 것처럼 해서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했는데도 보지 못했다면, 둔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그럼 놈을 놓친 게 되는 건가요?”

“아니오. 놈은 중원으로 들어가지 못했소.”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일단의 무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찰미하 일행보다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던 제갈영우 일행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찰미하는 물었다.

“그보다, 놈이 둔황으로 올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각이 언제요?”

“우리보다 여섯 시진 빨랐어요.”

“그러면 미친 듯이 달려서 찰 소저 일행보다 더 빨랐다고 해도 일곱 시진이나 혹은 여덟 시진 빨리 도착했겠군요.”

“더 빠르다고 가정했을 경우 그래요. 하지만 그자가 우리보다 더 빨리 달릴 가능성은 눈곱만큼도 없어요.”

“물론 그렇겠지요. 아무튼 우린 이틀 전에 둔황에 도착했고, 중원으로 들어가는 모든 길목을 감시했소. 하지만 놈과 강시는 지나가지 않았소.”

“그럼 그자는 둔황으로 들어오지 않았을 뿐 주변 어딘가에 숨어서 중원으로 들어갈 기회를 엿보고 있겠군요.”

“그렇소.”

제갈영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좀 낫네요.”

찰미하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그런데 인원수가 줄어든 것 같던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제갈영우가 세 사람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흑지 무인들의 공격을 받았소.”

대답한 자는 막시후였다.

“흑지 무인이 왜?”

제갈영우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흑지 무인의 공격을 받았다면 양측 간에 충돌이 있었다는 걸 뜻한다.

자신들은 강신술사와 강시를 뒤쫓고 있다. 찰미하나 막시후, 최곤은 먼저 시비를 걸 성격도 아니다. 그의 생각에 흑지 무인과 싸울 이유가 없었다.

“그자 때문이었소.”

이번엔 최곤이 대답했다.

“그자라면 강신술사를 말하는 거요?”

제갈영우는 물었다.

“그렇소. 어떻게 된 건지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흑지 무인들 또한 그자를 쫓고 있었소. 먹이는 하난데 맹수는 두 마리다 보니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그자들은 지금 어디 있소?”

“우리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여기로 들어왔을 거요.”

“그러면 우린 강신술사를 찾는 것과 흑지 무인들을 없애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겠군요.”

“전부 모였으니까 일을 나눕시다.”

“강신술사 놈을 찾는 건 우리가 하겠소.”

제갈영우가 말했다.

“그러면 우린 흑지 무인을 맡아야겠군요.”

“이견 있는 분은 지금 말하시오.”

제갈영우는 일행을 보며 말했다.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보는 여기서 주고받는 걸로 합시다. 아침, 자정, 저녁엔 정기적으로 정보를 나누고, 특별한 사안이 발생하면 정해진 시간에 상관없이 바로 알리는 걸로 합시다.”

“그렇게 하죠.”

“좋습니다.”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 시작합시다.”

제갈영우는 일행과 함께 객잔을 나갔다.

“어디부터 하죠?”

밖으로 나오자 소라가 제갈영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먼저 중원으로 가는 길목을 차단해야 하오.”

“우리 인원은 예순 명이에요. 그 인원으로 중원으로 가는 길목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건 무리예요.”

“가욕관에 가면 북막北幕이라는 단체가 있는데 거기 막주를 알고 있소.”

“그자가 우리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세요?”

“기꺼이 도와줄 거요.”

“그럼 거기에 다녀와야겠군요.”

“아니오, 그럴 필요 없소. 왜냐면 북막 막주 모위상 대협이 저기 와 있기 때문이오.”

제갈영우는 오른편을 가리켰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두두두두!

그가 가리킨 곳에서는 수십 필의 말이 먼지를 휘날리며 이편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워!”

“워어!”

휙! 휙휙!

말이 멈추고 건장한 체격의 장한들이 내려섰다.

“어서 오십시오, 공자.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사십 대 중반의 쥐눈을 가진 사내가 제갈영우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반갑소, 모 막주. 사부님으로부터 막주에 대한 이야기 많이 들었소. 내가 막주를 보자고 한 건…….”

그다음 말은 전음으로 했다.

“해 줄 수 있겠소?”

전음이 끝나자 본래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입니다, 공자. 기꺼이 해 드려야지요. 뭐가 됐든 명령만 내리십시오. 불속이라도 뛰어들겠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공자.”

모위상은 포권을 취하고는 말에 올랐다. 그리고 자리를 떴다.

“저자가 동원 가능한 무인이 몇 명이오?”

모위상을 바라보던 혁련마우가 물었다.

“최소 오백 명은 될 거라고 하오.”

“이런 외진 곳에 오백 명을 거느린 문파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그자들은 무림 문파가 아니오.”

“그럼?”

“사막에 가장 많은 게 뭐요?”

“사막에 가장 많은 거라면…… 혹시 마적?”

“그렇소.”

제갈영우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제갈 소협의 사부는 어떻게 해서 마적과…….”

“목숨을 살려 준 적이 있다고 하였소.”

“혹시 그자가 제갈 소협의 사부를 공격한 겁니까?”

“그랬다고 하더이다. 사부는 전부 없애 버리려다가 갑자기 측은지심이 생겨 살려 주었다고 하오. 그게 인연이 돼 모위상은 사부의 부탁이라면 만사를 제쳐 두고 들어주고 있소이다.”

“그런 일이 있었구려.”

혁련마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차단했으니까 우린 수색 작업을 하도록 합시다.”

제갈영우가 손을 비비며 말했다.

“어디를 먼저 수색하죠?”

소라가 물었다.

“월아천, 막고굴, 천불동 세 곳 중 한 곳일 가능성이 아주 높소. 그리고 세 곳 중 한 곳을 택하라면 나는 월아천을 택할 거요.”

“그럼 먼저 그곳을 수색해야겠군요.”

“그렇소. 갑시다.”

제갈영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날렸다. 그 뒤를 소라와 혁련마우 그리고 무인 예순 명이 따랐다.

그들이 월아천에 도착한 건 한 식경 후였다.

휙! 휙휙! 휙!

그들은 소리 없이 월아천으로 스며들어 갔다.

“네 말대로네.”

태월령은 전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녀와 금장생이 숨어 있는 곳은 명사산 중간에 있는 동굴 안이었다. 그곳에서는 월아천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월아천은 초승달 모양의 호수다. 주위엔 수풀이 우거져 있고, 그 안쪽에는 십여 채의 건물이 늘어서 있다.

여러 사람이 숨는 건 불가능하지만 한두 명이 숨으면 찾아내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이곳에 도착했을 때 태월령은 월아천에 숨자고 하였다. 아니, 그건 나중 일이고 처음엔 둔황으로 숨어들어 가자고 했다.

가장 먼저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고, 음식다운 음식을 먹고,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신 후 침대에 누워 자고 싶었다.

그걸 할 수 있다면 당장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금장생의 반대에 막혀 둔황으로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월아천을 앞두고 금장생은 둔황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명사산에 숨어서 며칠을 보낸 후 둔황을 거치지 않고 중원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였다.

명사산보다 월아천이 더 낫지 않으냐고 하자 추적자들이 가장 먼저 수색할 곳이 월아천이라며, 쫓기는 자는 무조건 피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갈 곳이 없다고 하자 그가 가리킨 곳이 명사산이었다.

사실 명사산은 말이 산이지 나무 하나 없는 모래흙 더미에 불과하다. 아무리 찾아봐도 숨을 곳이 없었다.

그런데 금장생은 그곳에 숨겠다고 한 것이다.

별수 없이 그를 따라 산을 올랐다.

그리고 적당한 장소, 즉 월아천이 내려다보이면서 바로 앞까지 오지 않는 한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그런 장소를 골라 동굴을 팠다.

동굴 입구는 기어서 드나들 수 있도록 좁게 했고, 내부는 서서 움직일 수 있게 넓게 팠다.

작업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화장실을 따로 만들었고, 탈출로 비슷한 작은 토굴도 팠다. 토굴의 깊이는 오 장이나 되었다.

파는 건 태월령과 백사가 맡고 금장생은 흙을 사방으로 뿌려 동굴을 판 흔적을 지웠다.

그런 다음 동굴 입구에서 월아천을 내려다보며 감시를 했다.

적이 월아천에 나타난 건 감시를 시작한 지 여섯 시진 만이다.

금장생은 최소 여섯 시진에서 최대 열 시진 안에 적이 나타날 거라고 하였다. 그런데 정말 그의 말대로 된 것이다.

“저자들이 여기까지 오지 않아야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겁니다.”

“그렇겠지.”

태월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여길 막아야 합니다.”

금장생은 입구를 가리켰다.

“완전히 막는다고?”

“그럼 감시를 못 하는데 안 되지요. 눈만 내놓을 수 있게 할 겁니다.”

금장생은 내부 한편에 쌓아 두었던 모래흙을 가져와 입구를 막았다.

한 자 높이에 달했던 입구는 두 치(6센티미터) 정도만 남았다. 금장생은 그 틈으로 월아천을 감시했다.

수색하는 자들은 월아천을 샅샅이 뒤졌다. 지상에서 찾을 수 없자 호수 속까지 살폈다.

수색 작업이 끝난 건 세 시신 후였다.

“명사산을 수색해라!”

명령이 떨어지자 수색을 하던 자들은 일제히 명사산을 올랐다. 그들은 맨 아래쪽부터 꼼꼼하게 훑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태월령은 금장생에게 전음을 보냈다.

“조용히만 있으면 들키지 않을 겁니다.”

―만일 발각되면?

“도망쳐야지요.”

―끙! 온몸에 개미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아.

태월령은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은 밤이라 좀 나아졌지만 아까 낮에 동굴 안은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더웠다. 입은 옷이라고는 장포 하나뿐인데도 온몸이 땀에 젖었다.

그 땀이 말라붙어 소금으로 변하면서 온몸이 근질거렸다.

―등 좀 긁어…….

‘쉿!’

금장생은 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댔다.

태월령은 전음을 멈추고 천리지청술을 펼쳤다.

“여기 흙이 이상합니다.”

―누군가 흙이 이상하대.

태월령은 그녀가 들은 걸 그대로 금장생에게 전달했다.

“어떻게 이상하다는 거냐?”

“이 흙은 원래 있던 흙이 아니라 땅을 팠을 때 나온 겁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땅을 팠을 거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툭!

전음을 듣고 난 금장생은 태월령의 어깨를 살짝 쳤다.

태월령은 금장생을 돌아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금장생은 손칼을 만들어 목을 스윽 그었다.

―없애자는 거냐?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의 수는…….

그러자 금장생은 재빨리 바닥에 글을 썼다.

육십삼이란 숫자였다.

―적의 수가 예순세 명이라고?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언제 파악한 거냐?

태월령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열심히 감시를 했지만 적의 수는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데 금장생은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적의 수를 전부 파악해 낸 모양이었다.

“이 근첩니다.”

바로 앞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장생과 태월령은 숨을 멈췄다.

툭!

금장생은 태월령의 어깨를 살짝 쳤다. 태월령은 고개를 돌려 금장생을 보았다.

금장생은 태월령을 가리킨 다음 손가락 하나를 펴 보였다. 그러곤 이번엔 자신을 가리키고는 다시 하나를 더 폈다.

―너도 한 명 없애겠다고?

태월령은 물었다.

그러자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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