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52화 (52/524)

황금가 (52)

파앗! 파앗! 파앗! 파앗!

사십여 명이 빠른 속도로 사막을 질주했다.

전면을 노려보며 내달리는 이들은 찰미하, 막시후, 최곤과 그들의 부하들이었다.

푸아악! 푸아악!

느닷없이 모래가 하늘로 솟구치면서 가공할 살기가 세 사람을 향해 쏟아져 왔다.

“차하!”

“타하!”

“이얍!”

세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기합이 터져 나왔다.

가장 먼저 찰미하의 대도大刀가 허공을 가르고 이어 최곤의 귀면검鬼面劍이 공간을 쪼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갈고리처럼 구부린 막시후의 양손이 허공을 강하게 할퀴었다.

번쩍! 스악! 촤악!

“아악!”

“으아악!”

“크아악!”

“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털썩! 털썩! 털썩! 털썩!

그리고 조각조각 잘리고 갈가리 찢긴 시체 십여 구가 지면으로 추락했다.

“멈추지 마라!”

“그대로 전진하라!”

“치고 나간다!”

세 사람은 고함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악!”

“으악!”

“크악!”

그 후에도 비명은 계속 들려왔다.

찰미하 일행은 수십 구의 시체를 만들면서 사구 너머로 빠르게 사라졌다.

척! 척척척!

수십 명이 시체들 옆으로 날아내렸다.

그들 중 한 명은 금장생에게 당한 태무영이었다.

“어떤 자들인지 파악했느냐?”

강인한 인상의 사내가 태무영을 보며 물었다.

이자는 신강태존 태천야의 장남 천랑 태무황이었다.

“전가戰家, 철가鐵家, 사가邪家 소속 무인이라고 하더군요.”

포로로 잡은 자들을 고문해서 알아낸 정보였다.

“들어 본 적 있느냐?”

태무황의 시선이 두 남녀에게로 향했다.

사내는 궁을 들고 있었는데, 무인 같지 않게 유약해 보였다.

하지만 그건 겉모습일 뿐이다. 생긴 건 유생 같지만 태천야의 다섯 자식 중 가장 차갑고 잔인한 자가 바로 태무륵이었다.

그리고 태무륵 옆에 서 있는 흰 피부를 가진 큰 키의 여자는 태일령이었다.

“처음 듣는 단쳅니다.”

“나도 처음이에요.”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단체가 나타났다는 말이구나.”

“새로운 단체는 절대 아니에요.”

태일령이 말했다.

“내 생각도 그렇다. 하지만 그자들이 우리를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는다.”

“계속 추격할 겁니까?”

태무영이 물었다.

“우린 쉰 명이 넘는 문도를 잃었다.”

“하지만 지존께서는 혈마탑이 중원으로 흘러들어 가도록 두라고 하였소.”

“혈마탑을 그대로 두라고 하셨지 그놈을 죽이지 말라고 한 건 아니다, 무영.”

“그럼…….”

“나는 아버지와 다르다. 아버진 참았지만 나는 참지 않는다. 받은 모욕은 반드시 돌려줄 것이다. 그놈은 물론이고 전가, 철가, 사가라는 단체 놈들까지 전부 없앨 것이다.”

태무황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태무영은 그런 태무황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물렸다.

“참! 다섯째에게서는 연락 왔느냐?”

태무황은 물었다.

“아니오.”

태무영은 고개를 저었다.

“어디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내가 그걸 알 리가 없잖소.”

“헤어질 때 그자를 찾아간다고 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소.”

“어쩌면…….”

태무황의 눈에 광채가 어렸다.

“어쩌면 뭐 말이오?”

“아니다, 가자.”

파앗!

태무황은 바닥을 찼다. 그러자 그의 신형이 쭉 튀어 나갔다.

“출발한다!”

“가자!”

이어 태무영을 비롯한 흑지 무인들이 태무황을 쫓아 몸을 날렸다.

* * *

태무황 일행 말고도 모래 위를 질주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수는 예순 명 정도였다.

상당한 무공의 소유자들인 듯, 바닥이 모래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에 칠 장가량을 나아갔다.

“빌어먹을!”

선두에서 달리는 자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참담한 얼굴로 몸을 날리는 이자는 화가火家의 삼천마뇌 제갈영우였다.

제갈영우 좌우측에서 몸을 날리는 두 사람은 투웅 혁련마우와 화화 소라였다.

“제갈 형 잘못이 아니오.”

혁련마우가 제갈영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니오, 이번 일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오.”

제갈영우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들이 속았다는 걸 알게 된 건 이틀 후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막시후와 찰미하가 당한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조심스러운 말투였지만 더 이상 추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자신은 여전히 쫓고 있는 자들 속에 강시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비웃음으로 떠나는 찰미하, 막시후, 최곤을 배웅해 주었다.

그렇게 사흘을 더 쫓았다.

그러다가 속았다는 걸 알게 된 건 쫓기는 자들이 남긴 배설물 때문이었다.

추격을 하는 자들은 쫓는 자들의 흔적을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되고, 배설물도 그중 하나였다.

어이없게도 배설물은 총 여섯 종류였다. 배설을 하지 않는 강시가 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도망자들은 천산북로를 통해 이동 중이었다. 그렇다면 강시를 데리고 있는 진짜가 갈 길은 천산남로밖에 없었다.

그들은 죽음의 사막이라 불리는 타클라마칸을 남북으로 가로질렀다.

목적지는 천산북로와 남로로 나뉘는 둔황이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소.”

제갈영우는 주먹을 그러쥐었다.

사막을 남북으로 가로질렀기 때문에 빨랐으면 빨랐지 늦지는 않을 거라 확신했다.

“강시는 반드시 찾게 될 거요.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소.”

“알아요.”

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파앗! 파앗! 파앗! 파앗!

제갈영우 일행은 전력을 다해 둔황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저거 말이야.”

금장생이 앉자 태월령은 백사를 가리켰다.

“백사요?”

“응.”

“왜요?”

“강시 맞아?”

“네.”

“강시는 퉁퉁 뛰어다니지 않아?”

“일반적인 강시는 그렇습니다.”

“그럼 저건 일반적인 강시가 아니라는 거냐?”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강시의 종류가 여러 가지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맞아?”

“네.”

“어떤 게 있는데?”

“먼저 동시가 있습니다. 동시는 보통 저 같은 강신술사가 작업을 해서 운구해 가는, 움직이는 시체를 말합니다. 두 번째는 동시를 오랜 세월 동안 특정한 장소에 묻어 두거나, 특정 장소에서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어떤 계기로 인해 움직이게 된 시체를 말하는데,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강십니다.”

“그렇구나.”

태월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강시의 상태에 따라 활시, 생시, 인시로 구분합니다.”

“활시부터는 강시처럼 퉁퉁 뛰지 않아?”

“네.”

“그럼 활시와 사람의 다른 점이 뭔데?”

“활시는 심장이 뛰지 않고, 먹지도 싸지도 않습니다.”

“그건 맞네.”

태월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녀는 백사가 먹거나 혹은 배설하는 걸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미심쩍은가 보네요.”

“알몸을 보기 전이라면 믿겠지만…….”

“그럼 이걸 보세요.”

금장생은 백사 앞으로 갔다. 그리고 이마에 붙어 있던 부적을 뗐다.

“크아악!”

부적이 떨어지는 순간 백사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할퀴듯 오른팔을 휘둘렀다.

팔이 금장생의 몸을 훑기 직전, 떨어졌던 부적이 다시 붙었다. 그러자 백사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머리 깨질 뻔했네.”

금장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강시, 얼마나 강하지?”

그녀가 질문을 한 건 조금 전 목격한 백사의 손놀림 때문이었다.

팔이 움직이는 속도가 어지간한 고수보다 더 빨랐다.

“책에 나온 건, 강기가 아니면 피부에 흠집을 내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거의 금강불괴지신이란 거네?”

“이론상 그렇다는 겁니다.”

“시험해 본 적 있어?”

“제 소유가 아니라서요.”

“그런데 너는 왜 쫓기는 거지?”

문득 떠올라 물었다.

금장생을 쫓는 자는 흑지 무인들뿐만이 아니었다. 자신들보다 먼저 쫓는 자가 있었다.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그 강시 때문이구나.”

하지만 태월령은 눈치가 빨랐다. 그녀는 금장생이 백사 때문에 쫓긴다는 걸 대번에 알아차렸다.

“글쎄요.”

금장생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중요한 강시인가 보구나.”

“백사에 대해 아는 것도 없지만, 설사 안다고 해도 영업 비밀은 말해 줄 수 없습니다.”

“백사란 이름은 네가 지은 거냐?”

“네.”

“만일 백사의 피부가 나처럼 검었으면 흑사라고 지었겠구나.”

“그랬을지도 모르죠.”

“그럼 너를 쫓는 자들에 대해서는 아느냐?”

“모릅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궁금하지 않으냐?”

“운구가 끝나면 추격도 함께 끝날 텐데 굳이 궁금해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끝날 거라고 생각하느냐?”

“끝나지 않을까요?”

“만일 그렇게 생각하다는 넌 정말 멍청한 거다.”

“뒤끝이 좋지 않을 거란 말이군요.”

“무인이 가장 견디지 못하는 것이 바로 자기보다 못한 자에게 모욕을 받았다고 느낄 때다.”

“만일 내가 무사히 운구를 마치면 날 쫓던 자들은 모욕받았다고 생각할 거란 말인가요?”

“분명 그럴 것이다. 그리고 당한 걸 갚아 주기 위해 자기네들이 할 수 있는 건 다 할 것이다.”

“뒤끝이라면 나도 장난 아닌데.”

“뭐라고?”

“아, 아닙니다.”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냐?”

“선불을 받아서, 중간에 멈출 수도 없습니다.”

“아무튼 조심해라. 그보다…….”

태월령의 시선이 불 옆으로 향했다. 거기엔 혈마탑이 세워져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부터 볼 겁니다.”

금장생은 혈마탑을 들었다.

그가 보고 있는 부분은 이 층이었다.

이 층에도 역시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일 층처럼 삼백육십오까지 적힌 게 아니라 각 면에 일부터 십이까지 새겨져 있었다.

‘십이면 일 년을 나타내는 거니까 그렇다면 삼 층에는 한 달이겠네.’

금장생의 시선이 삼층으로 향했다.

그의 예상대로 삼 층에는 일부터 삼십까지 숫자가 적혀 있었다.

순서대로 적힌 게 아니라 언뜻 보면 무작위로 써 새겨 놓은 것 같았다.

금장생의 시선이 사 층으로 향했다.

사 층에는 숫자가 적혀 있지 않았다. 대신 꽃, 비 내리는 풍경, 이파리가 절반가량 떨어져 나간 나무, 눈 덮인 벌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흠!”

금장생은 혈마탑을 내려놓았다.

“알아낸 게 있느냐?”

“이 층과 삼 층에는 숫자가 적혀 있고 사 층엔 그림이 그려져 있네요.”

“사 층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건 새로울 것도 없다.”

일 층, 이 층, 삼 층의 각 면에 적힌 기호가 숫자라는 건 금장생 덕분에 알았지만 사 층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건 그녀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겠지요. 아무튼 현재까지 알아낸 건, 숫자와 그림이 있고 그 둘의 연관성을 찾아내야 이 녀석의 비밀이 풀린다는 겁니다.”

금장생은 혈마탑을 내려놓았다.

“풀 수 있겠느냐?”

“노력해 봐야지요. 그런데…….”

금장생은 태월령을 보았다.

“왜 그러느냐?”

“얼마에 사시겠습니까?”

“사?”

“그럼 공짜로 가져갈 생각이었습니까?”

“그, 그건…….”

태월령은 일순 할 말을 잃었다.

비밀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고 쫓아왔을 뿐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겠다는 계획은 없었던 탓이다.

“얼마를 원하느냐?”

“가격은 비밀을 풀고 난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금장생의 시선이 왼편으로 향했다. 아까 만났던 귀신이 돌아와 서 있었다.

‘어떻던가요?’

―내일 아침이면 여기 도착할 거다. 너를 쫓는 자들은 두 부류다.

귀신은 쫓아오는 자들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수고는 무슨. 감사는 내가 해야지.

귀신의 입이 좌우로 벌어졌다. 그 순간 귀신 뒤편이 환해졌다.

“가야겠습니다.”

귀신이 사라지가 금장생은 혈마탑을 챙겨 들고 일어났다.

“왜?”

태월령은 의아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저를 쫓는 자들이 내일 아침이면 여기 도착한답니다.”

“그걸 어떻게 아는데?”

“뛰어난 강신술사는 귀신하고도 대화가 가능하거든요.”

“귀신이 말해 주었다고?”

“네.”

금장생은 모래흙을 끼얹어 불을 껐다.

“편히 쉴 수 있다고 좋아했는데.”

태월령은 아쉬운 얼굴로 일어났다.

“다음 목적지는 어딥니까?”

“이틀 정도 달리면 둔황에 도착할 거야.”

“가시죠.”

“알았어.”

태월령은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걷던 그녀의 걸음이 빨라지고, 두 사람은 곧 달빛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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