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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51화 (51/524)

황금가 (51)

쫓는 자, 쫓기는 자

태양이 떠오르면서 대기는 급격하게 달궈졌다.

간밤에 한껏 차가워졌던 사막은 이곳저곳에서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며 열기를 머금었다. 그러다 더 이상 열기를 머금을 공간이 없자 밖으로 뿜어내기 시작했다.

사막은 모래가 뿜어내는 열기로 금세 열탕으로 변했다.

한껏 데워진 대기는 태양 빛을 반사시켜 사막의 색을 백색으로 바꿔 놓았다.

백색 지대. 이곳 사막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파앗! 파앗! 파앗!

세 사람이 백색의 공간을 뚫고 빠르게 내달렸다.

세 명 모두 강신술사 복장을 하고 있었다.

맨 앞에서 달려가는 자는 체격이 왜소했고, 그 뒤를 따르는 자는 선두에서 달리는 자보다 좀 더 컸으며, 맨 뒤에 있는 자는 거구였다.

이들은 누란의 유적을 벗어난 금장생 일행이었다.

선두에서 달리는 사람은 태월령이었다.

그녀가 길 안내인이 된 건 내기에서 진 탓이었다.

금장생이 비밀을 풀었다고 했을 때 그녀는 믿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 꼼수를 부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많은 이들이 혈마탑의 비밀을 풀기 위해 도전했다. 그들 모두는 자칭 타칭 천재라고 일컫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혈마탑의 비밀을 풀어내지 못했다.

그런데 어수룩해 보이는 자가 비밀을 풀었다고 하니 믿길 리가 없었다.

이번에는 풀었다는 증거를 대지 못하면 죽인다고 위협했다.

그때 그가 한 말이, 맨 아랫단에는 일부러 삼백육십오까지 숫자가 적혀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숫자를 하나하나 짚어 주었다.

그게 무슨 숫자냐고 따지자 고대에 쓰인 숫자라고 하였다. 아울러 삼백육십오는 일 년을 나타낸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자 어쩌면 정말로 비밀의 끝자락을 움켜쥐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자신이 풀어낸 비밀은 거기까지라고 했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지닌 지 며칠 되지도 않아 혈마탑의 비밀 한 자락을 잡아 낸 사람이 그고, 어쩌면 나머지도 풀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기에 져서 호위를 하는 게 아니라 싫다고 해도 자청해서 호위를 해야 할 판이었다.

그가 입던 장포를 얻어 입고 곧바로 호위를 시작하였고, 사흘째 중원을 향해 달리는 중이다.

달리는 도중 점심을 먹고 또 달렸다.

‘대단한 녀석!’

태월령은 내심 감탄사를 내뱉었다.

금장생에게 가장 놀라운 게 있다면 지치지 않는 체력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놀라운 건 회복력이었다.

보통 사람은 사흘 동안 휴식 없이 달리지도 못한다. 더구나 이곳은 일반 평지도 아니고, 서 있기만 해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사막.

걷기만 해도 힘든 곳을 쉬지 않고 달렸다.

보통 사람은 그 정도 달리면 쓰러지고 만다. 그런데 녀석은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쫓아왔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달리면 육체적인 한계에 도달해 더 이상 뛰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하룻밤 쉬고 나면 전날 언제 하루 종일 달렸냐는 듯 생생하다.

간밤에 피로를 완벽하게 풀어 낸 덕분이었다.

한마디로 그의 체력은 불가사의였다.

“저기만 넘어가면 천지泉地가 있다.”

태월령은 저 멀리 보이는 모래언덕을 가리켰다.

“저 앞에 있는 것 같지만 저녁 무렵은 돼야 도착하겠죠?”

금장생은 물었다.

“점점 사막 사람이 돼 가는구나.”

체력만 대단한 사내일 뿐 아니라 적응력 또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물이 풍부한 곳에서 살다 온 자들은 목이 마르는 걸 견디지 못한다. 그런데 그는 단 한 번도 정해진 시간 전에 물을 마시거나 달라고 한 적이 없다.

처음엔 힘들어하는 것 같더니 이젠 그런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단 사흘 만에 완벽하게 사막에 적응해 낸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살아남는 덴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났다고 했거든요.”

“그 말에는 나도 동의한다.”

태월령은 피식 웃었다.

금장생의 예상대로였다. 세 사람이 천지에 도착했을 때는 어둠이 사방을 뒤덮은 후였다.

천지는 아담했다.

폭 삼 장, 길이 사 장 정도 되는 천지와, 천지보다 세 배 정도 큰 숲이 전부였다.

숲을 채우고 있는 나무는 천 년을 자라고, 죽은 뒤 천 년을 서 있고, 넘어진 뒤 천 년을 썩지 않아 삼천 년을 산다고 하는 호양목이었다.

천지 앞에 도착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속에 머리를 처박았다.

금장생과 태월령은 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그리고 머리와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꿉꿉해서 안 되겠다.”

몸을 일으킨 태월령은 장포를 벗었다.

장포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라 바로 알몸이 드러났다.

“끙!”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어둠이 내려앉았다고 하지만 사물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도 옷을 훌렁 벗어 던진 것이다.

‘자신감인가?’

문득 든 생각이었다.

태월령의 알몸은 숨이 막힐 정도로 도발적이었다.

가슴은 더할 수 없이 풍만하고 엉덩이는 만월을 떠올릴 정도로 탱탱하다. 한마디로 농염함의 극치를 달리는 몸매였다.

‘아니면 노출증이거나.’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물을 끼얹어 목에 묻은 모래를 털어 냈다.

“안 들어갈 거냐?”

태월령의 얼굴에 실망스러운 기색이 얹혔다.

그녀가 금장생 앞에서 옷을 벗은 건 의도적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육체는 야망을 이루게 해 주는 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동안에도 육체를 이용해 많은 걸 얻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몸을 가꾸는 데 공을 들였다. 수시로 양젖으로 목욕을 했고, 대식국 등에서 들어온 향료를 발랐다. 그 상태에서 색공까지 익히자 알몸은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굳이 모든 걸 내주지 않아도,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사내들을 종처럼 부릴 수 있었다.

금장생도 그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게다가 이곳까지 오면서 파악한 금장생은 여자 경험도 별로 없었다. 그런 자를 유혹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런데 처음에 당황한 듯하던 금장생은 금세 본래 신색을 회복해 버린 것이다.

“먼저 하세요. 나는 이 녀석 씻기고 나서 하겠습니다.”

금장생은 백사를 가리켰다.

“알아서 해라.”

태월령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요 녀석아.’

돌아선 그녀의 입가에 빙긋 미소가 떠올랐다.

기온이 떨어진 탓인 듯 물은 상당히 차가웠다.

그녀는 무릎까지 잠기는 지점에서 멈췄다. 그리고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그녀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금장생 앞에 드러났다.

태월령은 금장생의 동태를 살폈다.

‘이 정도면…….’

그녀는 금장생이 숨결이 가팔라질 거라 확신했다. 지금까지 거쳐 간 대부분의 사내가 그랬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거친 숨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설마 무정지도無情之道를 완성한 자란 말인가?’

태월령의 눈동자에 차가운 기운이 어렸다.

무정지도는 자신의 감정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경지라는 점에서, 백팔번뇌를 벗어난 경지를 일컫는 무심지도無心之道와 구분된다.

아울러 그녀가 알기론 무정지도를 완성한 부류는 자객뿐이다.

‘하지만 악마소는?’

문득 금장생이 악마소을 얻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무정지도가 모든 감정을 통제하는 상태라면 악마소는 모든 감정의 폭발이다. 인간이 낼 수 있는 모든 감정 상태가 극에 이르면 광기로 변하는데 그 광기가 외부로 표출되는 게 바로 악마소다.

감정의 통제와 폭발, 그 두 가지는 정반대편에 서 있는 개념이다.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지닌다는 건 그녀 생각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예의상 놀란 척이라도 해 줘야 하는 거잖아. 사내자식이 쫀쫀하기는!’

태월령은 이내 생각을 털어 냈다.

그리고 몸을 씻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르지만 중원으로 가는 건 분명하다. 그럼 유혹할 시간은 충분하다.

태월령은 몸을 씻는 데 집중했다.

등을 밀어 달라고 부탁해 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급하게 먹는 밥은 체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었다.

그녀는 물속으로 몸을 담그지 않고 뒷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몸을 씻고 머리를 감았다.

그리고 몸을 다 씻고 난 후 금장생으로부터 빌려 입은 옷을 빨았다.

몸과 마찬가지로 옷에서도 모래가 많이 나왔다.

빤 옷을 짠 다음 밖으로 나와 삼매진화로 말려 입었다.

그사이 세수를 마친 금장생은 나무를 주워 와 불을 피웠다.

“불은 어떻게 피운 거지?”

불 옆으로 간 태월령은 머리를 말리며 물었다.

“이겁니다.”

금장생은 부싯돌을 꺼내 보여 주었다.

“원시적이네.”

“가장 현대적인 거 아닌가요?”

“부싯돌이 언제 발견됐는지 알아?”

“수천 년 전이라는 건 저도 압니다.”

“그래서 원시적이라는 거야.”

“그럼 현대적인 방법은 어떤 겁니까?”

“이런 거지.”

태월령은 마른 나뭇가지를 집어 들고 삼매진화를 펼쳤다.

화륵!

잠시 후 나뭇가지 끝에서 불길이 올랐다.

“그건 무공이잖아요.”

“무공이면서 불 피우는 기술이지.”

“부싯돌로도 아직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금장생은 씻으러 가려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무공 배울 생각은 없어?”

“얼마나 배워야 불을 피울 수 있는데요?”

“십 년은 노력해야 할걸.”

“그냥 저걸 쓰겠습니다.”

금장생은 부싯돌을 가리켰다, 그리고 백사를 데리고 천지로 갔다.

“이건 뭐지?”

태월령은 돌 위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저녁 식삽니다.”

“그러니까 뭐냐고?”

“오른편에 있는 건 과일 말린 거고, 왼편에 있는 건 양고깁니다.”

암왕칠구를 전부 꺼낸 금장생은 옷을 벗으며 대답했다.

“고마워.”

태월령은 싱긋 웃으며 등 뒤의 바위에 등을 기댔다.

그녀는 건과와 양고기 육포를 동시에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녀는 이미 그 두 가지를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호오!”

그녀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시선이 향해 있는 곳은 금장생의 알몸이었다.

다소 왜소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그의 알몸은 탄탄했다. 온몸이 잔근육으로 덮여 있고, 몸을 약간만 움직여도 잔물결이 물결치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그래서 체력이 좋았던 거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의 원천은 바로 저 잔근육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시선이 백사에게로 향했다.

백사 또한 알몸이었는데, 강시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몸매가 대단했다. 살아오면서 자신보다 가슴이 더 큰 여자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모양도 예뻤다.

“강시가 아니었다면 사내깨나 잡았겠네.”

태월령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강시가 분명한데…….”

태월령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가 아는 강시는 관절이 굳어 걷거나 달리지 못한다. 그런데 금장생이 데려가는 강시는 걸음걸이가 사람과 다르지 않다.

“확인해 보면 알겠지.”

그녀는 과일 말린 것과 육포를 먹으며 금장생이 목욕하는 걸 지켜보았다.

금장생은 먼저 강시를 씻기고 옷을 입으라고 명령을 내린 후 자신이 씻었다.

먼저 머리를 감고 몸을 씻고 옷을 빨았다. 그리고 빤 옷을 탈탈 털더니 밖으로 나왔다.

옷은 아직 축축한 상태고 기온이 쌀쌀했지만, 갈아입을 옷이 없으니 다시 입을 수밖에 없었다.

옷을 입고 암왕칠구 앞에 섰다.

태극선의를 걸치면 암왕칠구의 봉인이 풀린다고 했는데, 풀린 건지 알 수가 없다.

‘하긴 강시가 아니면 필요가 없는 건데…….’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암왕칠구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뭡니까?’

등에 혈라를 집어넣고 심장 쪽에 뇌령을 넣던 금장생은 동작을 멈추며 물었다. 그 왼편 자작나무 숲에 해골을 연상케 하는 귀신이 서 있었다.

―그거 무겁지 않으냐?

귀신은 금장생 앞에 놓인 법기들을 가리켰다.

‘약간 무겁습니다.’

―그런데도 가지고 다니는 거냐?

‘지금은 아니지만 전엔 귀신을 가장 무서워했거든요. 그래서 차기 시작했는데…….’

―이젠 몸의 일부처럼 됐다는 거구나.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

‘제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습니까?’

―임무를 다오.

‘심부름? 혹시 임무 수행 중에 여기서 죽은 건가요?’

―맞다.

‘어떤 임문데요?’

―적이 쳐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서하로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여기서 죽고 말았다.

‘그랬군요.’

―내게 임무를 주겠느냐?

‘여길 떠날 수 있어요?’

―여기는 내 집일 뿐, 나는 사막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그럼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말해라.

‘전 지금 쫓기고 있습니다.’

―쫓긴다고?

귀신에게서 풍기던 영기가 한층 강해졌다.

그건 곧 귀신이 가장 바라는 임무라는 뜻이고, 이번 일을 해결하면 저승으로 갈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네.’

―그러니까 널 쫓는 자들이 어디쯤 와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거냐?

‘그렇습니다.’

―좋다. 다녀오마.

귀신은 바로 사라졌다.

“괜찮네.”

금장생은 싱긋 웃으며 나머지 법기를 착용하고 불 옆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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