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46화 (46/524)

황금가 (46)

고대의 유적

스윽! 스윽! 스윽!

십여 명이 객잔 측면으로 날아내렸다.

그들이 내려선 곳은 객잔의 화장실 옆이었는데, 먼저 와 있던 세 명이 그들을 맞았다.

날아내린 자들은 육왕가 무인들이었다.

이곳에 온 자들은 청랑전객 막시후와 군자검 최곤, 대력철후 찰미하와 세 사람의 부하들이었다.

“광석남의 마지막 연락 장소가 여기였다는 거냐?”

대력철후 찰미하가 먼저 온 세 명을 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보고하던 사내는 말끝을 흐렸다.

“왜 그러느냐?”

“광석남을 발견했습니다.”

“발견했다는 말은…….”

“죽었습니다.”

“죽어?”

“네.”

“누가 광석남을 죽였다는 거냐?”

“그건 모릅니다.”

“죽은 장소는 어디냐?”

“화장실입니다.”

“화장실?”

“네. 볼일을 보다가 당한 것 같습니다. 목이 부러진 채 화장실에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화장실에 가라앉아 있었다고?”

“네.”

“하면 광석남이 감시하던 자는 누구였느냐?”

“그게…….”

“모른단 말이구나.”

“수상한 자가 있어서 추격하고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좀 더 알아보고 난 후에 보고하겠다고 하였고요.”

“광석남이 이 객잔으로 들어왔다면 감시하던 자도 여기에 머물렀단 뜻이 될 터. 따라와라.”

찰미하는 객잔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

인사를 하던 주인의 얼굴이 찰미하 일행의 서슬에 딱딱하게 굳었다.

“최근 열흘 동안 이 객잔에 머물렀던 자들의 신상에 대해 알고 싶다.”

나직했지만 듣는 사람을 으스스하게 조이는 진득한 뭔가가 찰미하의 말투에 내포돼 있었다.

“손님에 대해 특별하게 작성하는 건 없습니다. 제 머리로만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주인은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말해 보아라.”

“네,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열흘 전에는…….”

주인은 생각을 떠올리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동안 투숙한 손님의 수는 총 서른 명이었다.

“그들이 전부냐?”

이야기가 끝나자 찰미하가 확인하듯 물었다. 주인의 말로는 수상하게 보이는 자는 없었다.

“일반 객잔에 든 손님은 그들이 전붑니다요.”

“일반 객잔?”

“우린 객잔은 일반 객잔과 강시 객잔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강시 객잔?”

찰미하의 눈이 빛났다.

“네.”

“강시 객잔은 어떤 걸 말하느냐?”

“강시를 운구하는 강신술사들이 강시와 함께 투숙하는 객잔입니다.”

“강시 객잔에 든 자는 없느냐?”

“한 명 있었습니다.”

“어떤 자냐?”

“강시를 한 명 데리고 왔는데 생김새는…….”

주인은 금장생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원래는 강시 객잔의 주인인 동생이 설명해야 하지만 그 사건을 겪은 후 충격을 받고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강시는 어떻더냐?”

“여자 강시였습니다.”

“여자 강시?”

찰미하의 시선이 최곤에게로 향했다.

“천역에 잠들어 있던 자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혹은 어른인지 아이인지 아는 사람은 없소이다.”

“여자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는 건가요?”

“내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광석남이 감시하던 자는 그자일 가능성이 높겠군요.”

“아무래도 이곳에서 강시를 운구하는 자라면 주목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자신이 감시당한다는 걸 알아차리고 광석남을 없애 입을 막은 거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최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그자가 우리가 쫓는 자라면 어떻게 되는 거죠?”

“우리가 그들에게 당했다고 봐야지요.”

제갈영우 일행은 다른 자들을 쫓고 있기에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완전히 당한 건 아니죠.”

“그렇죠.”

최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요.”

찰미하는 곧바로 몸을 날렸다.

“차하!”

“타하!”

“하아!”

이어 최곤과 막시후를 비롯한 무인들이 바닥을 박차고 쏘아져 갔다.

그들은 금세 모래언덕 너머로 모습을 감췄다.

“휴우!”

객잔 주인은 안도한 얼굴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느닷없이 차가운 목소리가 귓전으로 파고들었다.

안으로 들어가려던 주인은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누, 누구요?”

주인은 겁먹은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우린 검은 땅에서 왔다.

“흐, 흑지?”

주인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흑지黑地.

신강 어딘가에 있다는 전설의 단체 이름이었다.

존재 여부조차 불투명한 곳이지만 그들을 모욕한 자는 구족이 죽임을 당한다는 전설이 신강 전역에 퍼져 있는, 공포의 단체이기도 하다.

―딱 한 번만 묻겠다.

“마, 말씀하십시오.”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그자들이 찾는 자가 신강오흉을 죽인 그자 맞느냐?

“마, 맞습니다요.”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들에 대해 아는 건?

“처, 처음 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흑지에서 나오신 분들입니까?”

파앗!

순간 바닥에서 뭔가가 솟구치더니 주인을 훑고 지나갔다.

“컥!”

주인의 눈이 커졌다.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도 몰랐다.

“의심하지 마라. 의심하는 자, 죽는다!”

어디선가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쩌억!

그리고 주인의 몸통이 정확하게 두 조각으로 나뉘었다.

쿠웅!

두 조각으로 분리된 시체는 지면으로 쓰러졌다.

쓰러진 주인은, 강시 객잔을 운영하던 동생 또한 이미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휘이익!

습기를 머금은 눅눅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을 타고 온 모래는 주인의 몸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 * *

쉬지 않고 동진한 금장생과 백사는 이름 모를 폐허로 들어섰다.

폐허의 규모는 엄청났다.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여긴 어딜까?”

금장생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세월의 풍상을 견디지 못한 건물은 대부분 무너졌지만 터만 가지고도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건물 터는 어지간한 도시에서는 구경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금장생 생각에 그런 크기의 건물 터를 남길 수 있는 곳은 왕국 수도뿐이었다.

“이곳 어딘가에 왕국이 번성했다는 말 들어 본 적 있어?”

금장생은 백사를 보며 물었다. 하지만 백사는 대답이 없었다.

“혹시 너 말을 할 줄 아는데 못하는 척하고 있는 거 아냐?”

금장생은 백사의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가 바라보았다.

그동안 백사의 몸 상태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다리며 팔 관절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걸음걸이 또한 보통 사람과 같아졌다.

사람과 다른 점이라면 먹고 마시지 않고 말을 않고 배설을 하지 않는다는 정도다.

“아무튼 나는 네 정체를 꼭 밝혀내고 말 거야. 앉아.”

금장생은 바닥을 가리켰다.

털썩!

그러자 백사가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앉는 자세는 가부좌였다.

금장생은 창처럼 보이는 곳으로 가 앉았다. 그리고 짐 속에서 음식을 꺼냈다. 그가 꺼낸 건 과일 말린 것과 양고기 육포였다.

그는 과일 말린 것과 육포를 함께 입안으로 집어넣고 씹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그가 발견한 것 중 하나가 과일 말린 것과 육포를 따로 먹는 것보다 섞어 먹는 게 더 맛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발견하고 나서 육포를 먹을 땐 반드시 과일 말린 것과 함께 먹는다.

“느낌이라는 거 말이야.”

음식을 씹다 말고 백사를 보았다.

“참으로 묘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기분에 사로잡히면 반드시 쫓는 자가 있더라는 거야.”

금장생이 폐허 중 가장 높은 곳을 택한 이유가 바로 그 기분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기다리면 어떤 자들이 날 쫓는지 알아차리게 될 거야.”

금장생은 말린 과일과 육포를 질겅질겅 씹었다.

척! 척!

육십여 명이 바닥으로 내려섰음에도 불구하고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이들은 금장생과 백사를 쫓는 찰미하 일행이었다.

바닥으로 내려선 그들은 빠르게 좌우를 살폈다.

휙!

그들 중 한 명이 전방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발자국이 죽 이어져 있었다.

“출발하라!”

찰미하가 나직하게 소리쳤다. 그러자 세 세력의 무인들은 낮은 자세로 신법을 펼쳤다.

이들이 이렇듯 낮게 몸을 날리는 이유는 바닥에 나 있는 흔적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그들은 폐허에 도착했다. 발자국은 폐허를 지나쳐 계속 동진하고 있었다.

“고대 유적이오.”

폐허를 둘러보고 온 최곤이 말했다.

“여기가 천산북로와 남로의 갈림길이고 고대 유적이라면 누란일 가능성이 높아요.”

찰미하가 말했다.

“잃어버린 왕국이라 불리는 그 누란 왕국을 말하는 거요?”

최곤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네.”

찰미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설의 왕국을 그냥 두고 가야 한다는 게 아쉽구려.”

“나중에 시간 나면 다시 찾아오면 되잖아요.”

“시간이 안 나니까 그러지요.”

“그럼 어쩔 수 없고요.”

찰미하는 피식 웃었다.

사실 그녀도 누란 왕국에 대해서는 말로만 접했을 뿐 가 본 적은 없다.

전설에 의하면 누란 왕국엔 널린 게 금은보화라고 하였다. 물론 전설을 다 믿는 건 아니지만 사방에 널렸다는 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냥 가야 한다.

누란 왕국보다 천역에서 발굴한 강시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시후의 생각은 달랐다.

몸을 날리던 그는 누란 왕국이란 말에 우뚝 멈췄다.

“왜 그래요?”

찰미하는 막시후를 보았다.

“저 폐허가 정말 누란 왕국이 맞소?”

막시후는 물었다.

“내가 아는 건 저 폐허가 누란 왕국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천산북로와 남로로 갈라지는 곳에서 누란 왕국이 번성했다는 사실뿐이에요. 그리고 여긴 지형적으로 봤을 때 천산남로와 북로로 나뉘는 곳이고요.”

“그러니까 저 폐허가 누란 왕국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말 아니오?”

“맞아요.”

“내가 누란 왕국에 대해 아는 게 있는데, 들어 보시겠소?”

“어떤 내용인데요?”

“전란의 시대 때 우리 팔왕가에 패한 방문자들 일부가 이곳으로 도망쳐 국가를 세웠는데, 그 왕국이 바로 누란 왕국이라는 거였소.”

“그 말 사실인가요?”

찰미하는 몸을 돌려 폐허를 바라보며 물었다.

만일 막시후의 말이 맞는다면 어쩌면 강시를 잡는 것보다 더 큰 걸 이곳에서 얻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사실 여부는 모르오. 다만 그렇게 들었을 뿐이오.”

“흥미롭군요.”

찰미하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어렸다.

“우린 임무 중이오, 찰 소저!”

최곤이 잔뜩 불만 어린 얼굴로 소리쳤다.

“임무는 우리만 수행 중인 게 아니에요, 최 소협. 제갈 소협과 혁련 소협, 소라 소저도 우리와 같은 임무를 수행 중이에요. 나는 이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 받게 될 보상을 기꺼이 그들에게 넘길 의향이 있어요. 물론 최 소협에게도 양보할 수 있고요.”

“그러니까 두 분은……?”

“만일 저곳이 누란 왕국이고, 누란 왕국을 세운 자들이 우리 선조들에게 패한 방문자들의 일부라면 우린 엄청난 발견을 하게 되는 거고, 어쩌면 이 일은 임무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 될지도 몰라요.”

“음!”

최곤은 신음을 내뱉었다.

“결정은 우리가 아니라 본인이 하는 거예요.”

찰미하는 고대 유적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녀의 뒤를 막시후가 따랐다.

“나는 이런 즉흥적인 결정을 제일 싫어하는데!”

최곤은 동쪽으로 길게 나 있는 발자국으로 시선을 주었다.

저 발자국은 머잖아 바람에 쓸려 사라지게 될 것이다.

“어쩔 수 없지.”

결국 최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찰미하 일행을 따라나섰다.

아주 이상한 일로 인해 금장생의 계획이 수포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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