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45화 (45/524)

황금가 (45)

―강시 객잔 주인 그자가 부른 게 분명해.

금장생 옆에 있던 귀신이 말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일단은 자초지종을 물어봐야 했다.

“그것들, 땅속에서 나온 거냐?”

한가운데 있던 자가 물었다. 그의 이름은 극신유로, 신강오흉의 대형이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묻은 거냐?”

“아닙니다.”

“전에도 여길 온 적이 있느냐?”

“처음입니다.”

“처음이고 네가 묻은 것도 아닌데 시체가 묻혀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느냐?”

“저기 있는 귀신이 알려 줘서 알았습니다.”

“귀신?”

극신유는 움찔했다.

그가 무서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귀신이었던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렇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되는 소릴 해라, 놈!”

신강오흉 둘째 아극타가 버럭 소리쳤다.

그는 대형인 극신유와 달리 귀신을 믿지 않았다.

“그렇다면 제가 여기 시체와 강시가 묻혀 있는 걸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네가 직접 묻었으니까 알겠지.”

“이 시체를 보십시오. 부패 상태로 봤을 때 최소한 십 년은 됐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처음 온 제가 묻었을 리가 없잖습니까.”

“변명은 필요 없다. 직접 묻은 자가 아니라면 이곳에 시체가 있다는 걸 알 리가 없을 터. 우리는 지금부터 살인자를 처단할 것이다!”

아극타는 버럭 소리쳤다. 그리고 무기를 뽑아 들고 금장생을 향해 갔다.

“둘째야!”

극신유가 아극타를 불렀다.

“무공도 모르는 놈입니다. 저 혼자 처리하겠습니다.”

아극타의 걸음이 빨라졌다.

곧 금장생 앞으로 다가선 아극타는 무기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의 무기는 대도大刀였다.

“얼마 받았습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이놈 봐라?’

아극타의 눈이 커졌다.

바로 머리 위에 도가 있는데 전혀 겁먹은 표정이 아니다.

아니, 겁은 고사하고 이 일을 하는 데 얼마를 받았냐고 묻기까지 한다.

그는 다시 한 번 금장생의 전신을 살폈다. 혹시 무공을 숨긴 고수가 아닐까 싶어.

하지만 아무리 훑어도 무공을 익힌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공연한 걱정을.’

그는 피식 웃었다.

“네가 죽는 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것 때문이다.”

아극타는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고는 도를 힘껏 내리그었다.

“끙!”

금장생의 얼굴이 슬쩍 찌푸려졌다.

“네가 막아 줬으면 좋을 텐데.”

금장생은 백사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건 자신이 더 잘 안다.

‘어쩔 수 없네.’

그는 이를 가볍게 물더니 묵야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휙!

막 묵야를 들어 올리려는 순간 검은 그림자 하나가 금장생 앞을 막아섰다.

카앙!

이어 날카로운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억?”

“어?”

아극타와 금장생의 입에서 동시에 놀람에 찬 비명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앞을 보았다.

아극타의 도를 막아 낸 건 뜻밖에도 백사의 팔이었다.

“이것이?”

아극타는 곧바로 도를 들어 올렸다.

바로 그때였다.

휙!

백사의 왼팔이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곧 백사의 왼 주먹이 아극타의 관자놀이에 작렬했다.

퍼억!

머리가 깨지고 피가 튀었다.

“크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아극타가 털썩 쓰러졌다.

“……!”

정적이 감돌았다.

금장생은 물론이고 신강오흉 네 명도 아극타가 강시에게 죽임을 당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 강시는…….”

정신을 수습한 극신유가 백사를 가리켰다.

“글쎄요. 나도…….”

금장생은 어깨를 으쓱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는 백사가 강시 수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렇다고 그 이상, 즉 활시나 생시, 인시일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조금 전 움직임은 잘못 배운 게 아니라면 최소한 활시다.

“그러니까 네놈이 그렇게 기고만장한 이유가 그 강시 때문이었구나.”

극신유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게 아닌데…….”

“죽여!”

극신유는 무기를 뽑아 들고 몸을 날렸다.

“백사, 막아.”

죽이자고 나오는데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금장생은 백사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휙!

그러자 백사가 전방으로 쏘아졌다.

그런데 그녀의 움직임이 고수 못지않았다.

순식간에 신강오흉 앞에 선 그녀는 손을 쭉 내밀었다. 그녀의 표적이 된 자는 신강오흉의 넷째였다.

“헉!”

넷째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신강오흉 중 그가 맡은 일은 도둑질이었다. 그렇다 보니 은신술과 경공은 다섯 명 중 최강이지만 무공은 가장 약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임을 당할 수는 없었다.

그는 얼른 검을 들어 올려 백사의 손을 막았다. 제대로 막았는지, 세운 검의 검날이 백사의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어 갔다.

뚝!

안도의 숨을 내쉬려는 순간 검이 중간에서 부러졌다. 백사가 손가락으로 검을 쥐고 부러트려 버린 것이었다.

넷째는 급하게 상체를 뒤로 젖혔다. 부러진 검날로 공격해 올 게 뻔했기 때문이다.

푹!

하지만 그보다 백사의 손이 약간 더 빨랐다.

상체가 젖혀지기도 전에 부러진 검날이 넷째의 목으로 파고들어 갔다.

“커억!”

넷째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형님!”

다섯째가 백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바로 그때 백사의 고개가 다섯째 쪽으로 돌아갔다.

휙!

그리고 넷째의 목에서 뽑혀 나온 부러진 검이 다섯째를 향해 날아갔다.

다섯째는 날아온 검을 쳐 내기 위해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검날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강했다.

푸욱!

부러진 검은 다섯째의 심장으로 박혀 들어갔다.

“커억!”

다섯째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검의 부러진 부분 끝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쿠웅!

그의 신형이 고꾸라졌다.

스윽!

백사의 신형이 왼편으로 움직였다. 그녀가 달려가는 곳에는 신강오흉의 셋째가 있었다.

“잠시만 잡고 있어라!”

극신유는 셋째에게 소리치고는 금장생을 향해 몸을 날렸다.

금장생을 없애면 강시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크아악!”

하지만 그가 금장생 근처로 가기도 전에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비명의 주인이 셋째라는 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제기랄! 하지만……!”

그는 금장생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검을 불끈 그러쥐었다.

파앗!

강시가 달려오는 소리가 귓전으로 들려왔다.

“네가 오기 전에 놈을 죽일 거다. 반드시……. 타하!”

극신유는 기합과 함께 검을 찔러 넣었다.

이미 검강의 경지에 접어든 듯, 그의 검 끝에는 희미한 광채가 맺혔다.

푸욱!

검이 뭔가를 뚫고 들어갔다.

“놈을 없앴…….”

퍼억!

그 순간 목에서 극심한 통증이 왔다.

극신유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우두둑!

이어 머리가 번쩍 들어 올려지면서 뼈 부러지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머리가 들어 올려지자 자신이 검으로 찌른 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건 금장생이 아니라 누워 있던 강시 중 한 구였다.

“기껏 강신술사에게…….”

극신유는 채 말을 끝맺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휴우!”

금장생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극신유의 검을 막은 강시를 향해 말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강시를 일으켜 세운 건 금장생이 아니라 귀신이었다.

―자네를 살려야 내가 저승으로 갈 거 아닌가?

‘그렇게 되는 건가요?’

―그러네. 그런데 저 강시는 뭔가?

귀신은 백사를 가리켰다.

‘저도 모릅니다.’

―방금 움직임을 봐서는 최소한 활시 이상인 것 같은데, 아닌가?

‘제 생각도 그렇긴 합니다만, 저는 데려다주는 입장이라서요.’

―주인이 아니라는 말이구먼.

‘그렇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죽은 신강오흉의 몸을 뒤졌다.

―지금 뭐 하는 건가?

‘몸을 수색하는 겁니다.’

―수색은 왜?

‘이것 때문이죠 뭐.’

금장생은 대형 극신유의 몸에서 주머니 하나와 한 자 길이의 상자를 꺼냈다.

―그건…….

‘장례비는 받아야 하잖습니까.’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참! 백사, 저기 숨어 있는 사람 잡아 와!”

금장생은 백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휙!

백사가 곧바로 몸을 날렸다.

잠시 후 그녀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강시 객잔 주인을 잡아 왔다.

“이 사람들 아시죠?”

금장생은 시체를 가리켰다.

그가 몸수색을 하고 있는 자는 신강오흉의 셋째였다.

“모, 모릅니다.”

“저기 있는 사람은 당신을 잘 안다고 하던데. 조금 전에 백 냥을 주면서 청부를 했다고…….”

“아이고, 살려 주십시오, 대인. 죽을죄를 졌습니다.”

강시 객잔 주인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당신은 저들을 사서 날 없애려고 했는데 내가 왜 살려 줘야 하죠?”

“죽을죄를 졌습니다, 그러니 제발…….”

“당신에 대한 건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하죠. 그보다, 이들 알죠?”

금장생은 시체와 강시를 가리켰다.

“네, 압니다.”

강시 객잔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을 여기에 묻은 사람이 당신 맞죠?”

“네, 맞습니다. 하지만 맹세코 죽이진 않았습니다.”

“당신이 죽이지 않았다는 건 나도 알아요. 하지만 도둑질을 했죠.”

“도둑질이라고요?”

“이 사람이 강시에게 맞아 죽을 때 수중에 오백 냥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시체를 뒤져 봐도 엽전 한 닢 나오지 않네요.”

“오백 냥이 아니라 삼백스물 한 냥인데…….”

“아, 그렇군요. 그 돈 어디 있죠?”

“그건…….”

“백사, 이 사람 따라가.”

카!

대답인 듯한 소리가 백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당장 가져오겠습니다요.”

백사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강시 객잔 주인은 황급히 말했다.

“몇 냥이라고요?”

“정확하게 삼백스물한 냥입니다.”

“거기에 십 년 이자를 더해서 가져오세요.”

“이, 이자라고요?”

“그럼 남의 돈을 이자도 내지 않고 쓸 생각이었나요?”

“……이자는 얼마 정도나?”

“십 년 동안 돈을 묶어 두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세 배는 불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분이 돈을 불려 달라고 말하지는 않았으니까,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보고 딱 두 배만 받겠습니다.”

“육백 냥을 내놓으란 말씀이시군요.”

“육백 냥이 아니라 육백마흔두 냥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강시 객잔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강오흉을 전부 없앤 자의 말인데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인이 돈을 가지러 간 사이 금장생은 해강을 시작했다. 이미 경험이 있던 터라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천마구유이혼대법 중의 해강비전을 끌어 올리고 강시의 미간에 묵야를 찔러 넣었다.

“크아악!”

괴성과 함께 강시의 몸이 물 밖으로 던져진 물고기처럼 펄쩍 뛰었다.

하지만 뛴 것은 단 한 번에 불과했다. 강시는 이내 잠잠해졌다.

금장생은 빠르게 강시들을 해강시켰다.

―그 칠성검 말이네.

해강이 전부 끝나자 귀신은 금장생이 들고 있는 묵야를 가리켰다.

‘왜 그러십니까?’

―달라진 것 같은데, 나만의 착각인가?

‘이게 달라져요?’

금장생은 묵야로 시선을 주었다.

하지만 금장생의 눈에는 전과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네.

‘어떻게 달라졌다는 거죠?’

―기운이 약해졌네.

‘약해져요?’

금장생은 의아했다.

묵야가 달라졌다면 그건 태극선의를 착용해서다. 태극선의를 만나면 봉인이 풀린다고 하였고, 그럼 어떤 힘이 분출돼야 한다.

그런데 기운이 약해졌다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네.

귀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더 좋습니다.’

금장생은 빙긋 웃었다.

―이제 강시들은 어떻게 할 건가?

‘돈을 받았으니까 좋은 자리에 묻어 줘야지요.’

―돈?

‘저기 오잖습니까?’

금장생은 왼편을 가리켰다. 강시 객잔 주인이 백사와 함께 오고 있었다.

―허허허!

귀신은 웃음을 터뜨렸다.

금장생이 말한 육백 냥은 바로 강시의 무덤을 만들어 주는 비용이었던 것이다.

―이런, 나도 이제 가야겠구먼.

‘극락왕생을 빕니다.’

금장생은 귀신을 향해 합장을 했다.

귀신은 곧 흰 빛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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