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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43화 (43/524)

황금가 (43)

이런 척박한 곳에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정도로 음식은 맛있었다.

특히 양념을 발라 구운 양갈비는 발군이었다.

양고기 특유의 잡내도 나지 않고,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육질이 부드러웠다.

더구나 며칠 동안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한 금장생에게는 모든 음식이 맛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라도 금장생이 엄청난 식욕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미 지불한 돈 속에 식대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즉, 이 인분이나 혹은 삼 인분을 먹는다고 해도 돈을 더 줄 필요가 없었다.

금장생이 젓가락을 놓은 건 양갈비 오 인분을 먹어 치우고 난 후였다.

“여기…….”

금장생은 점소이를 불렀다.

“네.”

“술도 밥값에 포함되는 건가?”

“네.”

“가장 좋은 걸로 한 잔만 줘.”

“우리 객잔에서는 마유주만 취급하는데 괜찮겠습니까.”

“마유주는 술맛이 이상해?”

“신맛이 강해서 처음 드시는 분은 힘들 수가 있거든요.”

“나는 괜찮으니까 가져와.”

금장생은 손을 휘저었다.

“알겠습니다.”

점소이는 자리를 떴다.

―공짜라서 그런 거지?

문득 귓전으로 걸걸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금장생은 못 들은 척했다.

사실 이곳에 많은 귀신이 활보하고 있다는 걸 들어올 때부터 알았다. 하지만 모른 척했다. 말을 걸게 되면 귀신의 넋두리를 들어 줘야 하기 때문이다.

―네가 날 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모른 척해도 소용없어.

모른 척하는데도 귀신은 집요했다.

금장생이 가지고 있는 법기들 때문에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반 장 떨어진 곳에서 이편을 쳐다보며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저 끝에 있는 자가 널 노리고 있어.

귀신은 객잔 구석에 앉은 자를 가리켰다.

금장생은 시선을 들었다.

―역시 날 보는 게 맞구나.

‘귀찮아요.’

금장생은 구석에 앉은 자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내가 귀찮다는 거냐?

‘댁이 아니라 귀신이 귀찮단 말입니다.’

―나는 절대 귀찮은 귀신이 아니다.

‘그럼 저승 안 가고 뭐 합니까?’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못 가는 거다.

‘어떤 일인데요?’

―그보다, 저놈이 왜 너를 노리는지 알아?

‘날 노릴 이유가 없습니다.’

―조금 전부터 널 흘끔거렸는데 노리지 않는다고?

‘나는 누군가로부터 해코지당할 일을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지박령?’

―무슨 소리냐?

‘이 안에서만 사냐고요.’

―여기하고 강시 객잔이 내 집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강시 객잔이 내 집인데 여기까지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그렇군요.’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느냐?

‘화장실!’

―화장실 갔다가 강시 객잔으로 돌아갈 거냐?

‘글쎄요.’

금장생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금장생이 나가자 구석에 앉아 있던 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갔다.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데 나가 볼 수가 없으니…….’

귀신은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그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곳은 뒷문뿐이다. 그곳을 통해서만 강시 객잔으로 갈 수 있다.

금장생과 감시하는 듯한 사내가 나간 앞문은 귀신에게 영원히 갈 수 없는 금역이었다.

‘아이고, 궁금해라. 아이고, 궁금해라.’

귀신은 목이 빠져라 밖을 쳐다보았다.

덜컹!

금장생이 돌아온 건 한 식경 후였다.

―이 냄새는…….

귀신의 눈이 커졌다. 금장생에게서 아주 익숙한 냄새가 났다.

―너?

귀신은 놀란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잘 먹고 갑니다.”

금장생은 주인에게 인사를 했다.

“주문하신 옷 다 됐습니다.”

주인은 보자기로 싼 물건을 계산대 위로 올렸다.

“벌써 됐어요?”

“크게 제작된 게 한 벌 있어서 몇 군데를 고쳤습니다.”

“그랬군요. 감사합니다.”

금장생은 옷을 챙겨 들고 객잔을 나섰다.

그가 나간 곳은 강시 객잔과 이어진 뒷문이었다. 그러자 조금 전 이야기를 나누던 귀신이 따라붙었다.

―그자는 왜 안 들오는 거지?

귀신은 뒤를 흘끔거리며 물었다.

‘다 먹고 간 모양이죠, 뭐.’

―술도 남았고 양갈비도 아직 많이 남았는데?

‘그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십시오.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죽였지?

‘네?’

―네가 죽이지 않았냐고.

‘그자는 무인이고 나는 양민인데 무슨 수로 죽입니까?’

―아무래도 수상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들어가 쉬세요.’

금장생은 피식 웃고는 그의 방문을 열었다.

백사는 반듯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일어나!”

금장생은 혈종을 치며 말했다. 그러자 백사가 벌떡 일어났다.

“내가 널 목욕시키려고 하는 건 돈이 아까워서 그런 게 절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금장생은 밖으로 나갔다.

―돈이 아까워서 그런 거 맞잖아.

귀신이 따라붙으며 비꼬았다.

‘강시를 침대 같지도 않은 곳에 재우면서 한 냥이나 받아먹는 게 맞다고 생각하세요?’

―워낙 손님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렇다고 해도 그건 너무한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돈이 아까워서 시체를 데리고 자겠다는 거잖아.

‘시체가 아니고 강십니다.’

―그게 그거지 뭐.

어느새 금장생은 강시 욕실에 당도했다.

금장생은 백사의 옷을 벗겼다.

―쟤, 쟤 뭐냐?

백사의 알몸을 보고 난 귀신은 화들짝 놀랐다.

‘귀신도 놀라네요?’

금장생은 웃으며 말했다.

―저거 정말 시체 맞느냐?

금장생의 놀림에도 아랑공하지 않고 귀신은 물었다.

이곳에서 그동안 수백 구의 강시를 보았지만 이렇듯 몸 상태가 완전한 강시는 처음이었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천 년도 훨씬 넘었습니다.’

“들어가!”

금장생은 욕조를 가리켰다.

퉁!

첨벙

백사는 욕조 안으로 뛰어들었다.

“조두 같은 게 없나…….”

금장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돌 밑에 조두가 있다.

귀신이 돌 하나를 가리켰다.

금장생은 귀신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서 돌을 들어 올렸다. 돌 아래에는 상당량의 조두가 들어 있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원래는 이곳에서 파는 거다.

‘파는 게 왜 이 돌 밑에 있는 거죠?’

―전에 어떤 사람이 강시를 씻기기 위해 조두를 사려고 했는데, 주인 녀석이 너무 비싸게 불러서 훔쳐 냈다. 강시가 한두 구였으면 구입했겠지만 열두 구나 됐거든.

‘그래서 쓰고 남은 조두를 거기에 숨겨 두었다는 건가요?’

―다음에 왔을 때 쓸 생각이었거든.

‘그런데 안 온 모양이죠?’

―안 온 게 아니라 올 수가 없었어.

‘왜요?’

―죽었거든.

‘혹시 그 사람이 당신인가요?’

―맞다.

‘그런데 왜 죽었습니까?’

금장생은 조두를 챙겨 들고 욕조 앞으로 갔다.

―옷을 버리기 싫으면 벗고 들어가야 한다.

‘친절하시네요.’

금장생은 싱긋 웃고는 장포와 바지를 벗어 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욕조는 생각보다 깊어 물은 허벅지 위쪽까지 차올랐다.

“차네.”

금장생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지금 오줌 싸는 거냐?

‘내가 그런 몰상식한 사람으로 보입니까?’

―글쎄. 사람은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는 존재니까.

‘물이 너무 차서 저절로 몸이 떨린 겁니다.’

“앉아!”

금장생은 백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백사는 철퍼덕 주저앉았다.

금장생은 옆에 있는 바가지로 물을 퍼서 백사의 머리로 끼얹었다.

―머리에 나 있는 그거 뿔이냐?

옆으로 다가온 귀신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금장생이 장포를 벗어 놓자 귀신은 바로 옆까지 다가올 수 있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백사의 머리를 뒤로 젖혔다. 백사는 순순히 따랐다.

그 상태에서 조두를 물에 적셔 비벼 거품을 내서 백사의 머리에 문질렀다.

여러 번 문지르자 거품은 더욱 풍성해지고 백사의 머리는 거품을 뒤집어쓴 모양이 되었다.

“훗!”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문득 백사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시에게 정 주지 마라.

‘정을 주기도 하나요?’

―어른 강시나 많이 훼손된 강시에게는 그런 일 없는데 훼손이 덜 된 어린 강시에게는 연민의 정을 느끼는 자들이 간혹 있다.

‘그런데 그게 왜 문제가 된다는 거죠?’

금장생은 부적을 들어 올린 후 남은 거품으로 백사의 얼굴을 문댔다. 워낙 피부가 희어 때가 끼지 않을 줄 알았는데 백사의 얼굴에서는 구정물이 흘러내렸다.

얼굴을 다 씻기고 나서 바가지로 물을 퍼 부적이 젖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끼얹었다.

―헐!

뒤에서 귀신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금장생은 고개를 돌렸다. 귀신이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너는 저게 사람 얼굴이라고 생각하느냐?

귀신은 백사 얼굴을 가리켰다.

‘뿔이 달렸지 않습니까?’

―뿔이 달렸으니까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게냐?

‘그걸 물으면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변하지 않는 진실은, 백사는 뿔이 달렸고 키가 칠 척이 넘으며 인간의 미모를 초월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아닌 것 같기는 한데 뭔지 모르겠다는 말이구나.

‘네.’

“일어나!”

금장생은 말했다.

그러자 백사가 벌떡 일어났다.

무릎을 구부리며 몸을 일으켰지만 물속이라 금장생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백사가 똑바로 서자 온몸에 조두를 칠했다.

“거참!”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피부가 얼음장처럼 찬 걸 제외하면 인간의 피부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에 조두를 칠할 때는 야릇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총각 딱지를 떼기도 전에 변태부터 되겠네.’

금장생은 서둘러 백사의 목욕을 끝냈다.

밖으로 나오라고 명령을 내린 후 수건으로 온몸을 닦았다.

―여마왕이다.

‘네?’

―저 모습이 인간일 리는 절대 없다. 머리에 뿔이 있고 여자 몸이니까 여마왕이 분명하다.

‘마왕이 존재한다고 믿습니까?’

―전엔 안 믿었다. 하지만 강신술사가 되면서 이 세상에는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마왕이 있다고 믿는다는 말이군요.’

―지금은 믿는다.

‘그렇군요. 그건 그렇고, 조금 전에 정을 줘서는 안 된다고 하셨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금장생은 백사에게 옷을 입히며 물었다.

―해강을 해야 하지 않느냐.

‘힘들어진다는 말이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딴에는 일리가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다 입히고 모자를 씌워 뿔을 가렸다.

“부적을 바꿔야겠네.”

부적이 상당 부분 젖어 곧 영험한 기운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는 청명진인이 준 부적 중 하나를 꺼내 바꿔 붙였다.

“사람 욕실은 저기라고 했지?”

그는 왼편으로 걸어갔다.

강시 욕조 끝에는 문이 달려 있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아담한 욕조가 나타났다.

화려하다고 하긴 힘들었지만 강시 욕실보다는 훨씬 나았다.

―저기를 좀 봐 보겠느냐?

옷을 벗고 있는데 귀신이 말했다.

금장생은 귀신을 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내가 다른 곳은 다 볼 수 있는데 저기만 가지를 못하거든.

금장생은 귀신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욕실 왼편 벽이었다.

―그 안에 나를 거부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그래요?’

금장생은 귀신이 가리킨 곳으로 갔다. 그리고 주먹을 쥐고 두드렸다.

텅!

속이 빈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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