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40화 (40/524)

황금가 (40)

“너무 긴장하는 거 아닙니까?”

청명진인은 카밀을 보며 말했다.

“실패하면 여기서 뼈를 묻어야 하는데 긴장할 수밖에 없잖소.”

“뼈를 묻는다는 건 무슨 소립니까?”

부적을 놓으려던 금장생은 카밀을 보았다.

“그 시체를 살려 내지 못하면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 나가는 길을 이 시체만 알고 있다는 말 같은데 맞습니까?”

“시체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시체가 이 천도경을 들었을 때 입구가 나타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들어왔던 곳으로 나가야 한다.”

“천도경은 들어오는 길만 가르쳐 줄 뿐 나가는 길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말이군요.”

“그렇다.”

“끙!”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제강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

“아무튼 추가 비용을 꼭 받아 낼 거니까 그렇게 아십시오.”

금장생은 신경질적으로 부적을 놓았다.

휙!

척!

마치 끌어당기는 것처럼 부적은 시체의 이마에 찰싹 달라붙었다.

“일단은 성공이네.”

그의 얼굴에 싱긋 미소가 얹혔다.

부적이 이렇게 강하게 붙는다는 건 제강이 성공했다는 걸 뜻한다.

‘이제 눈만 뜨면…….’

번쩍!

강시의 눈이 번쩍 뜨이고 녹광이 쏟아져 나왔다.

금장생은 재빨리 혈종을 꺼냈다. 그리고 가볍게 쳤다.

딸랑!

그러자 강시가 고개를 홱 돌려 금장생을 보았다.

“나는 네 전생과 현생과 후생의 혼백과 육신의 지배자다. 나는 네 주인이 되며 너는 내 종이 된다. 너와 나의 주종 관계는 네가 해강될 때까지 지속된다. 인정하느냐?”

“지금 뭐 하는 건가?”

청명진인이 어이없는 얼굴로 물었다.

기본적으로 강시는 자아가 없다. 따라서 금장생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알아듣지를 못한다.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계약서 작성 중입니다.”

“계약서?”

“제 아버지 말씀이, 어떤 관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계약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거든요.”

“하지만 강시는 대답을 할 수가 없지 않는가.”

“대답이 없다는 건 곧 긍정을 의미한다고 하였거든요.”

“그러니까…….”

“저 강시와 저는 주종 관계가 됐다는 걸 뜻합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한번 볼까요?”

“뭘…….”

“네 주인으로 첫 번째 명령을 내리겠다. 일어나라!”

스윽!

금장생의 말이 끝나자마자 강시는 상체를 일으켰다.

“보십시오. 제 말을 듣잖습니까.”

금장생은 활짝 웃었다.

“강시가 자네 말을 듣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당연하다고 해서 그냥 넘어갔다가 망한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아무리 당연한 거라고 해도 뒤통수 맞지 않으려면 반드시 계약을 해야 하는 겁니다.”

“예끼, 이 사람아.”

청명진인은 허허 웃고 말았다.

사실 제강이 끝나고 탄생한 강시는 계약이란 절차가 필요 없다. 이혼대법을 펼칠 때 이미 계약이 성립된 걸로 보기 때문이다.

“아무튼 계약은 끝났고 저 녀석은 이제 제 종입니다. 내려와서 내 앞으로 와라!”

금장생은 강시를 보며 소리쳤다.

휙! 콩콩콩!

단에서 내려온 강시는 통통 튀어서 금장생 옆으로 왔다.

“크네.”

금장생은 어디 가서 크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 작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그런데 강시 앞에 서자 어린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백사白蛇다. 나는 너를 백사라고 부를 것이다.”

‘풋!’

진지하게 이름을 지어 주는 금장생의 모습에 청명진인은 피식 웃었다.

‘그래도 어울리기는 하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사라는 이름에서 백白은 눈처럼 흰 피부에서 따온 게 분명하다. 그리고 사蛇는 느낌을 표현한 것이다.

눈처럼 흰 피부를 가진 화려한 미모를 가진 강시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사악함이 느껴졌다. 그걸 감지하고는 사蛇로 명명한 모양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금장생은 짐을 챙기며 카밀에게 물었다.

그는 짐을 싸면서 강시가 입고 있던 것도 함께 집어넣었다.

“나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걸로?”

금장생은 카밀이 들고 있는 천도경을 턱으로 가리켰다.

“원래 이 천도경의 주인은 저기 앉아 있는 저자다.”

카밀은 좌화한 시신을 가리켰다.

“참! 내 정신 좀 봐.”

금장생은 시신에게로 갔다.

“왜 그러느냐?”

“죽음을 다루는 문파의 사장인데 시체를 보고 그냥 갈 수는 없잖습니까.”

“묻어 준다는 거냐?”

“혹시 이 동굴 안에 맨땅은 없습니까?”

“우린 지금 바로 나가야 한다.”

“내가 이 시체를 묻어 줄 동안에 출구를 찾으세요.”

금장생은 시체를 안았다.

지잉!

시체를 잡는 순간 알 수 없는 울림이 감지되었다.

금장생은 움찔했다. 그는 시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 착각이었나?’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퍼억!

순간 시체가 부서졌다.

강시로 제강된 여자 시체와 달리 노인은 천 년 이상의 세월을 비껴가지 못한 모양이었다. 부서지자마자 가루로 흩어지고 말았다.

‘이런 경우엔 귀신이 있어야 하는데…….’

금장생은 내부를 살폈다. 하지만 귀신은 없었다.

“이러면 묻어 줄 것도 없네.”

금장생은 손을 털었다. 그리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나가는 길은 찾았습니까?”

“저기다.”

카밀은 벽을 가리켰다.

“어떻게 저기라고 장담하죠?”

벽은 다른 벽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이걸 봐라.”

카밀은 강시의 손에 천도경을 들려 벽을 비췄다.

그러자 파破 자가 천도경 안에 나타났다.

“벽을 부수라는 뜻이겠죠?”

금장생은 물었다.

“그럴 거다.”

카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금장생의 시선이 북궁창에게로 향했다.

“왜 그러시오?”

“치료법은 찾았나요?”

“이 안에는 없었소.”

북궁창은 고개를 저었다.

“안됐군요.”

“그렇다고 죽는 건 아니니까…….”

“내가 도울 수 있으면 좋겠는데 방법이 없네요.”

“말이라도 고맙소.”

퍼억!

그 순간 수어린의 주먹이 벽에 작렬했다.

쩍! 쩌억!

벽에 금이 가는 듯하더니 이내 무너져 내렸다.

일행은 안쪽을 살폈다.

내부는 석실 형태였는데 석실 왼편에 이곳으로 들어올 때 보았던 물결 문양이 나타나 있었다. 아마도 석실 벽을 부수는 게 통로를 여는 열쇠인 모양이었다.

“갑시다.”

카밀은 앞장서서 걸었다.

* * *

원상은 어둠을 껴안고 있는 동굴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가 이곳으로 온 건 이틀 전이다. 곤륜산을 수없이 해매고 다녀 모르는 곳은 없다고 자부했다.

그가 수년 동안 곤륜산 곳곳을 헤매고 다녔던 건 기연을 얻기 위해서였다.

고래로부터 수많은 기인 이사가 신선이 되기 위한 은거지로 곤륜산을 선택하였고, 그들은 많은 것들을 남겼다. 그것들 중에는 무공 비급도 있고 그들이 연단한 영약도 있다.

원상이 얻고자 하는 건 무공 비급과 내공을 증진시켜 주는 영약이었다.

어쨌든 몇 가지 얻기도 했다.

하지만 산에서 얻은 것들은 곤륜파에서 배운 것보다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연의 꿈을 아직 버리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번 산행은 기연과 상관없었다.

단지 수상한 자들을 찾는 게 목적이었다.

“그렇게 많이 돌아다녔는데…….”

원상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무려 십 년 넘게 시간만 나면 산행을 했다. 어쩔 때는 날마다 산을 헤맨 적도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동굴은 본 적이 없다.

게다가 묘한 기운까지 흐르고 있는 듯하다.

그는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딱딱한 물체가 만져졌다. 한 자 길이의 그것은 신호탄이다.

심지에 불을 붙이고 하늘로 쏘아 올리면 커다란 소리를 내고 푸른 불꽃을 뿜어낸다.

수상한 자들을 발견하면 지체 없이 신호를 보내라고 지급받은 물건이다.

“만일 저기서 놈들이 나오지 않는다면 고인의 은거지가 분명할 거야.”

동굴의 위치는 그만큼 절묘했다.

높이가 이 장이 넘는 큰 동굴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아니면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은신처로서는 안성맞춤이었다.

“응?”

원상의 눈동자가 커졌다.

검은 그림자들이 동굴에서 나오고 있었다.

‘노, 놈들이다.’

원성은 신호탄을 꺼냈다.

그리고 삼매진화를 펼쳐 심지에 불을 붙였다.

치이익!

심지는 흰 연기를 내며 타들어 갔다.

심지가 삼분의 이 정도 탔을 때, 하늘을 향해 힘차게 던져 올렸다.

탁! 탁탁탁!

슈아악!

아래쪽에 집어넣었던 폭죽이 터지면서 추진력을 얻은 신호탄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휘이이이익!

괴성과 함께 붉은색의 불꽃이 신호탄에서 뿜어져 나왔다.

“응?”

가장 먼저 신호탄을 발견한 자들은 금장생 일행이었다.

“어?”

카밀은 놀란 눈으로 신호탄을 보았다.

그러다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이곳에서 그들을 감시할 자들은 곤륜파 무인들밖에 없다는 것을.

“서두릅시다.”

그는 신호탄이 쏘아진 곳과 멀어지는 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나를 따라와라, 백사!”

금장생은 혈종을 흔들며 카밀을 따라나섰다.

“문주!”

빠르게 달려가는 금장생을 청명진인이 불렀다.

“말씀하세요.”

“저 강시 말이네.”

청명진인은 금장생 곁에 바싹 붙어서 달리는 강시를 가리켰다.

그들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통 튀는 강시는 조금도 뒤처지지 않았다.

“백사가 잘못된 거라도 있습니까?”

“동시가 저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고 보는가?”

“그러니까 대두화상께서는, 동시는 아니고 강시라는 말씀이군요.”

“아닌가?”

“동시가 아닌 건 분명합니다.”

오랜 세월 음기를 흡수한 백사는 굳이 대법이 아니라도 강시로 살아날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강시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

“빨리 따라와라!”

거리가 벌어지자 카밀이 소리쳤다.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다시 속도를 냈다.

두 번째로 신호탄을 본 자들은 곤륜파 문도들이었다. 그들은 곧바로 문주 일월존자에게 보고했다.

“신호탄이 쏘아진 곳이 어딘가?”

일월존자는 무량진인에게 물었다.

“흑애 근첩니다.”

흑애는 곤륜산 동쪽에 있는 절벽 이름이었다.

“전 제자를 흑애 근처로 이동시켜서 천라지망을 펼치도록 하게.”

“천라지망의 단계는 어느 정도로 할까요?”

천라지망은 상, 중, 하 삼 단계가 있다.

하 단계는 요소요소에서 감시만 하는 걸 말하고 중 단계는 감시와 더불어 산발적인 공격을 감행하는 걸 말한다. 상 단계는 천라지망 안으로 들어온 자는 모두 적으로 간주하여 없애고 마는 필살진이다.

상 단계는 강하긴 하지만 불필요한 살인을 야기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천도경은 우리 곤륜 소유고 그 천도경으로 얻은 것들 또한 우리 곤륜 소유라는 게 내 확고한 신념이네.”

“알겠습니다. 상 단계로 진행하겠습니다.”

무량진인은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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