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9)
“맙소사!”
“세상에.”
“저럴 수가…….”
일행의 입이 쩍 벌어졌다.
청명진인의 말대로였다. 시체의 머리에는 검은색 뿔이 달려 있었다.
달팽이 모양이고 귀 위쪽 끝에 납작하게 붙어 있어 모자나 혹은 투구의 일부로 착각하기 쉬웠지만 자세히 보니 뿔이 분명했다.
“뿔이 달린 모자를 썼거나, 투구를 썼을 수도 있잖습니까.”
금장생은 시체 머리 쪽으로 갔다. 그리고 손으로 뿔을 만져 보았다.
“헐!”
그의 얼굴이 황당하게 변했다.
모자도, 투구도, 장신구도 아니었다. 뿔이 뿌리를 내린 부분은 머릿속이 분명했다.
“붙였을 수도…….”
뿔을 잡아당기자 시체의 머리가 들렸다.
“진짜네요.”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뿔은 진짜였다.
“마왕이 여자일 거라는 생각지 못했는데…….”
청명진인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마왕요?”
금장생은 청명진인을 돌아보았다.
“내가 알기로 뿔 달린 자는 마왕밖에 없네. 많은 이들이 마왕을 그림으로 그렸고. 하지만 그 많은 그림 중 여성체는 없었던 걸로 기억하네.”
“그러니까 대두화상은 이 시체를 마왕이라고 생각하신다는 건가요?”
“그게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없잖은가?”
“카밀 저 양반은 알지도 모르잖습니까?”
금장생은 카밀을 보았다.
“나도 처음 보는 종족이다.”
카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그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밀이 뭔가를 알고 있다는 걸 눈치챘지만 굳이 궁금증을 풀 생각은 없었다.
‘나는 내 일만 하면 돼. 오지랖 부려서 좋은 꼴 본 사람 없다 했으니까.’
탁탁!
금장생은 손바닥을 쳤다.
일행은 일제히 금장생을 보았다.
“작업 시작하죠.”
“우리가 도와줄 게 있느냐?”
카밀이 물었다.
“먼저 관을 내리고 시체만 단 위로 올려 주십시오. 옷도 벗겨 주시고요.”
“옷을 벗겨야 하는 거냐?”
“온몸에 주문을 써넣어야 하니까요.”
“알았다.”
카밀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이 일은 수 소저가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금장생은 턱으로 수어린을 가리켰다.
“내가 하면 안 되는 거냐?”
“시체가 사내였다면 카밀에게 해 달라고 했을 테지만 여자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시체지.”
“시체라고 해도 여자라는 건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체라고 해서 모욕해서도 안 되고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장 문주 말이 맞아요. 아무리 시체라고 해도 지킬 건 지켜 줘야 해요. 여러분은 저쪽으로 가서 여길 둘러보세요.”
수어린이 단호하게 말했다.
“알았소.”
“그렇게 하지요.”
세 사람은 자리를 떴다.
“대두화상은 내 짐 안에 있는 강시 옷을 꺼내 이 시체가 입을 수 있게 고쳐 주십시오.”
금장생은 청명진인을 보며 말했다.
“알았네.”
청명진인은 금장생의 짐에서 검은색의 강시 옷을 꺼내 자리를 옮겼다.
“먼저 관을 아래로 내려야 한다고 했죠?”
사내들이 멀어지자 수어린이 말했다.
“네.”
“뒤쪽은 문주가 맡으세요.”
“알았습니다.”
수어린과 금장생은 관을 아래로 내렸다.
관은 생각보다 무거워 금장생은 온 힘을 다해야 했다.
“석관은 좋은 게 아닌데.”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안 좋다는 거죠?”
수어린은 시체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물이 차기 쉽거든요. 그럼 시체가 썩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자칫 잘못하다가 음기를 받아들이게 되면 영원히 썩지 못하고 강시가 돼 버리거든요.”
금장생은 시체의 다리를 잡았다.
“아!”
수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셋에 올리기로 하죠. 하나, 둘, 셋!”
둘은 힘을 주어 시체를 단 위로 올렸다.
“정말 크네.”
금장생은 혀를 내둘렀다.
단 위로 올려놓고 보니 더 커 보였다.
“이제 뭘 해야 하죠?”
수어린이 물었다.
“옷을 벗겨야 합니다.”
“전부?”
“속옷까지 전부요.”
“그렇군요.”
수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시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네?”
수어린은 금장생을 보았다.
“제강을 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시체를 욕보이는 거나 다름없잖아요.”
“그거야 뭐…….”
“여자라서 거북하면 제가 하겠습니다.”
금장생은 시체의 옷을 묶은 줄을 잡았다.
시체는 좌측과 우측에 옷깃에 구멍을 뚫어 줄로 묶은 특이한 옷을 입고 있었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옷과 줄도 시체처럼 조금도 썩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하세요.”
수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체의 옷을 벗기는 게 껄끄러웠던 탓이다.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줄을 풀기 시작했다.
목 바로 아래쪽에서 시작된 줄은 전부 스무 개였다.
가슴 부분의 줄을 풀었을 때 옷이 쫙 벌어졌다.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금장생은 수어린을 돌아보며 물었다.
“무슨 말이죠?”
“보통 사람이 죽으면 근육은 힘을 잃게 됩니다. 시체의 장 속에 남아 있던 변이 외부로 나오는 게 그 때문이거든요.”
“그런데요?”
“보통 시체는 아무리 가슴이 크다고 해도 옷이 갈라질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정말 시체가 맞는지 의심스럽다는 거지 뭐겠습니다.”
“시체인 건 확실해요.”
“생명 활동이 전혀 없다는 건가요?”
“네.”
수어린은 확신 어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여러 가지 면에서 상식을 뛰어넘는 시체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마왕이라고 했잖아요.”
“그 말을 믿어요?”
“그럼 장 문주는 달리 이 뿔과 피부를 설명할 수 있겠어요?”
“그러네요.”
금장생은 다시 줄을 풀었다.
줄을 다 풀고 나서 옷을 좌우로 벌렸다.
“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시체의 가슴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보통은 너무 크면 볼썽사나운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풍만한 가슴에서는 대지의 넉넉함이 느껴졌다.
“너무 빤히 쳐다보는 거 아닌가요?”
“그러게 말입니다. 내가 변태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는 나머지 옷을 벗겼다.
“……!”
금장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칠 척이 넘는 거구의 나신이 그렇게까지 완벽할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지 못했다.
“이 시체는 마왕이 맞는 것 같습니다.”
시체에 대한 설명으로 ‘마왕’보다 완벽한 말은 없었다.
“내 생각도 그래요.”
수어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여자가 봐도 시체의 몸은 숨이 막힐 정도로 완벽했다.
“제강이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금장생은 붓과 영사액을 가져와 한편에 놓고 숨을 골랐다. 그리고 붓에 영사액을 듬뿍 적시고, 천마구유이혼대법 중 제강비전을 끌어 올렸다.
‘응?’
금장생을 지켜보던 수어린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특이한 기운이 금장생의 전신을 감싼 것이다.
“저게 바로 영기靈氣네.”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금장생은 시체의 몸에 주문을 써 나갔다.
왼발 발바닥에서 시작된 주문은 빠르게 늘어났다. 그리고 어느 순간 주문들이 시체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아!”
수어린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제강술을 처음 접하는 그녀에게는 금장생이 행하는 모든 게 신기였다.
주문은 온몸에 다 쓰였다. 다리와 팔은 물론이고 가슴과 심지어 성기에까지 주문이 쓰이고 곧 스며들었다.
“뒤집어 주십시오.”
“네?”
수어린은 금장생을 보았다.
“뒤에도 주문을 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 알았어요.”
수어린은 금장생 옆으로 갔다. 그리고 허공섭물을 펼쳤다.
시체가 번쩍 들어 올려지고 빙글 돌았다. 그 상태에서 천천히 내려놓았다.
“뒷모습이 더 무섭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
금장생은 혀를 내둘렀다.
너무 엄청난 몸매라 시체라는 사실을 잊곤 했던 것이다.
“그러게요.”
이번에도 역시 수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장생의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을 정도로 시체의 몸매는 아름다웠다.
“자, 시작하겠습니다.”
금장생은 다시 주문을 적어 나갔다.
방법은 앞을 쓸 때와 비슷했다. 그가 써 내려간 주문은 일정 시간이 흐르자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다시 뒤집어 주십시오.”
금장생은 붓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수어린은 허공섭물 수법을 펼쳐 시체를 뒤집어 놓았다.
“옷 다 됐습니까?”
금장생은 안쪽에 앉아 있는 청명진인을 보며 물었다.
“다 됐네!”
“가져다주십시오.”
금장생은 수어린을 보며 말했다.
수어린은 안쪽으로 가서 옷을 받아 왔다.
“이걸 입히려고요?”
“여기서 나가면 바로 몸에 맞는 걸로 만들어 줘야 할 것 같아요.”
받아 든 옷을 입히며 말했다.
팔과 다리가 짧아 약간 이상하긴 했지만 그럭저럭 봐 줄 만했다.
“이제 와서 봐도 됩니다.”
금장생은 시체 위로 올라가 가슴 쪽에 다리를 벌리고 서며 소리쳤다. 그러자 카밀과 청명진인이 이편으로 몸을 날려 왔다.
“핫!”
그사이 금장생은 이혼대법을 펼쳤다.
그가 펼치는 이혼대법 또한 천마구유이혼대법상에 나와 있는 구결이었다.
그가 천마구유이혼대법상의 제강비전과 이혼대법을 사용할 생각을 한 건 제강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황상의 비전인 강시비전상에 나와 있는 구결로 행했을 테지만, 시체가 너무 특이해 성공할 자신이 없었다.
휘이익!
느닷없이 실내에 바람이 몰아쳤다.
“엉?”
청명진인은 깜짝 놀랐다.
그는 전대 문주가 강시비전으로 강시를 제강하는 걸 여러 번 지켜보았다. 하지만 단언컨대 지금처럼 바람이 분 적도 없고, 으스스한 기분을 느낀 적도 없었다.
“왜 그러시오?”
카밀이 청명진인을 보며 물었다.
“아, 아닙니다.”
청명진인은 고개를 저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아는 바가 없어 설명해 줄 수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해 줄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제강술의 단계였다.
“맙소사, 저건 십이백十二白!”
청명진인은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십이백이 뭐요?”
카밀이 물었다.
“강신술사들도 무인처럼 단계가 있는데, 일성 흑, 삼성 적, 육성 벽, 구성 황, 십이 백이라 부르오.”
“손가락 색이 달라진다는 거요?”
카밀은 금장생의 가슴으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금장생은 오른손을 합장하듯 가슴 앞에 세우고 있는데 엄지, 약지, 소지는 오므리고 검지와 중지는 붙여서 세운 상태였다. 그런데 세운 두 손가락이 새하얀 광채를 뿌리고 있었다.
“그렇소이다.”
청명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자가 최고의 강신술사란 말이 되는 거군요.”
“그런 모양입니다.”
“합!”
나직한 기합이 금장생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백색 광채를 뿌리는 손가락이 시체의 미간을 짚었다.
한순간이었지만 지켜보던 이들은 금장생의 손가락이 시체의 미간으로 파고들어 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휴우!”
나직한 한숨과 함께 금장생은 아래로 내려왔다.
“여기 있네.”
얼른 금장생 옆으로 온 청명진인은 부적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금장생은 부적을 받아 들고 시체 얼굴 쪽으로 갔다. 그리고 부적을 잡은 손을 시체의 이마 위쪽 허공에서 멈췄다.
“뭐 하는 거요.”
어느새 청명진인 옆으로 다가온 카밀이 물었다.
“제강술이 성공했다면 저 부적이 시체의 이마로 달라붙게 되고 그때부터 저 시체는 강시라 부르게 됩니다.”
“그렇군요.”
카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긴장한 얼굴로 시체와 금장생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