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7)
금장생은 뒤를 돌아보았다.
이십 장 떨어진 곳에서 ‘더 이상 죽지 않는 자’들과 수어린 일행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처음보다 거리가 가까워졌다는 건 수어린 일행이 밀어붙이고 있다는 뜻인데, 금장생 입장에서는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싸움터가 가까워지면서 그가 피할 장소가 없어져 버린 탓이었다.
‘천생…….’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손만 빠져나왔던 괴물체는 몸통까지 빠져나온 상태였다. 마치 물에 빠졌다가 밖으로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뭔가, 저건?”
그제야 성벽을 넘어온 청명진인이 물었다.
“비슷한 녀석들인 모양입니다.”
“저것들도 ‘더 이상 죽지 않는 자’란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시체가 땅속에서 기어 나올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청명진인은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수어린 일행에게 도움을 청하려는 마음으로.
하지만 그쪽도 도와줄 형편이 아니었다.
“저것들 시체 맞죠?”
“분명 시체네.”
“그 말 책임지셔야 합니다.”
금장생은 땅속에서 기어 나온 자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방금 나온 자들은 밖에 있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무기는 들었지만, 말도 타지 않고 갑옷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어쩌려고 그러는 건가?”
“우리 직업이 시체 처리반이잖습니까?”
“그러니까…….”
파앗!
청명진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금장생이 몸을 날렸다.
카아아!
금장생이 달려오자 ‘더 이상 죽지 않는 자’는 괴성과 함께 무기를 휘둘렀다.
스윽!
금장생은 왼편으로 반걸음 이동해 상대의 검을 피한 다음 목을 향해 묵야를 휘둘렀다.
“그 검으로는 짚단을 베어 넘기기도 힘들…….”
스악!
둥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청명진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더 이상 죽지 않는 자’의 머리가 둥실 떠올랐다.
“잘리네?”
청명진인의 눈이 커졌다.
청명진인은 금장생이 가진 묵야를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끝은 뾰족해 강시를 해강할 때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지만 날은 무뎌서 뭔가를 잘라 내는 용도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더 이상 죽지 않는 자’의 목을 단숨에 잘라 낸 것이다.
“거참!”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푸스스!
허공으로 떠올랐던 머리가 가루가 돼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것이었다.
밖에서 싸우고 있는 세 명이 ‘더 이상 죽지 않는 자’들의 목을 수백 번도 더 잘랐지만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다.
‘설마 저 묵야가…….’
청명진인은 금장생을 좇았다.
금장생은 최소의 동작만으로 적의 공격을 피하고 목을 잘랐다. 그리고 가루로 변한 머리는 더 이상 되살아나지 않았다.
“천적이네.”
청명진인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밖에 말을 탄 자들에게까지 통할지 그건 의문이지만 이 안에 있는 자들은 ‘더 이상 죽지 않는 자’들이 아니었다. 머리가 붙지 않자 몸통 또한 잠시 후에 가루가 돼 흩어졌다.
삼십여 구에 달했던 자들을 전부 없앤 금장생은 가쁜 숨을 내쉬며 청명진인 옆으로 왔다.
“무공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는가.”
청명진인은 금장생을 빤히 바라보았다.
비록 시체들이라고 하지만 적은 서른 명이나 되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가 상대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모른다고 했지 배우지 않았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무공을 배웠단 말인가?”
“이 검 끝에서 강기가 쭉쭉 튀어나오는 꿈을 꾸었던 적이 있으니까요.”
금장생은 묵야 끝을 가리켰다.
“무인 지망생이었단 말이구먼.”
“그렇습니다.”
금장생은 등짐 속에서 육포를 꺼냈다. 그리고 잘게 찢어 입으로 던져 넣었다.
휙! 휙휙!
육포 한 조각을 다 먹어 갈 무렵 수어린 일행이 담을 넘어왔다.
금장생과 청명진인은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여기까지는 쫓아오지 않으니까 서두를 필요 없소.”
카밀은 청명진인을 향해 말했다.
“저놈들이 여긴 들어오지 못한다는 겁니까?”
청명진인은 ‘더 이상 죽지 않는 자’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더 이상 죽지 않는 자’들은 완벽하게 부활한 상태였다.
“그렇소.”
카밀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박령이네.”
금장생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제한된 장소 안에서만 활동하는 귀신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일 없었소?”
가밀이 폐허를 둘러보며 물었다.
“그게…….”
“없었습니다.”
금장생이 청명진인의 대답을 가로챘다.
청명진인은 금장생을 보았다.
금장생은 어깨를 으쓱하여 별일 아니라는 의사표시를 했다. 청명진인은 알았다는 뜻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적지는 아직 멀었습니까?”
금장생은 카밀에게 물었다.
“거의 다 왔을 게다.”
“이제 더 이상 신기한 것들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겁니까?”
“신기한 것들?”
“움직여 다니면서 사람을 공격하는 나무나, ‘더 이상 죽지 않는 자’들보다 더 신기한 건 아직 보지 못했거든요.”
“정확한 건 나도 모른다. 하지만 폐허에 도착했다는 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걸 뜻한다.”
“그렇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시겠소? 바로 갈 거요, 아니면…….”
카밀은 수어린을 돌아보며 물었다.
“여긴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아요.”
수어린은 질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좋소. 그럼 바로 출발하도록 합시다.”
카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바로 출발했다.
폐허는 상당히 컸다. 거의 반 시진 정도를 걷자 끝에 도착했다.
폐허 끝에는 수직 동굴이 뚫려 있었다.
“저 안이 최종 목적지다.”
카밀은 수직 동굴을 가리켰다. 동굴의 지름은 오 장 정도였다.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금장생이 물었다.
“내가 아는 건 여기 바닥에 목표물이 있다는 것뿐이다.”
“그렇군요. 그런데 길이 없는데 어떻게 내려가죠?”
처음 동굴처럼 측면에 계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열심히 찾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동굴 벽이 매끈해 기어 내려갈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뛰어내려야 한다.”
“네?”
금장생은 뜨악한 얼굴로 카밀을 보았다.
조금 전 깊이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을 때 카밀은 모른다고 했다. 그건 그만큼 깊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수직 동굴 바닥에 목표물이 있고,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뛰어내려야 한단다.
잘못 들었나 싶었다.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다.”
“미치겠네.”
금장생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리고 수어린을 보았다.
그녀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인 듯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 방법이 아니고는 저 아래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저렇게 진지한 얼굴로 거짓말을 할 리는 없고…….”
카밀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뛰어내릴 엄두는 나지 않았다.
“내가 먼저 시험해 보겠소.”
북궁창이 일행을 보며 말했다.
“저기로 뛰어내리겠다는 겁니까?”
금장생은 수직 동굴을 가리켰다.
“만일 동굴 바닥에 부딪치게 되면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겠소. 설사 수백 장 지하라고 해도 비명은 들릴 거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금장생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전엔 없었지만 지금은 있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걸 보시오.”
북궁창은 상의를 열었다.
“어?”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그의 몸에 박혀 있던 나무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상체 상당 부분이 나무와 같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나는 지금 나무로 변해 가고 있소.”
“나무라고요?”
금장생은 뜨악한 얼굴로 북궁창을 보았다.
다른 이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믿기지 않는 얼굴로 북궁창을 보았다.
“그렇소. 나무색으로 변한 곳은 나무처럼 딱딱하오.”
북궁창은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고통은…….”
“고통은 느끼오.”
“다른 건 다 같은데 나무처럼 딱딱하게 변해 간다는 거군요.”
“그렇소.”
“저 아래로 가면 고칠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금장생은 아래를 가리켰다.
“그건 나도 모르오. 하지만 나는 아주 낮은 가능성이라 해도 매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요.”
“그렇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귀를 기울이도록…… 참! 이거…….”
북궁창은 도를 금장생에게 건넸다.
“누구에게 전해 주면 됩니까?”
“그러니까…….”
북궁창은 전음을 보냈다.
“알겠습니다. 만일 여기서 살아 나간다면 반드시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밑에서 봅시다.”
휙!
북궁창은 곧바로 동굴을 향해 몸을 던졌다.
빠르게 추락한 그는 곧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일행은 긴장한 얼굴로 기다렸다. 비명이 들려오면 저 아래는 저승으로 가는 입구가 되는 거고, 그렇지 않다면 희망을 갖게 된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북궁창의 비명은 들려오지 않았다.
“들리지 않네요.”
금장생은 일행을 보며 말했다.
“이제 뛰어내릴 마음이 생겼느냐?”
카밀이 금장생을 보며 말했다.
“이런 곳인 줄 알았으면 그 돈 받고는 절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런 곳인 줄은 장주님도 몰랐을 게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살아 돌아가면 생명 수당을 청구해야겠습니다.”
“그건 알아서 해라.”
카밀은 피식 웃었다.
“저랑 껴안고 뛰어내리실래요?”
금장생은 수어린을 보며 말했다.
“무슨…….”
수어린은 의아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혹시라도 잘못돼 죽더라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나을 것 같아서요.”
“풋!”
웃을 상황이 절대 아님에도 불구하고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싫어요?”
“손을 잡는 정도라면 모를까 껴안고 떨어지는 건 싫네요.”
“자요.”
금장생은 얼른 손을 내밀었다.
“날 껴안고 어쩌고 하는 건 그냥 해 본 소리고 실제로는 잘못됐을 경우, 내 손이라도 잡고 있으면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죠?”
“설마요, 나도 남잔데.”
금장생은 수어린의 팔을 힘껏 그러쥐었다.
“그게 아니라면서 왜 이렇게 꽉 쥐는 거죠?”
수어린은 웃으며 물었다.
“제가 너무 꽉 쥐었나요?”
“그런 것 같아요.”
“뛰어내리는 데 지장을 줄 정돈가요?”
“그건 아니에요.”
수어린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뛰어내리는 게 어때요?”
“그러죠, 뭐.”
휙!
수어린은 금장생의 손을 잡은 채 동굴을 향해 몸을 던졌다.
“으아아아아악!”
금장생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의 신형은 금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도 가죠.”
카밀이 청명진인을 보며 말했다.
“정말 아무 이상 없는 거겠죠?”
청명진인은 물었다.
“방금 뛰어내릴 때 장생은 힘차게 고함을 내질렀습니다. 아마 어딘가에 부딪쳤다면 비명이 지금보다 더 크면 컸지 약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위험한 장소가 아니라는 거군요.”
“아무튼 저 먼저 가겠습니다. 그럼.”
카밀이 동굴로 뛰어들었다.
“젠장!”
청명진인은 욕설을 내뱉었다.
사실 저 아래쪽 아니면 갈 곳도 없다. 돌아가는 길이라도 좋다면 모를까, ‘더 이상 죽지 않는 자’들과 걸어 다니는 나무로 들어찬 숲을 지나가야 한다. 그곳으로 가면 백이면 백 죽는다.
“거기보다는 저 아래가 훨씬 안전한 곳이네.”
청명진인은 동굴로 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