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5)
“조금 있다 가요.”
그렇게 말하고 금장생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꺾으려고 하였던 나뭇가지가 저만큼 멀어져 있었지만 알아차리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
그는 가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윽고 어깨를 으쓱하더니 수어린 곁으로 갔다. 그리고 물었다.
“안 가요?”
“네?”
“화장실 가고 싶어 했잖아요.”
“갈 거예요.”
수어린은 얼른 자리를 떴다.
그녀는 좌우를 살피며 깊숙이 들어갔다.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데 커다란 나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오래된 나무인 듯, 키는 다른 나무와 비슷했지만 둘레는 몇 배나 되었다. 뿌리도 상당히 많은 부분이 외부로 드러나 마치 문어가 물 밖으로 나와 머리를 쳐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행이네.”
그녀는 방긋 웃으며 나무 뒤로 갔다. 둥치가 두꺼워 사내들의 시선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었다.
바지를 내리고 쪼그려 앉았다.
스윽!
‘응?’
수어린의 눈이 커졌다. 뭔가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천리지청술을 펼쳤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내가 너무 예민해져 있나 보네.”
그녀는 피식 웃고는 다시 볼일에 집중했다.
스윽! 스윽!
그런데 또다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아까 들었던…….”
수어린은 고개를 들었다. 아무래도 이상한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학!”
그녀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나뭇가지 수백 개가 마치 촉수동물의 촉수처럼 그녀를 향해 내리꽂히고 있었다.
바지를 추스를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곧바로 옆으로 굴렀다.
푹! 푹푹푹! 푹푹푹!
나뭇가지는 화살처럼 땅속으로 박혀 들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또 다른 나뭇가지들이 수어린을 향해 내리꽂혔다.
슈캉!
바지에 걸려 있던 검이 뽑히고, 허공에 기다란 선이 나타났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서걱!
나뭇가지 수십 개가 잘려 나갔다.
쿠어어어억! 쿠어어어억!
순간 나무둥치의 중간이 쩍 벌어지더니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맙소사! 말도 안 돼!”
수어린은 경악했다.
비명을 내지르는 나무라니.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녀를 기절하게 만든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잘려 나간 나뭇가지에서 검붉은 액체가 콸콸 쏟아져 내렸다.
“무슨 일이오!”
“왜 그러십니까?”
갑작스럽게 들려온 괴성에 일행이 몸을 날렸다.
“나, 나무가…….”
슈아악! 슈아악! 슈아악!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수십 개의 나뭇가지가 그녀를 향해 쏘아져 왔다.
여전히 바지를 추스르지도 못하고 방어를 해야 했다.
또다시 수십 개의 나뭇가지가 잘려 나가고 검붉은 액체가 쏟아졌다.
“우리가 왔소.”
“우리가 돕겠습니다!”
수어린 곁으로 다가간 북궁창 일행은 놀랄 겨를도 없이 나무를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쿠어억! 쿠어억!
나무는 다시 괴성을 내질렀다.
스윽! 스윽! 스윽! 스윽!
그러자 주위에 있던 나무들이 이동하더니 일행을 포위했다.
“이거 환영이겠죠?”
금장생은 묵야를 뽑아 들고 주위를 경계하며 물었다.
“환영이라고 해도 나뭇가지에 당하면 죽는다! 타하!”
카밀은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커다란 불덩어리 하나가 나무를 향해 쏘아져 갔다.
그가 공격하는 건 처음 수어린을 공격했던 가장 큰 나무였다.
불덩어리가 다가오자 주변에 있던 나무들이 가지를 앞으로 내밀었다. 놀랍게도 나무들이 가지를 이용해서 카밀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타하!”
바로 그때 북궁창의 도刀가 허공을 갈랐다.
후두두!
잘려 나간 나뭇가지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푸악! 푸악! 푸악! 푸악!
잘린 부위에서 검붉은 액체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퍼엉!
카밀이 쏘아 낸 불덩어리는 그대로 나무둥치에 격중했다.
쿠어어어어어억! 쿠어어어어어억!
나무둥치에 커다란 구멍이 나타나더니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이건 분명 꿈일 거야.”
금장생은 고개를 거칠게 흔들었다.
사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꿈속에서도 일어나기 힘들다. 꿈도 어느 정도는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 대해 꾸기 마련인데, 저 광경은 상상을 한다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
사람을 공격하고 비명을 내지르는 나무라니.
“도대체 여긴…….”
“수 소저, 길을 트십시오! 포위망이 더 단단해지면 빠져나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북궁창이 나뭇가지 십여 개를 잘라 내며 소리쳤다.
“알았어요. 차하!”
수어린은 기합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쓰쓰쓰쓰쓰! 쓰쓰쓰쓰쓰!
진득한 살기를 머금은 검세가 전방을 휩쓸었다.
일행을 향해 공격해 오던 나뭇가지가 잘려 나가고, 이어 둥치도 싹둑 잘렸다.
쿠어억! 쿠어억!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내가 하겠소! 타하!”
수어린에 이어 북궁창이 공격을 했다.
도에서 쏟아져 나온 도세가 전방을 휩쓸고 대여섯 그루의 나무가 쓰러졌다.
일행은 나무가 잘려 나가면서 생겨난 길을 따라 달렸다.
스스스스스! 스스스스! 스스스스!
나무들은 가지를 앞으로 내밀며 빠르게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나무들이 워낙 커서 가지는 금세 일행을 공격할 위치가 되었다.
수어린, 북궁창, 카밀은 다시 공격을 쏟아 냈다.
내공을 더 끌어 올린 듯 수어린과 북궁창의 검과 도에서는 검강과 도강이 쏟아져 나왔다. 카밀이 쏟아 내는 불덩어리 역시 전보다 두 배 이상 커진 상태였다.
쿠엑! 쾌엑! 쿠악!
가지와 둥치가 잘려 나가면서 비명이 난무했다.
“내가 산전, 수전, 공중전, 수중전을 다 겪었지만 이 환영은 정말 적응이 안 되네.”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진식이 만들어 내는 환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방법이 없기도 했다.
슈아악!
“북궁 소협, 뒤를 조심하시오!”
금장생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팔뚝 두께의 나뭇가지 하나가 북궁창의 등을 향해 쏘아져 가고 있었다.
“차앗!”
북궁창이 몸을 돌림과 동시에 도를 휘둘렀다.
스악!
츄악!
나뭇가지가 잘려 나가고 피가 뿜어져 나왔다.
“앗!”
북궁창의 입에서 다급한 외침이 흘러나왔다.
잘린 나뭇가지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그의 얼굴을 덮친 것이다.
그는 황망히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한발 늦고 만 듯 그의 얼굴은 붉은 수액으로 범벅이 되었다. 북궁창은 손으로 수액을 닦아 냈다.
푸욱!
바로 그때 그의 배에서 섬뜩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커억!”
북궁창의 입이 쩍 벌어졌다. 눈에 묻은 수액을 닦아 내느라 방어가 불가능한 틈을 나뭇가지 하나가 파고든 것이었다.
스악!
북궁창은 도를 휘둘러 나뭇가지를 잘라 냈다.
슈악! 슈아악!
자신들의 공격이 성공했다는 걸 알아차린 듯 나뭇가지들의 공격이 북궁창에게 집중되었다.
북궁창은 정신없이 도를 휘둘렀다.
그의 주위에는 잘려 나간 가지들이 수북하게 쌓였다.
나무들의 공격이 북궁창에게 집중되는 바람에 나머지는 여유가 생겼다.
수어린은 금장생과 청명진인을 데리고 전방으로 내달렸다.
잠시 후 네 사람은 나무들 공격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북궁 소협은…….”
금장생은 수어린을 돌아보았다.
“알아서 나올 거니까…….”
“아아악!”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뒤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일행은 놀라 고개를 돌렸다.
“저런!”
“억!”
일행의 입에서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두꺼운 나뭇가지 하나가 북궁창을 친친 감아 허공으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차앗!”
수어린은 바닥을 차고 몸을 날렸다.
“수 소저, 먼저 가시오!”
북궁창은 나뭇가지를 잘라 내며 소리쳤다.
푸욱!
그사이 다른 나뭇가지 하나가 그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커억!”
북궁창은 비명과 함께 도를 휘둘렀다.
“차앗!”
그사이 북궁창 앞에 도착한 수어린이 검강을 쏟아 냈다.
츠츠츠! 쓰쓰쓰!
그녀의 검에서 쏟아져 나온 검강이 전방을 휩쓸었다.
턱!
수어린 덕분에 나무들로부터 풀려난 북궁창은 바닥으로 내려서자마자 전방으로 내달렸다.
“뛰어요!”
수어린은 북궁창을 따르며 소리쳤다.
“가세.”
가장 먼저 몸을 날린 사람은 청명진인이었다. 이어 금장생과 카밀이 몸을 날렸다.
잠시 후 수어린과 북궁창이 따라붙었다.
쉬지 않고 내달리던 그들의 멈춘 건 북궁창 때문이었다. 그가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쓰러져 버린 것이었다.
“북궁 소협!”
수어린은 안타까운 얼굴로 북궁창을 보았다.
북궁창의 복부와 가슴에는 팔목 두께의 나뭇가지가 박혀 있었다. 저 상태에서는 설사 나뭇가지를 빼낸다고 해도 살아날 수 없다.
“나뭇가지가 액체를 쏟아 낸다는 걸 알면서도 주의하지 않은 내 불찰이오.”
“걸을 수 있겠어요?”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요. 이제부터는 네 분만 가시오.”
“갈 수 있습니다.”
금장생이 북궁창 앞으로 갔다.
“말은 고맙지만 설사 간다고 해도 나는 도중에 죽소. 그리고 누군가는 저놈들을 붙잡고 있어야 하오.”
북궁창은 자신들이 달려왔던 곳을 가리켰다. 수백 그루의 나무들이 이편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를 동료를 버리고 간 비겁한 사람으로 만들 참이십니까?”
“장 문주는 우리 동료가 아니라 고용인에 불과할 뿐이오.”
“아무튼 나는 함께 가던 누군가가 동료를 혹은 일행을 위해 희생하는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북궁 소협이 죽으면 그때 버리고 가겠습니다.”
금장생은 북궁창을 부축했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어차피 죽소.”
“피가 흘러나오지 않는 이상 좀 더 살 수 있습니다.”
“피가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건…….”
“나뭇가지가 파고든 자리를 보십시오.”
금장생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북궁창은 고개를 숙였다.
“……?”
그의 눈이 커졌다.
금장생의 말대로였다. 복부와 가슴에 나뭇가지가 박혔음에도 불구하고 피가 흘러내리지 않고 있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숨이 붙어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인 듯했다.
“제가 아는 한 어떤 물체가 몸속으로 박혔음에도 불구하고 피가 흐르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집니다. 첫째는 검 같은 무기가 빠른 속도로 박혔을 땝니다. 검이 빠른 속도로 박히게 되면 검과 살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게 되고, 설사 혈관이 잘린다고 해도 피가 흘러나오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몸으로 파고든 물체가 지혈을 하고 있는 경웁니다. 그런데 유 대협의 몸속으로 파고들어 간 나뭇가지는 검처럼 매끈하지가 않습니다. 나뭇가지 표면과 살 사이에 공간이 아주 많다는 거죠. 그렇다면 피가 콸콸 흘러나와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나무가 치료제란 말이오?”
“그건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적어도 몸에 박힌 나무 때문에 죽는 일은 없을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현재의 나는 짐만 될 뿐이오. 나무가 덮쳐 오면 막을 방법이 없단 말이오.”
“나무는 더 이상 공격해 오지 않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장담하시오?”
“지형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지형이…….”
북궁창은 전면을 바라보았다.
금장생의 말대로였다.
어느새 숲이 끝나고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면 나무는 절대 이 벌판으로 오지 않을 겁니다. 이건 내기해도 좋습니다.”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당신…….”
북궁창은 멍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