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4)
소리 없이 문이 열렸다.
일행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상황은 지금까지 왔던 곳과 다르지 않았다. 짙은 어둠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일행은 조심스럽게 걸었다.
툭!
‘응?’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발끝으로 작은 돌멩이를 찬 것 같았다.
또르르!
처음엔 돌 구르는 소리만 들렸다.
‘별것도…….’
그르릉! 그르릉!
‘헉!’
금장생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돌 구르는 소리가 느닷없이 천둥 치는 소리처럼 커졌다.
그런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소리는 점점 더 증폭되더니 가공할 음파로 변해 일행의 머릿속을 후려쳤다.
“커억!”
일행은 귀를 틀어막으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 상태에서 잔뜩 웅크렸다.
커억! 꺼어억! 커어어억!
돌 구르는 소리에 일행이 내지른 비명이 섞여 들었다. 그것들은 서로 부딪치고 공명하면서 더욱 큰 소리로 변했다.
“우엑!”
가장 먼저 피를 토한 사람은 북궁창이었다.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자 금장생은 앞을 보았다. 카밀이 앞으로 가자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가지 않으면 죽는다!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에 있는 수어린을 보았다.
―나도 들었어요.
수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귀를 틀어막은 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
발소리와 숨소리가 거대한 소리로 변해 일행의 머리를 흔들어 놓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다른 이들의 가슴도 토한 피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맙소사!’
천도경을 바라보던 금장생은 질겁했다.
소리는 무생물이 아니었다. 허공에 노니는 소리는 전부가 살아 있는 생명체였고, 일행이 있는 곳을 향해 날아와 무차별하게 공격을 가했다.
‘이건 꿈이야. 꿈이라고.’
몇 번이고 눈을 비볐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되오.
카밀은 일행을 향해 말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오십여 장을 더 가자 문이 나타났다. 카밀은 곧바로 주문 같은 걸 암송하였고, 문이 열렸다.
일행은 전력을 다해 문밖으로 나갔다.
쿠어억! 콰아아! 커어억! 저버버버벅!
소리는 무서운 속도로 일행을 쫓아왔다.
카밀은 재빨리 주문을 암송해 문을 닫았다.
“휴우!”
일행은 한숨과 함께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경험에 정신이 멍한 상태였다.
“이젠 말해도 괜찮소.”
한참 후에 카밀이 입을 열었다.
“나갈 때도 저기를 지나가야 합니까?”
금장생이 물었다.
“그건 나도 모른다.”
“길은 그 천도경만 알고 있다는 거네요?”
금장생은 카밀이 들고 있는 천도경을 턱으로 가리켰다.
“맞다.”
카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천도경으로 길을 찾나요?”
문득 다른 곳으로 간 두 사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천도경이 필요한 건 여기뿐이다.”
“우리 조만 도둑질을 했다는 거군요.”
“그렇다.”
“그렇다면 내가 깨워야 할 시체가 가장 중요한 거라고 봐야 하는 건가요?”
카밀은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침묵은 긍정이라고 했는데…….”
“알려고 하지 마라. 알려고 하는 순간…….”
카밀은 말을 끊었다. 그리고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죽는다!”
카밀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아고, 무셔라!”
금장생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내 말이 장난으로 들리느냐?”
카밀은 금장생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전에도 내게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자들이 지금 뭐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다 죽었단 말이냐?”
“아마도 그럴 겁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제에 날 죽일 수 있다는 거냐?”
카밀은 같잖다는 얼굴로 물었다.
“정면 대결로는 불가능하겠지요. 하지만…… 정면 대결이 아닌 걸로 당신을 죽일 방법은 정확하게 오백예순두 가지나 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오백예순두 가지라고?”
“확실하게 숨통을 끊는 방법만 말한 겁니다.”
“어디 한번 시도해…….”
“그런데 여기선 카밀 당신이 보이는군요.”
금장생은 화제를 돌렸다.
“어?”
“아!”
“그러네.”
흥미로운 얼굴로 카밀과 금장생을 지켜보던 이행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지나왔던 곳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앞이 보였다.
그렇다고 밖처럼 밝은 건 아니었다. 주위가 어슴푸레 어두워지고 있었다.
스윽! 스윽! 스윽!
그리고 어디선가 뭔가가 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가장 먼저 들은 사람은 수어린이었다.
“이게 무슨 소린지 아세요?”
그녀는 카밀을 보며 물었다.
“나도 이 천도경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카밀은 천도경을 들어 올렸다.
“그렇군요.”
수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른다는 말이었다.
“다 쉬었으면 출발합시다.”
카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행은 줄을 풀고 카밀을 따라나섰다.
시야가 확보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카밀은 여전히 천도경에 나타나 있는 붉은 선을 따라갔다.
쓸리는 듯한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말해도 되겠죠?”
일행의 침묵을 깬 사람은 금장생이었다.
금장생이 입을 열자 다른 이들은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이번에도 역시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가 봐요.”
수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금장생은 물었다.
“뭐가요?”
“우린 이곳으로 들어와서 다섯 시진 이상을 걸었습니다.”
“곤륜산 지하에 이렇게 넓은 공간이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건가요?”
“수 소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죠?”
“실은 나도 이상하게 생각하던 중이에요.”
수어린도 금장생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곳이 곤륜산이란 사실을 떠나 지하다. 지하에 이렇게 넓은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카밀 생각은 어때요?”
수어린은 카밀에게 물었다.
“진식과 비슷한 형태라고 보면 됩니다.”
“진식이면 진식이지 비슷한 형태라는 건 무슨 뜻이죠?”
“진식이라고 여기는 게 이해하기 편하다는 말입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진식이 아니라는 건가요?”
“네.”
“어떤 건지 궁금하군요.”
“설명을 해 줘도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설명을 들어도 모른다는 건가요?”
이번에는 금장생이 물었다.
“그렇다.”
“그렇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무슨 뜻이죠?”
수어린은 의아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모르는 건 설명을 들으면 알지 않나? 그런데 설명을 해 줘도 모른다니,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지식이란 뜻일 겁니다.”
“그런 것도 있나요?”
“예를 들어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바닥이 땅이 아니고 하늘이다.’라고 한다면 수 소저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습니까?”
“……그런 거예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수어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설명을 해 줘도 모른다고 한 걸 겁니다.”
“어렵군요.”
“저걸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요?”
금장생은 전방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조그마한 숲이 형성돼 있었다.
나무는 족히 수백 그루는 돼 보였는데 잎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없었다.
또 하나 특이한 점 하나는 사방으로 뻗어 있는 가지가 상당히 가늘고 길다는 것이었다.
손가락 두께의 가지가 일 장가량 뻗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래로 처지지 않고 하늘로 향해 있었다. 무게를 지는 모든 건 아래로 처진다는 법칙을 거부하는 나무였다.
“저 나무가 어떻다는 거죠?”
수어린은 물었다. 그녀는 아직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나무의 생육조건이 뭘까요?”
“생육조건?”
“나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말하는 겁니다.”
“물과 햇빛…… 아!”
수어린은 탄성을 내뱉었다.
이곳은 수십 장 지하 공간. 나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물은 땅속에서 어떻게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햇빛을 얻을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저 나무는 저렇게 컸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법칙을 다 동원한다고 해도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누군가가 설명을 해 준다고 해도 이해할 수도 없을 거고요.”
“그렇군요.”
그제야 수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하나 문제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들려오던 쓸리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관찰력이 대단하네요.”
수어린은 내심 감탄했다.
금장생은 여러 면에서 놀라움을 안겨 주는 사람이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나무를 보고 일상적인 법칙이 통용되지 않는 걸 대번에 파악해 내는가 하면, 뭔가가 쓸리는 것 같은 소리가 멈췄다는 것까지 주시하고 있다.
모든 신경을 주위에 집중하는 게 일상인 무인보다 더 무인다운 사람이 그였다.
“잠시 쉬었다가 가겠습니까?”
그때 카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수어린은 말끝을 흐렸다.
사실 그녀는 지금 지친 상태였다. 그리고 볼일도 급했다.
어둠을 뚫고 올 때는 서로를 줄로 묶은 상태라 볼일을 보지 못했고, 이곳으로 들어와서는 지금까지 평지뿐이었다. 사내들의 눈을 피해 볼일을 볼 장소가 없었다.
그런데 이곳은 몸을 숨길 수 있는 나무가 수백 그루나 있다. 또다시 이런 지형이 나타난다는 보장도 없으니 여기서 볼일을 봤으면 싶었다.
“좀 쉬었다 가시죠.”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금장생이 했다.
“그렇게 합시다.”
카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도 볼일이 급했던 탓이다.
일행은 숲으로 들어갔다.
“잠깐 다녀오겠소.”
“나도.”
급했던 듯 북궁창과 카밀이 먼저 자리를 떴다.
금장생은 나무 바로 옆으로 갔다.
“죽은 나무라야 하는데…….”
그는 나뭇가지를 살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죽은 나무 같지가 않았다.
“한번 꺾어 볼까?”
그는 가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도 다녀오겠네. 자넨 안 갈 텐가?”
바로 그때 청명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장생은 손을 내민 채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때였다.
스윽!
금장생이 내밀고 있는 손앞에 있던 나뭇가지가 스르르 움직여 멀어지는 것이었다.
그 가지뿐만이 아니었다.
금장생의 손이 닿을 만한 거리에 있던 모든 가지가 스르르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