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33화 (33/524)

황금가 (33)

틈새 길은 길었다. 이러다 갇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슬슬 불안감이 온몸을 잠식해 들어올 즈음 틈새 길이 끝났다.

“저기까지만 가면 됩니다.”

카밀은 봉우리 하나를 가리켰다.

“끙.”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거리는 엄청나게 멀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이틀을 달려가야 할 것이다.

“신법 하나 배워 볼 텐가?”

금장생의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청명진인이 넌지시 제안했다.

“공짜는 아니겠죠?”

“내 몫을 이 할로 올려 주면 되네.”

“없었던 일로 하죠.”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몫을 올려 주면서까지 신법을 배우고 싶지는 않다는 명백한 의사 표현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힘들 거네.”

“운동하는 셈 치렵니다.”

“갑시다.”

그때 카밀이 출발했다.

그가 달리는 속도는 전과 같았다. 빠른 속도로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그들이 떠나고 한 시진 반 후 곤륜파 도인들이 틈새 길에서 나왔다. 두 시진 뒤처져 있던 그들이 틈새 길에서 반 시진을 따라잡은 것이다.

“나를 따라와라!”

문주 일월존자가 소리치며 앞으로 나갔다.

그가 달려가는 곳은 금장생 일행이 간 방향과 달랐다. 문주 일월존자는 불입불귀역으로 가는 지름길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알 리가 없는 금장생 일행은 곤륜파 도인들의 추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밤낮없이 달렸다.

휙!

선두에서 달려가던 카밀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일행은 일제히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렸다.

―숨소리도 죽여요.

곧 금장생의 귓전에 수어린의 전음이 들려왔다.

금장생은 천천히 호흡을 줄였다. 그리고 수어린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적이에요. 따라잡힌 것 같아요.

‘지름길?’

금장생은 왼팔을 쭉 뻗고 오른손으로 가로지르는 시늉을 했다.

―그들 중에 지름길을 알고 있는 자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할 거죠?’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아직 모르겠어요.

희한하게도 수어린은 금장생이 손으로 하는 말을 전부 알아들었다.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금장생은 손바닥을 펴서 바닥으로 눌렀다.

―기다리라고요?

‘이런 경우엔 인내심이 강한 쪽이 이깁니다.’

금장생은 이번엔 얼굴을 땅에 대고 눈을 감았다.

―오래 버티는 쪽이 이긴다는 거군요.

‘맞아요.’

금장생은 엄지와 검지 끝을 대고는 둥글게 만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내 생각도 그래요.

수어린은 다른 사람에게 전음을 보냈다. 일행은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휘이익!

아래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쳤다.

‘이러다 들어가기도 전에 얼어 죽겠네.’

금장생은 천천히 움직여 등짐을 풀었다. 그의 동작은 보는 사람이 답답함을 느낄 정도로 느렸다.

모피를 꺼낸 다음에도 다르지 않았다. 뒤집어쓸 때도 천천히 덮었다.

그를 지켜보던 다른 이들도 모피를 풀어내 덮었다.

모피를 덮자 체온이 유지되며 온기가 돌았다. 일행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곤륜산 정상.

산 아래쪽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춥다.

바닥은 얼음장처럼 차고, 숨을 내쉬면 허연 입김이 나온다. 이런 환경에서 아무런 대비 없이 밤을 새운다는 건 자살행위다.

‘장생의 말처럼 오래 버티는 쪽이 이긴다.’

수어린은 내심 중얼거렸다.

‘문제는…….’

그녀의 시선이 금장생에게로 향했다.

다른 이들은 무인이라 문제가 없다.

청명진인 또한 신법밖에 익히지 않았다고 하였지만 단전에 내공이 들었다. 세 사람보다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버텨 낼 것이다.

하지만 금장생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양민. 영기를 지니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게 내공처럼 몸을 보호해 줄지 의문이다.

‘버텨 낼지…….’

그녀는 내심 중얼거렸다.

그녀의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건 한참이 지나고 난 후에 밝혀졌다.

무려 한 시진 반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금장생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바위가 된 것처럼 엎드려 있었다.

‘내기해도 좋다. 너희는 더 이상 숨어 있지 못한다.’

수어린은 전면을 노려보았다.

―문주님!

무량진인은 일월존자를 불렀다.

―왜 그러는가?

―제자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힘들어해?

―문주님이나 저야 이런 한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자들은…….

‘아!’

그제야 일월존자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적에게 너무 집중하다가 부하들이 힘들 거란 생각을 전혀 못 한 것이다.

곤륜파가 있는 곳이라면 모를까 이곳은 정상. 제자들이 이 추위를 견뎌 낸다는 건 무리다.

―제자들은 어떤가?

일월존자는 물었다.

―동상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으음!’

―놈들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무량진인은 고개를 저었다.

일월존자는 다시 신음을 내뱉었다.

지름길로 오면 반 시진을 단축할 수 있다. 그 거리를 자신들은 전력을 다해 달렸다. 그렇다면 반 시진은 단축할 수 있는 최소 거리가 된다.

즉, 이론상으로는 앞서 와야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들이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이미 불입불귀역으로 들어갔다는 뜻이 된다.

일월존자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그들이 숨어 있는 곳에서 오십 장 떨어진 곳에 거대한 동굴이 있다.

동굴은 지하로 비스듬히 경사를 이루며 나 있는데, 어떻게 보면 분화구 같기도 하다.

동굴의 깊이는 백 장이고, 거기까지가 인간이 갈 수 있는 깊이이기도 하다. 그 안쪽에도 수십 개의 동굴이 어둠과 함께 거미줄처럼 엉켜 있는데 어떤 게 길인지 알 수가 없다.

더욱 놀라운 건 횃불이나 야명주로도 어둠을 물리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수십 개의 횃불을 밝혀도 횃불만 어둠 속에 떠 있을 뿐 주위를 밝히지 못했다.

완벽한 어둠.

동굴 안쪽이 그랬다.

일월존자 생각엔 그런 어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건 진식밖에 없었다.

문제는 진식의 흔적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었다.

“철수한다!”

일월존자는 철수 결정을 내렸다. 이미 안으로 들어갔다면 기다려 봐야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감시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량진인이 말했다.

“물론 감시는 해야겠지. 전 제자들에게 비상령을 발동하고 곤륜산 전 지역을 감시하라고 하게.”

“저곳이 출구가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무량진인은 동굴을 가리켰다.

“나는 불귀不歸란 말이 생겨난 건 출구가 다른 쪽에 있어서라고 생각하네.”

“그렇군요.”

무량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산이 넓어 감시가 힘들긴 하겠지만 최선을 다해 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무량진인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문도들에게 철수 명령을 하달했다.

곤륜파 문도들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들이 떠나고 반 시진 후 금장생 일행이 일어났다. 그들이 바로 일어나지 않은 건 감시하는 자가 있지 않나 해서였다.

먼저 움직인 사람은 수어린과 북궁창이었다. 두 사람은 은밀하게 주위를 살폈다.

“다 떠났네요.”

돌아온 수어린이 일행을 보며 말했다.

“가면 되는 건가요?”

금장생이 물었다.

“네.”

수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곧바로 동굴로 향했다.

“저게 동굴인가요.”

금장생은 동굴을 가리켰다.

지하로 나 있는 동굴은 지름이 십 장은 돼 보였다. 아래쪽은 시커먼 어둠으로 휩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고개를 끄덕인 이는 카밀이었다.

“어떻게 내려가죠?”

“나를 따라오면 된다.”

카밀은 앞장섰다.

동굴 외곽을 따라 돌던 그는 커다란 바위 옆으로 가더니 아래로 내려갔다.

금장생은 가만히 서서 카밀을 지켜보았다.

“아!”

카밀이 십 장가량 내려갔을 때 금장생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카밀이 딛고 내려간 지점을 연결하자 놀랍게도 계단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그냥 보면 계단이란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다.

“기가 막히네.”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빨리 오지 않고 뭐 하는가?”

앞서가던 청명진인이 돌아보며 소리쳤다.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빨리 걸었다.

큰 바위 옆에 멈춰 선 그는 아래를 바라보았다.

계단이 있다는 걸 알고 보자 길이 보였다.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계단은 동굴 측면을 따라 빙글빙글 돌아가며 나 있었다.

깊이가 깊어질수록 주위는 점점 더 어두워졌다.

“이걸 허리에 묶고 수 소저에게 주게.”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청명진인이 줄을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줄을 허리에 감아 묶고 나머지를 수어린에게 건넸다.

앞사람과 줄로 연결한 이유는 바닥에 내려서서야 알게 됐다.

바닥에 내려서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줄로 서로를 엮은 걸로 보아 이 어둠은 내공의 유무와는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금장생은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았다.

소리는 비교적 선명하게 들린다. 동굴 내부는 바닷속 같은 깊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그때 맨 앞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밝은 광채가 나타났다.

“아!”

금장생은 탄성을 내뱉었다. 천도경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선두에 선 카밀이 천도경을 들어 올리고 있었는데 광채와 함께 붉은 선 하나가 나타나 있었다.

“출발하겠소.”

카밀은 천도경을 들어 올린 채 걸음을 옮겼다.

일행은 카밀을 따라 걸었다.

카밀은 천도경을 이리저리 움직여 길을 찾아내서는 그곳으로 걸었다.

오직 어둠뿐인 곳을 일행은 말없이 걸었다.

보통 동굴에는 박쥐가 같은 야행성동물들이 살기 마련인데 여긴 그런 것조차 없는지 날갯짓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독한 곳이네.”

금장생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많은 곳을 다녀 봤다고 자부하지만 이런 장소는 난생처음이었다.

깊은 바닷속보다 더한 침묵이 계속되자 청력은 점점 예민해졌다.

“카밀, 만일 거기에 나와 있는 길로 가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금장생은 카밀에게 물었다.

“어둠에 잡아먹힌다.”

“어둠에 잡아먹혀요?”

“그렇게 나와 있다.”

“어둠이 살아 있어서 잡아먹는 건 아닐 테고, 어둠 속에서 헤매다가 죽는다는 뜻인가 보죠?”

“정 궁금하면 나중에 혼자 와서 시험해 봐라.”

“흠!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요.”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응?”

카밀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그는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천도경을 보았다. 앞쪽에 커다란 문이 있고 그 문에는 ‘침묵하라’라는 의미의 글이 나타나 있었다.

‘저건?’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천도경에 나타난 글은 전에 천수총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종류였다. 그리고 해석이 된다는 게 더욱 놀라웠다.

침묵하지 않으면 죽는다!

천도경에 나타난 글이었다.

“이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거요. 거기서는 말은 물론이고 발소리도 내서는 안 되오. 알겠소?”

“알았어요.”

“알았습니다.”

일행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밀은 천도경으로 전면을 비춘 채 나직하게 소리쳤다.

그가 소리친 언어는 중원어가 아니었다.

그 언어 역시 금장생은 알아들었다.

‘문이여, 열려라!’라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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