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2)
불입불귀역
“서두릅시다.”
일행은 빠르게 올라갔다.
하지만 절벽은 높고 움직임은 더뎠다.
평지라면 신법을 통해 금세 갈 거리지만 이곳은 절벽이고 일행은 어느새 백 장 이상을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떨어지면 아무리 강한 무공을 지녔다고 해도 허공답보 신법을 펼치지 못하는 이상 바로 사망이다.
일행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일행은 땀을 흘리며 손과 발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휘익!
백이십 장 높이에 도착하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은 상당히 거셌다.
쇄액!
“바윕니다! 바위가 떨어집니다!”
위를 올려다보던 금장생이 소리쳤다.
그는 절벽에 바싹 달라붙었다.
휘익!
날카로운 모서리가 나 있는 바위 하나가 그의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휴우!”
금장생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바위 모서리가 조금만 더 튀어나왔어도 그의 등이 찢겨 나갈 뻔했다.
그는 다시 손과 발을 놀려 절벽을 올랐다.
“서둘러라! 놈들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
절벽 바로 아래쪽에서 살기 어린 외침이 들려왔다.
금장생은 고개를 숙였다. 문도들을 독려하는 자는 며칠 전 찾아왔던 무량진인이었다.
곤륜파 문도들은 곧바로 절벽을 올랐다. 도인의 수는 서른 명 정도였다.
지금은 서른 명이지만 위치가 발각된 이상 점점 늘어날 게 분명하다.
빠져나가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공연한 일에 말려든 거 아닌가 모르겠네.”
금장생은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천 냥이잖아. 그 정도 금액이면 모험할 가치가 충분해.”
애써 자신을 다독이며 위로 올라갔다.
기온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듯 불어오는 바람이 한겨울 칼바람처럼 매섭다. 땀이 급격하게 식으면서 한기가 들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있겠네.’
금장생은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를 비롯한 일행이 절벽 위로 올라선 건 그로부터 반 시진 후였다.
절벽 위는 벌판으로 이어져 있었다. 큰 나무는 거의 없고 허리 높이까지 오는 관목들이 대부분이었다.
“갑시다!”
카밀이 가장 선두로 나섰다.
일행은 바닥을 차고 몸을 날렸다.
벌판의 길이는 삼백여 장이었다.
벌판을 지나자 다시 경사가 급한 오르막이 나왔다. 절벽은 아니었지만 거의 엎드린 상태로 올라야 했다.
급경사 고개 정상에 올랐을 때 주위가 어둑해져 왔다.
평소 같으면 잠잘 곳을 찾아야겠지만 쫓는 자들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일행은 계속 달렸다.
다시 네 개의 작은 봉우리를 넘고 절벽 두 개를 올랐다.
그들이 달리기를 멈췄을 때는 주위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채워져 있었다.
쿠쿠쿠쿠! 쿠쿠쿠쿠쿠!
바로 앞에서 육중한 소리가 들려왔다.
금장생은 지도를 떠올렸다.
‘폭포 안쪽에 길이 있었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는 절벽을 올랐지만 이번에는 절벽에 나 있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 폭포 폭은 오십 장 정도인데, 그 절벽 길은 그 안쪽에 나 있다.
‘어쩌면 추격을 뿌리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곤륜파 문도들이 폭포 안쪽 길을 모른다면 추격을 따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지형이었다.
‘몰랐으면 좋겠네.’
그사이 일행을 이끌던 카밀은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절벽 길이 십 장 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들도 카밀을 따라 올라갔다.
잠시 후 일행은 선반 형태의 바위 위로 올라섰다.
금장생은 앞으로 시선을 주었다.
절벽 측면에 길이 나 있었다. 폭은 한 자 정도로 아주 좁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방금 왔던 곳을 보았다.
곤륜파 무인들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는가?
금장생은 왼편을 보았다.
바로 옆에 머리가 부서진 귀신이 서 있었다.
몇 번 만나다 보니 이젠 귀신이 별로 무섭지 않았다. 아니, 귀신 덕분에 돈을 벌었는데 무서워할 이유가 없었다.
‘쫓기는 중입니다.’
금장생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누가 자네들을 쫓는다는 건가?
‘곤륜파 문도들입니다.’
―곤륜파에 죄라도 지은 건가?
‘제가 아니고 저들이 죄를 졌습니다.’
―어떤 죈가?
‘물건을 훔쳤습니다.’
―무공 비급을 훔친 건가?
‘아닙니다. 저들이 훔친 건 거울입니다.’
―거울이란 말인가?
‘어떤 거울인지에 대해서는 알려 주지 않더군요.’
―곤륜파에서 훔쳐 낼 만한 거울이라면 천도경밖에 없는데.
‘천도경요?’
―그러네.
‘천도경은 어떤 거울입니까?’
―양면 거울인데, 아무리 비춰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특이한 거울이라네. 이상한 전설이 내려오긴 하지만 훔쳐 낼 정도로 보물은 아닌데…….
‘이상한 전설이란 건 어떤 겁니까?’
―곤륜산에는 들어가는 것도 나오는 것도 불가능한 불입불귀역이란 장소가 있는데,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천도경이 있어야 한다는 전설이네.
‘불입불귀역은 어디에 있습니까.’
―자네들이 불입불귀역으로 가는 것 같은데 아닌가?
‘제 머릿속에 지도가 들어 있긴 하지만 목적지가 불입불귀역인지는 모릅니다.’
―내 생각엔 자네들의 최종 목적지가 그곳인 것 같네.
‘혹시 불입불귀역에 가 보신 겁니까?’
―…….
그 질문에 대해서는 귀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금장생은 직감적으로 귀신이 불입불귀역에 가 본 적이 있다고 확신했다.
‘자살한 겁니까?’
―아니네.
‘누군가가 아래로 밀었군요.’
―그러네.
‘그럼 지박령?’
―귀신에 대해 잘 아는가?
‘지금 열심히 배우는 중입니다.’
―귀신에 대해 배우는 사람은 처음이구먼.
‘어쩌다가 귀신을 보게 됐거든요.’
―선천적으로 귀안을 타고난 게 아닌가?
‘우연한 기회에 귀안을 얻게 됐습니다.’
―그랬구먼.
‘그런데 누가 밀었습니까?’
―나 말인가?
‘네.’
―그 친구 이름은 헌원소야네.
‘헌원소야?’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헌원소야란 이름은 일월태극문 폐허 앞 절벽의 동굴에서 살던 귀신도 언급했다.
헌원이란 성씨가 희귀 성인 걸 감안할 때 둘은 동일 인물인 것 같았다.
―헌원소야를 아는가?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이긴 한데……. 혹시 도사님이 살았던 시대의 황제가 누군지 알 수 있습니까?’
―쿠빌라이 칸이 중원을 통일할 때였네.
‘그럼 아니네요.’
귀신이 말한 그 시기는 이백오십 년 전이다.
일월태극문이 오십 년 전에 멸망한 것과 비교하면 이백 년 차이가 난다. 두 귀신이 언급한 헌원소야는 동일 인물이 아니었다.
―자네가 아는 헌원소야는 언제 적 인물인가?
‘오십 년 전입니다.’
―그 사연도 귀신에게 들은 건가?
‘네.’
―궁금하구먼.
‘사연 말입니까?’
―그러네.
‘특별한 건 없습니다. 그러니까…….’
금장생은 장우란 이름의 귀신에게 들었던 걸 말해 주었다.
―사람은 다를지 몰라도 하는 짓은 완전 똑같구먼. 만일 시대가 같았다면 나는 그자를 동일인이라고 확신했을 거네.
‘아무튼 그자도 이미 죽었을 테니까 그만 잊어버리고 저승으로 떠나세요.’
―그래야겠네. 고맙네.
귀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귀신의 등 쪽에 환한 빛이 나타났다.
―행운을 빌겠네. 참! 나는 황공이네.
귀신은 손을 흔들었다.
‘극락왕생을 빕니다.’
금장생은 귀신을 향해 합장을 했다.
“지금 뭐 하는 건가?”
금장생 뒤에서 따라가던 청명진인이 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합장을 한 건가?”
“우린 지금 천 길 낭떠러지에 나 있는 좁은 길을 가고 있잖습니다.”
“무사히 가게 해 달라고 합장을 한 거라고?”
“네.”
“앞으로는 함부로 합장하지 말게.”
“왜 그러십니까?”
“조금 전 자네 몸에서 영기가 요동쳤네.”
“영기가 요동쳐요?”
“귀신에 씐 것 같았단 말이네.”
‘억!’
금장생은 내심 신음을 내뱉었다.
그는 전혀 표시가 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청명진인은 알아본 모양이었다.
쿠쿠쿠! 쿠쿠쿠!
바로 앞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금장생은 수어린을 따라 폭포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이 미끄러우니까 조심해요!”
수어린은 금장생에게 향해 소리쳤다.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청명진인을 돌아보았다.
“나도 들었네!”
청명진인도 고개를 끄덕여 알아들었다는 의사 표현을 했다.
폭포는, 유량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폭은 상당히 넓었다. 꽤 걸은 것 같은데 밖이 나오지 않았다.
“어?”
수어린을 쫓아가던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수어린이 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절벽에 나 있는 틈새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절벽에 나 있는 틈은 옆으로 가지 않으면 통과가 힘들 정도로 좁았다. 길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가기 힘든 곳이었다.
‘뭐, 맞겠지.’
그는 수어린을 쫓아갔다.
금장생 일행이 사라진 곳으로 곤륜파 무인들이 나타난 건 두 시진 후였다.
무량진인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절벽 길과 틈새를 바라보았다.
흔적은 분명 틈새에 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틈새가 속임수일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만일 틈새로 들어갔는데 놈들이 없으면. 찾아내기 힘들지도 모른다.
“문주님!”
“문주님!”
바로 그때 뒤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응?”
무량진인의 눈이 커졌다.
휘리릭!
곧 옷자락을 펄럭이며 노도사 한 명이 무량진인 앞쪽으로 날아내렸다.
강인한 인상의 이 도인은 곤륜파 문주 일월존자日月尊子였다.
“오셨습니까?”
무량진인은 고개를 숙였다.
“왜 멈춰 선 건가?”
인사를 받은 일월존자가 물었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어서…….”
“저기로 갔네.”
일월존자는 절벽에 나 있는 좁은 틈을 가리켰다.
“저긴…….”
―곤륜산 어딘가에 불입불귀역이란 장소가 있다는 말 들어 보았는가?
일월존자는 전음으로 물었다.
―들어 보긴 했습니다만…….
무량진인은 말끝을 흐렸다.
불입불귀역이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다. 하지만 그곳이 어떤 장소인지에 대해서는 내려온 말이 전혀 없었다.
―이 틈은 거기로 가는 통로네.
폭포 소리 때문에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해 전음으로 말했다.
―정말이십니까?
무량진인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러네.
―그럼 천도경은?
―나도 정확한 건 모르네. 하지만 그걸 훔쳐 간 걸 보면 불입불귀역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한 것 같네.
―그런데 불입불귀역엔 뭐가 있습니까?
―하늘의 주인이 된다는 말이 전해 내려올 뿐이네.
―천하제일인 그런 게 아니고 하늘의 주인이 된다는 겁니까?
―그러네.
―황당무계하군요.
―하늘의 주인이 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번에 확인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군요.
―가세.
“저기로 들어간다!”
무량진인은 틈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곧 곤륜파 도인들은 틈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가고 잠시 후 허공에 투명한 막 같은 게 생겨나더니 검은 인영이 튀어나왔다.
그는 바로 조금 전 저승으로 떠났던 귀신 황공이었다.
‘어떻게……!’
황공은 믿기지가 않았다.
빛이 나타났고 분명 그 안으로 들어갔다. 평생 동안 착하게 살았는지 지옥이 아닌 천당으로 향했다.
물론 가 보기 전엔 그곳이 지옥인지 천당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가는 길이 천당으로 간다는 걸 증명해 주었다.
꽃가루가 잔뜩 뿌려진 길을 따라 걷다가 문을 앞에 두었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손잡이를 잡는 순간 빛이 쏟아지더니 그 안으로 빨려들어 가고 말았다.
그리고 나와 보니 원래 그 자리다.
―설마 그놈이 아직도……. 이건 말도 안 돼. 어찌 인간이……?
황공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